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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대 벼랑 위를 올려다보셨나요

이기대 벼랑 위를 올려다보셨나요

닭의장풀꽃(달개비)은 파란 나비처럼 생겼다. 어쩌면 파란 나비가 꽃으로 환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닭의장풀꽃이란 이름은 좀 생뚱맞다. 닭장 주변에 이 꽃이 많아서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다른 유래가 유력해 보인다. <들꽃 수업>은 다양한 들꽃의 생태를 관찰한 내용을 문학과 연결하고, 자연의 섭리와 삶에 관해 통찰해 온 기록을 모은 수필이다. 저자가 부산사람인 덕분에 친숙한 지명이 많이 나와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저자가 자주 산책한다는 이기대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바다를 닮아서 그럴까. 이기대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들은 대체로 색상이 강렬하단다. 갯완두, 갯까치수영, 갯쑥부쟁이, 갯고들빼기, 갯메꽃…. 이기대에는 바다를 뜻하는 접두사 ‘갯’이 붙은 것이 많다. 대체로 키가 작고 아예 해안가 바위를 따라 바닥에 붙어 기어가듯 자라는 것들도 있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의지하면서 부지런히 종자를 퍼뜨려 군락을 이룬다. 한데 모여 소금기 머금은 바람과 태풍을 이겨 내려는 생존 전략이다. 해안가 바위 벼랑을 붙잡고 피어난 야생화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존경스럽다.눈에 잘 띄지도 않는 들꽃을 어떻게 끊임없이 관찰하고 사색해 왔을까. 그는 어린 시절 함께했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서라고, 문학적으로 대답한다. 어떤 아이였는지 짐작하고 미소 짓게 되는 한 대목이 나와 있다. 어린 시절 동네 형들과 소에게 꼴을 먹이러 산을 몇 개나 넘어 꽤 멀리 갔던 날의 이야기다. 소들을 대충 풀어 두고 산딸기를 따느라 정신이 없는데, 옆에 송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송아지도 열심히 풀을 먹는지 산딸기를 따 먹는지 아무튼 그를 졸졸 따라다녔다. 시간이 지나 나타난 형들이 갑자기 “노루다!”라고 외쳤다. 그 소리에 송아지는 풀쩍 뛰더니 산 쪽으로 달아나 버렸다. 송아지가 아니라 노루였던 것이다.이 책에는 민들레를 서민의 환한 웃음으로 연결한 ‘밝은 구석’ 같은 시들이 종종 나와서 반갑다. 저자는 국문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국어교사가 되어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꽃을 소재로 한 다양한 시 작품을 열심히 읽어 온 덕분일 것이다. 들꽃처럼 아이들도 각자의 매력을 온 세상에 발산할 때를 기다리며 성장해 가리라 믿는 대목은 참으로 교사답다. 이런 연유로 책 제목을 ‘들꽃수업’이라 붙였다고 한다.누구든 보도블럭 사이에서 피어나는 민들레를 만나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들꽃에 대한 관심은 결국 작고 여린 존재들에 대한 애정이며, 주변의 소외된 것들에 대한 응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현고가교 아래에 있는 털머위들이 온갖 먼지와 매연으로 뒤덮인 채 차량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까지 보이는 모양이다.그가 직접 그린 들꽃 그림들이 삽화로 등장해 책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 준다. 그 중 몇 개는 나무 판에 그린 것이다. 학생들이 쓰던 낡은 사물함을 폐기하는 과정에서 나와 화폭으로 재탄생되었다고 한다. 이 책이 그 나무판처럼 우리 주변의 풀꽃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돕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숨기지 않는다.삼색병꽃나무의 꽃은 처음에는 새하얀 색이었다가 점점 분홍색을 띤 뒤 연한 붉은색으로 변한다. 꽃이 성장할수록 자기 색의 농도를 더해 가듯 사람도 연륜이 쌓일수록 자신만의 아름다운 색깔을 더 진하게 지니면 좋겠다. 저자는 자신만의 반려초나 반려목을 두고 산책길의 동행자로 삼는 분이 많아지면 더 좋겠다고 바란다.그러고보니 창비부산에서 열린 행사 때 우연히 저자를 만나 인사한 적이 있었다.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이런 글 솜씨에 그림 솜씨까지 겸비했다니…. 그는 시서화(詩書畵)를 통합하는 활동을 하면서 대상을 단순히 바라만 보았다면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것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창비부산이란 공간이 만들어준 인연이 고맙게 여겨진다. 봄날 그의 뒤를 따라 이기대를 걸으며 들꽃 이야기에 흠뻑 취했으면 좋겠다. 심재신 지음/창비교육/328쪽/1만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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