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레기 없는 삶을 위해… 작지만 큰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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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 없는 삶을 위해… 작지만 큰 걸음

    칫솔이 썩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100년 이상. 칫솔 손잡이가 동물뼈에서 플라스틱으로 대체된 게 20세기 초니까, 지구상에서 생산된 어떤 칫솔도 아직 썩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숨쉬듯 쓰레기를 배출하는 삶은 과연 괜찮은 걸까. 쓰레기를 최소화하자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에 동참하는 상점, 제로 웨이스트 숍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부산·울산·경남에 잇따라 들어서고 있는 제로 웨이스트 숍을 찾아가봤다.‘가치있는 소비’ 관심 점차 높아져포장재 없는 친환경 제품 위주 판매지난해부터 최근까지 4곳 문 열어판매 넘어 환경운동 거점 역할까지생산단계 변화·제도적 지원 필요■이래서 열었다 이래서 산다제로 웨이스트 숍은 대개 포장재 없는 가게로 번역된다. 쓰레기 없는 삶을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라고 보는 게 쉽다. 재활용·재사용이 되는 친환경 제품을 취급하고 세제 등을 소분 판매한다. 포장재를 최소화하고 장바구니나 담아갈 용기를 가져오는 사람을 환영한다. 국내에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서울에 더피커, 알맹상점 등이 생기면서 이름을 알렸지만, 지역에서는 온라인쇼핑 외에는 관련 제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부산·울산·경남에서 본격적인 제로 웨이스트 숍을 표방한 곳은 지난해 1월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에 들어선 ‘마리앤하우스’가 처음이다. 같은 해 5월 부산 북구 덕천동 젊음의 거리 골목에 ‘천연제작소’가 들어서며 입소문으로 단골을 늘리기 시작했다. 울산에는 지난 달 남구 업스퀘어 인근에 ‘지구맑음’이 생겼고, 경남 김해에는 ‘오늘가게’가 20일에 막 문을 열었다.가게 운영자들은 이전에는 저마다 다른 모습의 생활인이었다. 마리앤하우스의 윤체영 씨는 과자봉지도 세제로 씻어서 배출할 만큼 분리수거에 열심이었다. 천연제작소의 우지민 씨는 비누 공방을 하면서 노케미 라이프(화학물질 거부)를 지켰다. 지구맑음의 신유희 씨는 오랫동안 지역 생협 이사로 활동했고, 오늘가게의 정윤영 씨는 유치원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살아갈 미래의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이들이 직접 가게를 운영할 결심을 한 공통의 이유는 절박함과 필요다. 윤체영 씨는 바다거북이 콧구멍에 빨대가 꽂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환경을 지키는 소비가 ‘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정윤영 씨는 설거지비누, 대나무칫솔처럼 인터넷으로만 살 수 있던 제품들을 이웃들에게 실물로 소개하고 싶어서 가게를 준비했다.가게를 찾는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20~30대 밀레니얼 세대는 가격이 비싸거나 사용이 불편해도 ‘가치있는 소비’에 관심이 높다. 마리앤하우스에는 친구의 이사 선물로 예쁜 용기에 소분 세제를 담아서 주려는 대학생이 멀리서 찾아온 적이 있다. 지난 18일 천연제작소에서 만난 임진영(29) 씨는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았는데 유튜브를 통해 동네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보고 찾아왔다”면서 고체치약, 대나무수저, 천연수세미를 골라갔다.■함께하는 실천의 거점으로제로 웨이스트 숍에서 살 수 있는 물품들은 다양하다.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는 책에 제시된 다섯 가지 원칙인 5R로 분류하자면, 필요하지 않은 포장재는 거절하는(refuse) 대신 소비를 줄이고(reduce), 재사용하고(reuse), 재활용하고(recycle), 썩히기(rot) 좋은 물품들이다. 천연수세미, 스테인레스 빨대, 샴푸바 같은 생활용품들이 많고, 재생지를 사용한 문구, 면이나 잘 썩는 소재의 생리대 등을 취급하는 곳도 있다.가게들은 단순한 판매를 넘어 지역의 환경운동 거점이나 커뮤니티 역할도 하고 있다. 천연제작소와 마리앤하우스는 지난해 브리타 정수기의 폐필터 재활용을 촉구하는 캠페인에 참여해 지역 주민들로부터 다쓴 필터들을 모아 업체에 보냈다. 최근 기업으로부터 폐필터 수거·재활용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두 가게는 재활용이 어려운 작은 플라스틱 병뚜껑을 모아서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만드는 캠페인에도 함께하고 있다.지난해 울산방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7개월간 운영된 ‘착해가지구’는 처음부터 ‘실천의 장소’를 목표로 했다.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내 주변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체험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공간이 필요했다. 실제로 많은 시민들이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다시 찾고, 시민단체나 교육청 같은 기관에서 제로 웨이스트 제품들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울산방송 조민조 피디의 말이다.울산 남구의 지구맑음도 지역에 제로 웨이스트와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을 널리 알리기 위한 공간이다. 지구맑음을 운영하는 진지한주식회사의 신유희 대표는 “생협 이사와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생산자의 자립과 지속이 기후 문제와 떨어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지역에 관련 제품을 소개하고 더 나아가 시민 참여와 교육을 통해 제로 웨이스트와 공정무역 마을운동의 거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부산의 예비사회적기업 (주)비치코밍코리아프로젝트가 이달 말 선보일 팝업숍은 거꾸로 실천에서 시작한 경우다. 최순도 대표는 “2019년부터 솔트컴바인이라는 이름으로 해양쓰레기를 줍고 쓰레기 활용 작품을 전시하는 활동을 하면서 삶 속에서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팝업숍은 기장군 솔트갤러리에서 매장과 다양한 체험 공간을 결합한 형태로 운영될 예정이다.■제로 웨이스트 사회를 위해제로 웨이스트 숍이 지속 가능한 형태로 유지되려면 과제들이 많다. 운영자 입장에서는 다품종 소량 제품들을 개별 공급받고 재고 관리를 해야 하다 보니 아직은 이윤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다. 플라스틱 포장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샴푸나 보디샴푸, 화장품이나 식품류의 소분 판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관련 허가나 규제가 워낙 복잡해서 환경부조차 정확한 지침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쓰레기 없는 삶은 소비자의 의지나 유통 단계의 변화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국립환경과학원의 2017년 통계 분석에 따르면 포장폐기물은 연간 국내에서 발생하는 생활폐기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생활폐기물 중 포장폐기물의 비율은 무게로 보면 30~40%, 부피로는 50~60%에 달한다. 이 같은 추세는 택배와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생산자가 나서야 하는 이유다.정부도 지난달 ‘생활폐기물 탈플라스틱 대책’을 발표하면서 플라스틱 용기 생산 비중을 줄이는 등 생산 단계의 제도를 포함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지난해 10월 ‘포장재 없는 가게 제도 마련 국회 토론회’에서 생산자가 유통업자와 벌크 제품을 협의하는 등 규제를 연계할 것을 주장했다. 토론회에서는 프랑스 사례를 참고해 일정 규모 이상 지자체에 반드시 제로 웨이스트 마켓을 설치하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됐다.“동네 슈퍼마켓처럼 곳곳에 생긴다면 좋지 않을까요?” 우지민 씨는 부산에 천연제작소 외에도 더 많은 제로 웨이스트 숍이 생기기를 바란다. 오늘가게의 정윤영 씨는 “이런 공간들을 통해 친환경 소비에 대한 생각이 ‘굳이 불편하게’라는 의문형에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습관으로 바뀔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믿고 오늘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글·사진=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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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리코박터균, 가족력·위궤양 없다면 ‘제균 치료’ 불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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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리코박터균, 가족력·위궤양 없다면 ‘제균 치료’ 불필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위 속에 있는 균이다. 위 점막에 침투해 염증을 일으키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결국 위암을 일으키기도 한다. 위암 뿐만 아니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위염 같은 다양한 소화기질환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헬리코박터균을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헬리코박터균 꼭 치료해야 하나무차별적 제균 치료 땐 부작용 발생항생제 내성 생겨 치료율 점차 감소조기 위암 수술 환자·위궤양 있을 땐항생제·위산억제제 1~2주간 복용을■헬리코박터균 감염 증상과 치료헬리코박터균에 처음 감염되면 일시적으로 복부팽만감이나 메스꺼움, 구토 등의 위장관 증상을 유발한다. 하지만 균이 위장에서 서식에 성공하면 대부분 증상이 없어진다.헬리코박터균은 자연적으로 소멸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항균제를 포함해 적절한 치료를 통해서만 균을 없앨 수 있다. 그러나 헬리코박터균 감염자라고 해서 모두가 위암이나 위궤양 등의 위중한 경과를 밟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균이 있다고 무조건 치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고신대복음병원 소화기내과 박무인 교수는 “만성위염이 있는 경우에 위암의 가족력이나 위궤양이 동반되지 않으면 굳이 제균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감염자 중 적절한 치료 대상군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헬리코박터균이 있다고 무차별적으로 제균 치료를 진행하면 직간접적인 부작용도 많다. 우선 균을 없애기 위해 먹는 항생제에 대한 내성률이 증가할 위험이 높다. 항생제 내성이 생기면 약 효과가 떨어지고 치료율도 점차 낮아진다. 실제로 헬리코박터 제균 성공률이 과거에는 85% 수준이었는데 최근에는 80% 밑으로 떨어졌다. 이 역시 항생제 내성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또 항생제를 복용하는 과정에 설사, 입맛 저하, 구토 등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울러 독성 간염과 신장기능 부전이 드물게 일어나기도 한다.■어떤 경우에 제균 치료하나헬리코박터균은 적어도 5만여 년 전 아프리카로부터 전파되면서 사람과 함께 진화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 인구의 50% 이상이 감염돼 있고 10~15%에서 심한 위질환을 유발한다. 우리나라도 성인 인구의 절반 가량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감염률은 1998년 67%에서 2017년 44%로 감소세를 보이지만 30% 이하인 미국이나 유럽보다는 여전히 높다.위염 환자가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돼 있으면 위암 발병률이 3~5배 높아진다. 또 위궤양과 십이지장 궤양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어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국내에서는 2013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회에서 개정된 치료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소화성궤양 환자, 변연부 B세포 림프종 환자, 조기위암 환자가 위암치료를 받은 후에는 제균 치료를 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항생제를 투여해 반드시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라는 의미다.반면에 위암 환자의 직계가족, 위축성위염과 장상피화생, 기능성 소화불량증이 있는 환자인 경우는 제균 치료를 해야 하느냐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의사에 따라서 또 나라별로도 의견이 조금씩 엇갈리고 있다.이에 대해 박무인 교수는 “위암 가족력이 있으면서 위축성 위염이나 장생피화생을 동반하고 있는 젊은 환자는 제균 치료를 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 경우에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본인 부담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일본의 경우 위암 예방을 위해 모든 헬리코박터균 감염 환자를 치료 대상으로 잡고 있다. 소화불량증 환자에게도 제균치료의 필요성을 강조할 정도다.고신대복음병원 권혜정 교수는 “일본은 아주 공격적으로 헬리코박터균에 대해 대응하고 있지만 보수적으로 치료하는 나라도 많다. 나라마다 가이드라인에 차이가 있지만 제균 성공률이 떨어지는 추세는 비슷한데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헬리코박터균이 있으면서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이 있는 경우 제균 치료를 하는 것이 위암 예방에 효과가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2020년도에 발표된 ‘한국인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임상진료지침 개정안’에 따르면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에서 제균 치료를 권고하기에는 확실한 근거나 전문가 합의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제균 치료가 위암 예방에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축적된 후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진단 및 치료 방법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될 경우 소화성 궤양 발생 확률이 6~10배 높아진다. 특히 십이지장궤양 환자의 90% 이상에서 헬리코박터균이 발견될 정도로 연관성이 크다. 위장 점막에 서식하는 헬리코박터균이 위산의 분비를 늘려 위와 십이지장의 방어막을 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헬리코박터균 진단에는 위내시경을 통한 조직검사, 요소호기검사, 대변항원검사 등의 방법이 있다. 특히 헬리코박터균은 위에 균일하게 퍼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균이 없는 곳의 조직을 검사하면 음성으로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요소호기검사나 항체검사, 소변·대변검사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 날숨 속의 요소 성분을 체크해서 헬리코박터균의 존재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요소호기검사다.치료는 3가지 약제를 사용하는 삼제요법이 표준이다. 두 가지 이상의 항생제와 강력한 위산억제제를 병행해 1~2주간 복용하는 방법이다. 제균 여부에 따라 2차 치료를 시작해 볼 수 있다.처방된 약은 스케줄에 맞춰 제때 복용해야 한다. 복용 중에 임의로 중단하면 내성이 생겨 치료가 어려워진다. 복용 중에 설사나 복통, 오심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면 주치의와 상의해야 한다. 김병군 선임기자 gun39@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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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셜티 커피 전문 카페Ⅰ] 허기진 마음 채워 줄, 특별한 한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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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셜티 커피 전문 카페Ⅰ] 허기진 마음 채워 줄, 특별한 한 모금

    부산에는 스페셜티 커피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카페가 적지 않다. 스페셜티는 단순한 아메리카노에 비해 맛이 훨씬 빼어난 고급 커피다. 코로나19 탓에 카페에 앉을 수는 없지만 커피를 ‘테이크아웃’하거나, 원두를 구매해서 집에서 내려 먹어도 된다. 스페셜티 커피 전문 카페 4곳을 두 차례로 나눠 소개한다. 추운 날씨에 맛있는 커피 한 잔으로 집안에 갇힌 스트레스를 풀어보자.카페 데니스‘카페 데니스’는 정말 독특한 곳이다. 위치만 보면 장사가 제대로 될까 싶다. 외양은 화려하지 않고 실내장식도 단출하다. 동네쌀집이나 구멍가게 같은 분위기다. 그런데 희한한 매력이 쏟아진다. 더 중요한 건 커피 맛이다.카페 데니스 오정훈(39) 대표는 만만치 않은 경력을 가졌다. 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카페에서 동료들과 연기 연습을 하다 커피에 맛을 들였다. 그래서 스물여섯 살 때 호주로 커피 유학을 떠났다. 한국에 돌아온 뒤 2002년 세계 바리스타 대회 챔피언인 호주 출신의 폴 바셋과 일하게 됐다. 그를 도와 서울에 폴 바셋 1호점을 개장했고, 새 매장 개업을 도와주는 오픈바이저 및 트레이너로 일했다.부산의 오래된 멋·낡은 멋 담은 이색공간호주 유학파 대표 호주 스타일 커피 선보여플랫화이트·초코가루 뿌린 카푸치노 인기오 대표는 폴 바셋에서 4년 정도 일하다 고향인 부산에 내려와 독립했다. 그는 카페 위치와 실내 장식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커피는 어쩔 수 없이 외국 수입품을 쓰지만 공간은 가장 부산답게 꾸미고 싶었다. 부산의 오래된 멋, 낡은 멋을 꺼내고 싶었다”고 말했다.서면과 남포동에서는 손님들이 여유 없이 커피만 마시고 냉큼 갈 것 같았다. 풍광만 좋은 바닷가로 갈 생각도 없었다. 그러다 송상현 광장 인근의 현재 가게를 우연히 발견했다. 개업 당시에는 주변에 별다른 건물이 없어 조용해서 커피에 집중하기 좋아보였다.오 대표는 우선 커피 때문에 알게 된 지인들에게 SNS로 ‘카페 데니스를 열었다’고 알렸다. 첫 손님은 서울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 SNS 사진이 정말 독특해서 기차를 타고 일부러 부산에 내려왔다고 했다. 이후 카페 데니스는 서울 사람과 외국인에게 독특한 카페로 인기를 얻었다. 커피 맛도 수준급이어서 고객 만족도는 날로 높아졌다. 이렇게 해서 희한한 위치에 문을 연 지 6년이 훌쩍 지나갔다.오 씨는 “카페 데니스의 커피는 호주 스타일이다. 호주는 낙농국가여서 우유를 기반으로 한 커피가 맛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커피”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게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플랫화이트와 호주식 카푸치노를 소개했다. 플랫화이트는 신선한 우유와 커피를 동시에 즐기려고 호주에서 1980년대에 개발한 메뉴다. 호주식 카푸치노의 경우 초코 가루를 뿌려 내놓는다.호주에서는 필터라고 하는 드립커피도 소개한다. 스페셜티 커피로 유명한 과테말라 산타 로사의 아야르자다. 초콜릿 맛이 나는가 싶더니 재스민 차와 홍차 맛도 풍긴다.오 대표는 지역 카페의 공존에도 큰 관심을 쏟고 있다. 2019년 여름과 가을에는 카페 열다섯 곳과 뜻을 모아 경성대, 송상현 광장에서 부산인디커피페스티벌을 열었다. 다양한 카페의 다양한 커피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행사였다. 또 여러 카페가 뜻을 모아 생두를 공동구매하고 로스팅 등을 도와주기도 한다.카페 데니스에서는 커피 외에 다른 음료수도 판다. 지역 이미지를 맛으로 표현하자는 뜻을 담아 이름도 이색적으로 지었다. 전포 율무, 루이보스 온천장, 범어사 에일, 금련산(메서드 디비네이션) 등이다. 금련산은 허브차를 침출해 레모네이드처럼 만든 음료수다.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느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오 대표는 “카페 데니스 커피는 다른 가게보다 대체로 묵직한 편이다. 공간이 주는 느낌을 대변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인터넷 구매 고객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카페 데니스/부산진구 전포대로 306번길 36. 010-6684-2250.루트 커피부산지하철 1호선 교대역 3번 출구에서 교대로를 따라 부산교육대학교로 가다 보면 많은 카페가 나타난다. 대형 프랜차이즈는 물론 개인 카페도 적지 않다. 이곳에서 결코 싸지 않은 스페셜티 커피로 인근 직장인들의 사랑을 얻은 카페가 있다. 올해로 커피 경력 15년을 자랑하는 정지현(40) 대표의 ‘루트 커피’다.정 대표는 대학교에서 호텔 경영학을 전공했다. 카지노 딜러의 꿈을 꾸던 그는 2005년 우연히 카페 관련 책을 읽은 뒤 큰 감동을 받아 커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때만 해도 부산에 스페셜티 커피 전문카페는 많지 않던 때였다.남산동서 지난해 초 교대 인근으로 이전소규모 생산하는 ‘마이크로 랏 생두’ 취급에티오피아 싱글 오리진 라테 색다른 맛부산에 커피를 제대로 배울 학원도 드물어 정 대표는 할 수 없이 서울에 올라갔다. 학원에서 커피 내리는 법을 배운 그는 5년 동안 여러 카페를 돌아다니며 바리스타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누나가 사는 부산에 내려온 것은 10년 전이었다.처음에는 남산동에 루트 커피를 열어 누나와 함께 영업했다. 장사는 꽤 잘 됐다.하지만 주말에도 일을 하다 보니 개인적 생활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상권의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정 대표는 여유를 가지면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남산동 가게를 접고 지난해 초 현재 위치로 옮겼다. 직원을 여러 명 쓰던 70평짜리 가게를 줄여 18평 점포에서 혼자 일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전개업하자마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카페를 새로 열면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하나도 진행하지 못했다. 상황이 나아지면 커피 교육과 모임을 진행할 계획이다.루트 커피는 가게에서 직접 생두를 볶는 로스터리 카페다. 부산 시내 카페 20여 곳에 신선한 원두를 납품하고 있다. 정 대표는 “미리 재고를 만들어두지 않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볶는다. 그래서 가장 신선한 원두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이곳은 ‘마이크로 랏’ 커피를 주로 다룬다. 작은 농장에서 소량으로 생산하는 커피다. 생두를 집중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생두 원래의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는 게 마이크로 랏의 장점이다. 소량 생산이어서 맛은 좋아지지만 다른 스페셜티커피보다 다소 비싸다. 정 대표는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에 마이크로 랏 농장이 많다. 생두를 미세하게 들여다보며 키울 수 있어 질 좋은 커피가 나온다”고 설명했다.정 대표가 따뜻한 커피를 두 잔 내려온다. 하얀 잔에 담긴 건 에티오피아 구지 우라가다. 부드러운 초콜릿 같은 느낌을 주는 커피다. 구지 우라가 마을은 최근 주목받는 커피를 생산하는 산지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파란 테두리를 두른 잔에는 에티오피아 모모라 내추럴이 담겼다. 산미가 제법 있고 건자두 느낌을 준다.루트 커피에서 이색적인 건 라테다. 블랜딩 대신 에티오피아 싱글 오리진 커피를 이용해 다른 카페의 라테와 차별되는 느낌을 준다. 약간 달달하면서 딸기우유 같은 분위기다.정 대표는 “주변 직장인이 많이 찾아온다. 점심 무렵 커피를 사서 들고 가는 손님이 많다. 인근에 카페가 많아 경쟁이 치열하지만 큰 장점을 가진 카페여서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성비를 높이는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를 더 싸게 공급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루트커피/부산 연제구 교대로 12. 010-9579-3976.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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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날고 바다에 앉고 마음 닿는 곳에 불상 있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야수마냥 제법 사납다. 경남 고성군 무이산 중턱에 마련된 주차장 겸 휴게실에 잠시 내렸는데 손발이 꽁꽁 얼어붙는 느낌이다. ‘문수암 보현식당’ 간판에 붙은 산채음식 메뉴에 눈길이 갔지만 서둘러 차로 돌아갔다. 이렇게 싸늘한 날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암자를 찾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전설 깃든 사찰종일 햇살 받고 바다 내려보는 문수암바위 벽감 속 부처상 반겨주는 보현암13m 약사여래불은 보는 곳마다 달라■문수암,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화장실에 잠시 다녀온 뒤 차를 몰고 다시 올라간다. 문수암은 오른쪽, 보현암은 왼쪽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차를 돌려 조금 더 올라가자 문수암 주차장이 보인다.차에서 내리니 동자승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담긴 화장실 벽화와 그 뒤로 광대무변하게 펼쳐진 남해 바다가 보인다. 잎이 모두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붙은 나무 숲, 그 뒤를 병풍처럼 가리고 선 푸른 산, 그리고 많은 섬이 점점이 뿌려진 다도해가 잊을 수 없는 풍경화를 이루고 있다. 산과 바다를 잠시 내려다보는 사이 눈이 맑아지면서 가슴은 상쾌해진다.이곳은 정남향이어서 구름이 심술을 부리지 않는 한 해가 하루 종일 포근한 미소를 멈추지 않는다. 오늘만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인지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다.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갔다 언덕에 드러누워 잠든 동자승을 담은 화장실 벽화는 이곳이 얼마나 푸근한 곳인지를 잘 보여준다.문수암으로 올라가는 계단 한쪽에 파란 풀들이 겨울을 잊고 있다. 여러 가지 채소가 작은 텃밭에서 자라고 있다. 뒤쪽은 언덕이, 오른쪽은 큰 바위가 가로막은 좁은 공간에 마련된 손바닥만한 땅이다. 언덕과 바위가 바람을 막아주고 정면에서는 하루 종일 뜨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기막힌 공간 배치 덕분이다.고성군 상리면 무선리 무이산 중턱에 자리잡은 문수암은 신라시대인 668년에 창건한 절이다. 절을 만들 때의 전설이 지금까지 내려온다.‘의상조사는 남해 금산으로 수행하러 가는 길에 무선리의 한 민가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너무 피곤해 잠이 든 의상조사의 꿈에 노승이 나타났다.“내일 아침 귀인을 만날 것이오. 그들을 따라 산에 가시오.”다음날 행색이 남루한 두 걸인이 그를 찾아왔다. 당혹스러워하며 그들을 따라간 의상은 청량산(무이산)에 오르던 도중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비단에 촘촘히 수놓은 듯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다도해의 절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가 섬에 매혹된 사이 두 걸인은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바위 틈 사이로 사라졌다. 의상조사가 따라가 보니 문수보살 조각상이 안연한 미소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제야 두 걸인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임을 깨닫고 문수암을 창건했다.’문수암은 삼국시대 때부터 명승지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화랑들은 이곳에서 무예를 익히며 기개를 키웠다. ‘무예를 수련하는 화랑들의 모습이 마치 신선 같다’고 해서 무이산이 있는 마을은 무선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문수암에서 가장 풍경이 아름다운 곳은 청담스님 사리탑이 세워져 있는 전망대다. 천불전 약수터를 지나 법당으로 향하는 돌계단을 오르면 된다. 도무지 눈길을 돌리고 싶지 않은 세 가지 풍경이 마음을 사로잡는다.왼쪽에는 무선저수지를 중심으로 무선리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산이 파도처럼 출렁이는 게 글자 그대로 산해(山海)다. 여러 산 사이에 자리 잡은 누런 들판은 아늑하고 평화롭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청자빛 남해 바다가 수평선 안쪽에 편안하게 드러누워 암자를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 옆으로는 큰 불전과 부처상이 바다를 등지고 앉아 있다. 약사전과 약사여래불상이다. 어느 방향을 보더라도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수채화이자 눈부신 풍경 사진이다.법당 앞마당에는 참배객의 소망이 적힌 기와가 쌓여 있고, 다양한 글을 적은 풍등이 달려 있다. 문수보살은 최고의 지혜를 관장하는 보살이어서 합격을 기원하려는 수험생이 전국에서 이곳을 찾아온다.문수전 법당 뒤쪽으로 돌아가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석벽이 있다. 석벽 틈에서 부처의 얼굴을 발견하면 서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아무에게나 보이는 건 아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에게만 나타난다.■보현암, 온화한 미소 부처 만나보현암으로 가려면 약사전을 지나야 한다. 보현암 약사전은 약사여래불상을 모신 곳이다. 약사여래는 질병을 고쳐주고, 고통을 없애주며, 목숨을 연장시켜주는 부처다. 약사전 3층에 올라가면 13m 높이의 약사여래불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 불상 뒤쪽에는 수십 개의 작은 종이 달려 있다. 종을 만지면서 지나가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마음은 약해서 흔들리는 게 인지상정이고, 종교시설에 이를 위무해주려는 장치가 흘러넘치는 건 당연지사다.약사전에서 좁은 산길로 접어들어 2~3분만 더 가면 보현암이 나타난다. 코로나19 탓일까. 인기척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절을 관리하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다. 추위에 꼭꼭 숨었는지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바람조차 서둘러 집에 돌아가려고 나그네를 스쳐 지나간다.이곳에서도 약사전과 약사여래불상이 보인다. 문수암에서 보는 장면과는 확연히 다르다. 문수암에서 불상을 본 사람은 바다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고 할 것이고, 여기서 기도를 드린 사람은 푸른 하늘을 날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사람은 믿는 대로 보는 법이다.보현암도 정남향이어서 문수암 못지않게 따뜻하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대웅전 뒤에 기세가 심상치 않은 큰 바위가 있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신성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바위 안으로 움푹 들어간 벽감이 마련돼 있다. 바위에는 오래 된 부처가 등을 기대 앉아 있고, 새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다른 부처와 두 보살 조각상이 그 앞에 가부좌를 틀고 있다.같은 바다라도 보는 장소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보현암에서 보는 남해 바다와 문수암에서 보는 남해 바다도 마찬가지다. 보현암이 훨씬 낮은 곳이어서 바다는 가까이 다가와 있다. 곧장 달려가면 바다에 발을 담글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렇게 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차다.대웅전 옆에 벤치가 여러 개 놓인 작은 공간이 보인다.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벤치에 잠시 앉으니 햇볕 덕분에 졸리는 느낌이다. 해가 질 때까지 이대로 벽에 기대 앉아 있고 싶을 뿐이다.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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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와 함께하는 고개와 길] 695. 망미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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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 함께하는 고개와 길] 695. 망미고개

    미(美)는 아름다움. 이 세상에 하나뿐일 수도 있는 지고하고 지순한 아름다움. 미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있어서 누구나 바라보게 하는가. 그러나 미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지고지순이 미다.망미(望美)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 그리하여 누구는 눈으로 보고 누구는 마음으로 본다. 눈과 마음이 어찌 다르랴. 어디에나 있는 아름다움과 어디에도 없는 아름다움이 어찌 다르랴.수영에서 연산·양정까지 이어지는 고개금련산·배산이 고개 두고 마주 보고 있어천년 전 노래한 고려가요 ‘정과정곡’수영강 강변 정자서 지낸 시인의 ‘망미가’아름다움은 모두 지극하다.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이 지극하고 마음으로 보는 아름다움이 지극하다. 이 세상 하나뿐인 당신이 그렇다. 눈으로 보는 당신이여. 마음으로 보는 당신이여.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당신이야말로 지극하다.망미고개는 지극하다. 지극한 당신을 찾아서 넘는 고개다. 한달음에 넘기가 아쉬워 쉬엄쉬엄 넘고 곧바로 넘기가 아쉬워 굽이굽이 넘는다.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걸음걸음 당신이 있고 당장은 닿지 않아도 굽이굽이 당신이 있다.어느 시인이 당신을 썼다. 강물 풀리면 배를 타고 당신은 오리라고. 당신은 오지 않더라도 편지는 오리라고, 그 시인보다 나는 열 배나 백 배나 행복하다. 당신과 나 사이에 강물은 얼지 않았으니. 이 고개만 넘으면 당신이 보이리니. 당신에게 닿으리니.시인도 안다. 강물은 여전히 얼었고 강물 풀려서 배가 다녀도 당신도, 편지도 오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시인은 기다리고 다음 날 또 기다린다. 오지 않는 당신이 아름답듯 오지 않는 당신, 보이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는 시인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나도 안다. 고개를 넘어도 당신이 보이지 않으리란 걸. 고개 너머 당신이 있지 않으리란 걸. 그걸 알면서도 망미를 넘고 또 넘는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아름답게 볼 수도 있으리라. 설령 그렇다면 그 아름다움마저 당신에게 모두 드린다. 그리하여 더욱 지극해질 당신.내 생각이 잘못일 수도 있다. 당신은 고개 너머 있는 게 아니라 고개 이쪽이나 저쪽에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또는 방금 지나온 길에 있을 수도 있다. 보이는 아름다움이든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든 그것이 고개 너머 있다고만 생각한 나는 얼마나 아둔한가.고개 양쪽은 산. 이쪽 산은 금련산, 저쪽 산은 배산. 이름 끝 자가 산인 나까지 산 셋이 고개 하나를 두고 망연자실이다. 앞으로만 보던 시선을 거두고 옆으로도 보고 뒤로도 본다. 지극한 아름다움을 놓치지나 않았는지. 진정으로 소중한 그 무엇을 지나치지나 않았는지 봤던 데를 또 본다.금련산과 배산은 여러모로 가깝다. 고개 하나를 두고 마주보는 거리가 그렇고 내력이 엇비슷한 이름이 그렇다. 노을에 물든 산이 금빛 연꽃을 닮아 금련산(金蓮山)이고 뒤엎은 술잔처럼 생겨서 배산(盃山)이다. 술을 사랑하는 이라면 어느 누가 금빛 연꽃 산봉우리를 앞에 두고 술잔 들지 않으랴.저 산 어딘가에 있지 싶은 당신. 당신이 술잔 들면 나는 연꽃 노을로 물들리. 당신이 연꽃 노을로 물들면 나는 술잔 들리. 가장 붉고 가장 진한 술을 담아 한 잔은 나에게, 한 잔은 당신에게 건네리라. 한 잔은 보이는 나에게, 한 잔은 보이지 않는 당신에게.망미고개 이쪽 끝과 저쪽 끝은 수영과 연산 또는 양정. 수영에서 이 고개를 넘어 연산이나 양정으로 가고 연산이나 양정에서 이 고개를 넘어 수영으로 간다. 그러나 그 끝이 어찌 수영에만 이를 것이며 연산이나 양정에만 이를 것인가.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걷는 망미. 망미고개의 끝은 아름다움이며 지극한 아름다움인 당신이다.‘내 님이 그리워 우나니 산 접동새와 나는 비슷하요이다.’ 지극한 당신을 노래한 천 년 전 시인도 이 고개를 넘었다. 시인은 고갯길 외따로 떨어진 수영강 강변 정자에서 지냈다. 그가 지은 고려가요 정과정곡은 망미가(望美歌)였다. 이 세상 오직 하나뿐인 지극한 당신을 그리워하는 노래였다. 고개 너머엔 할아버지 묘소가 있었다. 성묘하러 고갯길 넘던 시인의 발소리, 숨소리는 지금도 고갯길 곳곳에 스며 있다.천 년을 사이에 두고 지금 여기 시인도 고갯길 넘는다. 천 년 전 그때나 천 년 후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다. 고갯길 산은 여전히 배산이고 산을 바라보는 마음은 여전히 아련하다. 천년 세월. 달라진 것이 왜 없겠는가마는 같게 보면 같고 다르게 보면 다른 것. 보이는 것도 그렇고 보이지 않는 것도 그렇다.보이는 당신. 보이지 않는 당신.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당신. 있다면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고개 양쪽 산인가. 고개 이쪽 끝 수영 또는 저쪽 끝 연산이나 양정인가. 아니면 그 모두의 너머인가.없다면 어디에 없는가. 고개 양쪽 산인가. 고개 이쪽 끝 수영 또는 저쪽 끝 연산이나 양정인가. 아니면 그 모두의 너머인가. 있는 데도 거기고 없는 데도 거기인 당신. 그리하여 당신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망미고개는 지극한 아름다움을 찾아서 넘는 고개. 어디에도 없으나 어디에나 있는 당신을 찾아서 누구는 수영에서 이 고개를 넘고 누구는 연산이나 양정에서 이 고개를 넘는다. 고개와 고개를 이어서, 시대와 시대를 이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서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은 그렇게 면면히 이어진다.▶가는 길=도시철도 2호선 망미역 8번 출구로 나와 배산역 쪽으로 가면 된다. 병무청 주차장에 있는 통일신라 추정 우물과 배산 자락 전통사찰 영주암 등이 명소다. 시내버스 5, 5-1, 20, 36, 51, 57, 62, 63, 131, 141번이 다닌다. -끝-동길산 시인 dgs1116@hanmail.net※이 기획은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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