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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출근하다
2021-01-2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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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재, 층간소음 직접 사과 "부주의· 실수했다… 잘 마무리"
개그맨 겸 방송인 이휘재가 최근 논란이 됐던 층간 소음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이휘재는 19일 자신이 진행하는 TV조선 '아내의 맛' 방송에 앞서 층간 소음 문제와 관련해 "여러 가지 정말 부주의했고, 실수한 게 맞으니 (아랫집에) 잘 사과드리고, 항상 연락하기로 했다"며 "잘 마무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박명수는 "잠깐 신경 못 쓸 수 있었지만, 정확히 알고 서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실 코로나 때문에 모든 분이 집에 많이 계시고, 특히 아이들은 방학하면 더 뛰어나가서 놀아야 하는데, 집에만 있다 보니 서로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 이야기 많이 하다 보며 서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방송 직후 일부 시청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주변 출연자들의 쉴드(보호, 방어, 두둔)가 더 꼴 보기 싫더라", "이게 실수인가? 이기적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한데,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근데, 방송에서 사과는 좀 뜬금없다", "장난감값 3만2000원은 갚았나?", "방송에 나오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사과했겠지" 등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앞서 이휘재의 아내 플로리스트 문정원 씨는 최근 아랫집 이웃이 남긴 층간소음 항의 댓글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이에 대해 문 씨는 지난 1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층간소음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 없는 저희 부주의가 맞다"며 "앞으로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현실적인 해결책과 관련해 아래층 주민과 대화를 나누었다. 더는 같은 문제로 불편 끼치지 않도록 더욱더 조심하겠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이후 '장난감 먹튀' 의혹이 제기되면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과와 함께 피해 보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모든 SNS와 유튜브 활동을 접고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장혜진 부산닷컴 기자 jjang55@busan.com
2021-01-2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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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명백히, 단연코
2021-01-1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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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바다로] 1월 21일~1월 27일
등산
21일(목·당일)
한라산07:00강산여행010-8700-3511
태백눈꽃07:00리무진 051-331-6008
군위아미08:00부산매봉010-2412-6335
해파랑길10:00부산여심010-7437-1028
벽화산08:00알피니스010-2204-3043
태백눈꽃07:00울타리 051-334-3975
광양억불08:00한마음010-4180-4143
22일(금·당일)
태백눈곷07:00리무진 051-331-6008
태백눈꽃07:00울타리 051-334-3975
22일(금·1박2일)
한라산18:00강산여행010-8700-3511
추자도07:00강산여행010-8700-3511
한라설경19:00마운틴010-3119-0113
22일(금·2박3일)
한라설경18:30K2산악010-3838-8550
한라눈꽃19:00마운틴010-3119-0113
제주추자18:30부산일요010-6663-2351
한라눈꽃18:30부산일요010-6663-2351
제주가파18:30부산일요010-6663-2351
23일(토·당일)
태백설경06:50거송산악010-6735-3737
태백설경06:50그린행복010-6761-8848
태백눈꽃07:00리무진 051-331-6008
소백눈꽃07:00마운틴010-3119-0113
용봉가야06:20벚꽃산악010-3558-5591
태백산06:30솔바람010-2203-7001
태백눈꽃07:00울타리 051-334-3975
23일(토·1박2일)
홍도흑산06:00K2산악010-3838-8550
한라산18:00강산여행010-8700-3511
한라산07:00강산여행010-8700-3511
24일(일·당일)
영알9봉08:00같이하는010-2013-1977
태백눈꽃06:50거송산악010-6735-3737
태화국지07:00곡지산악 051-314-2969
태백눈꽃06:50그린행복010-6761-8848
가야만물08:00금강부산 051-632-8848
남덕유산06:20낙동산악010-3867-3488
태백눈꽃07:00리무진 051-331-6008
덕유눈꽃07:00마운틴010-3119-0113
무등산07:30부산일요 051-516-3343
덕유눈꽃07:30부산일요010-6663-2351
태화국지07:00뿌리산악 051-862-1540
태백산06:30솔바람010-2203-7001
태백눈꽃07:00울타리 051-334-3975
진례황새09:20천립산방010-5488-5449
24일(일·1박2일)
한라산18:00강산여행010-8700-3511
25일(월·당일)
태백장군07:00리무진 051-331-6008
태백장군07:00울타리 051-334-3975
25일(월·1박2일)
한라산18:00강산여행010-8700-3511
26일(화·당일)
추자도07:00강산여행010-8700-3511
한라산07:00강산여행010-8700-3511
태백장군07:00리무진 051-331-6008
상주갑장08:00부산백호010-4031-4464
태백장군07:00울타리 051-334-3975
남덕유산08:00참사랑010-3856-2781
26일(화·1박2일)
한라산07:00썬트레킹010-3335-4400
27일(수·당일)
태백눈꽃07:00리무진 051-331-6008
창녕화왕08:00부산매봉010-2412-6335
오정산08:00알피니스010-2204-3043
태백눈꽃07:00울타리 051-334-3975
연대깃대08:00한마음010-4180-4143
27일(수·1박2일)
한라산18:00강산여행010-8700-3511
27일(수·2박3일)
제주추자18:30K2산악010-3838-8550
울릉독도07:00솔뫼산악010-8850-5153
낚시
바다·22일(금·2박3일)
연화우도17:00금사낚시 051-526-0100
23일(토·당일)
작연외줄01:00남강 051-864-7088
23일(토·1박2일)
곡용포09:00금사낚시051-526-0100
'산으로 바다로'의 등록은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까지 다음의 과정을 통해 접수합니다. 부산일보 홈페이지(www.busan.com) 중간 부분 등산 가이드 ▶낚시 가이드 ▶ 글쓰기 클릭 → 리스트 하단 클릭 → 회원 가입 후 기재사항 입력 → 리스트 통해 등록내용 확인 순으로 하면 됩니다. 문의=라이프부 051-461-4093
2021-01-1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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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뉴스]건협 부산검진센터, 사랑의 헌혈 캠페인 동참
한국건강관리협회 부산건강검진센터 직원들이 최근 코로나19로 혈액 부족 문제를 겪는 대한적십자사 부산혈액원에 도움이 되고자 ‘사랑의 헌혈 캠페인’에 동참했다.
2021-01-1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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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추다
2021-01-1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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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판] "여기 변호사 집이다" 배달기사에 갑질한 고객 '공분'
국밥과 함께 주문한 술을 미성년자가 수령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지적한 배달기사에게 갖은 폭언을 퍼부은 변호사 부부의 '갑질'이 누리꾼들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배달음식 시킨 변호사 부부의 갑질'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미성년자가 직접 주류를 수령할 수 없다고 지적하자 이에 격분한 고객이 배달기사에게 막말을 퍼부었다는 내용이다.
국밥집을 운영하는 A 씨는 지난 17일 배달 앱을 통해 국밥 2그릇과 소주 2병을 주문받고 직접 배달에 나섰다.
벨을 누르자 집안에서 여자아이가 "문 앞에 두시고 가세요"라고 말을 하길래 A 씨는 "술이 있어서 안 된다. (어른이) 직접 받아주셔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여자아이는 "엄마가 나와야 한데"라고 엄마를 부르자 "그냥 놓고 가라고 해. 못 나간다고"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A 씨는 "안된다. 술이 있어서 그냥 못 놓고 간다"라고 재차 어른이 수령할 것을 제안했지만, 아이 엄마인 B 씨는 "아니, 그냥 놓고 가시라. 저희 단골이고 변호사 집인데 괜찮다"라고 답했다. 이렇게 A 씨와 B 씨는 현관 앞에 술을 두고 가는 문제로 실랑이를 벌였다.
A 씨는 주류가 있기 때문에 직접 전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B 씨는 "아이 목욕을 시키고 있어서 나갈 수 없으며 코로나 때문에 불안하니 놓고 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A 씨는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할 경우 과태료 처분 등을 고려해 '그럼 술은 (도로) 가져가겠다'고 말하고 돌아서자 B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면서 "소리를 지르며 '다시 와서 현관에 둔 음식까지 다 가져가라. 안 먹겠다'고 하길래 '그렇게는 못하겠다. 소주값 8000원 환불해드리겠다'며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그 이후부터 A 씨는 B 씨로부터 갖은 폭언을 듣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A 씨는 B 씨와 나눈 문자 메시지를 공개했다.
문자 메시지 속 B 씨는 "신고 한다. 전액 환불하고 음식 가져가라. 문 연 거 CCTV에 다 찍혔다. 변호사 집이고 너 CCTV 다 찍혔다. 문 열자마자 내려간 것. 고의적인 것. 다 환불해"라고 말을 하자, A 씨는 "그렇게는 못 한다. 신고하라. 입에 걸레를 무셨나. 경찰하고 (가게로) 오시던가. 변호사 있으셔서 법은 살짝 피해 가도 되나 본데"라고 답했다. 이에 B 씨는 "이 미X XX가 너희 가게 찾아갈 거니까 그런 줄 알아"라고 화를 냈고, A 씨도 "고소해라. 주문한 음식 가져다줬고, 코로나와 변호사 핑계로 안 나와서 그냥 소주만 들고나온 거니깐 법대로 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A 씨는 "돈 떼어 먹으니 장사 잘 하겠다 이거냐. 양아치야. 전액 환불해"라고 요구했고, B 씨는 "환불 계좌 주시면 8000원 환불해주겠다. 그 이외는 타협 없다. 1시간 안에 계좌 안오면 번호 차단하겠다"고 강경하게 나갔다.
이후 변호사인 B 씨의 남편은 A 씨에게 문자를 보내 "히스테리도 아니고 배달을 하기 싫으면 장사를 하지 말아야지 뭐 하는 것이냐. 진짜 법으로 하던 망신 당하고 싶나. 해장국 장사 왜 하는지 뻔히 보인다. 막 나가는 무식한 사람은 매로 다스리라 했는데, 집안 교육을 어떻게 받고 살았기에 사회생활이 삐딱한지. 고등교육도 못 받은 분 같은데, 예의 없으면 바르게라도 살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생 배달 열심히 하길 바란다. 분수에 그것도 과분한 직종 같다. 무식이 도가 넘는다"고 막말을 퍼부었다.
이후 A 씨는 리뷰를 통해 해당 국밥에서 잘린 고무줄 조각이 나왔다는 글을 쓰며 "소비자 고발할까 생각 중이다. 너무 더럽고 불친절해서 비추천"라고 말했다.
이에 B 씨는 해당 리뷰에 "해당 이물질은 육안으로 봤을 때 고무줄인지 쫄면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만, 불편하게 한 점 먼저 사과드린다'고 사과했다.
이어 그는 "술은 절대로 그냥 문 앞에 두고 올 수 없었다. 문 앞에 잠깐 나와서 술 받아 들어가는 게 어려우면 술은 직접 편의점에서 사서 드시라. 어린 따님 앞이라 최대한 조심해서 말씀드렸는데 쌍욕을 하니 제가 그냥 올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해당 사연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하자 "변호사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고등교육 받았느니, 평생 배달만 하고 살라고 말하는 이기적인 것", "먼저 인간이 되길", "아니 변호사 집이라고 왜 이야기하는 거지?", "뭔 변호사가 저렇게 말을 하냐. 정말 소송 들어가면 좋겠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한편,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주류를 판매해 적발된 음식 점주는 식품위생법에 따라 1차 위반 시 영업정지 2개월, 2차 위반 시 3개월, 3차 위반 시 영업소 폐쇄 처분을 받는다. 또 청소년 보호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배달 과정에서 청소년임을 재확인하지 않았다면 업주와 배달 기사는 처벌받을 수 있다.
장혜진 부산닷컴 기자 jjang55@busan.com
2021-01-1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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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애타게 그리워하다
2021-01-1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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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황제 희로애락 숨은 고대 로마 역사와 정신의 고향
[유럽 인문학 기행-이탈리아] 로마 팔라티노 언덕
영어로 궁전을 ‘팰리스’라고 한다. 이 단어의 어원은 팔라티노 언덕과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나왔다. 2세기 로마 역사학자 카시우스 디오가 쓴 『로마사』에 그 내용이 나온다.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를 물리치고 내전을 승리로 장식하자 원로원은 그의 집 앞에 월계수 나무를 심고 정문 위에는 참나무 관을 걸어둘 수 있도록 의결했다. 카이사르가 팔라티노 언덕에서 산 적이 있었고, 그 집터가 과거 로물루스의 집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집을 팔라티움이라고 불렀다. 이후 로마 황제가 어디서 살더라도 그의 집을 팔라티움이라고 부르게 됐다.’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하면서 팔라티움과 팔라티노라는 단어는 유럽과 동방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다. 고대 유럽인에게 영웅 이상의 존재였던 카이사르의 이야기가 얽혀 있고 역대 황제가 살았던 곳과 연관된 단어인 만큼 유럽인은 이 단어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했다. 팔라티움과 팔라티노는 스페인에서는 팔라시오, 독일에서는 팔라스트, 프랑스에서는 팔레, 이탈리아에서는 팔라조로 변해 왕이나 황제가 사는 궁전을 의미하게 됐다.
팔라티노 언덕에는 한 차례만 궁전이 지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모든 황제가 다 궁전을 건설했던 것도 아니었다. 이곳에 황궁을 만든 황제는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네로, 도미티아누스 등 네 명뿐이었다. 새 궁전을 지은 네 황제에게는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네 황제의 궁전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아우구스투스, 내전 승리 후 언덕에 이사
로마 역사에 팔라티노 황궁 시대 열어
신화 앞세워 황가 홍보 수단으로 활용
■도무스 아우구스티
팔라티노 언덕에 황궁 건설의 역사를 연 사람은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였다. 그에게 팔라티노 언덕은 고향 같은 곳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볼스키족 도시인 벨레트리이의 부자 기사계급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누나의 딸이었다. 두 사람은 팔라티노 언덕에 집을 가지고 있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 집에서 태어났고 젖먹이 시절을 보냈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후계자가 된 뒤 처음에는 포로 로마노에 있던 저택에서 살았다. 시인이었던 리키니우스 칼부스가 소유하고 있던 집이었다고 하니 화려하거나 큰 집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악티움 해전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눌러 로마의 1인자가 된 뒤 팔라티노 언덕으로 집을 옮겼다. 공화정 시대 호민관이었던 ‘평민의 영웅’ 호르텐시우스의 집과 BC 102년 집정관이었던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의 집을 사들여 수리한 저택이었다. 이것이 팔라티노 언덕 최초의 황궁인 도무스 아우구스티였다. 도무스는 ‘대저택’이라는 뜻이다.
아우구스투스가 이 부분을 새 궁전 부지로 고른 것은 단순히 전망이 좋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를 로마에 번영과 평화를 가져다주고, 새로운 지도자 계보를 시작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혈통만이 로마에 영원한 평화와 부를 지속시킬 수 있다고 로마인을 세뇌시키려 애썼다. 이를 위해 다양한 선전 또는 자기홍보 도구를 사용했다. 여기에는 건축물도 있었고 문학도 있었다. 팔라티노의 궁전도 그런 도구 중 하나였다.
아우구스투스가 도무스 아우구스티를 건설한 곳은 신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언덕 아래로는 늑대 루파가 바구니에 담긴 ‘로마 건국의 아버지’ 로물루스 형제를 건져 올려 젖을 물린 테베레 강이 보였다. 궁전 인근에는 위대한 ‘어머니 여신’인 마그나 마테르의 신상을 모신 신전과 조점관 아우구르가 새 점을 치던 장소인 아우구라토리움도 있었다.
아우구스투스는 늘 가족의 내력을 고민했다. 어머니는 카이사르의 조카였으니 핏줄로 보아 부끄러울 게 없었다. 그가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선정된 것은 어머니의 혈통 덕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달랐다. 시골마을에서 올라온 호모 노부스(신참)여서 로마에서 명함을 내밀 처지조차 되지 못했다. 그는 이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로마에서 가장 유서 깊은 신화가 서려 있고 로마인이 매우 숭앙하는 두 신전이 있는 곳에 살게 되면 신화, 신전의 권위를 앞세워 부족한 가문의 내력을 덮을 수 있겠지. 모두가 우러러보는 황제의 권위를 지킬 수 있을 거야.’
도무스 아우구스티는 처음에는 소박했던 아우구스투스의 성격에 걸맞게 사람의 눈길을 끌만큼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았다. 몇몇 역사학자는 도무스 아우구스티를 ‘작은 사저’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무스 아우구스티에는 알바롱가에서 가져온 돌기둥으로 만든 짧은 회랑이 있었지만, 대리석이나 눈에 띄게 아름다운 돌을 바닥에 깐 방은 없었다. 가구도 소박해서 일개 시민의 집보다도 못했다. 이런 기록도 있었다.
‘아우구스투스는 팔라티노 언덕의 집으로 이사를 갈 때 만들었던 침대를 버리지 않고 40년 동안 사용했다.’
황제 탓에 부모 이혼한 티베리우스
아버지 슬픔 고스란히 안은 채 즉위
선황 궁전 버리고 새로운 저택 마련
■도무스 티베리아나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티베리우스는 팔라티노 언덕 북서쪽에 궁전을 새로 지었다. 도무스 아우구스티와 등을 진 채 카피톨리노 언덕과 포로 로마노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향이었다. 새 궁전은 그의 이름을 따서 도무스 티베리아나라고 불렀다.
티베리우스는 긴축재정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 사람이어서 새 건축물을 거의 짓지 않았다. 그런데 왜 양아버지인 아우구스투스가 지은 집을 놔두고 궁전을 새로 건설한 것일까? 그의 슬픈 인생을 살펴보면 그 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아우구스투스는 황제가 되기 전 옥타비아누스 시절일 때 숙적이던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에게 군사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는 폼페이우스와 손을 잡기로 했다. 첫 부인인 풀크라와 이혼하고 폼페이우스 부인의 사촌여동생인 스크리보니아와 정략결혼을 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아우구스투스가 정적인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의 부인인 리비아를 사랑하게 된 것이었다. 리비아는 다섯 살 된 큰아들 티베리우스를 키우면서 둘째 아들 드루수스를 임신한 상태였다.
사랑에 눈이 먼 아우구스투스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네로를 불러 이혼을 강요했다. 고대 로마에서 이혼은 흔한 일이었다. 그래도 유부녀를 협박해 강제로 이혼시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고 비난을 받을 ‘사건’이었다. 네로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 있는 권력’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그는 물론 어린 아들과 친척, 친구들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는 터였다.
티베리우스는 부모의 강제 이혼 이후 동생 드루수스와 함께 아버지 집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6년 뒤 한 많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포로 로마노의 로스트라에서 눈물을 삼키며 추도사를 읽었다. 이후 동생을 데리고 팔라티노 언덕으로 올라가 어머니 리비아와 함께 도무스 아우구스티에서 살았다.
아버지 네로가 세상을 떠났을 때 드루수스는 겨우 여섯 살이었지만 티베리우스는 열두 살이었다. 아버지의 모습을 평생 가슴에 담을 만한 나이였다. 네로는 어린 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기록이 없으니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아들의 가슴에 깊은 한을 새기기에 충분한 내용을 거듭 말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티베리우스도 권력에 굴복해 아내를 빼앗긴 아버지를 이해하고 딱하게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자라 성년식을 치를 때 검투사 경기를 두 차례 개최한 사실은 이런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한번은 아버지 네로를 위해 포로 로마노에서, 다른 한번은 할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원형경기장에서 거행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아버지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다 붙임성이 좋았던 드루수스와는 매우 친하게 지냈다. 반면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한 듯 늘 어두웠던 티베리우스와는 서먹했다. 죽기 직전에 할 수 없이 후계자로 지명하기는 했지만 그는 평생 티베리우스를 믿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우구스투스는 사람들 앞에서도 거침없이 티베리우스의 잔혹한 성품을 비난했다. (중략) 그가 들어오면 입을 다물었다는 풍설이 있을 정도였다.(수에토니우스 『열두 명의 카이사르』)’
‘티베리우스는 어머니와 평생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기록한 역사가도 있다.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로마를 떠나 카프리에 틀어박혀 인생의 마지막을 보낸 것은 아버지를 버린 어머니에 대한 복잡한 심경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티베리우스는 아버지를 외로움에 떨다 눈을 감게 만든 아우구스투스가 지냈던 도무스 아우구스티에서는 살고 싶지 않아서 새 궁전을 만들었을 거라고 역사학자들은 추정한다.
어머니 살해하고 스승 자살시킨 원흉
네로 황제 인간적 불행 담은 어둠의 궁전
“로마 대화재 불행에 열광” 오해받기도
■도무스 트란시토리아
현대인이 팔라티노 언덕의 궁전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리는 황제는 네로다. 60년에 발생한 로마 대화재 때 이곳의 궁전에서 리라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사실인 부분도 있지만 오해도 적지 않다.
티베리우스도 그랬지만 네로도 인간적으로 불행한 인물이었다. 그는 아들을 황제로 만들겠다는 어머니 아그리피나의 욕심 때문에 어릴 때부터 큰 압박을 받았다. 아그리피나는 아들을 황제로 만들려고 남편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독살하기까지 했다. 네로는 그때 열여섯 살이었으니 어머니가 무슨 일을 벌였는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네로는 황제 즉위 이후에도 어머니의 등쌀에 시달렸다. 견디다 못해 스승 세네카와 상의한 끝에 어머니를 황궁에서 내쫓아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어머니를 암살했다. 이후에는 황제 암살 공모 혐의를 뒤집어씌워 스승도 자살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죽음 이후 네로의 정신세계는 황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는 선황 클라우디우스가 암살당한 궁전에서 사는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암살한 클라우디우스의 유령이 밤마다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궁전 곳곳에는 어머니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어머니의 유령이 나왔을 수도 있다.
네로는 새 궁전을 짓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도무스 티베리아나를 기반으로 해서 새로 만든 도무스 트란시토리아였다. 정확한 완공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60년으로 추정된다. 어머니를 궁에서 쫓아낸 게 55년이었고 살해한 게 59년이었으니, 그 다음해에 도무스 트란시토리아에 들어가 살게 된 셈이다.
1~2세기 로마 역사학자 타키투스의 『연대기』에 따르면 네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친구이자 자문이었던 가이우스 킬니우스 마이케나스가 에스퀼리노 언덕에 만든 마이케나스 정원과 새로 만든 궁전을 연결시켰다. 마이케나스 궁전과 정원 이야기는 60년에 발생한 로마 대화재에 등장한다. 1~2세기 로마 역사학자 수에토니우스는 『열두 명의 카이사르』에 이렇게 적었다.
‘네로는 (마이케나스 정원의)마이케나스 탑에서 로마가 불타는 것을 보면서 열광했다.’
이 글 한 줄 때문에 여러 영화와 소설에 네로가 미친 황제로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현대 역사학자들은 네로가 화재로 피해를 입은 로마 시민을 위해 펼친 대책을 보면 수에토니우스의 글은 지나친 폄훼라고 지적한다.
대화재 때문에 도무스 트란시토리아도 피해를 입었다. 네로는 이번에는 도무스 아우레아(황금궁전)를 짓기 시작했다. 지금 콜로세움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황금궁전이 완공되기 전에 반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그는 로마에서 달아났고,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제국 사상 첫 한집안 세 번째 황제
번영가도 달리는 로마 상징 궁전 건설
현재 팔라티노 언덕 잔해 대부분 차지
■도무스 도미티아나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 그리고 네로에 이르기까지 여러 신축 궁전을 살펴봤다. 이제 팔라티노 언덕에 건설된 마지막 궁전 이야기를 할 때다. 오현제 시대가 열리기 전 베스파시아누스 황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도미티아누스가 만든 제정 시대의 마지막 신축 궁전인 도무스 도미티아나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둘째 아들이었던 도미티아누스는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네로와 마찬가지로 어릴 때 그다지 유복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큰아들 티투스만 데리고 늘 전쟁터를 돌아다닌 탓에 그는 로마에서 어머니, 누나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 누나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작은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 사비누스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당시 그의 나이는 10대 초반이었다.
도미티아누스는 늘 형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형은 아버지를 따라 군에 들어가 동방에서 유대 반란을 진압하면서 큰 성과를 올렸지만 그는 로마에서 공부만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황제로 즉위한 뒤 형은 공동 통치자가 돼 경력을 쌓을 때 그는 형식적 직위에 만족해야 했다. 머리가 좋았던 그로서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형 티투스가 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형은 폼페이 화산 대폭발 등을 수습하느라 고생만 하다 2년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도미티아누스는 뜻하지 않게 황제가 됐다.
도미티아누스의 아버지와 형은 평생을 군에서만 보냈다. 로마 출신이 아니라 로마 북쪽에 있는 시골 마을 팔라크리나 출신이어서 호모 노부스(신참)라는 열등감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도미티아누스는 달랐다.
도미티아누스가 즉위할 무렵 베스파시아누스 가문은 로마 최고의 명문 집안이 돼 있었다. 아버지와 형이 대를 이어 황제였던 경우는 로마 제정에서 그가 처음이었다. 아버지와 형은 군인으로 늘 고생만 하며 살았지만, 그는 황제의 아들이자 동생으로서 우아하고 화려하게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나에게는 아버지와 형이 가진 열등감은 없어. 세상을 보는 눈이 두 사람과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야.’
도미티아누스가 네로의 도무스 트란시토리아를 넘어서는 엄청난 궁전을 만들 계획을 세운 것은 이런 점에서 보면 지나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로마는 내전 후유증에서 벗어나 번영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로마인 중에서 그를 두고 오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81~92년 11년 동안의 공사를 거쳐 완성한 도무스 도미티아나였다. 2세기 황제였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이 궁전 옆에 도무스 세베리아나를 덧붙였다.
지금 팔라티노 언덕에 올라가면 언덕 위에 많은 궁전 잔해가 보인다. 대부분 도무스 도미티아나와 나중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증축한 도무스 세베리아나다.
3세기 이후 황제, 로마 방문조차 어려워
콘스탄티누스 천도 이후 언덕 가치 몰락
9세기 잦은 지진으로 궁전 무너져 폐허
■몰락한 언덕
도무스 도미티아나를 끝으로 팔라티노 언덕에 새로운 궁전을 건설했다는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도미티아누스 이후 이어진 오현제 시대에 등장한 다섯 황제는 성격이나 시대 상황 때문에 궁전을 지을 생각은 물론 여력도 없었다.
3세기 중엽 로마에 군인 황제 시대가 도래했을 때 군인 출신 황제들은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외적을 맞아 싸우느라 팔라티노 언덕의 궁전에 들어가 잠시 침대에 등을 댈 여유는커녕 로마로 돌아올 시간조차 없었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한 이후 팔라티노 언덕에서는 아예 황제가 살지 않게 됐다. 4~5세기 서로마제국 황제들은 이탈리아 동부 해안 도시인 라벤나에 숨어 살면서 로마에 잠시 다녀갈 때에만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팔라티노 언덕 중심부는 여러 차례 지진으로 무너져 9세기 중엽 교황 레오 4세 시대에는 접근하기조차 어려울 정도가 됐다. 궁전 등의 건물이 폐허가 된 것은 이 무렵으로 추정된다. 팔라티노 언덕은 아무도 찾지 않는 유령의 땅에 불과했다.
망각의 깊은 땅 속에 묻혀 있던 팔라티노 언덕은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했다. 도무스 도미티아나는 1728년, 1860년 발굴조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2006년에는 아우구스투스의 출생지로 보이는 집을 발굴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아직도 발굴해야 할 곳은 많고 갈 길은 멀다.
2021-01-1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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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복사하다
2021-01-14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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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어] 며칠 동안 여행 갈 거야?
2021-01-14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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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하룻밤 자면서) 신중하게 생각하다
2021-01-1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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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백병원 이연재 원장, 어린이 교통안전 릴레이 챌린지 참여
인제대 부산백병원 이연재 원장이 지난 13일 ‘어린이 교통안전 릴레이 챌린지’ 캠페인에 동참했다.
해운대백병원 최영균 원장의 지목을 받은 이연재 원장은 부산백병원 공식 SNS를 통해 “‘1단 멈춤! 2쪽 저쪽! 3초 동안! 4고 예방!’이라는 구호처럼 일단 멈추고 좌우를 살피는 등 작은 노력부터 실천해 주기를 당부드린다”며 어린이가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교통문화 정착을 위한 범국민적 관심을 촉구했다.
‘어린이 교통안전 릴레이 챌린지’는 행정안전부 주관으로 최근 어린이 보호구역 내 어린이 사망사고 발생이 늘어남에 따라 교통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어린이 보호 최우선 문화 정착 등 교통사고 예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추진됐다.
참여자는 어린이 교통안전에 관한 메시지, 사진, 해시태그 등을 SNS에 게재하고, 다음 주자 3명을 추천하는 릴레이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연재 원장은 다음 캠페인 참여자로 좋은삼선병원 이용성 원장, 온종합병원 김동헌 원장, 부산보훈병원 백승완 원장을 지명하며 릴레이 동참을 독려했다.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
2021-01-1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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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판] 정인이 재판 참관기… "변호사는 노련했고, 양모는 작정한 듯 침묵했다"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부모의 첫 공판을 참관한 누리꾼들의 참관기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하나둘 씩 공개되고 있다.
1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정인이 사건 1차 재판 방청객의 참관기'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참관기를 쓴 A 씨는 "(생)중계석에서 정인이 사건 첫 재판을 지켜본 방청객으로서 앞으로의 재판의 쟁점은 미필적 고의의 유무죄 여부를 가르는 재판이 될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그 이유에 대해 A 씨는 "정인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결정적인 물증이 없다는 것이 이 사건의 큰 난관이기 때문"이라며 "이 물증이 없으며 미필적 고의의 영역으로 가는데, 그러면 미필적 고의에서 살인의 유죄를 끌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상해치사는 유죄이지만, 살인은 무죄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미필적 고의란 피의자가 자신의 행위로 인해 범죄 결과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도 해당 행위를 저지른 경우를 뜻한다.
A 씨는 "아동학대의 특성상 은밀한 곳에서 증거 없이 벌어지는 사례가 많아서, 아동학대의 법적 싸움은 그래서 그동안 미필적 고의의 영역의 싸움이 되어 왔다"면서 "그래서 검찰도 확실한 유죄를 받아내기 위해, 상해치사죄를 적용하지 물적 증거 없는 살인죄를 적용하지는 않는 것이 그동안 관행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인이 사건도 검사가 상해치사를 적용했다가 재판 직전에 공소장을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것은 살인죄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없었다면, 검사로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 씨는 "(그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정인이 양모의) 변호사는 이것을 모두 계산한 것으로 보였고, 또 매우 노련해 보였다"며 "대부분 죄를 인정하면서도 살인의 유죄가 나올 수 있는 그 핵심적인 부분만큼은 부정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A 씨는 양모 장 씨의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살인자인 양모는 끝까지 한 가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며 "정인이가 죽은 바로 그날 밤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인이를 죽였는지를 침묵하고 있다. 췌장이 절단될 만큼의 물리적인 가해의 행위나 도구를 앞으로도 끝까지 얘기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였다. 그 부분은 검사 측에서 반드시 찾아내야 하는 숙제로 남게 됐다"라고 강조했다.
A 씨는 "이런 부분들이 정황 증거나 법의학자의 증언이나 진술로는 부족해 보였고, 검찰 측도 최대한 증인들을 리스트로 밝히며 포섭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또한 직접적인 증거로 보기에는 힘들다는 것을 변호사 측은 잘 알고 있다"라고 부연했다.
또한 그는 "중계석에서 재판을 지켜본 방청객으로서 우려가 됐던 점은 검사 측이 정황증거나 증인들의 진술에만 의지하지 말고, 정인이가 죽은 그날 밤에 양모가 무슨 수단으로 아이를 죽였는지를 뒤늦게 수사를 통해서라도 명확하게 밝혀내서 살인의 유죄를 받아내는 것이 미필적 고의보다 살인죄의 유죄의 확률이 높이는데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A 씨는 끝으로 "양모가 정인이를 죽인 그날, 끝까지 입을 닫고 있는 양모만 아는 그 사실을 검사 측은 끝까지 밝혀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오늘 중계재판 참석한 사람입니다'라는 제목의 정인이 재판 참관기가 게재됐다.
B 씨는 "오늘 재판을 본 사람으로서 느낀 것은 솔직히 정인이 쪽 검사가 약하게 느껴졌다"며 "(양모의) 변호사는 처음에는 어리바리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무시하면 안 될 상대이자 막강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B 씨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경찰 조사를 더 깊게 하던지 여론의 힘을 빌려서라도 더 크게 만들어서 정인이 쪽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 이날 법정에 직접 참관했던 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 이지혜 씨는 이날 오후 방송된 MBC 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서 "양부모는 조금도 반성하는 모습이 모이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라며 "양모(변호인 측은)는 학대치사죄를 인정하지 않기에 당연히 살인죄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고 분노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공소사실을 주위적으로 살인, 예비적으로 아동학대 치사로 바꾸는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그러나 양모 장 씨의 변호인은 "장 씨가 아이를 떨어뜨리면서 아이가 의자에 부딪힌 것"이라며 "아동학대치사 혐의는 물론 살인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다음 재판은 2월 17일에 열린다.
장혜진 부산닷컴 기자 jjang55@busan.com
2021-01-13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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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물었다 나란히 걸을래?…완전개통한 그린레일웨이 9.8km를 걷다
부산 해운대구 올림픽교차로에서 동부산관광단지 입구까지 구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부산의 강남' 아파트값 1등 벨트? 우리나라 최고의 바다 관광구역? 여기에 아직 부산 시민도 잘 모르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동해남부선 옛 철길을 따라 조성된 그린레일웨이. 도심과 해안을 따라 오로지 두 발로 해운대구를 가로질러 건너는 길이다. 한파가 닥친 1월 초순 며칠 동안 그린레일웨이를 하루 6시간씩 걸었다.
아파트촌과 휘황한 마천루,
해수욕장과 어촌 마을이 섞인
불균질한 ‘해운대’의 매력을
생생하게 체험하기에
여기보다 더 좋은 산책로는 없다.
바다는 발아래도 아니고
걷는 사람의 어깨와 나란히
눈높이로 펼쳐진다.
그린레일웨이는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의 하나로 올림픽교차로~동부산관광단지 입구 구간을 장산을 관통하는 직선 구간으로 옮기면서 남은 폐선 부지에 조성된 산책로다. 2015년 9월 우동~부산기계공고 구간부터 시작된 공사가 지난해 11월 완전히 마무리되면서 총 9.8km 길이 걷기 코스가 완성됐다. 중간의 미포~송정 4.8km 구간에 들어선 민자사업개발 관광시설 '블루라인파크'도 지난해 10월 운영을 시작했다.
■기찻길 옆 동네의 상전벽해
부산도시철도 2호선 벡스코역 2번 출구로 나와서 약국과 안경점 사이 골목으로 올라가서 재개발사업 예정 구역을 끼고 왼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그린레일웨이의 시작점이 나온다. 장산터널로 이어지는 우동고가교를 눈앞에 두고 길이 끊어지는 곳. 2013년 12월, 동해남부선이 이설하기 전에는 열차가 옛 수영역(지금의 동해선 센텀역과 벡스코역 사이)을 지나 이 쪽으로 곧장 달려왔다.
미포~송정 구간이 관광지 느낌이라면 나머지 구간은 동네 산책로 느낌이 강하다. 우동에서 미포까지 이어진 해운대 시가지 구간은 총 4km로, 수비삼거리(수영비행장 삼거리의 약자)라 부르던 올림픽교차로에서 시작해 옛 해운대역을 지나고 왼쪽에 이마트 해운대점을 끼고 돌아서 엘시티 뒷편으로 해서 해운대해수욕장 끝까지다. 송정 구간은 옛 송정역에서 동부산관광단지 입구까지 총 1km 정도다.
해운대 시가지 구간은 시야 한 구석에는 아파트가 걸리는 아파트촌에다 발 아래로는 8차로 해운대로가 펼쳐진 그야말로 대로변이지만, 산책로 풍경은 의외로 호젓하고 소박하다. 가로수 숲이 도로 소음을 꽤 차단하는 데다 오래된 마을회관이나 체육시설 같은 동네 풍경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지런히 걷는 산책자들이 있다. 도심에서 차가 다니지 않는 평지 길을 1만 보 넘게 걸을 수 있는 완전한 산책로를 찾기란 쉽지 않다. 계절마다 모습을 바꾸는 꽃나무 풍경도 지루하지 않다. 장애물이 없다 보니 유모차를 몰고 산책하는 부부나 지팡이를 짚고 걷는 어르신도 자주 볼 수 있다. 궂은 날씨에도 산책을 포기할줄 모르는 반려견에게도, 머리가 복잡한 날 혼자 밤 산책에 나서는 여성에게도 안전한 길이기도 하다.
옛 해운대역 역사 부지는 그린레일웨이 가운데 유일하게 아직 포장이 되지 않은 자갈길이다. 오른편으로 푸른 팔작지붕을 얹은 옛 역사 건물 너머로는 해운대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구남로가 훤히 뻗어있다. 왼편 담장 밖은 개성 있는 상점과 음식점들이 있는 일명 '해리단길'이다.
자갈길을 벗어나 다시 포장된 산책로를 걸어서 이마트 해운대점을 왼편에 두고 지나면 오른쪽으로 나타나는 초고층 빌딩이 엘시티다. 각종 정치 비리와 사건사고를 깔고 선 101층 건물 때문에 산책로 전체는 자주 응달이 된다. 그리고 나면 아름다운 철도 건널목 풍경으로 유명했던 미포교차로 아래로 해운대해수욕장 끝자락의 바다가 반짝인다. 미포~송정 구간의 시작이다.
■바다와 나란히 걷는 미포~송정
국가철도공단의 미포~송정 구간 상업개발에 여러 시민·환경단체들이 반발했다. 달맞이길 해안 절벽을 따라서 바다를 옆에 두고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천혜의 절경은 공공의 것이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우여곡절 끝에 민자사업자가 운영하는 관광열차 해변열차가 생겼지만, 해변열차 철로와 나란히 이어진 4.8km 구간의 목재 데크 산책로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길은 완만하게 굽었다가 살짝 경사가 있다가 하지만 무장애길이라서 여전히 유모차나 반려견을 종종 만난다. 곳곳에는 바다 가까이 내려갈 수 있는 계단 산책로나 벤치도 있어서 쉬엄쉬엄 걷기에도 좋다.
해변열차 매표소를 지나쳐서 엘시티를 등뒤에 두고 500m 정도 걸으면 '달맞이재'라고 이름붙인 25m 길이의 짧은 열차 터널이 나온다. 터널 옆에 바다 쪽으로 넓게 낸 데크는 사진을 찍기에 맞춤인 곳이다. 색색의 아치 모양을 낸 터널 벽을 배경으로 찍어도, 데크 아래로 내려가 광안대교와 이기대를 배경으로 찍어도 훌륭한 '인증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바다와 나란히 걷는 기분은 걸어보지 않고서는 실감할 수 없다. 바다는 발 아래도 아니고 걷는 사람의 어깨와 나란히 눈높이로 펼쳐진다. 이 바다는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곳이다. 국립해양조사원은 달맞이 고개 정상 해월정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135도로 그은 선을 남해와 동해의 경계로 본다. 낮에는 너른 바다가 햇볕을 품기 때문에 겨울에도 예상보다 춥지 않다. 오륙도는 선명하고, 날씨가 좋으면 멀리 대마도도 보인다.
청사포에서는 청사포다릿돌전망대를 빼놓을 수 없다. 2017년 개장한 다릿돌전망대는 20m 높이에 바다 쪽으로 72.5m로 뻗은 전망대로, 바닥을 보호하기 위해서 신발 위에 덧신을 신고 입장할 수 있다. 유리 바닥 아래로 보이는 바다와 전망대 앞으로 보이는 다릿돌 위로 파도가 여울지는 절경이 아찔하다. 다릿돌전망대 관광안내소에서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고, 횟집촌이 즐비한 청사포 해안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산책로에서 계단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청사포 몽돌해변은 표지판 하나 없는 200m 남짓한 작은 해변이지만 놓치면 아쉬운 곳이다. 1985년 북한 간첩선이 침투한 사건 이후로 군부대 철조망이 설치되면서 일반인의 접근이 철저히 금지됐다가 최근에야 개방됐다. '차르르 차르르' 하고 몽돌 사이로 바닷물이 들고 나는 소리와 멀리 청사포의 붉고 흰 등대만 봐도 좋지만, 해질녘이라면 바다를 물들이는 낙조도 놓치지 말자.
■모두를 위한 도심 속 걷는 길로
청사포를 지나서 조개구이와 횟집 건물들이 즐비한 어촌 풍경을 보면서 걷다 보면 어느새 송정해수욕장에 도착한다. 해변열차 송정 정거장과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옛 송정역 역사를 지나서 동부산관광단지 입구까지 걸어가려면 역사 바깥의 인도를 잠시 걸어야 한다. 송정삼거리에서 다시 산책로로 접어들어 소나무가 멋진 길을 따라가면 멀리 이케아와 롯데아울렛 동부산점의 간판을 두고 그린레일웨이가 끝난다.
전체 9.8km를 걷는 데는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미포~송정 구간을 제외하면 도시철도 벡스코역~중동역이나 해운대해수욕장, 송정해수욕장, 해리단길 등 곳곳에서 산책로로 진입할 수 있어서 걷고 싶은 만큼만 걸어도 된다. 미포~송정 구간도 일부 구간은 해변열차를 이용한다면 어린이나 어르신도 함께 걸을 수 있다. 갈맷길, 삼포길, 해파랑길, 문탠로드 등 주변의 산책로와 연계해서 걷기도 편하다.
그린레일웨이는 아직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은 길이지만 아파트촌과 휘황한 마천루, 해수욕장과 어촌 마을이 섞인 불균질한 '해운대'의 매력을 생생하게 체험하기로는 여기보다 더 좋은 코스는 없다. 유모차도 어르신도 반려견도 모두가 안전한 도심 산책로로서도 가치가 있다.
그린레일웨이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미개발지인 옛 해운대역 역사 부지의 개발 방안은 여전히 협의 중이다. 부산시는 이 부지를 상업개발하더라도 산책로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고, 공원화를 바라는 주민들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국가철도공단에 요청하고 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2021-01-13 [1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