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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구 청룡노포동, 카페로 찾아가는 종이 팩 수거 및 교환 서비스 실시
부산시 금정구 청룡노포동(동장 이인희)은 지역 내 카페들의 자원재활용 실천 운동 참여를 유도하고, 버려지는 양질의 종이 자원을 최소화하고자 ‘찾아가는 종이 팩 방문 수거 및 교환 서비스’ 사업을 추진한다.
금정구 대표적 관광명소인 범어사 주변에는 범어로를 따라 많은 카페가 조성되어 있어 우유 팩 등 종이 팩 배출이 많다. 종이 팩은 일반 종이와 구분해서 배출해야 제대로 재활용할 수 있다. 이에 청룡노포동은 카페 점주의 번거로움을 덜고 적극적인 분리배출을 독려하기 위해 ‘찾아가는 종이 팩 방문 수거 및 교환 서비스’를 실시한다.
청룡노포동은 매월 1일, 15일 한 달에 2회씩 우유 팩 등 종이 팩 수거일을 지정하고 업소별 배출 여부를 확인한 후 행정복지센터에서 직접 방문 수거 및 재활용 휴지를 교환 해준다.
청룡노포동은 이 사업 추진으로 카페 점주의 적극적인 분리배출의 실천을 유도하여 자원 선순환 사회 분위기를 조성할 예정이다.
이인희 청룡노포동장은“현재 참여 희망업체는 13개소이며, 직접 찾아가는 종이 팩 수거 및 교환 서비스의 적극적인 추진과 향후 지속적인 참여 업체를 발굴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카페 한 사장님은“앞으로도 종이 팩의 올바른 분리배출 및 자원재활용을 위하여 적극 실천하고 함께 지구를 살리는 데 일조하겠다”라고 밝혔다.
2024-03-2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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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초겨울 명징한 소백의 기운 흠뻑 마시다
11월 초순인데 영하의 날씨였다. 소백은 곳곳에 얼음꽃도 피었다. 서걱대는 서릿발 같은 얼음을 밟으며 발아래로부터 차가운 침을 맞는 느낌을 받는다. 또 능선은 충만했다. 이미 잎을 떨군 나목은 낙엽 비단길을 만들어 놓았다. 상월봉(1394m)의 조망은 탁월했다. 국망봉까지 튼실하게 이어진 대간과 비로봉의 늠름한 자태, 그리고 소백 일대의 크고 작은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국망봉으로 우회하지 않고 몸을 쓴 덕분이다.
이날 산행은 부산시민등산아카데미 총동창회 제1기 백두대간종주대(단장 박경효·총대장 김창진)과 함께 했다.
고치령 산령각엔 산신이 두 분
소백산국립공원 고치령~비로봉 구간 대간길은 맑고 차가웠다. 모처럼 새벽이 아닌 동이 튼 아침에 나선 산행길이어서 더욱 맑은 느낌이 충만하다. 총구간 19.7km를 8시간 동안 걸을 계획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버스가 갈 수 있는 마지막 마을인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서 해발 760m 고치령까지는 마을 이장님의 차량 지원을 받아 쉽게 접근했다. 소백산신과 태백산신을 함께 모신 산령각의 목문을 일행 중 누군가 열어젖혔다. 백마를 탄 동자 태백산신과 호랑이를 거느린 백미와 흰 수염이 휘날리는 할아버지 소백산신이 있다. 이야기로는 단종과 단종의 숙부 금성대군을 모신 곳이라고 한다. 영험하다는 소문이 나 요즘도 무속인들의 발길이 잦다. 고치령은 소백산에 속하지만, 태백산과 소백산을 연결하고 있다.
국망봉으로 향한다. 국망봉에 다다를 때까지 모든 이정표는 국망봉-고치령으로 안내되고 있다. 잠시 비알을 올라서자 낙엽 푹신한 능선길이다. 불과 한 달 새 단풍은 나목으로 바뀌었다. 자연에서 계절은 가장 뚜렷한 결과물을 낸다.
산행코스는 고치령(760m)~연화동 삼거리~늦은맥이재~상월봉(1394m)~국망봉(1420m)~어의곡 삼거리~비로봉(1439m)까지 가서 달밭골로 하산해 삼가탐방지원센터까지 이어진다.
강인한 생명력의 참나무
소백의 능선길은 다른 구간에 비해 그리 힘들지 않다. 능선의 해발고도는 1000m를 오르내리다가 상월봉 가까이 가서는 한껏 고도를 높인다. 크게 오르고 내리는 구간이 없는 것은 이곳이 소백산 국립공원의 등줄기라서 그런 것일까. 능선의 일렬로 선 나무들이 오늘이 11월 11일임을 상기시킨다. 일행 중 한 분이 이번 산행 참가자 모두에게 '빼빼로' 한 상자씩을 돌렸다. 초콜릿이 듬뿍 묻은 과자는 산행을 하기도 전에 다 먹었다.
단체 산행을 하면서 늘 고마운 것은 나눔이 많다는 것이다. 이미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최연장자 '1번 형님'이 제공한 찰떡 하나를 먹었고, 또 주최 단체에서 나눠주는 팥빵과 음료도 받았다. 이번에는 나눔이 유달리 풍성하다. 탄산음료는 나중에 목마르면 먹을 생각으로 배낭에 챙겼다.
상큼한 귤, 달콤한 단감, 사탕, 커피, 막걸리 한잔, 피망, 게살죽, 박하사탕, 사과, 미숫가루, 쌀눈 죽 등등이 산행의 소중한 에너지로 쓰였다. 다 참가자의 배낭에서 나온 정이다. 소백의 정이 끈끈했다. 그런 때문일까. 능선 한쪽에 뿌리가 거의 다 드러난 참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덩치를 키워냈다. 웬만한 참나무보다 훨씬 우람하다.
죽을 위기를 겪었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나무가 경이롭다.
운동장처럼 넓은 낙엽 광장
갑자기 주위가 환해진다. 운동장만 한 넓은 공간이 온통 낙엽으로 뒤덮여 있다. 이렇게 넓은 공간이 능선에서 발견되다니. 사람의 보는 눈은 비슷한 모양이다. 이정표를 보니 마당치다. 마당처럼 넓은 고개란 의미로 보인다. 아직 국망봉까지는 8km 이상 남아 걸음을 재촉한다.
나무들은 불과 한 달 새 겨울 준비를 마쳤다. 나무가 옷을 벗자 겨우살이가 푸른게 돋보인다. 빨간 참빗살나무 열매는 눈에 금방 띄어 새들의 먹이가 되기 좋겠다. 그 씨앗들은 소백 능선 곳곳에 퍼질 것이다. 공생의 계절이 겨울이다.
초겨울 산행은 덥지도 춥지도 않아 딱 좋다는 이들이 많다. 이한철 후미대장과 동행하던 여성 두 분의 발걸음이 유달리 가볍다. 오늘은 왜 후미를 지키지 않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후미가 아니에요. 오늘은 중간이라 불러주세요." 이 후미대장은 오랜만에 산행에 참여해 느긋함을 즐기는 김창진 총대장과 함께 든든하게 뒷배가 되고 있다.
소백의 능선은 지금 영하 온도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발밑의 서걱거림이 지속된다. 자세히 보니 얼음이다. 땅밑 수분이 영하 날씨에 얼음이 되어 솟구쳤다. 흰 실타래 같기도 하고, 예쁜 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얼음꽃이 피었다. 겨울에는 야생에서 꽃이 피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이다. 이렇게 예쁜 얼음꽃이 피니 능선은 또 화려한 겨울 장식을 마친 셈이다. 이제 눈까지 온다면, 소백의 산줄기는 또 다른 멋진 풍경을 연출할 것이다.
고치령에서 3시간 걸리는 연하동 삼거리에 도착했다. 이제 2시간 남짓 걸으면 국망봉이다. 연화동으로 탈출하는 길은 의외로 짧다. 3km인데 1시간 40분이면 하산할 수 있는 모양이다. 소백산국립공원의 그림 이정표는 적절한 곳에 잘 설치돼 있다.
물푸레나무 군락지 황홀해
흰 페인트를 나무에 군데군데 칠한 것 같은 물푸레나무, 어릴 때는 흰 수피가 더욱 선명하다. 홀로 있는 나무도 아름답지만, 군집한 나무의 풍경도 독특한 매력이 있다. 능선 좌우에 도열한 듯 늘어선 물푸레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늦은맥이재다. 어의곡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다. 국망봉은 2.1km 남았다. 애써 선두를 따라잡았는데, 신세균 수목산악회장이 달달한 단감을 주면서 좀 더 쉬다 오란다.
늦은맥이재는 휴게 시설을 설치하는지 헬기로 운반한 듯한 톤백 여러 개가 놓여 있다. 상월봉으로 간다. 고도를 조금씩 올린다. 이끼가 많은 응달쪽으로 접어들었다. 마치 보호색처럼 된 짐승의 똥이 있다. 바위 위의 이끼와 어울려 깜박하면 손으로 짚을 뻔했다. 그래봐야 산 열매 씨앗과 껍질이다.
우산살처럼 펼쳐져 화려한 푸름을 자랑하던 봄날의 관중은 추위에 손을 들었다. 줄기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 그리고 서서히 푸름을 잃어갈 것이다. 그러나 생명은 뿌리로 갈무리되면서 내년 이른 봄 또 아름다운 이파리를 솟구쳐 낼 것이다.
상월봉은 절대 우회 못 하지
국망봉이 1.1km 남았다는 이정표는 상월봉을 우회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앞서간 사람들이 우회로를 두고 굳이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기에 정말 따라가야 하는가 싶었다. 결론적으로 안 갔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산행은 모름지기 정상에 올랐을 때의 느낌도 좋지만, 정상을 온전히 바라보는 풍경도 훌륭했다. 상월봉 풍경은 국망봉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진 소백의 맏 능선과 사방팔방으로 뻗어 내려간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과 산 사이에 머무는 구름바다. 일망무제의 느낌은 오히려 상월봉이 비로봉보다 낫다는 느낌이다.
한참을 머물며 풍경을 카메라와 마음에 담았다. 먼저 출발한 일행이 멀리 국망봉으로 오르는 이들이 가물가물 보일 무렵 다시 걸음을 뗀다. 상월봉에서 국망봉으로 가는 길엔 산철쭉 군락이 도열하고 있다. 산철쭉이 피는 5월 말에서 6월 초까지 이곳에 온다면 잊기 힘든 꽃 터널을 걸을 수 있겠다.
옛 문헌에는 국망봉을 소백의 최정상이라고 기재해 놓았다. 아마도 산 아랫마을에서는 국망봉이 제일 높게 보이는 모양이다. 초암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이르니 비로봉은 2.8km 후에 있다.
아 소백산 비로봉에 다다르다
극망봉에서 비로봉을 가는 길에 특이한 모양의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제멋대로 굽은 나무다, 능선길에 큰 나무는 없다. 해발고도가 높은 탓이리라. 멀리 우람한 비로봉 능선이 보인다. 긴 덱 길이 비로봉까지 이어져 있다.
바람이 많은 탓일까. 나무 한 그루 찾을 수 없다. 긴 풀들은 이미 머리를 남쪽으로 누이고 드러누웠다. 가지런한 자세는 북서풍에 대응하는 자연의 법칙이다. 다들 정상석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추위가 엄습한다. 온도계를 살펴보니 양지인데도 영하 7도다. 삼가주차장을 향해 하산한다.
산길은 잘 정비돼 있어 전혀 무리가 없다. 설악산국립공원 한계령 하산로와 비교하면 탄탄대로다.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민가가 나온다. 물어보니 주민의 집이다. 안전 산행하시라고 인사해 준다. 식당업을 하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분이다.
달밭골 마을에 도착했다. 1번 형님과 박경효 단장이 1번 형님과 함께 막걸리판을 펼쳐 놓았다. 연거푸 몇 잔을 받아 마신다. 달밭골 조형물은 뭔가 전설을 이야기하는 모양새다. 이미선 간사가 조형물 사이에 자리 잡았다. 잘 어울린다. 그렇게 초겨울 소백 능선을 걸었다.
2023-11-1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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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오대산은 벌써 단풍 절정...가을과 겨울의 공존
해가 뜨자 온통 붉고 노란 단풍이 주위를 에워쌌다. 부산에서 덥다가 시원하다가 변화무쌍한 미궁의 계절 속에서 살다 왔는데, 오대산은 이미 겨울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절정이라고 해도 좋을 단풍이다. 올해는 단풍이 좋지 않다지만, 해발 1000m를 넘는 백두대간은 달랐다. 특히 노란 단풍이 많은 오대산은 몽롱한 늦가을을 만끽하게 했다. 바람이 세찬 구간은 잎을 다 떨구고 이미 겨울 채비를 한 나무도 있다. 산행 막바지에 겨울을 재촉하는 비를 맞으니, 손이 시렸다. 모든 것을 버리지만, 또 새로움을 준비하는 계절이 오고 있다. 겨울이다.
다소 만만하게 시작한 길
백두대간 오대산 구간은 다른 구간에 비해 거리가 길지는 않았다. 설악산 구간에서 고생한 기억이 생생해 23km 남짓의 산길을 만만하게 본 것도 사실이다. 산악 날씨를 확인하니 최저 4도까지 떨어진다. 물론 새벽 기온이다. 조금 두꺼운 옷을 챙겼다.
그런데 출발부터 살짝 걱정하게 하는 정보가 있다. 산행 안내를 맡은 부산등산아카데미 제1기 백두대간종주대(단장 박경효)의 이경규 선두 등반대장이 산행 코스를 설명하며 이번 산행은 다소 체력이 요구되는 구간이라고 했다.
진고개에서 구룡령까지 크고 작은 오르내림이 무려 15군데나 있다는 것. 그중 몇 개는 오르내림이 심하고 특히 막판에 '악' 소리가 나는 구간이 있으니 체력 안배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달여 만에 나서는 산행이라 더욱 체력이 걱정됐다. 거기다 이 구간은 진드기 출몰 지역이라고 했다. 다행히 기온이 낮아서인지 진드기가 활동하지는 않았으나 산행 내내 조금이라도 따끔거리거나 간지러우면 신경이 쓰였다.
진고개 장엄한 밤 풍경
오대산 진고개 주차장은 유독 넓었다. 밤 기온은 서늘했고, 가로등은 어둠을 겨우 밀어내는 정도의 밝기로 우뚝 서 있다. 그 덕분에 하늘의 별이 총총하다. 북두칠성을 또렷하게 보는 것이 얼마 만인지. 가야 할 길만 아니면 몇 시간이고 하늘을 보며 앉아 있고 싶었다.
동대산을 향해 출발한다. 다들 방풍 겉옷을 꺼내 입었다. 산길이 가파르다. 에누리 없는 상승고도. 나중에 고도표를 확인해 보니 해발 1000m 쯤에서 400m 이상 치고 올라가는 오르막길이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동대산(1433m)까지 1시간 정도를 걸어 올랐다.
오대산의 주봉은 비로봉(1563m)인데 동대산과 두로봉(1422m), 상왕봉(1491m), 호령봉(1561m) 등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오대산이라 불린다. 아름드리 전나무가 아름다운 사찰 월정사도 품고 있어 월정사 템플스테이도 인기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동대산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지만, 사위는 검다.
때아닌 한우 논쟁
빛이 희고 단단한 차돌박이. 그런 모양의 석영 바위가 덩그렇게 서서 어둠을 밝힌다. 현 위치 '차돌백이' 이정표 옆에 두 개의 커다란 석영 바위가 산꾼을 맞이한다. 이 구간엔 마늘봉도 있었다. 누군가 맛난 소고기구이를 말한다. 즐거운 상상에 도파민이 분비되는지 모두 한바탕 웃는다. 이참에 남도의 산꾼답게 의령 한우산을 끌어오는 이가 있다. 한우산은 그 한우가 아니라(의령 한우산은 찰비산으로 찰 한(寒) 비 우(雨)자를 쓴다고 한다)고 신세균 수목산악회 회장이 핀잔을 준다. 산행 도반들의 엎치락덮치락 대화가 재미있다. 여기는 오대산이다. 어쨌거나 차돌박이와 마늘만 해도 푸짐한 한우 한상은 거뜬하겠다.
동쪽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다. 쓰러진 물박달나무 곁을 지난다. 주변이 밝아오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붉게 물든 단풍이다. 물박달나무의 흰 수피와 묘하게 대비되는 강한 색상이 지금의 계절을 규정하라고 재촉한다. 가을인가? 여름의 끝자락. 아니다 이곳은 깊은 가을이고 어떤 곳은 초겨울이라고 해도 좋다. 대간은 계절이 반 박자 정도 앞서가는 모양이다.
반할 수밖에 없는 숲길
밝아온 빛이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는 나뭇잎을 깨우치니 온산이 울긋불긋 물들었다. 이미 떨어진 잎은 잎대로, 선선한 새벽바람에 흔들리는 노랗고 붉은 단풍은 또 그대로 아름답다. 오래된 숲에서 볼 수 있는 고사목과 나무둥치가 뻥 뚫린 고목이 산꾼에게 연거푸 인사한다. 그들의 안부를 물어야 하는데 갈 길이 멀어 묵례만 하고 지난다.
유독 둥치에 구멍이 뚫린 나무가 많아 자세히 보니 속이 검게 그을린 흔적이 있다. 어느 때인지는 모르나 화마의 피해를 본 것 같아 안쓰러웠다. 그러나 저 공간에 산짐승들이 깃들어 겨우살이를 할 것을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15번의 오르내림에 잔뜩 겁을 먹었지만 아직 체력이 남아서인지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두로봉(1422m)에서 상황봉으로 오대산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길이 있다. 다음에 꼭 와 봐야겠다고 다짐 하나를 적는다.
만월봉 지나자 천년 주목
만월봉(1281m)쯤에서부터 체력이 서서히 바닥나기 시작했다. 만월봉에는 북부지방산림청 홍천국유림관리소가 세운 커다란 백두대간 등산로 안내도가 있다. 안내에 따르면 만월봉은 바다에 솟은 달이 온 산에 비친다고 하니, 바다에서도 잘 보이고, 산에서도 바다가 보일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주위가 점점 짙은 운무에 둘러싸여 시나브로 어두워지는 중이어서 바다는 볼 수 없었다. 남은 구간에는 응복산(1359m)과 약수산(1306m)이 버티고 섰다. 차돌박이와 궁합을 맞춘(?) 마늘봉(1127m)도 있다.
만월봉에서 짙은 가을빛으로 물드는 떡갈나무 군락을 뒤로하고 응복산으로 간다. 한눈에 보기에도 오랜 세월의 흔적을 온몸에 새긴 아름드리 주목 한 그루가 있다. 둥치의 반은 썩어서 반원 형태이지만, 여전히 잎은 푸름을 자랑하고 있다. 나무의 기운이 좋아서인지 여러 사람이 쉬어간 흔적이 보인다.
응복산에 도착했다. 이곳 일대의 정상석은 돌이 아니라 금속판으로 돼 있다. 산세가 하도 험한 곳이라 운반하기 좋도록 그리 만들었는가 보다. 오늘의 목적지인 구룡령까지는 6.71km가 남았다는 오래된 이정표가 있다. 산꾼들의 지도에는 대략 6.8km로 안내돼 있다.
누적된 피로에 비까지
응복산을 지나자 산길이 한껏 고도를 낮춘다. 얼마나 내려가는지 두려울 정도로 떨어진다. 그러다가 다시 오름길이 시작되면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는데 마늘봉(1127m)이다. 선두와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중간 대오를 책임진 명용익 산행대장이 적당한 거리로 안내해 준다. 너무 처지지 않게, 그러나 너무 힘들지 않게 챙겨주는데 민폐여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힘들기는 산행 베테랑인 황계복 부산등산아카데미 강사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물론 힘들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산행을 마치고는 "응복산~약수산 구간이 너무 지루했다"고 말했다.
약수산을 2.6km 정도 앞에 두고 제법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산행 전날 예보를 봤을 때 1시부터 비가 올 것이라고 했다. 기상예보가 어지간히 맞다. 모두 비옷을 꺼내 입었다. 모자챙에서 낙숫물이 뚝뚝 떨어진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치고는 제법 거세다. 빗줄기에 단풍이 든 잎사귀도 우수수 떨어진다.
손끝이 시릴 정도로 기온이 떨어진다. 황 강사는 이런 환절기가 등산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도시 기온만 느끼고 가볍게 산행을 준비했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마침내 구룡령에 도착
약수산까지의 길은 능선이 좌우로 매우 가팔랐다. 지형이 험하니 차단봉을 세워 산꾼들의 안전을 도모했다. 된비알을 오른다. 끝이 언제일지 몰라 위는 쳐다보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남은 길을 가늠하기 위해 고개를 든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젖은 산길을 올라 드디어 정상에 오른다. 탁 펼쳐진 풍경을 기대했는데 온통 '곰탕(비안개)' 조망이다. 그래도 이 장소가 평소엔 인제나 한계령은 물론 설악산 대청봉과 속초시, 양양군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인 모양이다. 오래된 사진 안내도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일탈하고 있다.
약수산 정상으로 착각했는데 정상석은 없고 한 대간꾼의 추모비만 있다. 가던 길을 조금 더 가니 약수산 정상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구룡령의 동쪽에 우뚝 솟은 약수산은 남쪽 골짜기의 약수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약수산 아래에는 명개약수가 있다. 명개약수는 철 성분이 있는지 샘 주변이 붉은 주황색이다. 인근에 불바라기약수, 갈천약수, 상봉약수 등이 있어 이 일대가 약수골이다.
약수산에서 구룡령까지는 심한 내리막길. 목책 계단과 돌계단이 번갈아 나오는데 보폭을 맞추기 쉽지 않다. 명 대장이 "아래로 내려올수록 단풍 때깔이 곱다"고 말했다. 생육환경이 좋으면 단풍도 더 붉다.
그렇게 느지막이 강원도 영동(양양)과 영서(홍천)를 가르는 분수령인 구룡령에 도착했다. 11시간 걸렸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
2023-10-1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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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명불허전 설악에 올라 겸손을 한껏 배운다
예행연습도 했더랬다. 백두대간 설악 구간 안내문에는 총거리 23.3km로 15시간이면 마친다고 돼 있었다. 다 탁상공론이다. 현장을 모르는 사람이 작성하지 않았을까. 왜?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으니까. 공룡능선에서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선경을 보며 몸과 마음을 추스른 것도 잠시. 배낭마저 중청대피소에 두고 설악산 최고봉 대청봉(1708m)에 올랐으나 내려오는 한계령까지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보통 이 구간은 2번으로 나눠서 하는 이도 많다. 특히 부산에서 이동 거리가 길어 차로 5시간 이상 걸리는 곳이므로, 가능하면 느긋하게 하는 편이 낫겠지만, 중간에 내려오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대간까지의 접근성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대간 종주를 준비하는 이들은 단박에 끝내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좋은 산에 다녀와서 이렇게 징징거리는 것은 그만큼 사무치게 기억이 남는 산행이었다는 뜻이려니, 양해를 부탁드린다. '설악은 역시 설악다웠다'로 이번 산행을 표현하고 싶다. 흔히 어머니 산이라 부르는 지리산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바위가 곧 봉우리였다. 흙길마저 많지 않아 커다란 너덜겅을 징검다리 건너듯 걸어야 하는 구간이 많았다. 그래도 설악은 설악이다. "이 정도면 중국 장자제 여행 갈 것 없겠다"는 극찬을 들은 산이다.
설악의 참모습을 아는 이들이 많아서인지 여름이 막 물러가는 9월 중순의 설악산은 꽤 붐볐다. 거의 맨몸으로 달리는 사람, 키만 한 짐을 지고 묵묵히 걷는 사람, 아이와 외국인까지. 설악의 매력이 이들을 마구 불러 모으고 있었다. 청춘 시절 대청에 올라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두 번째 찾은 설악산. 왜 자주 오지 못했던가 이제야 후회한다.
마등령 삼거리까지
설악 구간 대간은 미시령에서 한계령까지로 주로 끊는다. 미시령~마등령 구간은 비법정탐방로다. 이 구간을 제외하더라도 공룡능선, 대청봉, 한계령까지의 길은 험난하다. 우선 마등령까지 가려면 속초 방면 설악산 소공원에서 비선대를 거쳐 삼거리까지 6.5km를 4시간 가까이 올라야 한다. 내설악에서 출발하는 코스는 백담탕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한다. 백담사까지 7km 구간은 셔틀버스가 있다. 백담사에서 영시암까지 3.5km이고, 또 여기서 오세암까지는 2.5km다. 오세암에서 마등령까지는 1.4km의 덱 계단이다. 내설악도 걷는 구간이 7km가 훌쩍 넘어 어느 쪽이나 마등령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미시령에서 황철봉과 저항령을 지나 마등령까지 가는 비탐 구간도 무려 8km가 되는데 너덜지대가 많아 6시간 이상 걸리는 어려운 구간이다.
부산에서 저녁 9시에 출발해 출발지엔 다음 날 오전 3시에 도착해 산행을 바로 시작했다. 산에서 일출을 봤다. 그리고 설악에서 장엄한 일몰을 봤다. 헤드램프를 또 꺼내서 착용하고 어둠을 뚫고 한계령(오색령)에 도착했다. 오후 8시 39분이었다. 17시간 40분의 긴 산행이었다.
부산 수목산악회 신세균 회장이 "백두대간 전체 구간 중에 가장 난도가 높은 구간"이라고 설명했다. 오색리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출발해 부산에 오니 다음 날 새벽 5시가 가까웠다. 무박 3일의 긴 일정이다.
공룡능선 고작 5km?
마등령에서 희운각까지 가는 구간을 설악 공룡능선이라고 부른다. 왜 그런지는 직접 보면 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설악의 바위는 희고 공룡의 송곳니처럼 하늘로 치솟아 있다. 특히 공룡능선 구간은 길이는 짧지만 10km 이상의 산길을 걷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것이 정평이다. 국립공원에서도 이 구간은 '매우 어려움'으로 표시하고 등산 구간을 빨갛게 강조해 두었다. 5.1km인데 280분(4시간 40분)이 걸린다고 안내했다. 이번에 실제 걸어 보니 마등령 삼거리에서 희운각까지는 4시간 남짓 걸렸다.
설악의 바위 틈새마다 야생화가 피어 있다. 산오이풀, 구절초, 솔체꽃, 금강초롱, 산부추, 솔체꽃, 투구꽃이 제멋을 제대로 뽐내고 있다. 특히 보랏빛 투구꽃이 지천이어서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참 늦었지만 일출을 본 이야기를 하려 한다. 협곡 사이로 바다가 보인다. 그 바다 수평선에서 해가 이글거리며 솟아오른다.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숨죽이며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촬영하기 시작한다. 추억은 전화기 속에 침잠한다. 누구나 그렇다.
앞서가던 누군가 '똥 주의!'라고 외친다. 발아래를 주시하며 걷는다. 하트 모양의 까만 염소 똥이다. 이것은 산양의 똥. 막 배설한 것처럼 반들반들 윤기가 있다. 고마움에 고개를 한 번 더 숙인다. 설악 케이블카에 또 얼마나 가슴 졸이고 있을까.
저 바위는 저 솔은
마등령 숲속에서 아침을 먹었다. 사람들이 북적인다. 간편한 복장의 외국인도 많다. 산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인지 본인의 체력을 과신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성큼성큼 가는 것을 보면 체력이 남다르긴 한 모양이다.
커다란 바위 위에 천년송이 멋지게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입지 조건인데, 우람한 체구를 키운 것을 보면 자연이나 인생이나 가늠할 수 없는 기적이 존재하는 것 같다.
겨우 1.2km를 걷는데 1시간이 걸린 것 같다. 희운각 대피소까지는 3.9km가 남았다. 철봉을 잡고 한껏 힘을 줘서 올라가는 구간이 있다. 끙~ 하며 다리에 힘을 주고 올라서는데 허벅지 근육에 경련이 생긴다. 쥐가 온 것이다. 쥐를 잡을 고양이가 필요하다.
갈 길이 구만리인데 벌써 몸에 이상이 생겼다. 조금 힘을 주면 다리가 멈출 것 같다. 엉거주춤 걷고 있는데 동행한 황계복 부산등산아카데미 강사가 불편하냐고 묻더니 배낭에서 약을 꺼내주었다. 앰풀과 알약 두 개를 단숨에 삼켰다. 희운각에서 포기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다소 걸을 만해서 계속 간다.
고릴라 바위와 선경
옆에서 보면 고릴라의 상체를 닮았다는 고릴라 바위. 모두 좋아하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킹콩을 닮았다. 고릴라라고 하기엔 너무 거대했다. 그 옆에는 돌고래를 닮은 바위도 있다. "보이는 만큼 보이고, 생각하는 만큼 느낍니다." 한 일행이 정리했다. 북한산에서 본 코끼리바위가 생각났다. 아무리 보아도 찾지 못했는데, 누군가 옆에서 일러주어서 코끼리를 만날 수 있었다.
새벽에는 별이 총총했고, 해가 뜨니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이 넘실거렸는데. 어디선가 비구름 같은 것이 몰려와 백두대간의 동쪽을 점령한다. 국립공원 안내문에도 공룡능선 구간은 기상이 시시각각 변하는 곳이라고 돼 있다. 북쪽으로 기준을 삼으면 오른쪽 동쪽은 구름이 짙어 있고, 대간의 왼쪽 내설악 서쪽은 푸른 하늘이다. 신기한 자연 현상이 빚어낸 선경이다. 그 그림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촛대바위 아래 생명수
이미 오르막에서 가져온 생수 2리터를 소진한 사람이 있었다. 물 부족이었다. 배낭에 얼음까지 3리터를 챙겼는데, 얼음은 반 넘어 녹았고, 가져간 물은 거의 다 마셨다. 희운각대피소까지 가야 물을 구할 수 있다는데 막막했다.
희운각대피소는 아직 2.4km나 남았다. 현재의 걸음으로라면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다. 희소식이 들렸다. 부산등산아카데미 제1기 백두대간종주대(단장 박경효) 이경규 선두 산행대장이 촛대봉 아래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마등령과 희운각 대피소의 중간지점에서 물을 구할 수 있어 행복했다. 다만, 시에라컵 등이 있어야 물을 원활하게 수통에 담을 수 있다. 산행할 때는 종이컵이라도 하나 챙겨가는 게 맞겠다. 정 컵이 없으면 나뭇잎이나 가지로 물줄기를 만들 수 있는데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려워할 것이 분명하다.
물을 가득 채우고, 다시 공룡의 등뼈를 걷는다.
산양이 신령처럼 사는 곳
설악산 산양은 천연기념물이다. 큰 바위가 있는 험준한 산악 지역에 주로 서식한다. 험준한 지형을 택한 것은 생존 본능일 것이다. 크게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 머물러 서식하는 습성이 있다고 했다. 2~5마리 정도가 군집한다는데 수컷은 단독 생활을 한다고 국립공원에서 안내해 놓았다.
염소와도 다르고 양과도 조금 다른 산양은 설악산에서 수난의 상징처럼 되었다. 개발과 보존의 틈바구니에서 산양은 점점 구름 속으로 숨어들 것이 분명하다. 동해에서 밀려온 것이 분명한 구름이 공룡능선을 휘감고 있다. 조금씩 드러난 바위 봉우리가 기묘한 풍경을 선사한다.
사람들이 아예 자리 잡고 앉아 풍경 감상 삼매경에 빠진다. 구름이 짙었다가 옅어지곤 한다. 반복되는 풍경에 지루할 틈이 없다. 감탄만 나오니 비좁은 조망지가 북새통이다. 그래도 누구 하나 짜증 내는 사람이 없다. 여기는 하늘나라다.
희운각대피소까지는 1km가 남았다.
보라색 투구꽃 이색 풍경
투구꽃은 진보라색이다. 장수의 투구처럼 생긴 모양이다. 한국의 속리산 이북 지역에만 분포한다고 한다. 그래서 남쪽의 얼치기 산꾼에게는 생경한 꽃이었다. 꽃 모양이 로마 병정의 투구처럼 생겼다고 설명한 책도 있다.
어쨌든 이맘때 설악 백두대간은 투구꽃 세상이다. 묘한 색상이 깊숙한 느낌이어서 자료를 찾아보니 뿌리는 초오라는 독초로 약재로 쓴다고 한다.
바위 구간이 험한데 별도의 계단은 만들지 않고 쇠 난간을 박아 놓았다. 스틱은 거추장스럽지만, 등산 초보자만 아니면 무난하게 지나갈 수 있다. 국립공원의 관리 형태가 북한산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백운대 오름길과 비슷한 것은 혼자만의 느낌일까.
희운각대피소는 한창 공사 중이다. 물은 산행로 옆에 엑셀 파이프에서 쿨쿨 잘 나오고 있었다. 지하수는 아니고 계곡물이라고 한다. 지하수가 아니면 어떠랴. 물을 빈 병마다 채워 넣었다. 점심을 먹고 대청봉을 향해 오른다.
빈 짐의 무게도 무겁다
희운각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은 끊임없이 고도를 높이는 구간이다. 마의 구간이라 불린다. 딱히 다른 이름이 필요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2.5km 구간에 고도는 500m 이상 한껏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대청까지 2시간 이상 걸린다.
당일 오후 2시에 희운각대피소를 출발해 1시간 15분을 쉼 없이 올라 소청에 도착했다. 한숨 돌린 뒤 중청대피소를 향해 걷고 중첨 삼거리에서 배낭을 벗어 던진 후 대청봉은 3시 59분에 도착했다. 딱 2시간이 걸린 셈이다.
소청에서는 봉정암으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내설악이 한눈에 보이는데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중청삼거리에서 9월 15일 이후 숙박 기능이 사라질 중청대피소를 향해 걷는다. 중청대피소는 대피소 기능은 유지한다고 한다. 일행 한 사람이 약간 비싼 느낌이 드는 생수 한 병을 샀다. 대청봉을 향해 걷는다. 주변이 일망무제라 가슴은 탁 트이지만, 누적된 피로는 갔다가 돌아와야 하는 부담과 겹쳐 감동을 반감시킨다.
대청봉 정상석은 붉은 바탕이 각인돼 있다. 멀리 속초 시내와 동해가 보인다. 왜 여기까지 왔던가. 또 가야 할 길은 얼마인가? 갈 수 없는 북녘의 백두대간, 남으로는 점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득하다.
한계를 시험하는 것인가
대청봉에서 한계령까지는 8,3km. 애초 지도로 집에서 산행 구간을 답사했을 때는 매우 평탄한 길로 생각했다. 한계령 자체가 해발이 높은 지역이어서 생각으로는 설악산 대청봉으로 오르는 가장 쉬운 길(?)로 착각했다. 하산 이후 모든 생각을 지웠다. 특히 한계령을 목전에 두고 산 하나를 다시 올랐을 때는 욕이 나왔다.
산길은 보통 2km를 한 시간 정도에 걸을 수 있다고 계산한다. 설악에서는 이 계산법이 맞지 않지만. 4시간 정도면 하산할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하산길이니 쉽기까지 할 것 아닌가. 대청봉도 올랐겠다. 즐겁게 하산한다.
그런데 가도 가도 길이 끝나지 않는다. 4시에 대청봉에서 하산을 시작해 끝청 전망대까지 1시간이 걸렸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오후 5시다. 끝청봉(1610m)에서 한계령 갈림길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몰랐다.
다만 길가에 무수히 핀 금강초롱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보라색도 있고 흰색도 있다. 왜 이리 하산길이 긴지 아무도 애기 해주는 이는 없다. 한때 함께 걷던 일행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물을 나누고 기분이 좋아지다
한계령 방향에서 오던 남녀 청년 학생 3명과, 앞서 하산하던 황계복 강사가 멈춰 서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물 이야기다. 이야기인즉슨 이 친구들은 남교리에서 출발해 서북능선을 거쳐 중청대피소까지 가는 중인데 물이 모자라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산에서는 절대 타인에게 물을 빌리면 안 된다'는 것은 철칙. 그런데 그런 강의를 한 황 강사에게 물을 요구했다. 황 강사는 배낭의 물 한 병을 아낌없이 줬다. 다소 화색이 돈 학생들과 그다음으로 만났다. 물 계산을 잘못해 몇시간 째 입술만 축이면서 오르고 있다고 했다. 물 1리터를 나눴다. 희운각에서 지고 온 귀한 물이다. 이상하게 기분은 좋았다. 학생들이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다.
뒤에 오던 명용익 중간대장도 학생들에게 물 나눔을 했다. 목이 말랐던 학생들은 복을 만났다. 그들에게 행복한 기억이 되었으리라 우리도 그랬다.
다시 헤드램프를 켜다
어둠이 또 내렸다. 새벽 깊은 어둠 속에서 산행을 시작했는데 해가 졌다. 헤드램프를 켜고 묵묵히 걷는다. 지금의 오직 한 목적은 한계령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다. 너덜지대가 많다. 징검다리처럼 뛰어 건너야 하는데 자칫 발이라도 헛짚으면 큰일 나겠다. 등산화도 너덜너덜해지고 있어 언제 밑창이 떨어질지 모른다. 악재는 겹친다더니 바짝 긴장한다.
아침에 보았던 햇살 속의 산오이풀, 구절초를 떠올려야 하는데 어둠 저편의 심연 같은 칠흑 세계만 깊다. 한계령 3.1km를 남기고 휴대전화 배터리도 소진됐다. 비상 배터리를 연결해 충전하며 걷는다.
내리막길에서 누군가의 불빛이 보인다. 80세가 훌쩍 넘은 '1번 형님'이시다. 전 구간을 함께 하지 않고 오색에서 올라와 대청봉을 거쳐 하산하는 중인데 막판에 속도가 줄었다. 명 대장이 1번 형님을 케어하며 내려오기로 했다. 배낭이라도 들어드릴지 생각했지만, 마음과 달리 손이 나서질 않는다. 박경효 단장은 1번 형님과 코스를 함께 했는데 노고가 짐작된다.
한계령은 내리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검은 산 하나가 또 떡하니 막고 섰다. 올라야 내려갈 수 있다. 드디어 탐방지원센터 입구에 도착한다. 닫힌 문은 자동문이어서 내려갈 때는 자동으로 열린다. 이 시간에 올라오는 문은 열리지 않는다. 한계령 도로를 닦을 때 희생한 이들을 기렸다는 위령비를 보며 잠시 내려서는 백두대간 오색령이다. 이미 어둠이 한껏 내린 오후 8시 40분이다.
1시간 뒤에 박한철 후미대장과 일행 2명도 안전하게 하산했다. 설악산, 명불허전이다.
▲설악산 공룡능선
공룡능선은 그 자체가 영동과 영서지방의 구분 선이다. 마등령에서 시작해 희운각대피소 무너미고개까지 약 5km를 공룡능선이라 부른다. 2013년 대한민국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공룡능선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능선이 공룡의 등뼈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희고 매끈한 바위 봉우리는 대보화강암이다. 중생대 쥐라기에 생성한 것이니 공룡과 연관성이 많다. 평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아 느긋하게 걸으면 시간당 1km가 적당하다.
일부러 천천히 걷지 않아도 기암괴석과 절경에 눈이 팔리기 일쑤다. 풍광이 좋은 자리에서 느긋하게 쉬면서 걷는 것이 최고다. 단, 그렇게 하려면 희운각대피소나 소청대피소를 사전에 예약하고 1박 2일 일정을 잡아야 한다.
길이 예전에 비해 많이 넓어졌다(?)고는 하지만 정체 구간이 생긴다. 특히 단풍철에는 오르고 내리는 산꾼들도 혼잡하기에 체증을 각오해야 한다. 가능하면 오르는 이에게 우선권을 주는 게 맞다.
공룡능선에서 볼 수 있는 운해는 동해의 수증기가 공룡능선의 찬 공기와 만나 구름이 되고, 이 구름이 모여 봉우리 사이로 멋진 구름바다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국립공원 대표 경관 가운데 제1경으로 꼽히기도 한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 안배와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많은 산행 조난자가 발생하는 곳도 이 구간이니, 명승을 즐기려면 투자가 필수다.
2023-09-1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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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백종주] 완주기를 쓰고 싶었으나…도전기를 쓰다
부산에는 훌륭한 산행 코스가 많다. 특히 국립공원 지정을 염원하는 금정산은 지리산 못지않은 수많은 골짜기와 등산로가 있어 시민들의 '녹색 지대'가 되고 있다. 금정산은 낙동정맥이 다대포에서 마무리되기 전 우뚝 솟은 진산이다. 이 낙동정맥의 일부 구간과 금정산 북릉이라 불리는 양산 계석마을~갑오봉 구간을 넣어 금백종주라 부르는 코스가 있다.
금백종주는 주로 양산 계석마을에서 시작해 부산 사상구 주례동 계림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25km에 이르는 구간이다. 걷는 시간만 10시간 이상 걸리는 꽤 긴 코스를 하루에 종주하는 일종의 챌린지가 유행한 지 좀 오래됐다.
백두대간 훈련 코스로
금백종주는 등산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하루에 완주할 수 있는 코스지만, 초급자나 긴 코스에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는 완주하기 힘든 코스이다. 도상거리가 25km가 훌쩍 넘는 데다 걷는 시간만 10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평지를 10시간 걷는 것도 힘든데 산길을 이렇게 오래 걷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험준한 백두대간 코스를 가기 전에 훈련용으로 금백종주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번에 금백종주에 도전한 것도 설악산 공룡능선이 포함된 백두대간 구간을 가기 전에 훈련용으로 제안받았다.
금백종주는 계석마을에서 시작해 장군봉과 금정산 고당봉, 만덕고개, 쇠미산을 거쳐 백양산을 지나는 코스다. 결론적으로 이번 도전은 실패했다. 가장 큰 이유는 더위와 또 연이은 폭우였지만, 실상은 저질 체력과 의지박약이었다.
그래서 금백종주 도전기라고 쓰고, 정확하게는 금백종주 금정산 구간이라고 이름 붙인다. 이렇게 코스를 쪼개는 것이 무슨 의미랴 만은.
계석마을에서 출발해 산불 체험 등산로 구간~질메 쉼터~다방봉(536m)~736봉~장군봉(734.5m)~갑오봉~고당봉(801.5m)~원효봉(687m)~동문까지 약 12km를 오전 7시 30분에 시작해 오후 3시가 조금 넘어 마쳤다. 7시간 남짓 걸린 여유로운(?) 산행이다.
물의 기운으로 시작하다
온전히 두 끼 식량을 챙겼다. 군데군데 물을 보충할 수 있는 지점이 있지만, 더위를 예상해 얼음 1리터를 배낭에 재워 넣었다. 무게감이 느껴졌다. 도시철도 범어사역에서 양산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배차 간격이 꽤 길었다. 버스 배차 안내 표시만 보고 인근 카페에서 미숫가루 음료를 먹느라 여유를 부렸더니만, 어느새 버스는 지나가 버렸다.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 다음 버스는 16분 후 도착 예정인데, 도무지 시간이 줄지 않아 지인이 택시를 불렀다. 호출한 택시는 금세 도착한다.
다방삼거리에서 계석마을로 진입해 산행을 시작한다. 길가에 밤송이가 널브러져 있다. 자세히 보니 모두 까서 알맹이는 챙겨간 뒤다. 밤이라니, 벌써 가을이 왔다는 증거다.
양산시에서 등산로를 정비해 산길이 완만하다. 일부 구간은 야자매트도 깔아놓았다. 운무가 깔린 산길을 걷다가 깜짝 놀랐다. 누군가 벗어 놓은 고무신 두 짝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만, 걱정할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요즘 열풍인 맨발로 걷는 사람이 벗어놓은 신발이었다.
이른 시간, 전날 폭우가 쏟아진 뒤인데도 아침 운동을 하기 위해 산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다들 물의 기운으로 흠뻑 젖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산불 체험 등산로 코스
한 아름이 크기 소나무들의 행색이 이상했다. 푸름을 자랑해도 아무도 눈총 주지 못할 상황인데, 숲은 검은 기운이 완연했다. 의문은 이내 풀렸다. 몇 해 전 발생한 산불로 홀라당 타 버린 숲이었다. 긍정적인 것은 불에 탄 나무를 바리깡으로 밀듯이 베어낸 강원도 지역과 달리 그대로 두었다는 것. 숲의 자연 회복을 믿는 산림 행정이 고마웠다. 이제 나무들은 오랜 세월을 지나며 차례로 쓰러질 것이고 햇빛을 충분히 받은 풀들은 무성했다가 결국엔 숲의 천이 과정에 동참할 것이다.
산불 구간 일부에 등산로를 내 '산불 체험 등산로'로 만든 발상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숱 검댕이 숲을 지나며 불조심을 안 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마을 뒷산인지라 향토적인 유적이 많았다. 소꼴을 하는 목동들이 소에 올라타기 위해 이용한 디딤돌 바위도 있었고, 나무꾼이 지게를 두고 쉰 질메 쉼터도 있다. 질메쉼터에서 또 가파른 산행이 시작된다.
이맘때 산길은 버선이 지천
산꾼들이 버섯을 대하는 태도는 이래야 한다. 일반적으로 산꾼은 버섯을 탐하면 안 된다. 부산등산아카데미 황계복 강사는 산행하며 버섯이나 약초를 보고 걸음을 멈추는 산꾼에게 "참 가지가지 한다"며 핀잔을 주는 선배가 있었다고 말했다. 산꾼은 오롯이 산을 타야 한다는 말이다. 버섯과 약초는 약초꾼에게,
비가 내리고, 기온이 다소 내려가면서 인근 야산에는 버섯이 하루가 다르게 피어난다. 버섯을 꽃으로 비유할 순 없겠지만, 천상의 버섯 화원이 이맘때 주변 산이다.
노랗고, 기괴하고, 먹음직스럽고, 빨갛고, 희고, 탐스런 버섯이 등산로 곳곳에 불쑥불쑥 솟아있다. 이름을 알 수 없고, 식용을 가늠할 수 없어 무감한 듯 지나친다. 그러나 독성의 금기를 뛰어넘는 유혹이 있긴 하다.
장군봉은 지척이라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가야 할 길이 천 리라(이때만 해도 완주를 꿈꿨다) 가급적 우회로를 이용했는데 특히 736봉을 앞둔 우회로에서 낮은 길로만 가다가 그 부끄러운 '알바'(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 오는 일)를 하고 말았다.
미니 산행대의 대장 자리를 후임에게 이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쉿 장군평전에 가을이 왔어요
쉽게 우회할 수 있어 장군봉에는 이번에도 오르지 않았다. 장군봉을 우회하자마자 넓은 초지가 펼쳐졌다. 장군평전이라 이름 붙은 곳이다. 억새가 피기 시작했다. 벼 이삭처럼 고개를 숙인 억새꽃이 지천이다. 이제 날씨가 조금 더 선선해지면 황금빛 억새가 가을바람에 춤을 추리라. 갑오봉에서 아침을 먹는다. 오락가락하던 빗방울은 멈췄다. 더위도 시원한 바람에 정체를 숨겼다. 얼음 녹은 물을 연신 들이켜 몸을 식힌다.
갑오봉은 우회를 해도 되지만, 넓은 평전이 좋아 빠뜨릴 수 없는 구간이다. 내리막이 시작되면서 또 햇빛을 피한다. 습지가 시작되더니 물소리가 장쾌하다. 샘이다.
샘 인근에 미리 온 등산객 한 분이 짐을 풀고 여유롭게 쉬고 있다. 콸콸 쏟아지는 샘물을 받아 목을 축인다. 안부에 내려선다. 금정산 고당봉을 북쪽에서 바라보는 조망지다. 고당봉의 바위군이 빼어나다. 사진 한 장을 남겨 기록한다.
고당봉으로 오르는 길에 '범어사기'라고 각인된 바위가 있다. 절 부지 경계인 모양이다. 잣나무 아래 까먹은 잣 껍데기가 널브러져 있다. 청설모나 다람쥐의 아침 식사 자리다.
속세의 유혹이 이어진다
고당봉은 오르는 사람이 많았다. 고당봉에서 북문으로 내려서는 등산로는 북적거렸다. 1km 정도의 내리막길인데 피로감이 몰렸다. 북문에서 범어사로 탈출하는 코스가 있다. 이 길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북문 인근 금정산탐방지원센터에서 점심을 먹는다. 여럿이 앉을 수 있는 의자와 금샘 약수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아예 자리를 펴고 가져온 음식을 뷔페처럼 펼쳐 드시는 분들도 있다. 꿀맛이리라. 북문 하산길 유혹을 뒤로 하고 산성길을 따라간다. 커다란 돌로 만든 등산로가 익숙하지는 않다. 망루를 지난다. 산성 아래 금정구와 멀리 부산 해운대까지 조망이 펼쳐진다. 김유신 솔바위 안내판이 있다. 김유신이 소변을 눈 자리에 심은 소나무라니. 참 특이한 전설이다.
4망루를 지나니 동문으로 가는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시작된다. 처음엔 가늘다가 점점 굵어진다. 소나무숲이 비안개에 젖어 들었다. 지나온 길을 가늠해 보니 12km가 넘었다. 시간도 재 보았다. 7시간이 넘었다. 그래 이만하면 됐다.
동문에 도착했다. 비를 피하는 두 사람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이다. 길을 물었다. 내려가면 버스정류장이 있다고 했다. 도시철도 온천장역에서 산성마을을 오가는 203번 버스는 15분 간격으로 다닌다. 꼬불꼬불 산성길을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하산한다. 남은 구간은 다음에 하겠다고 다짐한다.
2023-09-0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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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단목령~조침령 최후의 원시림 펼쳐져
태풍의 뒤끝은 두렵지 않았다. 다만, 가지 못하는 길이 아쉬웠을 뿐. 이번 백두대간 구간은 온전히 걸으려면 조침령에서 시작해 한계령(오색령)까지 약 25km다. 그러나 단목령을 지나 한계령까지는 국립공원 구역 등으로 탐방로가 막혀 있다.
더러 법의 경계를 넘어 숨바꼭질하듯 산행하는 대간꾼들이 있긴 했다. 포털사이트 검색만 하더라도 이곳을 다녀와 산행기를 올려놓은 사람이 여럿이다. 어떤 이는 이 코스를 걷는데 12시간이 넘어 걸렸고, 준족임이 분명한 한 대간꾼 블로거는 7시간 만에 주파한 기록도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 구간 산행을 다녀온 이들이 있었다. 기왕지사 막힌 길을 이미 다녀온 이들에게 몇 장의 사진을 얻었다.
한계령(오색령)~단목령 갈 수 없는 길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을 듣고 있으면, 불현듯 배낭을 꾸려 떠나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이 한계령은 또 하나의 이름이 있으니 오색령이다. 한계령 휴게소 인근에 있는 백두대간 비석엔 '백두대간 오색령'이라고 선명히 새긴 비석이 있다.
예로부터 이 고개는 양양에서는 오색령, 인제에서는 한계령으로 불렀다고 한다. 양양에서 인제로 동해 쪽의 생산물이 고개를 넘었고, 영서의 생필품이 또 영동으로 가던 길이다.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는 최단 코스 등산로가 있어 산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백두대간 조침령으로 가는 코스는 한계령 혹은 오색령에서 시작하는 게 분명하지만, 길은 높은 철망에 막혀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백두대간 종주자의 출입을 막는 초소, 카메라 감시, 인력을 통한 순찰 등을 전방위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간꾼들의 걷고자 하는 열망을 온전히 다 막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금단의 땅에 있는 망대암산과, 그즈음에 있다는 UFO바위 등이 심심찮게 포털사이트에 올라온다. 사진으로 본 UFO 바위는 정말 상상하는 UFO처럼 생겼다.
한계령에서 조침령으로 남진하는 백두대간의 최대 걸림돌은 한계령 바위 지대라고 한다. 대간에는 몇 군데 난코스가 있다. 속리산 문장대에서 밤티재까지 이어지는 바위 구간, 지름티재에서 희양산에 이르는 직벽 코스 등인데 한계령 바위 구간을 최대 난코스라고 평하는 이들도 많다.
한계령에서 출발하면 바위 구간을 지나 UFO바위~주전골 갈림길~망대암산까지 곳곳에 험한 바위 구간이 이어지고, 망대암산 이후엔 점봉산(1,424m)까지 긴 오르막을 오르면 이후에는 짙은 숲길이 이어진다. 단목령 바로 아래에 맑은 계곡이 있다. 이어 북암령~양수발전소 갈림길~조침령까지 대간은 이어진다.
천상의 화원 곰배령과 점봉산
백두대간 구간마다 천상의 화원이 아닌 곳이 어디 있겠냐마는 특히 점봉산은 그 유명한 곰배령도 품고 있어 식생이 다양하고 야생화가 풍부하다.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점봉산에 자생하는 식물종은 854종으로 한반도 전체 식물종의 20%나 된다. 점봉산은 1987년부터 입산을 금지하고 있다. 대신 곰배령(1164m)은 사전에 탐방 신청한 이들에게만 개방하고 있다.
곰배령으로 가는 점봉산 산림생태탐방로는 전체 구간이 10,5km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설악산곰배령산림생태탐방로는 산림청 '숲나들e'에서 예약할 수 있다. 정해진 코스 이외에 설악산국립공원 점봉산분소에서 곰배령으로 가는 '곰배골탐방로'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예약해야 한다.
설악산국립공원 탐방로이므로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https://reservation.knps.or.kr/)을 통해 따로 신청하면 된다.
이맘때 점봉산 일대는 동자꽃, 금강초롱, 새며느리밥풀꽃, 모싯대, 참취꽃, 산오이풀 등이 한창이다. 백두대간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특히 점봉산 일대의 식생이 이렇듯 풍부하니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다.
8월 산행의 명과 암
물론 여름 산행은 꽃구경도 좋지만, 한 가지 복병이 존재한다. 더위와 습기다. 비가 오더라도 비옷을 입으면 무척 덥기 때문에 성가시다. 주변에 알아본 바로는 웬만한 비 정도는 산꾼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왕 땀으로 젖을 터, 비를 맞는 것이 오히려 더 시원하다는 것이다. 더위 혹은 예고 없는 소나기가 도사리고 있지만, 궂은 날씨라도 산행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 산행을 결심하고 나서는 순간부터 '자연'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가 온 뒤 습기가 많아 운무로 시야가 좋지 않은 상황을 두고 어떤 산꾼들은 '곰탕'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주위는 온통 운무에 휩싸여 시야는 뿌옇게 흐리다. 습한 기운 또한 만연하다. 어쩌다 보이는 산줄기 사이사이에 하얀 곰국 같은 구름과 안개가 넘실거린다. 이런 날씨를 두고 '곰탕 날씨'라고 한다니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람들 발길이 뜸한 망대암산에서 점봉산으로 오르는 대간 코스는 풀과 숲이 무성하다고 한다. 나무와 풀이 꼭 사람 키 높이라서 오르다 보면 나뭇가지로부터 뺨을 부지기수로 맞는다고 한다. 뺨을 그렇게 맞고서도 기어코 대간을 잇는 이들의 열정이 부럽다.
사진 속의 점봉산 정상석은 하트 모양이다. 곰배령 정상석과 비슷하게 생겼다. 점봉산~작은점봉산~곰배령으로 이어지니 정상석을 비슷한 형태로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단목령에서 조침령까지
점봉산에서 단목령은 6.2km 떨어져 있다. 대체로 무난한 내리막길이어서 어려운 구간은 없이 원만한 모양이다.
단목령은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와 양양군 서면 오색리를 잇는 고개다. 박달나무가 많아 박달령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단목령에서 북암령까지가 2km, 북암령에서 조침령까지는 7.3km다.
단목령지킴터에서 조침령 방향으로 100m쯤 가면 계곡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 아래에는 청정 계곡물이 철철 넘쳐난다. 이곳에서 식수를 보충하거나 쉬어가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단목령은 인근 도심의 낮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지만, 해발이 높고 계곡이 있어 기온이 20도에 불과해 쾌적할뿐더러 서늘한 기운까지 느껴진다.
오직 나무와 풀숲만이 반기는 숲길 곳곳에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자리잡고 있다. 더러 수명을 다한 듯 부러진 가지를 안고 있지만 그 또한 자연의 관록을 느끼게 한다. 오래된 숲에 경외감이 생긴다. 심산 깊은 숲길을 한 시간가량 걸으면 북암령이다. 북암령은 세계적인 희귀식물인 한계령풀의 최대 군락지라고 한다. 한계령풀은 4월에 노란 꽃이 핀다. 그런데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이유는 5월 중순이면 지상부는 고사한 후 뿌리만 휴면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신갈나무, 들메나무, 박달나무, 물푸레나무, 엄나무 등이 자생하는 조침령 가는 숲길을 또 타박타박 걷는다. 조침령까지 7km가 남았다. 비가 오락가락해서 온몸이 비와 땀으로 범벅이 돼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지쳐갈 무렵 양양양수발전소 상부댐 제한적 개방 안내 표지판이 있다. 백두대간 탈출로라고 이정표에 나와 있다.
여기서부터 조침령까지 구간은 인제천리길 구간이다.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다. ‘조침령 0.3km’ 표지판을 지나자 목재 덱 길이 나온다. 덱 길을 내려서니 새들도 자고 간다는 조침령이다.
▲여름 산행의 백미 '알탕'
여름 산행은 땀으로 온몸이 젖기 일쑤다. 산행 막바지에 계곡이 있다면 금상첨화. 그래서 여름 산행의 필수 준비물은 여벌 옷이다. 만족스러운 알탕을 위해 산행 내내 옷을 지고 다니는 산꾼도 있다. 그 무게를 충분히 감당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알탕은 말 그대로 알몸으로 목욕하는 것을 말하는데, 산꾼들의 알탕은 주로 계곡에 몸을 담그는 것을 말한다. 조침령에서 1.2km 정도 내려와 터널관리사무소 광장에 도착하면 길 건너가 진동계곡이다.
여름에도 몸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이 철철 흐르는 곳. 그 계곡에 몸을 담그면 산행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다. 물이 차갑고, 비라도 온 날은 유속이 빠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그래도 알탕의 유혹은 뿌리칠 수가 없다.
물에 몸을 담그면 산행 내내 부르튼 발이 기뻐서 환호를 지른다. 근육마다 쌓인 피로가 빠른 유속에 실려 사라지는 느낌도 좋다. 물론 대한민국 모든 계곡에서 알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립공원 구역은 원천적으로 계곡 입수가 금지돼 있다. 상수원보호구역에선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
여름철 국립공원 구역에서 입수가 허용되는 곳이 있는데, 국립공원공단 홈페이지 공원별 알림을 참고하면 된다. 대체로 8월 말까지 허용하는데 지리산국립공원의 경우 내원사골, 대성, 유평, 백무, 중산리 계곡에 출입이 가능하다. 허용 범위는 손발 담그기와 세안 정도다. 목욕은 안 된다.
2023-08-1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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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선자령 고원 광활한 풀밭에 마음을 누이다
백두대간 선자령 구간은 광활한 초지가 일품이다. 이국적인 풍경에 더해 줄지어 들어선 풍력발전기는 별세계에 온 듯했다. 지형적 특성상 안개가 많아 동해에서 생성된 안개가 수시로 선자령을 넘어오는 탓에 몇 미터 앞에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 '절체의 풍경'이 연출되는 신비로운 곳. 장맛비를 뚫고 백두대간 선자령에 다녀왔다.
백두대간을 온전히 잇기 위해서는 선자령 지나 묘봉에서 오대산 노인봉까지 걸어야 하지만, 이 지역은 비법정탐방로로 산행을 할 수 없는 곳이다. 그래도 대간을 잇겠다는 사람들은 국립공원관리공단과의 눈치싸움을 통해 '대간을 진행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돌고 있다. 최근에 이곳을 다녀온 한 산꾼은 비법정탐방로 진입을 감시하기 위해 세운 카메라 탑이 누군가에 의해 쓰러진 것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쓰러진 카메라에 대해 안타까움, 혹은 고소함을 느끼는 것은 독자들의 자유라 의견을 구하거나 달지 않겠다. 다만, 이 비법정탐방로 대부분의 구간이 군부대 혹은 사설 목장으로 운영되고 있는 마당에, 또 대부분의 지역이 풍력단지로 개발된 상황에 유독 산꾼들의 접근만 막겠다는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산림청의 처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만하다. 만인의 입은 쇠도 녹이고, 만인의 발은 없던 길도 만들기에 그렇다.
백두대간 선자령 구간은 보통 대관령에서 시작하여 새봉(1071m)~선자령(1157m)~곤신봉(1127m)~동해전망대(1142m)~매봉(1173m)~소황병산(1328m)~노인봉(1338m)~진고개휴게소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25.7km 구간이다. 산꾼들 걸음으로는 11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다. 우선 오대산 진고개휴게소에서 노인봉까지는 탐방이 허용돼 있다. 오르막길 3.8km 구간이지만, 늘 오르막만 있지는 않다. 사실 선자령 구간 일대가 1000m 이상의 고원지대라 높낮이가 그렇게 심하지 않은 것이다.
매봉~노인봉 구간의 출입통제가 합리적으로 개선되기를 소망한다. 소황병산에서 매봉까지의 지역은 명확한 동고서저 지역이라 대간은 서쪽은 완만한 구릉이다. 천혜의 목장지여서 일찌감치 삼양목장이 자리잡았다.
대관령 삼양목장 광활한 초지
초원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풍경이다. 초지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 매해 퇴비도 투여하는 모양이다. 풀밭에서 밥을 먹는데 도시락 아래에서 어둠을 느낀 산지렁이 한 마리가 어느새 흙을 뚫고 올라왔던 모양. 짐을 꾸리느라 도시락을 들었는데 생생한 산지렁이가 꿈틀거려 살짝 놀랬다. 특별히 소나 양의 사료로 쓰기 위해 초지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삼양목장은 1972년부터 초지를 개간했는데 무려 1983만 4710㎡(약 600만 평)의 광활한 면적이라고 한다.
삼양목장은 소를 기르는 것만 아니라 목장을 테마로 관광사업도 하고 있었다. 특히 유기 목초가 한창 자라는 6월에는 '풀파도 축제'를 연다고 한다. 답사를 갔던 시기는 7월 초순이었는데, 여전히 많은 구간에서 풀파도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일부 구간은 사료로 쓰기 위해 목초를 베서 곤포 사일리지(일명 목초 마시멜로)를 만들고 있었다. 벤 풀을 지게차 같은 기계가 둥그렇게 적당한 크기로 말아놓으면 곤포 기계가 다가가 로봇 팔로 척척 감싸는 작업이 신기했다. 그 많은 '목초 마시멜로'를 쉴 새 없이 만드는 풍경 또한 이색적이었다. 선자령 구간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선물이다.
매봉 아래로 광활한 초지와 풍력단지가 펼쳐진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에 모두 닫힌 마음을 풀어헤친다. 윤기 나는 풀잎 파도를 바라보며 천천히 구절양장처럼 휘어진 백두대간 길을 걷는다. 이 구간은 대체로 임도로 불러야 할 길이 대부분이다. 목초지라서 그늘도 많지 않다. 그러나 이날은 남쪽에서는 폭우가 쏟아진 날. 강원도는 비는 오지 않았다. 동해의 시원한 바람이 수증기를 듬뿍 머금고 날아와 순간순간 에어컨 바람을 바로 쐬는 느낌이다.
설악산 대청봉도 보이는 곳
동해전망대에 도달했다. 삼양목장 동해전망대는 해발이 1142m로 웬만한 산 저리 가라는 높이다. 안내문을 보니 날씨가 좋으면 설악산 대청봉과 오대산 국립공원이 한눈에 보인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이날은 막 짙은 안개가 수시로 동해에서 몰려와 흩어지는 중이라 시계가 좋지 않다. 다만, 서쪽 목장 초지는 넉넉하게 잘 보인다. 안개가 비경은 시시때때로 연출하는데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서 있기조차 힘들다고 한다. 삼양목장이 큼직하게 새겨진 포토존이 있다.
익숙한 이름 '바람의언덕'도 있다. 대관령목장에서 출발한 셔틀버스가 막 도착하고 있다. 일행 중에 초반에 무리해 근육통이 생긴 분이 있었다. 오르막길에 유독 힘들어했는데, 누군가 버스 타기를 권했지만, 백두대간 종주를 마쳐야 한다는 신념이 더 강했다. "괜찮습니다. 걸어가렵니다." 산행 때마다 다양한 음식을 챙겨오는 분이다.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와서는 주변에 하염없이 나누는 것을 봤다. 이날도 집에서 출발할 때 짐 무게가 20kg이 넘었다고 했다. 딱 1인분의 무게만 지고 온 것이 살짝 부끄러웠다.
셔틀버스는 꽤 많은 사람을 태우고 올라왔다. 대관령 삼양목장 투어를 하면 이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약 20분 간격으로 배차하는 모양이다. 바람의 언덕으로 향한다. 풍력발전기 설치 지역이라 발아래 고압 전선이 묻혀 있다는 안내판이 자주 보인다. 아마도 거대한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기 위해 임도를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데 임도 주변이 온통 파헤쳐져 있다. 백두대간은 보존지역이고, 특별히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풍력단지 조성을 위해 길을 만들었다면, 주변 정리도 좀 했어야 하지 않을까. 비탈면에 속살이 드러난 대간의 현재 모습이 처참하다. 뿌리를 드러낸 나무와 풀은 비탈면에서 겨우 생명을 지탱하고 있다. 인간이 다니는 작은 걸음으로 인해 발생할 훼손과는 차원이 다르다.
백두대간 훼손의 주범은
언젠가 도로에서 과적하지 말자는 안내문을 본 적이 있다. 다시 관련 문구를 찾아 보니 '축 하중 10t인 화물차 한 대는 승용차 7만 대, 15t인 화물차는 무려 39만 대의 승용차가 지나간 것과 같은 도로 파손을 유발한다'고 적혀 있다. 누가 백두대간 파괴의 주범인가. 사람인가 인위적인 개발인가? 속 시원하게 대답할 기관이 있어야 한다.
셔틀버스가 서는 곳에 고맙게도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공간이 있다. 배낭에 지고 온 약간의 쓰레기를 분류해 버린다. 삼양목장 관광패스를 구입하고 들어온 이는 아니지만, 고마울 따름이다. 바람의언덕으로 올라선다. '삼양목장 목책로'라는 안내판이 있다. 해발 1150m 표시를 커다란 바위에 새겨 놓았다. 곤포 사일리지가 줄지어 잇는 초지 주변을 지난다. 풀밭, 풍력발전기, 하늘, 바람, 구름이 이 풍경의 주제다. 물론 대간꾼들도 점점이 박혀 그 길을 걷는다.
곤신봉(1131m)에 도착한다. "여태껏 오른 봉우리 중에 제일 쉽네." 누군가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길을 따라가다 보니 봉우리가 보였다. 곤신봉은 옛 강릉부사가 집무하던 동헌에서 서쪽(곤신)에 있어 이름이 붙었다. 이 산 줄기에 명당이 많았는데 워낙 바람에 세서 묏자리를 곤신봉을 향해서는 쓰지 않는다고 한다. 산림청에서 만든 안내판에는 '이곳은 삼양목장 목초지와 풍력발전단지, 고랭지채소밭이 조성돼 있는데 백두대간의 대표적인 훼손 유형이다'고 쓰여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산림청의 대책이 뭔지? '이곳은 백두대간 보호지역'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7월에도 여전한 야생화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뛰어온다. 물 조끼를 제대로 갖춘 것이 산악마라톤 동호인인 모양이다. 매봉까지 뛰어갈 태세인데 색다른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보기 좋다. 한껏 파헤쳐진 임도가 밋밋하여 눈을 돌리니 메뚜기 한 마리가 나뭇잎에 앉아 있다. 큰까치수염이 한창 피어나기 시작하고, 초롱꽃도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달맞이꽃은 길섶에 피어 투명한 샛노란 색 꽃잎을 보여준다.
멀리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선자령 입구 안내판이 있다. 대관령으로 곧장 내려가는 길은 5.7km로 '순한 등산로'라고 적혀 있다. '순한' 등산로를 버리고 '독한' 등산로 선자령을 향해 오른다.
선자령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선자령 표지석은 사람 키의 서너 배가 될 정도로 컸다. '백두대간선자령'이라는 글귀가 위에서 아래로 선명하다. 선자령에서 남은 간식을 먹는다.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하니 다소 긴장이 풀린다. 그늘을 찾다가 그냥 뙤약볕 아래서 쉬기로 한다.
산꿩의다리가 활짝 피었다. 하얀 털복숭이 같은 꽃잎이 앙증맞다. 선자령에서 대관령까지 가는 길은 행복, 평화, 희망을 선물하는 목장코스다. 대관령숲길 여러 길 가운데 하나다. 경치가 좋아서인지 대관령숲길, 백두대간, 바우길1구간, 목장코스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산길이다.
작은 별 모양의 꽃잎을 가진 노란 기린초가 또 반긴다. 화려하지만 넘치지 않는 천궁의 하얀 꽃 무더기도 눈을 즐겁게 한다. 꿀풀, 참취꽃, 싸리꽃, 동자꽃, 여로꽃, 노루오줌꽃이 한창인 7월의 백두대간, 황홀하다.
몽환적인 풍경에 빠져 길을 잃다
새봉에 도착했다. 새봉에는 산불감시 카메라와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올랐으나 산 아래는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새봉에서 잠시 숨을 돌린 뒤 2.5km 남은 대관령을 향한다. 오늘 걷고 있는 길이 목장코스인데, 안내판에는 '대한민국 계절의 첫 변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라는 수식어가 있다. 풍력발전기는 모두 53기라고 하는데 안내판이 세워진 후에 얼마나 더 세워졌을지는 알 수 없다. 봄과 여름의 푸른 초지 녹색바다, 가을의 황금 갈대바다, 겨울의 눈길 백색바다를 만끽할 수 있고, 덤으로 동해 푸른 바다까지 볼 수 있단다.
울창한 조림지로 접어든다. 줄지은 나무 사이로 스며든 안개가 몽환적이다. "참 몽환적이다. 멋지다." 여기 저기서 감탄사가 나온다. 카메라로 풍경을 눌러대기 바쁘다. 욕심만큼 잘 찍지는 못했다. 앞에 가던 사람을 놓쳐 버렸다. 뒤에 오는 사람에게 안개 속의 한 사람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정표는 여러 갈래. 국사봉으로 가는 이정표는 어두운 숲속으로 나 있다. 대관령 숲길 안내센터로 가는 길은 넓은 임도. 익숙한 임도를 선택한다. 따라오는 사람이 없다.
스마트폰을 켜서 길을 찾는다. 이 길도 맞고 아까 그 길도 맞다. 통신중계소가 나온다. 중계소 담장 철망에 전국의 산꾼들이 매달아 놓은 갖가지 표지가 달려 있다. 백패커 한 명이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온다. 아마도 휴일을 맞아 백패킹 성지 선자령에서 오는 사람일 것이다. 선자령 곳곳에 야영 취사 금지란 팻말이 붙어 있던데 어떻게 가능한지는 알 수 없다.
안개 자욱한 포장 길을 타박타박 걸어 내려간다. 이따금 차량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목적지가 멀지 않았다. 대관령특수조림지 입간판이 있다. 등산로 입구까지는 800m다. 길을 찾았다. 안개 속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있어 가까이 다가가니 일행이다. 대관령국사성황당입구 표지석에서 백두대간 선자령 구간 산행을 마무리 한다.
길을 건너 대관령숲길 안내센터가 있는 휴게소에 도착했다. 남자 화장실 세면대의 물은 예전과 달리 이제는 졸졸 나오고 있었다. 다들 그 작은 물줄기로도 땀을 충분히 씻어냈다. 먼저 도착한 일행이 건넨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산행의 속 피로도 잠재운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
2023-07-13 [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