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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가 시원 얼큰한 이곳 ‘찜’!…동래구 내성아구찜
3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아귀찜 식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싱싱한 아귀 맛이 보통 수준을 넘는다는 평가도 함께였다. 무더위에 떨어진 입맛을 되살리기 위해 오랜만에 매운 음식을 먹으러 달려갔다. 부산 동래구 내성중학교 바로 옆 골목에 있는 ‘내성아구찜’이다.
32년 전 가게 문을 연 내성아구찜은 2대째 영업을 하는 식당이다. 현재 사장은 창업자의 아들인 전지훈 씨. 이곳은 원래 아귀찜을 포함해 정식 종류 등을 팔다 14년 전부터 아귀찜 전문 식당으로 전업했다. 처음에는 전남 목포 출신인 전 사장의 어머니 김영심 씨가 가게를 꾸려갔지만, 아귀찜 식당으로 바뀔 때 전 사장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합류했다.
여수에서 공수해 오는 큰 아귀로 요리
해물아귀찜 맵지 않고 적당히 얼큰
깊은 바다 맛 담긴 아귀탕 제법 칼칼
해물아귀찜과 아귀탕을 주문했다. 밑반찬이 먼저 나왔다. 호박 무침, 배추겉절이, 콩, 코다리찜, 샐러드, 멸치마늘종 볶음 등으로 간단했다. 눈에 띄는 그릇이 반찬 사이에 보였다. 미역국이었다. 작은 그릇에 담아 먹어 보았다. 국물이 진하고 고소했다. 미역국만 팔아도 장사가 꽤 잘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역국은 황태를 1시간 고아 만든 육수로 만든다. 여기에 쌀뜨물을 첨가해 미역을 두 시간 끓인다고 한다.
내성아구찜은 아귀를 전남 여수에서 받아온다. 마리당 무게로는 2kg, 크기로는 45~50cm 정도 되는 제법 큰 아귀를 공급받는다. 클수록 고기 맛이 좋다. 매년 12월~다음 해 1월 겨울철에 잡은 아귀 맛이 가장 좋다고 한다. 바다에서 잡아 올린 뒤 배에서 바로 얼린 선동 아귀를 대량으로 구매해 감천 냉동창고로 보내 보관한다. 내성아구찜에서는 매일 냉동창고에서 아귀를 가져와 해동해서 사용한다. 바닷물에 아귀를 담가 3분의 1 정도를 녹인 다음 잘라 쓴다.
전 사장은 “아귀는 당일 잡아 냉장해서 바로 써야 가장 맛있다. 냉동하면 고기가 흐물흐물해진다. 선동해서 냉동창고에 보관해도 생아귀와 거의 비슷한 맛을 낸다. 3~4월에 잡은 아귀는 크지만, 살이 없어 맛이 없다”고 말했다.
해물아귀찜이 먼저 나왔다. 고기는 아주 신선하고 부드러웠다. 콩나물은 많지 않고, 대부분 아귀와 해물이었다. 양념은 맵지 않고 적당히 얼큰해 먹기 편했다. 양념은 아귀를 삶은 물에 표고버섯가루, 보리새우 가루, 대파, 다시마, 디포리 등을 넣어 끓인 육수를 사용해 만든다. 양념에 가장 중요한 고춧가루는 국산이다. 해물은 황게, 그린홍합, 새우, 주꾸미를 넣는다.
아귀탕은 땡초를 많이 넣어 제법 칼칼했다. 아귀에 미나리, 팽이버섯, 무, 땡초를 넣는다고 했다. 국물에는 깊은 바다 맛이 담겨 있었다. 육수는 아귀를 삶은 물에 야채만 넣어 끓였다고 한다.
전 사장은 “어머니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은 뒤 육수 레시피를 조금 바꿨다. 처음에는 단골 손님들로부터 ‘맛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조금씩 더 보완한 덕분에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은 레시피를 완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내성아구찜/부산 동래구 여고북로 222. 도시철도 4호선 동래역 8번 출구 또는 1호선 동래역 1번 출구로 나와 내성중학교 옆. 051-505-8579. 010-9254-4999. 아귀찜 3만~5만 원, 해물아귀찜·아귀탕 4만 5000~5만 5000원, 아귀탕 정식 1만 5000원.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2020-06-17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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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이 쥐어 주는 싱싱한 바다…해운대구 꾼쿡스시
푸른 바다가 눈부시다. 수평선 위로 갈매기 한 마리가 느긋하게 날아다닌다. 멀리 보이는 오륙도는 잔잔한 파도와 나긋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선착장에서는 작은 어선 여러 척이 심심한 듯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미포의 초여름 풍경은 한가하면서 시원하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산책 삼아 미포선착장 일대를 둘러보다 해운대세무서 건물 3층에 있는 특이한 초밥 가게를 발견했다. 식당 벽에는 재미있는 글이 붙어 있다. ‘나는 꾼이다. 나는 요리사다.’ 주인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느껴지는 글이다. 이곳은 부산에서 삼 형제 요리사로 알려진 김상렬 사장이 운영하는 ‘꾼쿡스시’다.
하루 숙성한 진한 초밥 양념 향긋
중간 두께로 길게 썰어 올린 회 쫄깃
광어 뼈 푹 고아 끓인 미역국도 별미
경남 사천 출신인 김 사장은 대학교에 다니며 취업을 꿈꾸다 요리로 인생 경로를 바꿨다. 지금은 없어진 경주호텔학교에 다시 입학해 요리를 배웠다. 이후 서면 부산롯데호텔, 중앙동 서라벌호텔에서 근무했고, 부산에 처음 들어온 대형매장인 까르푸 남부지역 음식개발 담당자로 10년 넘게 일했다.
꾼쿡스시에서 가장 잘 팔린다는 점심 B세트와 특초밥을 주문했다. 점심B세트는 초밥과 회, 튀김, 우동으로 이뤄진 메뉴다. 특초밥은 초밥을 종류별로 12점 담아 주는 메뉴다.
점심 B세트의 회는 연어 뱃살, 광어 날개살, 밀치, 참치로 구성돼 있다. 초밥은 광어, 연어, 참치, 도미 뱃살 양념, 밀치, 생새우 등 여섯 점이다. 튀김은 새우, 고구마 등이다. 초밥에 계란이나 유부는 넣지 않는다. ‘진짜 초밥’을 원하는 손님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김 사장은 잘 알기 때문이다.
초밥 양념은 가게마다 다르다. 양념하지 않고 회 맛을 진하게 느끼게 만드는 식당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도 있다. 꾼쿡스시는 양념을 꽤 진하게 하는 편이다. 하루 정도 숙성시킨 초물 양념에 설탕, 소금, 다시마를 넣어 만드는 양념이다. 회에는 전혀 양념이 없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진한 맛을 느끼지 못한다.
초밥에 사용하는 회 두께는 중간 정도다. 김 사장은 “두꺼운 걸 싫어하는 손님도 있다. 회를 중간 두께로 길게 써는 게 먹기에도 좋고 보기에도 좋다”고 말했다.
회는 매일 활어로 받아온다. 수족관에 넣어두었다가 매일 아침에 잡아 4시간 정도 숙성시킨 뒤 당일에 초밥용으로 사용한다. 김 사장은 “경험에 따르면 4시간 정도 숙성시킨 회가 가장 먹기 편하다. 무르지도 않고 질기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특초밥에 한치 같은 게 보였다. 종업원이 미리 “코코넛”이라고 일러주었다. 맛을 보았다. 식감이 독특했다. 서걱하고 씹히는 게 생선회 식감과 달랐고, 신선하고 상큼한 맛이 다른 초밥과 또 달랐다. 도미 뱃살 양념도 한 점 먹었다. 졸깃하고 향긋한 양념 맛이 초여름 피로를 씻어주는 듯했다.
늘 좋아하는 광어 회를 한 점 집어 초장에 찍어 먹었다. 초장은 달짝지근한 게 회 맛을 높이기에 딱 좋았다. 초장에는 참기름, 식초, 깨소금을 넣고, 정종으로 농도를 조절한다. 우동 국물은 고소하고 적당히 짭짤한 게 딱 먹기 좋았다. 우동만 별도 메뉴로 팔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물은 간장, 청주에 가스오부시를 넣고 끓인 뒤 냉장고에 하루 정도 넣어 두었다가 판매하는 날 다시 끓인다.
저녁에는 별미를 맛볼 수 있다. 오전에 횟감으로 잡은 광어 뼈를 푹 고아 만든 미역국이다. 고소하고 광어 느낌이 깊게 담긴 국이다. 많은 손님이 좋아하는 서비스 메뉴다.
▲꾼쿡스시/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 62번길 38 미포씨랜드 3층. 051-731-0564. 점심 세트 1만~2만 2000원, 모둠초밥 1만 4000원, 특초밥 1만 7000~2만 4000원, 회 정식 2만 5000원, 정식 코스 2만 6000~4만 원.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2020-06-1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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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불 향 가득, 메로구이에 반하다… 연제구 ‘심해’
부산시청 근처에 재미있는 이자카야 가게가 있다. “이자카야에서 이런 것도 파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독특한 곳이다. 게다가 음식 맛이 좋으니 더 이색적이라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올해로 영업 14년째를 맞은 ‘심해’가 바로 그곳이다.
‘심해’ 김병철(44) 사장은 대학교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지만 어머니 권유로 요식업에 뛰어들었다. 토목 관련 회사에 취업하면 전국을 돌아다녀야 해 가족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는 20년 전이던 스물네 살 때부터 음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부산 시청 근처 위치한 이자카야
뿔소라버터구이·꿀오코노미야키 등
14년째 6가지 시그니처 메뉴 인기
김 사장은 학원에서 공부하다 일본 도쿄로 2년 반 동안 요리 유학을 떠났다. 초밥, 복요리, 소바 등을 파는 도쿄의 여러 식당에서 일을 배웠다. 주방장들은 음식 만드는 법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친절히 가르쳐준 것은 아니지만 옆에서 보고 배우라며 요리 순서를 다 보여주었다. 재료를 구매하고 손질하는 방법도 다 일러주었다. 김 사장은 “일본 유학은 요리 인생에서 전환점이었다”고 말했다.
귀국한 김 사장은 서면에서 10년 정도 이자카야를 운영하다 시청 근처로 옮겨 4년째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원래는 ‘시모노세키’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심해’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서면에서 장사할 때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자주 들렀다. 그래서 그의 가게 벽면에는 유니폼, 배트, 글러브 등이 걸려 있어 야구장 분위기가 진하게 난다.
‘심해’는 이른바 ‘시그니처 메뉴’ 6가지를 14년째 유지하고 있다. 메로턱살숯불구이, 뿔소라버터구이, 꿀수제오코노미야키, 꽃새우 코스, 랍스타 코스, 알·곤·우럭매운탕이다.
메로턱살숯불구이는 메로 즉 비막치어의 턱살(가마살)을 숯불에 구운 음식이다. 생선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식감을 내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 아무런 양념을 하지 않고 숯불에 그대로 굽는데, 느끼하지 않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비린내도 나지 않아 생선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좋아할 만한 음식이다.
뿔소라버터구이는 뿔소라에 버터, 간장, 소금, 후추 등을 발라 구워낸다. 김 사장은 “소라는 약간 딱딱하지만, 버터를 바르면 부드러워진다”고 설명했다. 뿔소라버터구이는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워 먹기 편했다. 버터 향은 그다지 강하지 않다.
꿀수제오코노미야키는 일본에서 배운 오코노미야키에 꿀을 넣어 만든다. 소스로 꿀을 내놓는 게 독특하다. 피자집 고객들이 꿀을 많이 찍어 먹는 데서 착안했다. 처음에는 원하는 손님에게 맛보기로만 내놓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대접하는 소스로 정착시켰다.
오코노미야키는 마 가루와 밀가루를 기본으로 하고 꽃새우 살, 홍합, 오징어 살, 돼지고기, 모차렐라 치즈, 달걀을 넣어 만든다. 위에는 가다랑어포를 뿌린다. 두께는 2~3cm 정도로 제법 두껍다. 오코노미야키만 먹으면 약간 짭짤한 맛이 난다. 그런데 꿀을 바르자 맛이 확 달라진다. 꿀을 찍어 먹는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알·곤·우럭 매운탕은 비가 내리는 날에 잘 팔린다. 서면에서 장사할 때에는 점심시간에도 팔았지만 너무 힘들어 포기한 메뉴다. 알, 곤은 대구에서 나오는 것들을 쓴다. 여기에 산초, 방아를 넣고, 양념으로 고춧가루와 땡초를 추가한다. 매운탕은 국물 맛이 진하다. 우럭 맛도 강하게 느껴진다. 얼큰하지만 맵지는 않다. 매운탕을 계속 끓이며 먹으니 더 맛있다. 김 사장은 “평범한 매운탕인데도 손님들이 좋아해 고맙다”며 환하게 웃었다.
꽃새우코스에서는 생꽃새우 껍질을 까서 내놓는다. 껍질과 알은 튀겨서 나중에 올린다. 여기에 식빵 튀김, 유자 사케, 계절 야채, 톳 나물로 이뤄진 기본 찬이 나온다. 유자 사케는 음식을 먹기 전에 입을 헹궈내라는 뜻에서 내놓는 것이다.
김 사장은 “손님이 무조건 많이 온다고 좋은 게 아니다. 느긋하게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손님만 찾아오는 게 가장 좋다. 그렇게 하면 손님들에게 자신 있게 음식을 낼 수 있고, 손님은 100% 만족한다. 그것이 올바른 음식점의 자세라고 본다”고 말했다.
▶심해/부산시 연제구 시청로 32번길 23-1. 051-808-8088. 메로턱살숯불구이 2만 5000원, 알·곤·우럭매운탕 2만 원, 뿔소라버터구이 2만 원, 꿀수제오코노미야키 1만 5000원, 꽃새우 코스·랍스타 코스 12만 9000원.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2020-04-2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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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구 ‘뒷고기회관’… 맛·가격 ‘엄지척’ 이 가게 ‘찐이야’
부산 서면 쥬디스태화 뒷골목에 고깃집이 하나 있다. 중년 이상보다는 20~30대 젊은 층이 좋아하는 식당이다. 맛은 수준급인데 가격은 싸기 때문이다. 이렇게 팔아 가게를 꾸릴 수 있을까 할 정도다. 20대 사장 두 명이 동업으로 운영하는 ‘뒷고기회관’이다.
식당을 꾸려가는 박용태(28), 김범준(29) 씨는 친구 사이다. 중학교 때부터 같은 학원에 다니면서 친해졌다. 요리는 김 씨가 먼저 시작했다. 부모가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주방 일을 도와준 게 계기였다. 그는 스무 살 때부터 양식, 일식 등 식당에서 시간제로 일하다 프랜차이즈 식당 등에서 주방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박 씨는 고깃집을 하던 부모 영향으로 음식점에 관심이 많았다. 스물두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부모에게서 고기 고르는 법, 상 차리는 법을 배운 영향이 컸다.
서면 쥬디스태화 뒷골목 고깃집
뒷고기·껍데기·삼겹살 등 구성
5인분 세트 메뉴 1만 9900원
치즈 흘러내리는 마그마 볶음밥
베트남 고추 사용한 라면도 별미
두 사람은 같은 동네에 살다 보니 자주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2년 전 동업하자는 데 뜻을 모아 서면에 식당을 차리게 됐다. 김 씨와 박 씨는 서면을 주로 찾는 젊은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뒷고기를 선택했다.
‘뒷고기회관’의 장점은 무엇보다 싸다는 것이다. 숙성뒷고기 2인분, 등심껍데기 2인분, 숙성삼겹살 1인분으로 이뤄진 회관한판 메뉴가 겨우 1만 9900원이다. 1인분 가격만 보면 숙성뒷고기는 3500원, 등심껍데기는 5000원, 숙성삼겹살은 5500원이다. 어지간한 돼지고기 식당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뒷고기회관’은 고기를 경기도 화성에서 받아온다. 뒷고기는 항정살, 전지(앞다릿살), 목살로 구성된다. 처음에는 볼살을 넣었지만, 여름에 냄새가 심하게 나는 경우가 있어 제외했다. 뒷고기는 온도 0~2도 사이의 숙성고에 넣어 이틀 정도 숙성시킨다. 이때 소금, 후추 등을 기본으로 하는 양념을 뿌린다. 양념은 두 사람이 직접 개발했다. 삼겹살은 양념하지 않고 숙성고에 넣어 숙성시킨다. 김 씨는 “뒷고기를 숙성시키면 고소하고 식감이 쫄깃해진다”고 설명했다.
등심껍데기는 돼지 한 마리를 잡으면 겨우 2kg 정도 나온다. 다른 부위 껍데기는 억세고 질기지만 등심 껍데기는 쫄깃하고 부드러운 게 장점이다.
회관한판이 불에 올랐다. 충분히 잘 익힌 다음 맛을 보았다. 숙성삼겹살은 부드럽고 고소하다. 이번에는 숙성뒷고기 차례다. 목살 부위도 꽤 고소하다. 전지를 먹어봤다. 기름기가 삼겹살보다는 적고 목살보다는 많아서 먹기에 딱 적당하다. 삼겹살과 목살보다 전지가 더 맛있다는 생각이 든다. 숙성한 덕에 질기지 않고, 삼겹살이나 목살보다 더 부드럽고 달다.
‘뒷고기회관’을 찾는 주요 고객층이 젊은 사람들이다 보니 식사류도 그에 걸맞게 이뤄져 있다. 마그마볶음밥으로 불리는 회관볶음밥과 회관라면이 가장 인기가 많다.
회관볶음밥은 김치를 다져서 기름에 볶은 뒤 불향을 입히고 고기를 넣어 다시 볶은 김치볶음밥이다. 여기에 계란을 두르고 치즈를 올렸다. 치즈가 볶음밥 열기에 흘러내리는 게 용암 같다고 해서 마그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볶음밥에 치즈, 계란을 섞어 먹어야 제맛이 난다. 뜻밖에 기름기가 적고 고소한 게 별미다.
회관라면은 시중에 파는 라면에 두 사장이 직접 만든 특제양념을 넣어 만든다. 양념은 고추장과 베트남 고춧가루를 넣기 때문에 제법 맵다. 여기에 마늘과 참깨도 추가한다. 국물을 먹어 보니 실제 참깨 맛이 느껴진다. 얼굴이 확 달아오를 정도의 매운맛은 아니다. 다만 제법 시원한 게 입맛을 끌어당긴다.
두 사장은 “아버지, 어머니는 처음에는 반대했다. 공부해서 대학교에 가라고 했다. 지금은 알아서 하라며 응원해 준다”면서 “족발 같은 다른 메뉴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이를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뒷고기회관/부산 부산진구 서전로 10번길 38. 070-7776-8646. 회관한판 1만 9900원, 숙성뒷고기(1인분 110g) 3500원, 등심껍데기(1인분 130g) 5000원, 숙성삼겹살(1인분 130g) 5500원, 회관볶음밥 4000원, 회관라면 3000원.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2020-04-2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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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고 행복해지려면? 디저트 카페 가면 되지!
“우울하세요? 그럼 케이크를 드세요!”
서양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기분이 처질 때 달콤한 걸 먹으면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것 같다. 힘이 없을 때 “당 떨어진 것 같다”며 달콤한 사탕이나 과자를 먹는 건 흔한 일상의 모습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며 모임을 하지 않은지 한 달이 넘었다. 집에만 있다가 보니 답답하고 우울하다는 하소연이 많다. 이럴 때 달콤한 조각 케이크 1점이, 작은 쿠키 1쪽이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디저트 카페들에서 우울증을 날려버릴 먹을거리를 찾았다. 퇴근길, 당신 손에 안겨진 ‘달콤한 하나’가 가족 모두에게 큰 즐거움이 줄 수 있다.
●아델라7 : 아델라 여신의 선물, 부산에 나누다!
그리스 신화 속 7가지 행복한 먹거리와의 만남
코로나 충격에도 마스크 쓴 손님 끊이지 않는 곳
해운대 신시가지, 서면, 영화의전당에 이어 최근 문을 연 대연동 지점까지 어느새 부산서 4호점까지 생긴 ‘아델라7’. 부산의 새로운 디저트 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아델라7의 지난 몇 년은 시민들에겐 유쾌한 만남이었다.
그리스신화 속 왕족의 딸 아델라가 달콤한 음식들을 대접하며 백성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에서 아델라라는 이름이 왔고, 거기에 숫자 7이 붙었다.
“아델라 신이 백성들에게 선물했던 것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봤죠. 그걸 7가지 아이템으로 현실 속에 재현했습니다. 커피, 애프터눈 티, 초콜릿, 브런치, 빵, 쿠키, 케이크랍니다.”
아델라7의 서홍원 대표가 설명하는 아델라7의 행복한 먹거리이다. 서 대표는 사실 부산 제과·제빵업계에선 소문난 유명 인사다. 90년 초반 미쉘베이커리를 시작했고 이후 조선호텔 제과장, 부산 여러 대학의 외래교수와 겸임교수를 오래 지냈고 연산국제제과제빵학원도 20년 이상 운영해오고 있다. 제과협회 부산지회 이사, 식문화 제과협회 부산지회장, 사단법인 한국아티산기능인협회 회장 등 제과·제빵 관련 협회 일도 도맡아 한다. 거기에 크고 작은 재능 기부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며 나눔을 잊지 않는다.
이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서 대표의 중심은 언제나 그렇듯 빵과 케이크이다. 서 대표를 만난 곳은 최근 문을 연 황령산 터널 위 대연동 매장이다. 제대로 된 디저트 카페를 선보이기 위해 아예 건물을 새로 지었다. 도심과 좀 떨어진 이곳을 선택했을 때 주변에선 “왜 하필 여기?”라며 의아해했다. 그러나 제대로 하면 어디든 상관없다는 서 대표의 믿음은 통했고, 코로나19 여파에도 대연동 아델라7은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마스크를 하고 와서 빠르게 구입해서 나간다는 점만 달라졌을 뿐이다.
아델라7의 인기 품목은 신선한 과일과 야채, 빵이 함께하는 모닝 샌드위치와 브런치 세트, 오래 숙성시키는 자연발효빵이다. 예쁜 케이크와 쿠키에 반해 들어왔지만, 투박하지만 깊은 맛이 있는 자연발효빵에 자꾸만 손이 가게 된다.
아델라7의 디저트 파티 세트도 인기가 많다. 소모임이나 직장 단위로 주문하면 브런치 세트, 애프터눈 세트, 디저트 세트를 직접 배달받을 수도 있다. ▶아델라7 대연점=부산 남구 황령대로 319번 나길 30. 051-710-2349.
●스미다 :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다!
질리지 않고 자꾸만 생각나는 맛
‘다시 봄, 토마토’ 봄나물처럼 상큼하다
원종국, 김인애 부부가 운영하는 망미동 디저트 카페 ‘스미다’는 시작한 지 1년 10개월 만에 참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매주 산지를 직접 방문해 농부에게서 가장 신선한 제철 재료를 가져와 바로바로 케이크와 빵, 쿠키를 만들고 있다.
“저희는 재료 본연의 맛을 가장 풍부하게 낼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해요. 그렇다 보니 우리 집 먹거리는 맛이 강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딸기 생크림 케이크’와 ‘딸기롤 케이크’도 주인공은 딸기니까 크림이나 빵도 딸기의 맛을 살려주기 위한 부재료로 사용하죠.”
스미다의 디저트는 단맛이 많이 없다. 첫맛이 강렬한 다른 집 디저트보다 단맛은 약하지만, 신기하게 질리지 않고 자꾸만 생각나는 맛이다. 카페 이름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이 집 쿠키와 케이크가 스며들어 생활의 일부가 되는 것 같다.
이런 이유인지 카페 스미다를 좋아하는 열정적인 팬들이 많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안전을 고려해 카페 영업을 하지 않지만, 스미다의 단골 팬들은 여전히 매장을 찾아 그날 저녁의 행복한 디저트를 구입한다.
업계 동료였던 부부는 결혼 후 경기도 구리에서 남편의 작은 집을 개조해 디저트 가게를 처음 열었다. 집 주소인 ‘수택동28013’을 가게 이름으로 사용했고, 작은 가게는 부부의 정성과 맛이 통해 지역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수도권에서 잘나가던 부부가 부산으로 오게 된 건 현재 스미다가 위치한 건물 주인의 러브콜 때문이다. “우리 건물에 정말 맛있는 빵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이 부부를 스카우트해 온 것.
“‘수택동28013’을 그리워하는 고객들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1년에 3~4번 정도는 주문을 받아 차에 가득 케이크와 쿠키, 빵을 싣고 고객을 만나러 갑니다. 갈 때마다 감동받고 내려온답니다.”
요즘 스미다의 인기 품목은 ‘다시 봄, 토마토’와 ‘사르르 딸기’이다. 부산 강서구 대저 ‘짭짤이 토마토’로 만든 ‘다시 봄, 토마토’는 부드러운 젤리가 마치 입맛을 돋우는 봄나물처럼 상큼하게 다가온다. ‘스미다’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디저트이다. ‘사르르 딸기’는 부드러운 빵과 가벼운 생크림, 딸기가 듬뿍 들어가 조화로운 맛이 일품이다. ▶디저트 카페 스미다=부산 수영구 과정로 41번길 20. 051-752-8283.
●보느파티쓰리 : 프랑스 호텔의 디저트가 왔어요!
프랑스에서 14년 동안 쌓은 탄탄한 실력
“카늘레·마들렌·마블 케이크는 꼭 드셔야죠”
프랑스어로 ‘행복’을 뜻하는 가게, ‘보느파티쓰리’는 교대 앞에서 어느새 3년을 보낸 디저트 전문카페이다. 프랑스 유학 중이던 언니에게 놀러 갔다가 프랑스 제과에 빠져 한국의 모든 걸 포기하고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던 김지연 셰프파티시에. 프랑스에서 제과 학교를 마치고 탄탄한 실력 덕분에 14년이나 프랑스 현지 제과 분야에서 일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계속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부산의 부모님이 자꾸만 그립다고 하셔서 결국 제가 선택했어요. 고향인 부산에 제대로 된 프랑스호텔식 디저트를 맛보여주고 싶더라고요. 제가 만든 디저트가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 줄 거라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김 파티시에의 자신감을 통했다. 가게를 열며 홍보도 안 했지만, 이 집의 맛에 반한 고객들이 스스로 SNS에 보느파티쓰리를 소개했고 덕분에 3년간 부침 없이 가게를 운영할 수 있었다.
이 집의 대표 메뉴를 소개해달라는 말에 모든 것이 대표품목이라 김 파티시에는 특정한 제품을 선택할 수가 없단다. 대신 고객들이 이 집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고 추천한 메뉴들이 있다. 카늘레와 마들렌, 마블 케이크이다.
종 모양의 귀여운 디저트, 카늘레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프랑스 과자다. 한입 물었을 때 바사삭하는 소리와 질감이 느껴지며 기분이 좋다. 향긋한 레몬 맛과 달콤한 설탕 맛이 매력적인 마들렌, 화려한 무늬와 진한 맛이 느껴지는 마블 케이크는 디저트가 주는 행복이 이런 건가 제대로 알 수 있다.
혼자서 모든 디저트를 만드는 김 파티시에는 매일 오전 6시 30분이면 작업을 시작한다. 음식을 만드는 이의 몸이 고될수록 고객의 입은 행복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디저트 진열장에 얼굴을 대고 열심히 제품을 고르는 고객들의 표정이 고된 일을 계속하게 하는 김 파티시에의 보람이란다. ▶보느파티쓰리=부산 연제구 교대로 7. 051-502-2451.
글·사진=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2020-04-0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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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의 맛’ 싼 가격에 즐기세요
여행 중 또 다른 재미는 바로 시장 방문이다. 실안낙조 풍경을 즐기러 사천을 찾았다면 삼천포항 일대에 있는 삼천포중앙시장과 삼천포용궁수산시장을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다. 실안낙조 인근 삼천포대교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다.
삼천포중앙시장은 100여 년 전 ‘갈대샘’이라는 곳에 빨래하러 모인 주민들이 농산물과 수산물을 맞바꾸던 장소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히 시장이 생겼고, 삼천포 지역 대표 시장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수산물과 건어물 도매상점들이 밀집해 있으며 각종 음식점도 많아 삼천포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삼천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싱싱한 해산물이다. 삼천포용궁수산시장에 가면 해산물을 비교적 싼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삼천포용궁수산시장은 1965년부터 인근 해역과 연안 도서시장에서 잡은 생선을 매매하던 시장이었다. 2013년 현대화 사업을 진행해 지금은 부산 광안리에 많은 ‘회 타운’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게 됐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2020-03-1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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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고개와 길] 673. 우암 장고개
그동안 게재해온 ‘작가와 함께하는 산과 길’은 ‘작가와 함께하는 고개와 길’로 이어갑니다. 고개는 지역의 원형입니다. 평지가 귀하던 시절엔 다들 고개를 넘어 다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지역이 원형을 상실했거나 상실하고 있습니다. 부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광역 대도시라서 상실의 속도는 더 빨랐습니다. 부산이 원형을 더 상실하기 전에 우리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넘고 어머니의 어머니가 넘던 가파른 고갯길, 부산의 고개를 조명합니다. ‘부산의 길’이 더욱 다양해지기를 바랍니다.
고개는 가파르다. 넘으려면 진이 다 빠진다. 가팔라도 고개를 넘었던 건 길이 그거뿐이거나 지름길이었기 때문이고 고개를 넘을 만한 가치가 고개 너머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고개를 넘으면 학교가 있었고 친정이 있었고 시장이 있었다. 고개를 넘으며 누구는 여기보다 나은 저기를 소망했고 누구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소망했다.
우암동과 문현동 잇는 좁은 오솔길
부산장 가려면 마지막으로 맞닥뜨려
지칠 대로 지친 우리 아버지·어머니들
샘물로 목 축이고 허리춤 추스르며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넘나들던 길
고개 넘어서 마주할 확 트인 풍광은
오르느라 고단했던 몸을 잊게 했으리…
30년 전 도로 나면서 원형 사라졌지만
이름과 돌담 등 당시 흔적 일부 남아
장고개는 시장 고개다. 시장 가려고 넘던 고개가 장고개다. 그러므로 전국 곳곳에 있었다. 부산 곳곳에도 있었다. 해운대 장고개, 기장 장고개, 강서 장고개 등등이었다. 남구에는 장고개가 두 군데였다. 용당 장고개와 우암 장고개였다. 용당 장고개는 용당에서 시작해 감만동, 우암 장고개로 이어지던 산길이었다. 일부가 1983년 부산 개방대 부지로 편입되면서 고갯길은 점차 흐릿해졌다. 개방대는 1996년 부산 수산대와 통합해 부경대가 됐다. 개방대 자리엔 현재 부경대 용당캠퍼스가 들어섰다.
‘이 고갯길은 우암동, 감만동, 용호동 사람들이 부산장에 장 보러 갈 때 넘던 고개였다.’ 우암 장고개는 지금도 남아 있다. 우암동과 문현동을 잇는다. 고개 넘어서 가려고 했던 시장은 어딜까. 고개 꼭대기 고갯마루에 세운 안내판이 궁금증을 풀어준다. 부산장이었다. 부산장은 규모가 대단했다. 자성대 범일동에서 좌천동 일신여학교 코앞까지 장이 섰다. 장고개를 넘으면 문현동 동천이 나왔고 동천 건너편이 장터였다. 안내판은 높다란 상경전원맨션 입구에 있어 찾기 쉽다.
“두어 명 지나는 좁은 오솔길이었지. 길 한쪽은 초가집 예닐곱 채가 있었고 다른 한쪽엔 돌담이 있었고.” 고갯마루엔 안내판 말고도 눈여겨볼 게 있다. 안내판 맞은편 돌담이다. 장고개에 도로가 난 때는 30여 년 전. 도로가 나면서 돌담은 죄다 허물어졌지만 고갯마루에 좀 남아 있다는 귀 번쩍 틔는 얘기를 들려준 이는 일흔다섯 최 선생이었다. 함경도 흥남 피난민 최 선생은 이름 밝히기를 한사코 꺼렸지만, ‘60년은 더’ 우암동에 살았고 허구한 날 다녀서 장고개라면 모르는 게 없다.
최 선생을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우암동에서 장고개를 오르다가 ‘수출 소 검역소 옛터’란 네모반듯한 표지석에 걸음을 멈추었고, 옛터 자리 들어선 ‘우암동어르신행복일터 공동작업장’에 무턱대고 들어가 장고개가 어디냐고 여쭈었고, 그렇게 해서 말문을 텄다. 장고개 오솔길은 도로가 나면서 원형을 잃었다. 초가집 끼고 졸졸 흐르던 개울은 덮였고 돌담마저 허물어져서 남은 담벼락은 달랑 삼사십 미터. 그래도 그때 그 돌담 그대로여서 오며 가며 옛 기억을 반추한다. 장고개로, 장고개흑염소, 장고개보리밥. 오솔길은 마을버스가 다닐 정도로 훤해졌다. 퍼질러 앉아 땀을 식혔을 고갯마루엔 슈퍼며 식당이며 점포가 널렸다. 여기가 구불구불 고갯길이었던가 싶게 정경은 바뀌었어도 장고개는 도로명으로, 점포 상호로 새겨져서 그 시절을 증언한다. 근동의 지인이 이리로 모여들어 안부 묻고 소식 전하던 그 시절, 우암 장고개는 교류의 고개였고 교감의 고개였다.
“한 20분 걸었지.” 이북 실향민 최 선생이 오솔길 장고개를 넘어 문현동 큰길에 닿던 시간은 20분 남짓. 고개 초입 내호냉면 아낙은 ‘5분이면 간다’고 큰소리 탕탕 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암동에서 출발한 덕분이다. 용당이나 안내판에 쓰인 대로 용호동 사람에겐 굽이굽이 고갯길 넘고서 마지막 맞닥뜨리는 오르막이 우암 장고개였다. 진은 빠졌어도 이 고개 하나만 넘으면 장터였기에 고갯길 어딘가 있었다는 샘물로 목을 축이며, 느슨해진 허리춤을 추스르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누군들 그러지 않을까. 지칠 대로 지쳐도 나아가야 할 길이 있고 지칠 대로 지쳐도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굽이굽이 고갯길 넘고서 마지막 한 고개 우암 장고개는 지친 이를 불끈대게 하는 장딴지 알통이었고 장딴지 희망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가파른 길의 끝자락에 섰을 우리의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 확 트인 풍광은 얼마나 시원했을 것이며 민물과 짠물 어우러진 동천 바람은 또 얼마나 시원했을 것인가.
우암 장고개는 조선시대 지도에 또렷하게 나온다. 해동지도와 대동여지도, 지승 같은 18세기 지도다. 지도에는 길이 붉은 실선으로 표시돼 있다. 동래에서 부산진으로 가는 길은 둘뿐. 하나는 온천천 세병교를 지나 양정을 거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온천천 이섭교를 지나 배산, 수영, 그리고 우암과 용당을 아우르는 우룡산에 난 고갯길, 지금의 우암 장고개를 넘는 길이다.
지도는 모두 18세기 지도. 지금이 21세기니 300년 전 이미 우룡산 고갯길은 있었다. 지도가 그려지기 훨씬 이전에도 길은 나 있었을 것이다. 부산진에 장터가 생기면서 장고개란 이름을 얻었고 고갯길 구불구불 넘어서 여기보다 나은 저기, 오늘보다 나은 내일로 나아갔다. 그 오랜 세월, 대를 이어 밟고 다니느라 장고개 고갯길은 지금도 딴딴하다. 걸음걸음 장딴지에 힘줄이 불끈불끈 선다.
가는 길. 시내버스 23, 26, 68, 134, 168, 138-1번을 타고 우암2동 남부중앙새마을금고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우편취급국 옆 오르막길이 장고개 시작이다. 반대편인 도시철도 2호선 지게골역쯤에서 가도 되지만 장을 보러 넘던 고개인 만큼 우암동 쪽에서 걸어야 실감이 난다. 대연동 못골시장과 도시철도 범일역을 오가는 남구 3번 마을버스는 장고개를 경유한다.
동길산 시인 dgs1116@hanmail.net
동길산 시인은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와 대학을 모두 부산에서 나왔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꽃이 지면 꽃만 슬프랴〉 등 시집 여섯 권과 〈길에게 묻다〉 등 산문집 다섯 권, 그리고 한국 신발 100년사 〈고무신에서 나이키까지〉와 경남 고성시장 스토리텔링 북 〈고성시장, 시장사람들〉을 냈다. 부산시 ‘길 위원’을 지냈다.
〈부산장 역사〉 범일·좌천동 일대에 선 부산 최대 규모 오일장
‘골목골목 부산장 길 못 찾아 못 보고.’ 부산시장 장타령의 한 구절이다. 하단장은 추워서 못 보고 명지장은 포구가 없어 못 보고 구포장은 허리가 아파서 못 보고 부산장(釜山場)은 길을 못 찾아 못 본다고 타령한다. 부산장이 그만큼 넓었다는 이야기다. 범일동과 좌천동 일대에 서던 오일장이 부산장이었다. 4일, 9일 섰다. 동구청 홈페이지에 게재된 ‘1907년경 부산장’ 모습(사진)은 당시 장터 풍경이 어땠는지 보여준다.
부창(釜倉). 18세기 조선시대 지도에 나오는 지명이다. 부창은 나라가 관리하던 곡식 창고였다. 왜관 일본인에게 제공하는 공작미(公作米)를 주로 보관했다. 자연스럽게 부창 주위로 상인이 모여들었고 장터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지도에는 부창과 부산진성이 나란히 있다. 옛 시장은 열에 아홉 관공서를 끼고 섰다. 유동인구가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도난과 분쟁, 싸움 같은 불상사 대처에 수월했다. 동래시장은 동래부 동헌을 꼈고 부산장은 수군 부대인 부산진성을 꼈다.
부산이 개항하면서 부산장은 확 바뀌었다. 곡물과 수공업품 장터에서 분(粉)·거울·가위 같은 신상 각축장으로 변신했다. 채소·과일·어물 가게도 끼어들었다. 중국 비단이 들어오면서 오늘날 혼수 전문시장의 싹이 텄다. 지척에 들어선 당대 조선 최대의 공장 조선방직은 결혼 적령기 여공이 넘쳐났다. 혼수 시장으로 승승장구한 비결이리라.
일제강점기엔 일본인 거주지역 부평시장이 잘 나가면서 주춤했으나 고개를 넘고 넘어 찾아가는 조선의 시장, 부산의 시장은 부산장이었다.
동길산 시인은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와 대학을 모두 부산에서 나왔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꽃이 지면 꽃만 슬프랴〉 등 시집 여섯 권과 〈길에게 묻다〉 등 산문집 다섯 권, 그리고 한국 신발 100년사 〈고무신에서 나이키까지〉와 경남 고성시장 스토리텔링 북 〈고성시장, 시장사람들〉을 냈다. 부산시 ‘길 위원’을 지냈다.
2020-02-1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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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구 안락동 순이네곱창' 부드럽고 고소한 곱창이 곱다
대학에서 14년째 강의하는 곱창집 여사장이 있다. 이론과 실기를 겸비했고, 현실의 아픔도 겪어본 숨은 실력자다. 부산 동래구 안락동 서원시장에 있는 ‘순이네곱창’의 곽정순(57) 대표가 바로 그 사람이다.
곽 대표는 대학교 강의를 하다 식당을 차렸다. 대개 음식점을 경영하다 강단에 서는 것과는 정반대다. 곽 대표는 부산여대 호텔외식조리학과를 40대 중반에 졸업했다. 2014년에는 동아대 식품영양학과에서 ‘민들레를 첨가한 절편의 항산화 활성 및 품질 특성’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식과 중식 대학 강의를 맡은 지는 올해로 벌써 14년째다.
김해 주촌 도축장서 곱창 공수해 사용
솔잎으로 누린내 잡은 ‘솔잎곱창구이’
구수하고 진한 국물 ‘한우곱창전골’
치즈에 곱창 찍어 먹는 방식도 인기
곽 씨는 처음에는 수영구 광안리에서 콩나물국밥과 삼겹살을 파는 가게를 했다. 남편 한상열(60) 씨가 “조리를 전공했으니 창업해 보라”고 권해 가게를 열게 됐다. 장사는 꽤 잘 됐지만, 건물주가 집세를 대폭 올리는 바람에 접어야 했다.
곽 대표는 대학에서 강의를 오래 했지만 실제로 장사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이론과 현실은 달랐다. 그는 “콩나물집을 하면서 시행착오가 많았다. 식당 음식은 맛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단순히 요리의 기본이나 음식 만드는 요령이었다”고 말했다.
곽 대표는 장소를 옮겨 동래구 안락동 서원시장에서 곱창 식당을 열었다. 그것이 지금의 ‘순이네곱창’이다. 곱창집 개업에 앞서 부산 시내 여러 맛집을 다니며 벤치마킹했다. 문현동 곱창골목에도 여러 번 갔다.
곱창은 경남 김해 주촌면 도축장의 거래 업체에서 받아오는 국산을 쓴다. 국산이 수입보다 배나 비싸지만 맛이 훨씬 빼어나다. 다른 양념이나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아도 훨씬 부드럽고 맛있다. 연육 작업을 하지 않아도 고소한 맛이 강하다. 곱창 재료 준비는 한 씨가 담당한다. 손질은 아무것도 안 넣고 한다. 밀가루만 넣고 밟으면 된다.
솔잎양념곱창구이를 주문한다. 곱창을 삶을 때 솔잎을 첨가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솔잎이 곱창 누린내를 잡아주기 때문이다. 솔잎을 많이 넣지는 않는다. 대량으로 투입해도 향이 안 난다. 대신 색만 까매진다.
양념장 주 재료는 국산 고추장이다. 여기에 단맛을 내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약재 삶은 물을 넣는다. 또 베트남산 땡초가루와 고소한 맛을 더해주는 땅콩가루도 첨가한다.
먼저 시래깃국이 나온다. 약간 매콤하다. 곱창을 먹기 전에 입맛을 올리기 좋을 듯하다. 밑반찬으로 나온 알타리 무도 달콤한 게 맛있다.
곱창을 찍어 먹을 소스는 세 가지다. 된장, 고추장, 크림 소스다. 된장 소스는 된장, 배, 땅콩가루, 참기름 등을 섞어 만든다. 된장 냄새는 강하지 않고 땅콩 맛이 느껴진다. 고추장 소스는 곱창구이에 사용하는 양념장인데 감초 향이 좋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크림소스는 마요네즈, 배, 땅콩가루, 레몬 등을 넣어 제조한다.
곽 대표 설명대로 곱창은 생각 이상으로 부드럽다. 물론 그렇다고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는 것은 아니다. 쫄깃하지만 질기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곽 대표 특유의 솜씨로 만든 양념장이 향긋한 감칠맛을 더해준다.
벽에 붙은 메뉴판에 ‘퐁듀(치즈)’라는 게 보인다. 하나를 주문했다. 모차렐라 치즈와 일반 치즈를 섞어 만든 것이다. 곱창을 여기에 찍어 먹으면 매콤한 맛이 줄어든다. 이색적인 맛이어서 젊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이번에는 한우곱창전골이 나온다. 전골 국물은 한우 사골을 고아 만든다. 전골 양념장은 곱창구이 양념장과는 달리 고춧가루로 만든다. 매운 고추와 안 매운 고추를 3 대 2 비율로 섞는다. 이렇게 하면 담백하고 부드러우면서 뒷맛이 지저분한 느낌 없이 깔끔하다.
한우곱창을 볶을 때 누린내를 잡기 위해 파인애플, 마늘, 참기름을 넣고 볶는다. 여기에 양념장을 넣고 다시 볶다가 육수 두 국자를 붓고 야채를 넣으면 된다.
한우 사골로 만든 덕인지 한우곱창전골 국물은 짙고 구수하다. 많이 맵지는 않고 약간 얼큰한 느낌을 준다. 한우곱창도 질기지 않고 적당히 쫄깃해 먹기에 좋다.
곽 대표는 2012년 6월에는 조리 기능장이 됐다. 여성이 첫 응시에서 합격한 경우는 처음이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사)부산조리사협회가 선정하는 ‘명인’ 자리에 올랐다. 지금은 조리기능사 문제 검토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곽 대표는 “장갑을 끼면 퉁퉁 부어오른 손이 안 들어갈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내가 음식을 사 먹으면 이 음식을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으로 요리했다. 앞으로도 이런 생각을 계속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순이네곱창/부산시 동래구 충렬대로 359번길24(안락동 서원시장). 051-621-8899. 솔잎곱창양념·소금구이 8000원, 한우곱창전골 2만 5000~3만 5000원.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2020-02-1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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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이야기] 커피의 위기
커피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음료수다. 지구촌에서 팔리는 커피는 하루 20억 잔 정도다. 현대인들에게 커피 없는 삶은 생각하기조차 힘들다.
전 세계에서 1억 2000만 명이 커피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연간 커피 생산량은 1000만 t 안팎이다. 기호식품 중에서는 무역량도 세계 최대 규모다.
역사상 가장 먼저 커피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이슬람의 ‘수피’였다. 9~10세기 성문화된 율법에만 매달리는 이슬람 문화에 반발해 영적 수행과 신비주의적 의식을 강조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가난한 삶을 자청해 소박한 음식을 먹고 거친 양모로 만든 소박한 옷을 입었다.
특히 에티오피아와 함께 커피의 원산지로 알려진 예멘의 수피들이 커피를 가장 먼저 즐겨 마신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종교적 의식을 치를 때에는 반드시 커피를 마셨다. 의식은 밤새도록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커피 카페인이 이들의 피로를 더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지구촌에서 연간 1인당 커피 소비량이 가장 많은 지역은 북유럽이다. 2016년 기준으로 핀란드(12㎏), 노르웨이(9.9㎏), 아이슬란드(9㎏)가 1~3위를 차지했다. 상위 10개 나라 중에서 10위 캐나다(6.5㎏)를 빼고 모두 유럽 국가들이다. 미국은 4.2㎏으로 25위에 그쳤다.
아시아에서는 1992~2017년 사이 25년 동안 일본, 한국을 중심으로 커피 수요가 연평균 6% 성장했다. 이는 전 세계 평균 성장률의 3배에 이르는 높은 수치다.
오랫동안 차를 즐기던 중국에서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커피를 선호하는 문화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중국에는 1999년 베이징에 스타벅스 1호점이 문을 열었는데, 지난해에는 15시간에 한 개 꼴로 스타벅스 지점이 생겼다. 여전히 중국인 대다수는 인스턴트커피를 선호하지만, 젊은이들은 원두커피를 더 즐긴다. 중국에서 커피는 고급 와인과 같은 수준의 평가를 받고 있다.
커피는 키우기 쉽지 않은 작물이다. 가장 대중적인 아라비카는 기후에 매우 민감하다. 섭씨 15~24도의 기후에서 잘 자라며 풍부한 강우량을 선호한다. 아라비카 재배에 가장 적합한 곳은 해발 1000m인 남미 브라질의 미나스 게라이스 지역이다.
전 세계적으로 커피 소비량은 점점 늘어나지만 기후 변화가 미래 커피 생산에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라비카는 기온과 강수량에 큰 영향을 받는데, 기후 변화로 기온이 높아지는 바람에 품질이 좋은 아라비카 생산에 큰 어려움이 생겨나고 있다.
기후 변화 탓에 커피 생산 지역도 점점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커피 생산지에서는 더 이상 커피를 재배할 수 없는 상황이 확산되고 있다. 주요 커피 생산국인 남미 콜롬비아에 있는 ‘국제열대농업센터’의 시뮬레이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커피 생산지역 가운데 절반 이상은 2050년 무렵에는 커피 생산에 적합하지 않은 땅으로 바뀔 것이라고 한다. 남미만 놓고 보면 80% 이상, 브라질의 경우 25% 이상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아라비카나 로부스타 같은 전통적 품종 대신 다른 품종이 개발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전통적인 커피 생산국에서는 바뀐 기후에 맞는 새로운 커피 품종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다만 커피 품종 개량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게 문제다.
일부에서는 기후 변화가 더 심각해지면 커피가 언젠가는 고갈돼 버릴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커피 가격은 갈수록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커피 한 잔을 사 마시는 가격이 지금보다 5배, 10배 이상 오른다는 것이다. 커피가 아무나 사 마시는 대중적 음료수가 아니라 부자만 맛보는 최고급 음료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2020-02-1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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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만 쓰고 살코기는 버리던 곰장어, 부산 대표 보양식 되다
부산시는 매년 소상공인 업종 중에서 부산형 유망업종을 발굴해 특화 마케팅을 하고 있다. 2017년 수제 맥주, 2018년에는 패들보드에 이어 지난해에는 곰장어 요리를 선정해 ‘살아있네, 부산 꼼장어’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개발하면서 홍보전을 벌였다.
부산시가 곰장어를 고른 것은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부산소비자연맹은 거주자 503명과 다른 지역 거주자 509명 등 1012명을 대상으로 ‘부산 상품 소비자 인식도 조사’를 실시했다. 다른 지역 거주자 투표 결과, 곰장어는 돼지국밥(14.1%), 어묵(13.9%), 구포국수(11.8%)에 이어 4위에 올랐다.
곰장어는 먹장어라고도 불린다. 꼼장어는 곰장어의 사투리다. 다른 일부 지역에서는 푸장어라고 부른다. 곰장어는 깊고 어두운 바다에서 살기 때문에 눈이 어둡다. 그래서 먹장어라고 불린다. 영어로는 ‘해그피시(hagfish)’다. ‘해그(hag)’는 ‘늙어서 쭈글쭈글해진 할머니’를 뜻한다.
곰장어는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남북극 지방을 뺀 세계 모든 바다에서 살면서 바다 밑바닥의 작은 벌레나 죽은 물고기를 뜯어먹는다. 그래서 ‘바다의 청소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껍질을 벗겨도 10시간 이상 꿈틀거린다. 수컷 1마리가 암놈 100마리 정도를 거느리고 산다.
일부 국가에서는 곰장어를 먹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곰장어 등 장어류는 가죽 제품 원료로 사용했다. 3대째 동래원조산곰장어 식당을 운영하는 최효자 씨는 “시댁이 장어잡이 배를 갖고 있었다. 당시 장어 껍질은 ㎏당 2000원, 살코기는 500원 미만이었다. 그래서 장어를 잡으면 껍질을 벗겨 지갑이나 구두용 가죽으로 팔았지만, 살코기는 너무 싸서 채산성이 없어서 버렸다”고 설명했다.
버리던 곰장어 고기를 불에 구워 판 것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대 자갈치시장에서였다. 전국에서 몰린 피난민들을 대상으로 버리던 곰장어를 연탄불에 구워 손님들에게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 덕분에 ‘부산 꼼장어’는 전국적으로 고유명사가 됐다. 자갈치시장에서 빨간 양념과 함께 연탄불에 익어 가는 모습이 부산 시민들은 물론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덕분이다.
곰장어는 주로 양념구이, 소금구이, 볶음, 매운탕으로 먹는다. 기장에서는 짚불 곰장어를 팔기도 한다. 곰장어를 포함한 장어류는 고단백질 식품이면서 뮤코프로테인이라는 당단백질이 풍부하다. 이 성분들은 위장 점막을 보호하고 소화 흡수를 촉진한다. 여름철 식욕 부진 해소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여름철 보양식으로 인정받았다. 게다가 비타민 A와 칼슘, 철, 인 함유량도 많다.
곰장어는 고급스럽거나 아주 비싼 어종은 아니다. 곰장어 요리는 화려하지 않고 평범한 서민 음식이다.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가장 어둡고 힘든 곳에서 살아가는 곰장어가 ‘풀뿌리’라는 민초들의 음식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한동안 만나지 못한 고향 친구들과 오랜만에 자갈치시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운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볶은 곰장어와 짜릿한 소주 냄새가 벌써 코끝을 찌른다.
남태우 선임기자
2020-01-2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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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지’ 맞은 날…양정시장 ‘와요스지’
음식 재료 중에 ‘스지’라는 게 있다. 소의 힘줄과 근육 부위를 뜻하는 일본어다. 10~20년 전만 해도 스지를 재료로 만든 음식을 파는 식당이 많았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야말로 추억의 요리가 돼 버렸다. 부산 부산진구 도시철도 양정역 인근 양정시장에 스지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교 동창 사이인 35세 동갑내기 이승혁, 권도환 씨가 동업으로 운영하는 ‘와요스지’가 바로 그곳이다.
잡내 없이 진하고 고소한 곰탕
쫄깃한 씹는 맛 살아 있는 수육
스지 활용한 덮밥·볶음밥 인기
청양고추 넣은 ‘불스지’도 별미
두 사람 경력을 보면 식당 일에 최적의 조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씨는 돈가스집, 일식집, 횟집, 분식집 등 여러 식당에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주방 일에 대해서는 실력을 쌓은 사람이다. 반면 권 씨는 경남 김해 주촌의 도축 공장에서 5년 정도 근무한 적이 있다. 고기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일가견을 가진 셈.
따끈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연한 갈색을 띤 국물이 담긴 스지 곰탕이 나왔다. 먼저 국물 맛부터 보았다. 한마디로 진하고 고소하다. 고기 잡냄새도 나지 않는 깔끔한 맛이다. 국물이 식은 뒤에도 고소한 맛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보면 첨가물로 맛을 낸 것은 아니다. 곰탕 국물은 한우 뼈와 도가니로 만들었다고 한다.
스지 수육은 사태와 스지를 섞어 놓은 음식이다. 여기에 생부추를 얹었다. 수육 국물부터 떠먹어 보았다. 아주 연한 허브와 부드러운 양파 향이 느껴지는 게 기분을 좋게 한다. 고기는 전혀 질기지 않다. 스지의 특성상 입에서 살살 녹을 정도로 부드러울 수는 없지만, 전혀 텁텁하지 않고 약간 쫄깃한 정도여서 씹는 맛이 있다.
스지 수육은 무, 파 뿌리, 마늘, 양파에 표고버섯 뿌리와 월계수 잎, 오레가노, 로즈메리를 함께 넣어 압력솥에서 30~40분 정도 삶는다. 권 씨는 “가스 불로 삶으려면 4시간 정도 걸린다. 그동안 고기 육즙이 빠져나가 맛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특이하게도 이 씨와 권 씨는 스지로 덮밥과 볶음밥을 만들어 냈다. 아이디어 퓨전 음식이다. 스지장조림덮밥과 스지볶음밥이다.
장조림덮밥은 스지와 사태로 만든 장조림을 덮은 음식이다. 거기에 잘게 자른 잔파와 김을 뿌리고 계란을 얹었다. 고기 육수를 기본으로 하고 설탕, 올리고당, 표고버섯 가루와 물, 간장을 넣어 만든다. 간장은 가게에서 직접 제조한 것을 사용한다. 장조림덮밥은 짭짤하면서 파 맛도 나고, 무엇보다 고소한 게 특징이다.
스지볶음밥은 스지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거부 반응을 덜기 위해 개발했다. 스지를 잘게 갈아 밥과 함께 볶은 음식이다. 미리 알지 못한다면 스지가 들어있는지 전혀 인지할 수 없다. 다만 스지 덕에 밥이 아주 부드럽다는 느낌이 든다. 권 씨는 “먼저 파 기름으로 튀기듯이 스지를 볶는다. 여기에 밥과 버터를 넣고 다시 볶은 뒤 장조림 간장을 살짝 넣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메뉴 중에 ‘불스지’라는 게 있다. ‘불’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걸 보니 매우 매운 음식이 틀림없다. 권 씨가 웃으며 “젊은 층을 겨냥해서 매운맛을 첨가한 음식이다. 스지에 어묵, 라면, 표고버섯, 삶은 계란, 주먹밥을 넣었다”고 말했다.
불스지에 사용하는 매운 양념은 두 사람이 3개월 동안 많은 재료를 버려가면서 개발했다. 기본 재료는 베트남 고추, 청양고추, 땡초 가루다. 여기에 색을 내기 위해 잘 익은 빨간 고춧가루를 배합한다. 고기 잡냄새를 없애기 위해 간 마늘과 양파, 생강을 넣고, 매운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표고버섯 가루도 첨가한다. 마지막으로 후추, 소금, 물엿, 설탕을 뿌린다. 인공적인 매운맛을 내는 재료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원래 삼겹살 가게를 운영하려다 스지를 선택했다. 삼겹살 가게는 너무 많아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 씨는 “다른 고기를 찾다가 스지를 생각해 냈다. 스지는 건강은 물론 여성 피부에도 좋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말했다.
와요스지는 울산과 김해의 도축공장에서 스지를 받아온다. 스지라는 게 원래 많이 나는 부위가 아니라서 물량 공급에 어려움을 겪을 우려가 크다. 와요스지는 권 씨가 일하던 김해의 도축공장 경매인이 도움을 줘 스지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다고 한다.
스지, 사태 등 소고기는 모두 ‘한우 1+’ 이상만 사용한다. 그런데 고기 품질에 비해 가격은 매우 낮다. 스지 곰탕이 겨우 6000원이다. 이 씨는 “박리다매를 목표로 삼았다.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는 가게를 만들고 싶다. 맛에 비해 가격이 싸서 손님들이 격려를 많이 해 준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 씨와 권 씨는 “양정시장 주변에 자리 잡고 있어 어르신들이 많이 찾아온다. 저녁에는 젊은이들이 술을 한잔하러 온다. 앞으로 메뉴를 더 다양화할 생각이다. 처음 마음을 끝까지 유지해 손님들에게 늘 맛있는 스지 요리를 대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와요스지/부산 부산진구 거제대로 60번길 24. 051-853-1907. 스지곰탕 6000원, 스지장조림덮밥·스지볶음밥 5000원, 스지오뎅탕 1만 5000원, 스지수육·불스지 2만 원.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2020-01-22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