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산 교육 대토론회, 공교육 정상화에 방점 둬야
학생·교사·학부모가 모두 행복한 학교 현장을 만들자는 취지의 ‘교육공동체 회복 대토론회’(이하 대토론회)가 부산에서 시작됐다. 22일 부산시교육청·부산시·부산시의회 공동 주최로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개막식과 개막 토론회가 그 출발점이다. 이날 토론에서는 무너진 학교를 되살리기 위해 학생·교사·학부모 세 주체의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교권이 존중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 데 뭉쳤다. 대토론회는 향후 분야별 세부 주제에 따라 9월까지 이어진다. 부산발 ‘교육공동체 회복 프로젝트’라는 기치답게, 형식적인 행사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미래 교육의 길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학교 현장에는 학생과 교사 간 애정과 존중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근년 들어 이를 분명하게 뒷받침하는 사례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교권 추락의 현실이다. 우리나라 성인 남녀 44.5%는 ‘교권 침해 상황이 심각하다’(2021년 한국교육개발원 조사)고 보고 있다. 학생 인권 강조, 교원에 대한 불신, 학생·학부모의 인식 부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교사들 10명 중 6명은 아예 아동학대 신고 대상이 되거나 그런 동료 교사를 곁에 둔 경험이 있다고 한다. 지난해 7월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생을 버린 한 초등 교사의 죽음은 교권 붕괴의 심각성을 전국에 알린 사건이었다. 생존권까지 위협받는 교사, 벼랑 끝에 선 교권은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사회문제다. 하지만 이는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교권 추락 현상이 학생 인권의 지나친 강화 탓이라는 관점은 전적으로 수용하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 지난 시절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일방적 복종을 강요당하는 오랜 암흑의 시대를 겪었다.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가는 학생 인권에 교권 추락의 모든 책임을 돌리는 건 부당하다. 인권은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모두 소중한 것이다. 양쪽이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학부모도 적극적인 참여와 인식 전환이 필요한 건 물론이다. 학생·교사·학부모 모두가 믿고 협력해야 교육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 이번 대토론회는 전국 교육청 중 부산에서 처음으로 마련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교권’ ‘학습권’ ‘교육공동체 회복’을 주제로 향후 원도심·동부산·서부산권에서 각 세 차례씩 열리고 9월에는 종합토론회까지 예정돼 있다. 학생·교사·학부모가 모두 참여하는 집단 토론을 통해 학교 현장의 회복 방안을 찾겠다는 의지는 높이 살 만하다.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려면 겉만 번지르르한 생색내기용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 막연한 ‘사랑’이니 ‘존경’ 같은 추상적 언어로는 이 엄중한 현실을 바꿀 수 없다. 대토론회가 교육 당국과 정부를 견인해 교권 회복을 넘어 궁극적으로는 공교육 정상화의 길을 여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사설] 의사들에게 지역의료 공백·환자 고통은 남 일인가
의정 갈등이 해소될 조짐이 없다. 의사집단이 요지부동인 탓이다. 사태의 발단인 의대 증원 규모와 관련해 정부는 기존 2000명에서 최대 절반까지 줄일 수 있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은 “단 한 명도 늘릴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전공의 대거 이탈이 두 달 이상 이어지고 있는 데다 조만간 의대 교수들의 무더기 사직까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환자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형편인데도 의사집단의 전향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이익을 관철하려는 의사집단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의대 교수들이 보이는 현재 모습에서 더 깊은 탄식이 나온다. 스승으로서 전공의 복귀를 종용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사직을 강행하겠다며 정부를 으른다. 이로 인해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의료공백 사태는 점점 더 심각해져만 간다. 거기에 더해 몇몇 대학의 의대 교수들은 외래진료와 수술을 부분적으로 중단하는 방안까지 논의한다고 한다. 그와는 별도로, 의협 등은 25일 출범하는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위에도 불참 의사를 밝혔다. 지역·필수의료 지원 등 광범위한 의료개혁 방안을 다룰 기구인데도 대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모두가 환자는 안중에 두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테다. 의료공백에 따른 환자들의 고통은 이미 한계점에 다다랐다. 한시가 급한 중증 환자들의 불안감이 특히 클 수밖에 없는데, 의료인력 부족으로 예정된 치료와 수술이 돌연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경우도 실제로 잇따르고 있다. 지역별로 각 대학병원의 수술률과 병상 가동률이 예년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 헤매다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도 속출한다. 이런 형편에 의대 교수들까지 무더기로 사직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짐작조자 어렵다. 정부는 사직서 제출 규모가 작아서 현실적인 피해는 적을 것으로 전망하지만 환자들의 불안감을 덜어주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의사집단은 의대 정원과 관련해 발전적인 대안을 제시한 적이 없다. 대학별 자율 증원도 수용할 수 없다며 논의 자체를 거부한다. 의료개혁특위에도 참여할 의사가 없다. 오로지 정부를 향해 백기투항을 요구할 뿐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협상 조건으로 복지부 차관 경질 등을 운운한다. 사안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요구다. 의사집단의 이런 모습은 자신의 이익만 관철하려는 아집과 트집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나아가 국민의 열망인 의료개혁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든다. 이런 우려와 의심을 불식시키려면 의료현장을 끝까지 지키고 논의에 적극 나서는 것뿐임을 의사집단은 명심해야 한다.
[사설] 부산 원도심 소멸 막으려면 '세컨드 홈' 특례 적용해야
정부가 인구 감소 지역 활성화를 위해 발표한 ‘세컨드 홈 특례’에 인구 감소가 극심한 부산 원도심을 제외해 큰 반발을 사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방소멸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수도권 등에 1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인구 감소 지역의 공시가 4억 원 이하 주택을 구입해도 1세대 1주택자로 인정해 종합부동산세 등 세제 혜택을 받는 내용의 ‘인구 감소 지역 부활 3종 프로젝트’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생활인구와 방문인구, 정주인구를 늘려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취지다. 전국 인구 감소 지역 89곳 중 83곳이 포함됐다. 하지만 89곳에 해당되는 부산 동·서·영도구는 세컨드 홈 특례 지역에서 제외돼 잔뜩 기대했던 해당 지자체와 지역민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는 부산 원도심을 특례 지역에서 제외한 이유로 “수도권과 광역시 지역은 부동산 투기 우려를 고려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과 광역시 중에서도 인천 강화군·옹진군, 경기 연천군과 광역시인 대구 군위군은 특례 대상에 포함했다. 부산의 원도심 지자체장들로 구성된 부산 원도심 산복도로협의체는 성명을 통해 “재검토를 촉구한다”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제외 대상 지역의 근거로 제시한 부동산 투기 우려는 부산 원도심의 실정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부산 원도심 지자체장들이 한결같이 특례 지역 포함을 요구하는 이유다. 부산 원도심은 전국 최악 수준의 인구 절벽에 직면해 있고,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은 28.5% 이상으로 초고령화에 진입한 지 오래다. 부동산 실거래 건수도 부산 지역 평균의 4분의 1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산복도로 망양로 고도 제한 등 각종 규제는 물론이고, 계단이 많은 고지대 특성으로 정비 사업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은 빈집들은 치안 문제마저 야기하고 있다. 영도구의 경우 지난 10년 사이에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줄면서 전국에서도 감소율이 세 번째로 크다. 지방소멸이 가장 심각한 곳이 부산 원도심이라는 방증이다. 정부는 부산 원도심을 세컨드 홈 특례 지역에 포함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교통·의료·상하수도·공공서비스 등 인프라가 갖춰진 부산 원도심에 외지인의 워케이션(휴가지 원격 근무) 용도 주택 구입 등 거래가 활발할 경우 생활인구 유입과 경제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생활인구의 유입은 정주인구 증가로도 이어질 수가 있다. 이는 정부의 지방소멸 방지라는 당초 정책 취지와도 부합한다. 정부는 지방소멸 방지와 지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정책을 모처럼 내놓은 만큼, 실질적인 정책 효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부산 원도심의 세컨드 홈 특례 적용을 적극적으로 재검토하길 촉구한다.
[밀물썰물] 퇴계, 향산, 양산
지난 총선 때 한 후보가 자신의 저서 중 퇴계 이황의 사생활 관련 표현이 문제가 돼 곤욕을 치렀다. “감히 퇴계를 모독하느냐”며 유림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공맹에 견줘 이자(李子)로 칭송되는 성인을 폄훼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기실 퇴계가 대학자이자 민족의 사표라는 데 이론을 달 이는 별로 없다. 더구나 그는 매서운 절의(節義)를 가진 선비이기도 했다. 초야에서 정진하며 후진을 양성한 은인(隱忍)의 학자로 흔히 알지만, 이는 퇴계의 절반만 아는 것이다. 그의 본래면목이 잘 드러난 시가 ‘절죽(折竹·꺾인 대나무)’이다. ‘강항오조좌(强項誤遭挫·굳센 목덜미가 잘못 꺾어져도)/ 정심비소파(貞心非所破·곧은 마음이 깨지는 것은 아니어라)/ 늠연립불요(凜然立不撓·늠름히 서서 흔들리지 않으니)/ 유감격퇴나(猶堪激頹懦·오히려 무너지고 나약한 자를 격려한다네).’ 퇴계가 63세 때 지은 이 시에는 어떤 어려움에도 절의를 지킨다는 선비의 의연한 기상이 갈무리돼 있다. 퇴계의 절의는 대를 이어 전해졌고, 그 절정이 11세손 향산 이만도(1842~1910)다. 어려서 퇴계학을 전수받은 향산은 평소 선비로서 뜻 세움을 중히 여겼다. “뜻을 세우는 건 가슴에 대못 박는 것과 같아서 한 순간이라도 흔들려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그의 부친도 마찬가지여서, 향산이 25세에 장원급제하자 “조정이 너를 죽을 자리에 두면 반드시 죽음으로써 선비의 책임을 다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1882년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자 향산은 고향 안동으로 돌아가, 퇴계가 그랬던 것처럼, 후학 양성과 학문에 몰두했다. 이후 일제의 침략에 저항해 의병을 일으켰던 그는, 1910년 한일병탄이 발표되자 “죽음 말고 무엇이겠는가”라며 24일간의 단식 끝에 순절했다. 안타깝게도 향산의 순절은 당시는 물론 해방 이후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향산이 선비로서 보여준 삶과 죽음은 망국지경에서 지식인의 선택과 결단이 어떠해야 하는지 숙고하게 만든다. 그의 자취를 좇아볼 법도 한데, 마침 양산시립박물관에 좋은 기회가 마련됐다. 26일부터 7월 21일까지 열리는 ‘양산군수 특별전’이다. 조선시대 양산에 부임해 칭송받은 역대 군수들의 면모를 소개하는 전시인데, 대상에 향산이 포함됐다. 향산은 1876년 양산에 부임해 목민의 의무를 다했다. 전시를 찾는다면 향산의 절의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성싶다.
논설실장
강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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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4월 20일은 무슨 날이었을까요?
4월 20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장애인의 날'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유엔은 1981년에 '세계 장애인의 해'를 선포하면서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지정, 모든 국가가 기념하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같은 해에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지정했죠. 왜 4월을 '장애인의 날'로 선정했을까요? 봄이 시작되고, 4월이 1년 중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어서 장애인의 재활 의지를 부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장애인의 날을 지나면서 장애인들 곁을 묵묵히 지키는 분들이 생각납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분은 조창용 부산시장애인총연합회 회장입니다. 그는 50년간 장애인복지운동가로 활동하며 20년 가까이 총연합회 회장을 맡아 장애인 곁을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다음은 양재생 은산해운항공 회장이자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입니다. 지난 15일 부산상의 회장 취임식을 가진 그는 그 다음날인 16일 공식행사로는 처음으로 강서체육관에서 열린 장애인 한마당 축제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이날 "된다! 된다! 잘된다! 더 잘된다!"를 외치며 장애인들과 초긍정 에너지를 나눴습니다. 그러면서 강충걸 부산국제장애인협의회 회장의 숨겨진 공로와 선행까지 언급했습니다. 그가 밝힌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지난해 '2023 부산세계장애인대회'를 유치했지만 대회 경비가 문제였습니다. 이의 해결을 위해 강 회장이 나서 양 회장과 이경욱 (주)참콤 회장과 함께 1000만 원씩을 기부했습니다. 이게 단초가 돼 강의구 부산영사단 총영사단장이 2000만 원을 기부했고, 이어 최금식 부산사랑의열매 회장 등이 주도한 '나눔명문기업' 15곳에서 1억 3000만 원을 지원해 대회가 성공리에 끝날 수 있었습니다. 강 회장은 지난 40년간 장애인을 대상으로 운전면허 취득·정보화 교육, 시 낭송 아카데미와 전국 장애인 시 낭송 경연대회, 장애인 가족사랑행복나눔대회, 자기계발 '영혼이 춤추는 도서관' 운영 등을 하고 있습니다. 2022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차별과 맞서 싸우는 40대 '여전사'도 있습니다. 부산 유일의 뇌병변 장애인 복지관인 '부산뇌병변복지관' 이주은 관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뇌병변 장애인 복지관을 30년 가까이 혼자서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지난 16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동네 이웃과 장애인을 초대해 '우리마을로 온 영화관'을 열었습니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개관 20주년을 맞아 주민 등 900여 명을 초대, '동네 축제'로 만드는 등 장애인과 이웃이 함께 하는 행사를 만들어 지역 통합과 차별 해소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에게 희망을 전하는 부산 금정구 이지투게더 안미경 대표도 '작은 거인'입니다. 그는 이지특수교육연구소와 비영리단체인 이지투게더에서 '이지글리 합창단'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이탈리아 바티칸 성당에서 미사 공연 초청을 받아 발달장애인 13명을 무대에 세웠습니다. 성당 공연에 이어 로마에서도 두 차례 공연을 더 열었고, 발달장애 예술인의 그림 전시회도 가졌습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제는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 마음 문을 열고 장애인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장애인을 후원하는 이들은 '앞으로 몇 년이나 봉사를 더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가득합니다. "내가 움직일 수 있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때까지는 끝까지 봉사하겠다"는 하나같은 다짐에 또 감동합니다. 누가 말했던가요. "이 세상에는 장애인은 없다. 다만 편견만 있을 뿐이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뿐 아니라 내 가족 누구라도. 우리는 일시적 비장애인일 뿐입니다. 장애인을 우리와 다른 사람으로 보고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여건, 제도와 교육 등이 마련되길 기대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1년 365일이 장애인의 날이자 비장애인의 날이 되길, 오랜 시간 장애인과 함께 해온 모든 분들과 함께 간절히 바라봅니다.
[김필남의 영화세상] 거짓과 진실 사이
습관적으로 기사를 검색한다. 정치, 문화, 연예 가릴 것 없다. 헤드라인 기사들을 한 번씩 클릭해본다. 자극적인 기사일수록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댓글창을 열어 오가는 논쟁에 빠져든다.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가십이 현재의 무료함을 채워주니 만족스럽다. 머리로는 가짜뉴스나 댓글부대의 조작 뉴스가 아닐까 생각해보지만, 비슷한 기사들이 수없이 쏟아져나오면 언제부터인가 그걸 진실이라고 믿는다. ‘찌라시’나 ‘기레기’들이 쓴 기사를 쉽게 무시할 수 없음을 확인한다. 여론이 만들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댓글부대’의 오프닝은 한국 역사에서 촛불을 가장 먼저 든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에 의하면 PC 통신 이용자인 16세의 ‘앙마’가 PC 통신 유료화에 반대하는 집회를 제안하면서 첫 촛불집회가 시작했다고 한다. 이어 영화 속 이야기가 ‘실화’라는 자막이 뜬다. 그러하니 2017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촛불집회와 민간인 댓글부대 논란을 일으켰던 어떤 그룹까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안국진 감독의 의도가 드러나는 오프닝은 여론을 움직이는 것이 누구인지 명확히 하는 동시에 영화 속 촛불 집회의 시작이 과연 진실인지 거짓인지 호기심을 일게 만든다. 그러다 이내 그것들이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는다. 감독은 주인공의 입을 빌려 “완전한 진실은 아니지만, 완전한 거짓도 아니다”는 논리를 영화 내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프닝이 지나면 허세 가득한 기자 ‘상진’이 등장한다. 그는 대기업 ‘만전’의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를 썼다가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이다. 자신이 쓴 기사가 세상을 들썩이게 할 거라고 생각하며 야심차게 쓴 기사는 제보자의 죽음으로 조용히 묻힌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 발생한다. 대기업 비리를 폭로한 제보자의 죽음이 상진 때문이라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세상은 상진을 기레기라고 비웃고, 기사는 오보로 판명나며 정직까지 당한다. 억울한 상진 앞에 의문의 제보자 ‘찻탓캇’이 연락을 취해오면서 영화는 이제 본격적으로 흘러간다. 찻탓캇은 상진이 겪었던 일들이 ‘만전’의 여론 조작에 의해서였음을 알린다. 찻탓캇은 온라인을 조작하고 여론을 선동하는 일명 ‘팀알렙’의 멤버 중 한 명으로 돈만 주면 진실도 거짓으로, 거짓도 진실로 만들 수 있는 소위 말하는 댓글부대였다. 댓글부대란 인터넷 기사나 커뮤니티 등에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아서 사이버 여론 조작을 시도하는 집단을 뜻한다. 찻탓캇은 알렙 멤버들이 작성하는 글들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는지 낱낱이 증언한다. 처음엔 상진은 찻탓캇을 신뢰하지 않았지만 누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증언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상진은 소문으로만 무성한 댓글부대의 행적을 찾아 헤맨다. 결국 암암리에 떠돌던 이야기의 실체를 확인한 상진은 특종을 들고 신문사로 복직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일반적인 상업영화라면 갈등은 해소되고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극장을 나서야 옳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시 상진을 혼돈으로 밀어 넣고, 관객은 당혹감에 빠지는 결론을 선보인다. 즉 감독은 여론을 조작하는 댓글부대를 파헤치는 듯 보이지만, 더욱 미궁에 빠뜨린 것이다. 진실에 다가갔다 믿은 순간, 거짓에 농락당했음을 깨닫게 한다. 영화는 마치 진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어놓을 테니 판단은 관객이 내리라는 듯 말을 건다. 영화의 장르마저 다큐멘터리인지 블랙코미디인지 헷갈릴 정도이니 진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이 영화는 극장을 나서면서 ‘다시’ 시작한다. 무언가 찝찝함을 안고 핸드폰을 켜는 순간, 클릭한 기사 내용을 믿어도 될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우리를 발견한다. 바로 그 순간 영화가 현실과 만난다. 완벽한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면 의심의 눈길이라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체험하게 만든다.
[중앙로365] 즐겁고 맛있는 도시 부산
요즘 전국적으로 경기가 한산해진 느낌이 있다.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부산 관광 러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2007년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 대한민국은 의료관광이라는 융합 관광에 관심을 가졌다. 의료관광은 동남아시아 관광의 메카였던 싱가포르와 태국이 관광 목적지로서의 수명이 다해가자, 관광 재도약을 위해 내걸었던 상품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당시의 의료관광이 전문 의료관광과 뷰티관광으로 갈래가 나누어져 태국 현지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에서도 구분되어 성행하고 있다. 이때 의료관광과 함께 주요 콘텐츠였던 의료기관들에서 성행했던 것이 인증기관 평가였다. 그중에서도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국제 인증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국내 1호로 받으면서 국내 병원 간에 국제 인증 붐이 불었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의료기관 평가를 강화하여 새로운 인증 기준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인증 붐이 외식 산업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라고 하는 레스토랑 전문잡지가 선정하는 레스토랑 평가 브랜드이다. 레스토랑 평가 인증은 미쉐린 가이드의 훌륭한 브랜드 비즈니스임에는 틀림이 없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219개, 부산은 11개의 레스토랑이 선정되어 있다. 미쉐린 측은 미스터리 쇼핑을 통해 식당의 분위기나 서비스는 고려하지 않고 철저히 요리만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계약직 전문가를 고용하여 1년간 5~6차례 방문한다고는 하지만 요리를 평가 환경에 적합하도록 세팅된 곳에서 일괄적 평가를 하거나 전문가의 평가 센서가 철저히 분리 평가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지 않은 이상 객관적인 평가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의료기관 인증 붐이 일기 시작했을 때 JCI 인증을 받기 위해 국내 대형 병원들과 전문병원들은 미국 본사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국내 의료기관 인증평가 제도가 발전되면서 의료기관의 서비스와 질도 함께 향상돼 해외인증 붐은 사라졌다. 외식 산업은 어떨까? 2016년 서울, 2024년 부산에서 시작한 미쉐린 가이드가 호텔 인증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새로운 붐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힘입어 부산이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 음식관광에 관심을 가지면 어떨까. 부산의 대표 음식하면 밀면, 돼지국밥, 부산어묵 등 단품 음식이 대부분이다. 최근의 관광 트렌드는 단체 여행에서 개인 여행으로, 방문 목적지 여행에서 콘텐츠 체험 여행으로 변화했다. 새로운 체험이 필요하고, 음식은 필수 조건이다. 그런 면에서 부산 음식, B-푸드(Food) 개발에 힘쓰기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이러한 콘텐츠가 수익성을 내기 위해서는 단품이 아닌 부산만의 향기를 가지고 있는 음식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은 단지 코스 요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 문화와 교육적 인프라까지 포함한다. 외식 산업 측면에서 음식관광에 대한 산학연 및 지자체의 관심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다. 부산이 한식 명품 요리의 대표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산업·인적 발전 기반도 갖추어야 한다. 부산을 세계적인 조리학교의 메카로 만들면 어떨까. 전국에는 120여 개, 부산에는 6개의 조리 전공을 가진 특성화 고등학교가 있다. 대학 교육이 특성화 교육으로 전환되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고등학교 교육 콘텐츠도 경쟁력을 갖출 시기다. 프랑스 요리전문학원 ‘르 꼬르동 블루’는 이미 서울에서 아카데미를 하고 있으니, 부산은 미국 뉴욕의 조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와 함께 새로운 B-food 문화를 만드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부산 영산대에는 CIA 출신 셰프 교수진과 대한민국 조리 명장들이 포진하고 있다. CIA 출신 셰프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도 부산 곳곳에서 자리 잡고 있다. CIA를 부산으로 유치하고 부산이 가지고 있는 한식, 해양, 부산 음식의 특성을 가지고 새로운 부산 음식, 대한민국의 새로운 한식 산업의 기초를 마련해서 한식의 세계화를 부산에서 시작해 보자. 미쉐린 가이드 레스토랑 인증 브랜드에 못지않은 한국 외식 산업에 좀 더 특화된 브랜드 인증평가 제도를 CIA와 함께 개발하고 해외 조리학교에서 아직 과목으로 등록되지 않았던 한식 조리를 부산에서 교과목으로 개발하는 사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식 조리 프로그램이 세계적인 교과목이 되는 순간 미국 조리학교로 유학 가던 아시아의 초보 셰프들도 부산으로 향하게 되고, 세계적인 셰프를 꿈꾸는 청년들도 부산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부산을 새로운 음식관광의 메카로 떠오르게 할 수 있는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이런 준비가 체험을 목적으로 하는 해외관광객을 부산으로 유입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불완전하지만 진실한 몸
이동욱은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주재료인 폴리머클레이, 흔히 ‘스컬피’라고 말하는 재료를 이용해 정교한 인체 조각을 만든다. 대학에서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그리는 것보다 손으로 만드는 것을 더 좋아했기에 조각작품을 통해 생명을 표현하고 인간의 존재성을 강조한다. ‘Human Boss’, ‘Green Giant’, ‘Dolphin Safe’ 등 초기 작업에서는 제품이미지 속의 캐릭터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 되어가는 오브제로 묘사했다. 이 작품들은 기술적으로는 치밀하고 섬세하지만, 내용은 자기파괴적이고 자기착취적인 작업으로 사람과 상업적인 이해관계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며 자본에 대한 잔인한 낙관주의를 보여주었다. 당시 작품들은 몸에 털이 하나도 없는 기괴하면서도 주변의 상황에 연약하고 예민한 살덩어리를 그대로 노출시켜 인간보다 훨씬 더 강렬한 존재로 보였고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자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이상하고 불편한 감정을 자극했다. 부산현대미술관 소장품 〈무제〉(2016)는 초기 인체 작업에서 범위를 확장시켜 작은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공간까지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체인과 벌집, 파이프, 총을 겨누고 있는 군인 피규어 등 모든 세계는 싸구려 도금이 되어 있지만 엄청난 크기의 비계를 운반하며 노동하는 작은 인간만은 벌거벗은 살색이다. 이렇게 상세하고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놓고도 제목이 무제( 無題 ,untitled)인 것은 작가는 세계를 창조했지만 그것을 읽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작품의 의미는 관람자의 자기반영성이 동력이 되어 작동되기 때문에 각자의 시공간이 바뀌는 어느 날이 되면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 총, 칼을 들고 감시하는 군인들은 폭력적인 권력과 규율을 상징하며 파이프를 들고 나르는 저 작은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도 무너지기 쉬운 계급이면서 노동이 주는 젖과 꿀과 고통을 아는 존재들이다. 불균등한 관계 속에서 목숨을 건 절실한 일을 하는 자들의 세계. 작가는 자신은 항상 ‘흥미’, ‘취향’에서 작업을 시작한다고 말하지만, 그가 만든 세계는 우리에게 사회의 균열에 대해 무거운 고민을 하게 한다. 그러니 작가가 만든 저 익명의 불완전한 몸들은 미국의 미술사가 아멜리아 존스(Amelia Jones, 1961~)의 설명처럼 세계와 연결되는 ‘살’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김가현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시간은 거꾸로 간다] 노인의 미래를 응원한다
그동안 노인과 관련된 정책을 연구하면서 다양한 사회경제적 특성을 가진 분들을 만났다. 저소득층에서부터 고소득층까지 모든 사람들의 삶이 그러하듯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누구나 할 것 없이 저마다의 아픔과 가슴속 한구석에는 허전함을 가지고 있었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의료기술의 발달은 노년기를 더욱 길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노년기의 긴 시간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노인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살고 싶고, 예전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세상의 혜택을 누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각 개인의 바람이 모아져 그것이 하나의 큰 조직으로 만들어질 때 결국 그것은 사회적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이다. 최근 일본 영화 ‘플랜75’를 봤다. 영화 속 노인들은 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생계에 보탬이 되는 월급을 받으며,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옛날 노래를 부르면서 함께 오래 살아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사회는 그런 노인들마저 부담이 되자 75세 이상의 신청자에 한해 안락사를 유도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신청자에게 해당 기관에서 삶을 정리할 수 있도록 상담사를 지정해주고, 얼마간의 돈을 주며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준 뒤 안락사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안락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노인들이 삶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담담하게 지금껏 살아온 이야기를 상담사와 이야기를 주고 받는 대목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온 것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사회를 위해 열심히 어려운 시기를 버텨왔던 주인공들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나라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싶어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노년기에 접어든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전쟁 시기를 거치고, 경제발전 시기의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묵묵히 지탱해온 세대이며,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발전의 초석이 돼 왔던 분들임에 틀림이 없다. 노인이란 큰 인구 집단으로 봤을 때는 물론 향후 사회적인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에게 시간이 남아있다. 이들을 그저 우리 사회의 부담이 되는 존재가 아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륜과 경험을 사회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그러한 것을 통해 노인이란 인구 집단이 지금처럼 사회적 부담만 되는 존재만은 아닐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힘들었던 시기를 묵묵히 지켜온 그들의 삶의 노정에 경의를 표하며, 노인 개개인이 앞으로 더욱 활기차고 만족하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지금까지 어려운 시기를 잘 살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앞으로 그들 삶을 응원한다.
[기고] 건보공단 특사경 권한 도입 필요하다
최근 정부의 의대 증원 결정 이후 건강보험 지출 부담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의료서비스의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건강보험 지출을 관리하고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와 노인 진료비 지출 증가로 2026년부터 건강보험 재정은 적자로 전환되고, 2031년에는 적립금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돼 향후 건강보험 재정의 불확실성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분야의 건강보험 지원을 늘리고, 외국인 피부양자 자격 강화, 요양기관 본인확인 절차 강화 등 재정 누수 방지를 위한 의료개혁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외국인 건보 먹튀’ ‘의료쇼핑’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바로 ‘불법 사무장병원’ 문제이다. 사망자 주민등록번호로 불법 의료생협을 허위로 설립하거나 통원환자에게 가짜 입원확인서를 발급해 100억 원대의 보험금을 챙긴 사무장 병원 관련 뉴스에서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쓰여야 할 소중한 건강보험 재정이 불법행위를 일삼는 의료기관에 새어나가고 있는 것을 보니 매우 허탈하다. 불법개설기관인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약국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비의료인이 의사나 약사의 명의를 빌리거나 고용하여 운영하는 의료기관을 뜻한다. 사무장병원은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탓에 과잉진료, 과밀병상 등 질 낮은 의료서비스와 각종 위법행위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발생시키는 주범이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건보 재정을 해치는 불법개설기관을 근절하기 위해 공단에 특별사법경찰 권한을 부여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공단은 2014년부터 불법개설기관에 대한 행정조사 업무를 시작하였으며, 대상기관 발췌, 분석, 수사의뢰 등 사실상 전반적인 단속 업무를 수행했고 10년간 1447개소(2023년 12월 기준)의 불법개설기관을 적발했다. 하지만 현행법상으로는 공단에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불법개설이 의심되더라도 계좌 추적, 참고인 조사 등 자금흐름에 대한 추적이 불가해 혐의 입증에 한계가 있다. 해마다 불법개설기관에 대한 부당진료비 환수 결정액이 꾸준히 늘어나 무려 3조 4000여억 원에 달하지만 실제 징수액은 2300여억 원에 그쳐 징수율이 고작 6.9%에 불과하다. 공단에 수사권이 없고 조사 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악용해 환수 결정 이전에 재산을 은닉하거나 폐업 후 잠적하여 증거불충분으로 내사종결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환수결정된 대상자 중의 70%가 이미 사해행위로 환수가 불가능한 무재산자이다. 해마다 미징수 금액은 쌓이지만 적발해도 이미 지급한 의료비를 환수하지 못하여 재정 누수가 가중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공단은 전직 수사관, 변호사 등 불법개설기관 조사에 대한 오랜 경험이 있는 200여 명의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보건의료 빅 데이터를 활용한 ‘불법개설 의심기관 분석시스템(BMS)’을 구축해 수사에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고 활용하고 있다. 공단에 특사경 권한이 부여돼 직접 수사할 경우 신속한 수사 착수로 조사 기간을 3개월 이내로 단축하고 부당 청구된 요양급여비용을 신속하게 환수해 연간 약 2000억 원 규모의 추가 재정 누수 차단이 가능하다. 불법개설기관의 진입을 조기에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또 운영하고 있는 불법개설기관을 적발할 수 있는 최적화된 주체는 건강보험공단이며,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재정 누수를 차단하기 위해 공단에 특사경 권한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2020년부터 공단 특사경 권한 도입을 위한 입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 법사위에서 4년 째 계류 중이다. 얼마 남지 않은 21대 국회 임기 안에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국민들의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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