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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원시(遠視) / 오세영(1942~ )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시집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1992) 중에서
애틋함은 멀어지기에 발생하는 감정이다. 애틋함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생의 성숙을 맛보게 된다. 아련함도 마찬가지다. 시간적으로든 공간적으로든 먼 것들은 아득하고 그윽하여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그리하여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게 된다.
한때 내 것이었던 것이 내 것이 아닌 것이 되었을 때 느끼는 난감함과 당혹감은 아련함의 다른 이름이다. 늙어가는 것이 그런 경우다.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가 이를 말해주는 것일 텐데, 그것은 의욕과 과시의 삶의 방식에서 체념과 겸허의 삶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사랑의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설령 죽을 정도로 사랑하였던 사람일지라도 이제는 ‘멀리 보내고’, ‘머얼리서 바라다보’며 살아가야 함을 깨우쳐야 한다. 그것이 생의 본질임을 터득해야 한다. 성숙은 자신에게 주어진 슬픈 운명을 처연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김경복 평론가
2024-04-1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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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푸른 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2004) 중에서
사랑은 장력(張力)이다. 두 존재가 우연히 부딪쳐 서로 끌리는 마음을 갖게 되면서 사랑의 파장은 시작된다. 그런데 사랑의 존재들은 각자 ‘하나의 별’로 탄생된 것과 같아 제 안의 인연과 운명으로 인해 중력을 지닌다. 두 중력이 서로 밀고 당기게 될 때, 사랑은 필연적으로 직선이 아니라 곡선, 즉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을 밟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직진으로 가닿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두레박을 드리우’지만 중력은 그리움마저 휘게 하여 ‘수만 갈래의 길’을 퍼뜨릴 뿐이다. 사랑의 고통으로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어도 사랑의 장력으로 운명의 지침은 ‘네게로 향해’ 있다. 그 고통과 열락의 시간들은 모두 너에게 가는 길, 사랑의 인력이 이끄는 ‘에움길’이 실은 가장 빠른 ‘지름길’임을 알게 하는 단련의 순간들이다.
김경복 평론가
2024-04-0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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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벌레 먹은 나뭇잎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시집 〈시인과 갈매기〉(1999) 중에서
상처는 아름답다. 상처는 그 존재의 신산한 이력과 거기에 대응하여 애쓴 몸짓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언뜻 상처는 흉측한 무늬로 보일지 몰라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아직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생의 의지와 그것의 가치를 증명하는 표지로 부각된다.
그 상처가 자기를 위해 만든 것에 그치지 않고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으로 남게 되었다면 ‘별처럼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이때 상처는 자신의 삶을 구원하는 행위에서 세계를 구원하는 의식(儀式)으로 격상된다. 모든 존재들이 서로 상처의 관계로 이어져 구원의 인드라망을 짜고 있는 이 화려장엄의 세계! 그런 점에서 ‘상처’야말로 이 우주의 무정형과 무의미에 정형의 아름다운 질서와 존재의 가치를 부여하는 징표다.
김경복 평론가
2024-04-0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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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시집 〈우리들의 양식〉(1974) 중에서
간절히 바라는 것은 얼마나 눈물 나게 하는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에 절절함은 증폭되고 가슴은 바싹 타 버석거린다. 오랜 고통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간절한 대상이 찾아오면, 너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 없’고,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말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간절한 대상이, 아니 간절함 자체가 내 생명을 좌우하는 관건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 간절함을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오’는 형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딜지라도 마침내 오고야 말 대상이 간절함이라면 이는 운명이기에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라는 표현은 간절함의 추구를 운명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에 대한 상찬이다. 하여 ‘봄’은 고통에 빠진 민중이 간절히 바라는 구원의 상징이다. 김경복 평론가
2024-03-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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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생강나무 / 정우영(1960~ )
마흔여섯 해 걸어다닌 나보다
한곳에 서 있는 저 여린 생강나무가
훨씬 더 많은 지구의 기억을
시간의 그늘 곳곳에 켜켜이 새겨둔다.
홀연 어느 날 내 길 끊기듯
땅 위를 걸어다니는 것들 모든 자취 사라져도
생강나무는 노란 털눈 뜨고
여전히 느린 시간 걷고 있을 것이다.
지구의 여행자는 내가 아니라,
생강나무임을 아프게 깨닫는 순간에
내 그림자도 키 늘여 슬그머니
생강나무 시간 속으로 접어든다.
-시집 〈집이 떠나갔다〉(2005) 중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더 크게 움직이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고 더 크게 품을 수 있다. 나무의 운명이 그러하다. 시에서 보인 ‘한곳에 서 있는 생강나무가/ 훨씬 더 많은 지구의 기억을/ 켜켜이 새겨두’고 있는 것이 그런 경우다. ‘생강나무’는 움직이지 않고도 ‘느린 시간을 걸을’ 수 있다.
역설은 차원을 넘고자 하는 의지다. 그 점에서 시인은 랭보의 말처럼 인간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꿰뚫어보는 견자(見者)다. 진리를 추구하므로 ‘아프게 깨닫는 순간에/ 내 그림자도 키 늘여/ 생강나무 시간 속으로 접어드’는 놀라운 공감을, 다시 말해 우주적 영성을 획득할 수 있다. ‘지구의 여행자’에서 삼천대천세계의 수행자로 전화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생강나무’가 뿜고 있는 덕성이 우리로 하여금 우주적 차원의 진실로 눈을 돌리게 한다. 김경복 평론가
2024-03-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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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중심의 괴로움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 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시집 〈중심의 괴로움〉(1994) 중에서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세계 그만한 에너지가 소요된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도 생명 그만한 힘이 뒤따른다. 봄에 ‘꽃피어 퍼지려’는 ‘꽃대’의 몸짓엔 ‘치열한 중심의 힘’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죽음이었던 겨울을 밀어내고 생명인 봄을 맞이하기 위해 꽃은 사활을 건 싸움을 제 중심에서부터 벌일 수밖에 없다. 그 싸움은 ‘괴롭’게 ‘흔들리’는 모습으로 나타나 고통스럽지만, 눈물 나게 장엄한 장면이다.
탄생은 치열함이다. 온 힘을 다해야 쟁취할 수 있기에 삿된 것들은 ‘비워’야 한다. 비우는 것이 생명을 꽃피우는 장엄함으로 승화될 때, ‘피우리라’의 의지는 지상의 모든 존재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몸을 갖게 한다. 존재는 늘 흔들리고 흔들려 괴롭지만, 이를 통해 ‘중심의 힘’을 얻어 천분을 이루게 된다.
김경복 평론가
2024-03-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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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여백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시집 〈슬픔의 뿌리〉(2002) 중에서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다. 노자의 말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에도 이 말을 적용해 볼 수 있다.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란 표현은 비움이 갖는 의미를 형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허공 속의 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채움을 감싼 텅 빔의 가치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는 말은 사람살이의 핵심을 찌르는 경구다. 비어 있는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관계를 두텁게 하여 생명을 살린다. 스스로 그늘이 되고 여백이 되는 사람들이야말로 은은한 여운의 아름다움을 풍긴다. 김경복 평론가
2024-03-0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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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들리다
뒤척이는 밤, 돌아눕다가 우는 소릴 들었다
처음엔 그냥 귓밥 구르는 소리인 줄 알았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누군가 내 몸 안에서 울고 있었다
부질없는 일이야, 잘래잘래
고개 저을 때마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마르면서 젖어가는 울음소리가 명명하게 들려왔다
고추는 매운 물을 죄 빼내어도 맵듯
마른 눈물로 얼룩진 그녀도 나도 맵게 우는 밤이었다
-시집 〈가뜬한 잠〉(2007) 중에서
사랑의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다. 다 잊었다고 생각한 사람이더라도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지고, 그러다 ‘뒤척이는 밤, 돌아눕’는 귓가에 불현듯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나도 모르게 오래도록 ‘내 몸 안에서 울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된다. ‘마르면서 젖어가는 울음소리’는 홀로 쓸쓸히 낡아가는 영혼에게 사랑이 끝나지 않았음을, 끝날 수 없음을 부르짖는 증표로 나부낀다. 회한이 물결처럼 차오르는 밤!
상처는 각인이다. 홀로 내는 고추씨 같은 울음소리는 얼마나 깊은 상처의 흔적인가! 잴 수 없는 아픔의 깊이는 ‘맵게 우는’ 것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가슴의 심층에 담긴 사랑은 온몸을 울림통으로 만들어 현(絃)을 켠다. 하여 잠 못 드는 밤, 이명처럼 울리는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랑을 영혼에 새기는 소리다. 김경복 평론가
2024-02-2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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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달북
저 만월, 만개한 침묵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 먼 어머니,
아무런 내용도 적혀 있지 않지만
고금의 베스트셀러 아닐까
덩어리째 유정한 말씀이다.
만면 환하게 젖어 통하는 달,
북이어서 그 변두리가 한없이 번지는데
괴로워하라, 비수 댄 듯
암흑의 밑이 투둑, 타개져
천천히 붉게 머리 내밀 때까지
억눌러라, 오래 걸려 낳아놓은
대답이 두둥실 만월이다.
-시집 〈쉬!〉(2006) 중에서
대보름이 다가오고 있다. 중천의 달이 빛을 흐뭇하게 뿌려준다. 달빛이 따뜻한 물결로 몸을 감싸주어 ‘만면 환하게 젖어 통하는’ 어머니 얼굴 같다. 대보름날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며 한 해의 풍년을 빌던 어머니의 마음이 저와 같았을까? 달은 이제나저제나 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여신처럼 세상을 내려다본다. 아니 어머니가 하늘로 귀천한 뒤 자식들이 보고 싶어 지상을 향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죽음마저 건너뛴 영혼으로 환하게 웃는 빛 한 덩어리!
그래서 달빛은 ‘덩어리째 유정한 말씀’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절절히 퍼져 내리는 소리가 되기에 ‘달북’이다. 그리운 마음에 쳐다보면 달은 어룽어룽 형상이 흔들리는데, 그 까닭은 ‘북이어서 그 변두리가 한없이 번지는’ 파장 때문이다. 어머니의 마음을 안 자식의 마음도 떨릴 터이니, 온 우주가 때아닌 공명을 일으킨다. 하여 달은 사랑의 울림이다. 김경복 평론가
2024-02-2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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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겨울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 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 시집 〈싸락눈〉(1969) 중에서
설을 보낸다. 부모님이 그립다. 고향도 생각난다. 그러나 부모님은 다 돌아가시고, 고향도 떠난 지 오래라 낯설다. 기억 속의 초가집 처마, 외양간, 섬돌, 마당귀 감나무, 아, 흰 눈을 소복이 담고 있던 댓잎, 그 대나무 울타리 밑에서 기침하던 아버지, 부엌 문간에서 그것을 내다보던 어머니, 왜 그것들이 더 푸르게 사무칠까? 갈수록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 많아지면서 애끓는 마음에 ‘고향 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고, ‘고향 집 추녀밑 달빛’도 하염없이 쌓인다. 월백설백천지백의 환한 꿈길! 혼자 앓아누워 그리는 저 눈부신 정경!
이제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 고향은 이미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이 되었고, 추억 속에서만 ‘고향 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게 될 뿐이다. 영원한 이데아의 그림자가 된 고향, 이제 물속의 달처럼 그려볼 수는 있으나 만져 볼 수는 없게 된 것. 이것들을 느끼게 하는 ‘겨울밤’은 형벌인가, 축복인가! 김경복 평론가
2024-02-1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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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시집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 중에서
사랑의 본질은 변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승화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은 ‘날과 씨로 만나기’ 때문이다. 날줄과 씨줄로 얽혀 아름다운 ‘한 폭의 비단’을 짠다. 사랑은 두 사람이 가진 가치의 물리적 합이 아니라 화학적 반응을 통한 제3의 가치 창조다. 변증법적 승화의 형식인 것이다.
실제의 현실에서 이것은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발생한다. 여기서 ‘그리움’은 사랑의 간절한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대상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보게 되면 ‘하나의 꿈’ ‘한 폭의 비단’을 엮을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된다. 결국 간절함이 초점인데, 이는 ‘외롭고 긴 기다림 끝’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져야 하고 이를 이겨내야 한다는 의미다. 하여 사랑은 자신의 경박함과 비루함을 녹여내 이를 지고한 영성으로 변모시키는 의식이다.
김경복 평론가
2024-02-0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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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고드름 / 양광모(1963~ )
거꾸로 매달려 키우는 저것이
꿈이건 사랑이건
한 번은 땅에
닿아보겠다는 뜨거운 몸짓인데
물도 뜻을 품으면
날이 선다는 것
때로는 추락이
비상이라는 것
누군가의 땅이
누군가에게는 하늘이라는 것
겨울에 태어나야
눈부신 생명도 있다는 것
거꾸로 피어나는 저것이
겨울꽃이라는 것
-시집 〈나보다 더 푸른 나를 생각합니다〉(2021) 중에서
시의 본령은 우리의 굳어진 인식을 깨뜨리는 데에 있다. ‘때로는 추락이 비상이라는 것’의 발상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세상천지는 일면적 인식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면서 우리의 영혼은 자유롭게 비상한다.
때문에 ‘겨울에 태어나야’, 그것도 ‘거꾸로 피어나’야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다는 발언은 세계의 진실을 총체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고드름’에서 이와 같은 참신한 발견과 아름다운 의미 부여는 역설적 사유의 전형적 형식이다. 추락이 비상이나 성장일 수 있다는 인식은 현실적 삶의 고난이나 시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하늘은 큰일을 할 사람에게 시련을 내린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고드름의 정신’에 충만해 있을 것이다.
김경복 평론가
2024-01-3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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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바람 부는 날 / 김종해(1941~ )
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날마다 가고 또 갑니다. 어둠뿐인 외줄기 지하통로로 손전등을 비추며 나는 당신에게로 갑니다.
밀감보다 더 작은 불빛 하나 갖고서 당신을 향해 갑니다. 가서는 오지 않아도 좋을 일방통행의 외길, 당신을 향해서만 가고 있는 지하철을 타고 아무도 내리지 않는 숨은 역으로 작은 불빛 비추며 나는 갑니다.
가랑잎이라도 떨어져서 마음마저 더욱 여린 날,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그래서 바람이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시집 〈바람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1990) 중에서
사랑은 괴로운 일이기만 할까? 시의 화자는 ‘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욱 괴로운’ 일이라 했다가 끝내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욱 괴로운’ 일이라고 실토하고 있다. 사랑하는 일이나 사랑하지 않는 일 모두 고통스럽다 말하고 있지만, 문맥의 흐름상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 괴로운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사랑의 본질 자체를 ‘어둠뿐인 외줄기 지하통로’ 속을 나아가는 행위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알아보지 못함으로 ‘일방통행의 외길’을 걷는 것은 쓸쓸한 일이지만, 사랑으로 인해 나는 ‘밀감보다 더 작은 불빛’, 즉 존재의 각성에 해당하는 ‘의식의 불꽃’을 갖게 된다. 이 허황한 세상천지에 가슴 한 편을 달구어주는 ‘밀감빛 불꽃’은 얼마나 큰 존재의 위로이랴! 하여 사랑하는 일은 인식의 깨어남이자 존재의 도약이다. 김경복 평론가
2024-01-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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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먼 곳에서부터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내 몸이 아프다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시집 〈김수영 전집〉(2003) 중에서
아픈 것은 깨어나는 것이다. 아픈 원인을 탐구하기 시작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은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의 공간과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의 시간 속에서 하나의 방향성을 띤 행위로 나타난다. 아픔은 무료한 일상을 깨뜨리며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내가 어디에 존재해야 함을 가르쳐주는 좌표다.
아픔만큼 자신을 겸허하게 만드는 것이 있을까? 아프지 않은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의 상태에 빠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소비자본주의의 삶이 물질에 대한 중독을 통해 감각의 마비를 가져온다. 삶의 민낯인 고통을 외면케 하여 존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한다. 하여 아파야 한다. ‘다시 몸이 아픈’ 것을 통해 삶의 진정성을 찾아야 한다. 김경복 평론가
2024-01-16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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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연
끈이 있으니 연이다
묶여 있으므로 훨훨 날 수 있으며
줄도 손길도 없으면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리
눈물이 있으니 사랑이다
사랑하니까 아픈 것이며
내가 있으니 네가 있는 것이다
날아라 훨훨
외로운 들길, 너는 이 길로 나는 저 길로
멀리 날아 그리움에 지쳐
다시 한 번
돌아올 때까지
-시집 〈사랑을 쓰다〉(2007) 중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말만큼 오묘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끈이 있으니 연’이고, ‘묶여 있으므로 훨훨 날 수 있’다는 말은 사랑의 속성을 알지 못하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문구다. 사랑은 ‘아픔’이면서 기쁨이고, 구속이면서 자유다. 양극단을 아우르게 하는 사랑의 속성이야말로 존재의 비밀을 가장 잘 알게 해주는 표지다.
우리는 사랑이 깊어질수록 외로움도 깊어지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아무리 허물없는 사람일지라도 ‘너는 이 길로 나는 저 길로’ 각자 ‘외로운 들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단독자의 운명을 사랑으로, 그 사랑의 깊이로 인해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인연의 ‘끈’은 운명의 여신이 가진 얼레에 의해 느슨하게 풀렸다 감기고, 다시 풀렸다 감기면서 존재의 무한 반복을, 윤회의 그 나선형적 전진을 펼쳐 보인다. 고로 사랑은 지고한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이번 생의 영적 단련이다. 김경복 평론가
2024-01-09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