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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비트코인 1억 원 돌파의 이면
비트코인이 역사적 고점을 연일 경신하고 있다. 불과 올해 1월만 하더라도 1비트코인은 2500만 원 선이었는데, 이제 1억 원으로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하고 있다.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되면서 거대 자본을 보유한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가상자산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에 덩달아 다른 코인들도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고물가에 경제는 어렵고 시중에 현금은 없다고 하는데도 이렇게 비트코인을 상승시키는 요인은 무엇인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 세계에서 담보되는 실물 자산도 없는데 어떤 변수가 이러한 변화를 이끌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수익을 추구해야 하는 자본이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에서 길을 찾지 못해 가상자산 쪽으로 몰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가상자산이 이제 본격적으로 재산권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상승 랠리의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우리 한국 시장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가상자산 투자자들은 상승 랠리에 자금을 집중시켜 그 효과를 폭발시키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이나 다른 코인들의 시세는 해외 시세들과 비교해 작게는 3~4%, 크게는 7~8%까지 높게 형성되어 있다. 쉽게 말해 한국에서는 가상자산을 해외보다 훨씬 비싸게 사고 있는 것이다. 이를 소위 ‘김치 프리미엄’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되면 해외에서 싼 가격에 비트코인을 사서 한국 거래소에 가져와 팔아, 그 차액만큼 쉽게 수익을 올리게 된다. 차액 거래로 인한 수익률이 7~8%에 이른다. 이러한 사실을 경고하듯 강조하는 거래소도 있지만, 이는 투자자들에게 주의를 환기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열광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 투자자들은 비이성적이거나 무지해서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문제는 한국 가상자산 시장만이 갖는 규제가 주된 원인이다. 사실 규제라고 하기도 어렵다. 소위 금융당국의 ‘창구 지도’라 일컬어지는 구두 경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법인이 가상자산에 투자하거나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은 없다. 그런데도 법인은 가상자산 거래소에 계정을 개설할 수 없다. 2년 전에 코빗이 법인 계정 개설을 시작했다가 금융당국의 제지로 소리 소문 없이 중단했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법인 계정 개설은 국내 거래소에서는 금기시되고 있다. 즉, 한국 가상자산 거래소에서는 법인이 원화 거래를 할 수 없다. 해외에서도 가능한, 그리고 개인도 가능한 ‘법정화폐로 가상자산을 사고파는 것’이 법인에 있어서는 봉쇄돼 있다.
이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은 한국 가상자산 시장으로의 접근이 어려워진다. 결국 다른 해외 거래소들과 시세 차가 발생해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김치 프리미엄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외의 경우, 아주 약간이라도 시세 차가 발생하면 자본력이 있는 기관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시세가 높은 곳으로 이동해 순식간에 시세 차이가 소멸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시세 평준화가 작동하기 힘든 상황이다. 아마도 우리 금융당국은 상대적으로 자본력이나 정보력에서 열위에 있는 개인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소 진입을 차단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가상자산 시세 왜곡을 낳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공공연히 알려진 바로는 소수의 법인은 개인 투자자로부터 거래 계정을 빌리는 등의 방법으로, 마치 개인인 것처럼 가장해 거래하는 탈법적인 양태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2년 전에 김치 프리미엄을 악용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빠져나간 13조 원의 돈이 위법한 형태로 해외로 송금된 사건이 있었는데, 김치 프리미엄이 없었다면 감히 그러한 불법적인 일을 실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주식시장은 개인이 직접 주식에 투자해 손실을 보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ETF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기관투자자들이 개인들을 고객으로 받아 그들의 투자금을 모아 큰 자본력을 바탕으로 거래한다는 것이다. 즉, 기관투자자의 거래가 활성화되면 개인 투자자의 리스크 헤지 수단이 만들어질 수 있다. 현재 정부 당국에서도 기관투자자의 가상자산 거래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상자산이 적어도 MZ세대들에게는 부동산, 주식 같은 재테크 수단이자 주요한 자산 중 하나인데, 압력이나 압박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24시간 글로벌로 유통되는 가상자산 시장에서 김치 프리미엄이 더 이상 한국만의 왜곡된 시장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2024-03-2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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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의사 집단사직과 지역균형
의대 정원 확충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끝날 기미를 안 보인다. 뉴스를 읽다 뜬금없이 TV 드라마 하나가 떠올랐다. 작년에 방영된 ‘웰컴투 삼달리’다. 이 드라마는 성공한 포토그래퍼 ‘조삼달’이 억울한 일에 휘말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자 다시 고향 제주로 내려와 첫사랑을 만난다는 내용의 스토리다.
이 드라마가 떠오른 이유는 다름 아닌 주인공 삼달이라는 캐릭터 때문이었다. 극중 삼달은 학창 시절 내내 고향을 지겨워했다. 사진을 배우고 싶었지만 제주에는 사진을 배우고 경험할 만한 인프라가 없었다. 카메라를 사달라고 엄마에게 울며불며 애원하던 삼달은, 어느날 육지를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며 다짐한다. 나중에 꼭 서울에 가서 성공한 포토그래퍼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삼달만큼의 결연한 다짐이 아니더라도 지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모두 한 번쯤은 삼달과 비슷한 마음을 품는다. 언젠가는 서울 혹은 더 넓은 지역으로 진출할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드라마 속 삼달의 친구들도 한 번씩 서울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듯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다. 삼달과 친구들이 서울로 향했던 것처럼 서울과 지역 간에는 정보 격차가 있고, 경험할 수 있는 폭도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더 많은 것을 배우려면 수도로 나가야 한다는 현실은 2024년에도 유효하다.
의사의 집단행동을 둘러싼 수많은 쟁점이 있지만, 이 현상의 근본 원인은 ‘지역에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사에서 지역에서 중증 질환자들이 골든타임 내 진료를 받는 비율이 50%도 되지 않고, 우리나라 250개 지자체 중 98개가 응급의료 취약지라는 통계는 지역 의료의 현주소를 가리킨다. 안타깝고 아득한 현실이다. 그런 뉴스를 읽으며 삼달이가 떠올랐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일하고자 하는 청년은 몇 퍼센트나 될까. 그런 슬픈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1년에 의사가 받는 평균 임금은 일반 노동자가 받는 평균 임금의 4~5배라고 하는데, 지역에 의사가 오지 않아 연봉을 4억~5억 원까지 올려주겠다는데도 지원자가 없었다고 한다. 전체 시군구 중 32개는 필수의료기관이 없고, 전라남도와 경상북도, 섬이 많은 인천광역시는 3대 의료 취약 지구로 분류됐다. 지역에 의사가 없으니 의료 시설이 부족하고, 의료 시설이 부족하니 의사도 없는 굴레가 반복된다.
그렇다면 과연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의대생들이 지역에서 일을 하려고 할까? 단순히 돈을 얼마나 주는지와는 큰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모든 영역이 다 그렇겠지만 의료계는 정보와 경험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의사도 알고 진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도 모를 리 없다.
정부는 의대생들을 많이 뽑아 지역 의대에 배치할 방침이라고 했다. 하지만 의대생들이 해당 대학을 졸업해도 그 지역에 남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게 문제다. 경상남도에서 면허를 취득한 초등교사는 경상남도에서만 일할 수 있는 것처럼, 의사도 면허를 취득한 지역에서만 일할 수 있게 한다거나, 그 지역에서 의학을 공부한 사람은 그 지역에서만 일할 수 있게 하자는 등의 ‘강제적 장치’를 고민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의미 있고 유효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보다 큰 차원에서의 고민도 필요하다고 본다. 당장의 효과를 바라기는 어렵지만 현재 대한민국이 떠안고 있는 숙제 같은 것 말이다. 바로 ‘지역균형’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윤석열 정부는 울산에 공공병원을 설립하겠다고 했지만 경제적 가치 측면에서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해 취소했다. 눈앞의 효과만 생각하고 지역균형 관점에서는 고려하지 않은 방침인 듯해서 매우 아쉽다. 도전과 시도가 없으면 결과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역에 의료 시설을 확충하는 일은 당장 손해일지 몰라도 그런 투자로 인해 지역 의사가 배치되거나 서울까지 가서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지역에서 치료받을 기회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공공병원은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 앞으로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있어서 균형 잡힌 지역을 만들기 위한 방향성을 택하는 것이 결국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이다.
현재 최소한의 인력 배치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집단행동을 강행하고 있는 일부 의사들의 이기주의는 매우 안타깝다. 하지만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이들에게 특정 지역에서 일하라고 강요하는 것 역시 불합리한 일이다. 강제적인 접근은 제1의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지역에 머무르고 싶고, 일하고 싶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수많은 삼달이들이 지역에 남을 것이다.
2024-03-1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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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 관광정책 어디로 갔나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해외여행 통로가 생기면서 관광 인구 흐름의 변동이 시작되었다. 국내 관광 열풍으로 몸살을 앓던 어떤 지역은 최근 여행객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결국 관광 관련 소상공인들만 한숨을 쉬고 있다. 부산 역시 팬데믹 동안 전체적인 관광 수입과 외국인 및 외지인 유입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팬데믹 종료와 함께 해외로의 탈출구가 뚫리기 전까지 국내 인기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잠시 과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외로의 출구가 만들어지면서 지난달 부산관광 통계상 외부 방문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8.7%로 급격히 하락했다. 부산 전체적으로 향후 관광정책 방향성과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한국관광데이터랩이 생기기 전까지 부산의 관광산업 연구자들은 부산에 집중된 수치적인 정보를 찾으려면 정말 가물에 콩 나듯 중앙에 있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보고서에서나마 겨우 수치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외 대부분은 부산의 관광정책을 만들 때면 전국의 데이터와 실제 체감되는 정성적인 데이터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부산관광공사가 생겨 부산 데이터를 관리하면서 부산에 특화된 흐름을 분석하고, 관광 동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 이후 잠시 국내 여행 열풍
해외여행 본격화로 급격한 하락세
부산 관광 관련 산업 부가가치 41%
의료·문화·스포츠 등 융합관광 대세
부산 관광 전문 연구기관 설립 시급
장단기 목표 및 정책 수행 지원해야
부산의 10대 전략산업인 관광산업은 지자체와 시 산하기관에서 키우고 발전시켜 왔다. 2024년 부산시 주요 업무계획이나 박형준 부산시장 공약에는 관광산업이 약방의 감초처럼 늘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최근 부산의 관광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진 느낌이다. 관광산업이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서일까. 아니면 2030월드엑스포 유치 실패 후 전략적인 관심 회피일까. 얼마 전 부산에서 열린 미래도시혁신포럼에서 박형준 시장이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을 주제로 강연했다. 박 시장의 강연 속에서도 관광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결국 관광산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기에 뜨거운 감자처럼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왜 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할까. 부산관광공사가 실시했던 ‘부산 관광위성계정 개발 및 구축 방안’ 연구에서는 부산지역 관광산업의 부가가치 합이 부산의 GRDP(지역내총생산)의 3.5%밖에 안 되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관광 관련 산업 부가가치는 41%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관광산업 단독으로 부가가치는 미비하지만, 관련 산업 간 파급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는 결과이다. 세계적으로도 2000년대 중반부터는 관광시장에서 이러한 효과를 노려 ‘융합 관광’이 중요한 흐름이 됐다. 대표적인 예가 의료관광이다. 의료관광은 의료산업과 관광산업의 융합적 시너지 효과를 노려 양쪽 산업의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이외에도 관광산업은 문화산업, 1차 산업, 복지산업, 스포츠산업 등과 융합되어 최근 관광 트렌드의 주류를 만들어가고 있다.
문제는 부산에서 이를 뒷받침해 줄 전문 연구기관의 존재 여부다. 부산관광공사는 기본적인 연구들만 진행하고 있고, 부산시 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부산연구원에는 관광산업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부서는 아예 없다. 관광산업이 늘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관광산업을 마중물로 어떻게 다른 관련 산업들과 융합할 때 부산 경제에 가장 높은 효율성을 가질 수 있는지 등 융합의 방향과 단계별 목표 수립을 위한 정책적 기반과 현장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연구를 해 줄 연구기관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기본적인 융합에 데이터가 복합되면서 데이터 기반의 연구가 중심이 되고 있다. 이제는 투자되는 비용에 비해 성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수치적으로도 알아볼 수 있고 관광과 관련된 산업의 흐름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데이터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은 점점 명확한 투자와 성과, 비용 대비 성과 분석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부산의 관광산업은 중앙정부에서 가져온 예산과 지자체 예산을 장기적인 안목보다는 단기적으로 행사성 사업에 많이 사용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에서도 관광은 빠지지 않는 전략적 산업이 될 것이고 늘 언급은 될 것이다. 하지만 산업적 성장을 위해서는 부산에도 제대로 된 연구기관을 두고 제대로 집중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당장 독립적 연구기관 설립이 어렵다면 부산관광공사나 부산연구원 내에 관광산업 정책 개발과 연구를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부서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 싶다. 그래서 부산시 관광산업의 장단기 목표 설정과 정책 수행에 있어서 효율 및 관리 체계를 갖출 수 있는 그런 지원기관이 생기기를 바란다.
2024-03-0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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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예산 줄이는 공약’이 2030 마음 얻는다
밥벌이로 6년 전부터 청소년 대상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주로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참여기구 대상 정책 강의다. 필자가 중고등학생이던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청소년이란 모름지기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존재였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지역마다 청소년 사회 참여 증진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청소년의회나 청소년참여위원회 같은 것들이다. 몇몇 기초의회는 매년 청소년의회를 운영하며 이들이 제안한 조례를 의정에 반영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무슨 조례를 만드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심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제안하는 정책의 수준이 높다고 보긴 어렵다. 많은 경우가 단편적인 해결책을 내놓는다. 범죄자 처벌을 늘려 달라든가 교통비·교복비 등을 지원해 달라는 식이다. 사실 이들에게 정책의 완성도를 기대하진 않는다. 대신 사회에 참여하는 역량을 기르고 정책 입안 과정에서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데 의의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고등학생만 돼도 이야기가 달라진다. 머리 좀 굵었다고 현실성을 따지기 시작한다. 예산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다짜고짜 청소년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하기보다 현 제도의 허점을 찾고 바꾸려 노력한다. 그런 걸 보면 가끔은 ‘청소년의원’들이 현역 정치인보다 낫다는 생각도 든다.
다양한 청년정책 삶 개선하지 못해
여야가 남발한 선심성 청년 공약
청구서 언젠가 되돌아온다 인식
청년들이 힘든 건 미래에 대한 불안
현금 지원성 정책 남발하지 말고
책임지고 미래 이끌 정당 면모 보여야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은 다양한 내용의 공약을 쏟아 내고 있다. 그 양상을 보면 마치 도박판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쪽에서 선심성 공약을 내지르면 다른 한쪽에서 거기에 뭘 더 얹어서 추가 제안을 한다. 판돈은 끊임없이 상승한다. 하다못해 도박은 ‘올인’하더라도 참가자가 가진 돈까지이지만, 정치권이 쏟아 내는 공약은 나라 예산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야 모두 약속한 철도 지하화 공약만 봐도 그렇다. 도심 지역 노선을 지하화하고 그 위에 공공주택·주거복합시설을 짓는 데 80조 원 이상(민주당 추산)이 소요된다고 한다. 민간 개발로 비용 부담을 덜겠다고는 하나 그게 정말 실현될 거라고 믿는 유권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다른 공약도 비슷하다. 청년들의 삶이 어려워 보이니 교통비를 보조해 주거나 청년 대상 대출·주택공급을 늘리자고 한다. 청년뿐 아니라 어르신, 신혼부부,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정책 패키지’도 쏟아진다. 세입은 정해져 있는데 공약 이행에 들어가는 돈만큼 다른 어디서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쯤 되면 공약의 진정성을 믿는 게 이상한 일인 것 같다.
한국갤럽이 지난 1일 공개한 정기 여론조사에 따르면 18~29세 청년의 무당층 비율은 40%에 달했다. 30대는 24%였다. 보통 선거가 임박하면 무당층이 줄어든다. 그런데 많은 청년이 여전히 지지하는 정당을 고르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은 이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온갖 청년정책을 제시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무엇보다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퍼주기식 청년정책은 이미 2010년대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됐다. 청년수당, 구직 지원금 등 다양한 이름의 청년정책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로 청년들의 삶이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역을 떠나는 청년은 계속 느는 반면 출산율은 더 낮아지고 있지 않은가. 부산시의회 김형철 의원(국민의힘·연제2) 역시 지난해 9월 임시회에서 “부산시가 5년간 청년정책으로 7000억 원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했지만 청년들이 그 효과를 체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것저것 지원해 주면 청년들이 좋아할 거라는 판단은 오산이다. 2030 세대는 직접 돈을 준다고 해도 반기지 않는다. 그 청구서가 언젠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1년 7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연 200만 원을 지급하는 청년 기본소득 공약을 발표했을 당시 수혜자인 청년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2022년 1월 한 여론조사에서도 18~29세의 60.7%가, 30대의 58.2%가 기본소득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찬성은 각각 33%, 33.5%에 그쳤다.
청년들에게 당장 오늘 힘든 건 큰 문제가 아니다. 그것보다 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건 불안한 내일이다.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해 자기 삶도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들을 지배하고 있다. 책임감 없는 정치는 그 불안한 미래를 더욱 앞당긴다. 따라서 정치를 향한 청년들의 높은 불신을 해결하려면 현금 지원성 정책을 남발하기보다 책임지고 미래를 이끌 수 있는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줘야 한다. 차라리 불필요한 사업 정리하자고 주장하는 게 청년 표심을 얻는 데 더 도움 될 것이다.
2024-03-0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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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저성장 시대엔 수능 없애야
최근 잠재성장률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과거에는 성장률이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없다. 오랫동안 많게는 10% 이상, 적어도 5% 가까운 성장률은 달성해 왔기에 잠재성장률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실질성장률이 꾸준히 감소하고 마이너스 성장도 경험하면서 비로소 우리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성장의 비결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 정도에 불과하다.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대표적인 요인은 노동력·자본·생산성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 출생률,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로 노동력 투입이 늘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 경제 자체가 자본집약적이어서 새 자본의 투입 여력도 크지 않다. 결국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생산성의 바탕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사고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활력이 떨어진 배경으로는 엉뚱하지만 아파트와 학교 급식, 패스트푸드 같은 음식 문화를 지적하고 싶다. 아파트는 제법 편리한 주거공간이지만 매우 획일적이다. 대도시의 경우 시민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산다. 특정 지역으로 좁히면 대부분에 이르는 곳도 있다. 게다가 아파트는 건축 효율을 위해서 층고를 최대한 낮춰 놓았다. 또 같은 면적이면 전국적으로 구조도 비슷하다. 그 결과 대단히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획일적인 공간은 획일적인 사고를 낳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 침체, 생산성 향상 관건
바탕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사고
하지만 교육 현장의 획일성은 여전
국내 건설사, 발상 바꿔 잇단 성공
교육 분야도 이제는 생각 전환 필요
현재 수능 제도로는 미래 대비 난망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라는 말이 있듯이, 먹거리 또한 다양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초·중·고교에서 모든 학생이 똑같이 급식을 먹고 있다. 즐겨 찾는 음식도 피자 치킨샌드위치이고, 이러한 음식을 파는 곳은 대부분 프랜차이즈여서 음식물의 조리법이나 맛도 일률적이다. 먹는 음식도 비슷하고 즐기는 맛도 비슷하게 됐다. 혁신이나 창의는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공간과 음식이 달라야만 이러한 여지도 커지는 것은 아닐까.
층고가 획일적인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각종 사교육 때문에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한 학생들에게 혁신과 창의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혁신이나 창의성을 특별한 교육을 통해 획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오히려 부족함이나 괴로움·귀찮음에서 생겨날 수도 있다. 과거의 교육은 지금보다 더 획일적이었지만 최근까지 우리는 많은 혁신을 이루어왔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인도네시아는 수도 자카르타와 식물원으로 유명한 보골 사이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기로 하였다. 이때 우리나라 건설회사가 선진국의 다른 많은 회사를 제치고 거의 절반 가격에 공사를 따냈다. 비결은 간단했다. 여름철 우기에도 공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원래 열대지역의 우기에는 공사를 하지 않는 게 상식이었다. 우리나라도 보통 비가 오면 공사를 쉰다. 그런데 스콜은 우리나라의 비와 다르다. 엄청난 소낙비가 쏟아지지만 10분 정도면 그치고 다시 50분 정도 쨍쨍한 날씨가 이어진다. 소낙비가 오는 동안만 공사 구간을 비닐도 덮어 놓았다가 비가 그친 뒤 다시 공사를 계속했다. 이런 방식으로 공기와 공사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60km의 고속도로를 성공적으로 완공했다. 비가 오면 공사를 하지 못한다는 상식을 뒤집었을 뿐이다.
같은 무렵 필리핀에서는 한국 회사가 마닐라시의 식수 공급을 위한 콘크리트댐을 건설 중이었다. 역시 절반의 공사비를 제시해 공사를 수주했다. 콘크리트는 타설과 양생 과정에서 기온이 높으면 제대로 굳지 않는다. 당연히 필리핀에서는 여름철에 이런 공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회사는 먼저 제빙 공장을 짓고 물 대신 얼음과 콘크리트를 함께 타설했다. 얼음 덕분에 양생에 필요한 온도를 유지하며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제빙 공장은 얼음을 만들어 필리핀 현지에 팔았다. 얼음도 녹으면 물이 된다는 자명한 상식을 공사 현장에 접목했을 뿐이다. 우리나라 건설업이 일궈낸 놀라운 사례들이다.
현재의 교육은 창의성을 중요시한다고 하지만 우수한 학생들은 거의 모두 의대로 가려고 한다. 자율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교육이 현재까지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셈이다. 혁신이나 창의는 아파트 못지않게 획일적인 교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렵다. 최악은 전국의 모든 학생이 똑같은 시험을 똑같은 교재로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능과 같은 구태의연한 제도에 집착하는 한 저성장 시대를 대비할 창의와 혁신을 확보하기 어렵다. 수능부터 없애면 중·고교와 대학이라도 학생을 교육하고 선발하기 위한 창의적 사고에 골몰하게 되지 않을까.
2024-02-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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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우리는 자유로운가
이달 초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이 주목을 받았다. 〈신경 끄기의 기술〉의 저자 마크 맨슨의 한국 여행기였다. 영상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유교와 자본주의가 결합한 가운데 둘의 단점만을 취해 불행하다고 한다. 대략 권위주의와 집단주의 문화에 물질만능주의와 각자도생 문화가 합쳐졌다는 이야기인데, 적기만 해도 숨 막히는 진단이다.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개인적인 관심으로는 서양철학사에서 계몽이 지니는 의미에 새삼 주목하게 된다. 계몽은 모든 것에 의문을 품는 행위로 시작하여 권위의 종말을 가져왔다. 무엇이든지 질문과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전통적 혹은 규정적 질서였던 권위의 대척점에 인간의 자유의지와 역량이 서게 된다. 이러한 권위와 역량의 긴장관계는 주어진 것과 선택하는 것, 본성과 환경, 법칙과 행위자성 등의 대립과 나란하며 근대적 가치관은 당연하게도 후자들을 향해 있다.
“유교·자본주의 단점만 결합”
권위주의·물질만능주의 겹친
한국 사회에 대한 아픈 비판
부단의 혁신 요구되는 시대
기존 질서·한계 넘어서려면
진정한 자유 먼저 고민해야
단언컨대 엄청난 진보다.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 본성, 법칙에 구속되지 않고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기 때문에 신분제를 없애고 평등한 존재로 나아가고, 누구나 자아실현을 이루고 자기계발을 통해 성장하고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 결과 개인의 자유의지와 역량을 전제로 하여 근대사회를 떠받치는 두 체제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세우고 국민이 스스로 대표자를 뽑고 정치에 참여하고 또한 누구나 노력하면 부를 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공유한다.
하지만 권위를 부서뜨리는 경험이 없는 상태로 근대화를 이뤘다면 제도와 의식의 기초가 되는 자유의 정신을 충분히 향유하지 못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질서에 순종하는 덕목을 중시해 온 문화였기 때문에 그러한 맥락에서 뿌리내린 근대식 제도들은 체제의 취지와는 다른 결을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자신이 성군이길 꿈꾸는 대통령이나 그와 같은 대통령을 바라는 것은 정치에서 권위를 지운 것이 아니라 단지 왕의 자리를 대통령의 이름으로 대체했을 뿐이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돈은 새로운 권위로 등극했다.
이것이 안타깝게도 유교와 자본주의의 단점만을 취한 대한민국 근대화의 결과일까. 그렇게 책망하기엔 간단하진 않은 것 같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한 권위는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의식과 기억에 남아있고 사회에 스며든 권위가 어떻게 단숨에 잊힐 수 있겠는가. 어쩌면 권위로부터 인간이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것, 다수결의 투표 결과는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들 역시 계몽 이후 인류가 합의한 새로운 권위다. 인간은 언제나 권위와 자유의지 중간 어디에 서게 된다. 우리는 주어진 것에 순응만 하지도 않고 모든 걸 내 뜻대로 맞춰 살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여건은 조금 특수하고 근대적 세계관이 가장 두드러진다. 원주민을 몰아낸 신대륙에서 역사와 전통이 부재했던 미국은, 외교관 토크빌의 관찰처럼, 처음부터 자치(自治)를 경험하며 권위에 복종하지 않았던 문화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고안했다. 그리고 기축통화로 역할하는 달러 덕분에 경제적 속박에서도 자유롭다. 필요적 욕구가 자연의 섭리 아래 주어진 구속이라면 자본주의는 자유의지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욕망과 수요로 지탱된다. 보통은 주머니 사정에 맞게 씀씀이를 절제해야 하지만 미국은 달러를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쉽게 부채를 자산화하고 소비를 줄이지 않는다.
역사상 권위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국가처럼 보이는 미국에서는 끊임없는 혁신이 펼쳐진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인류의 필요에 맞게 지구환경을 변화시키는 공학 기술인 지구공학을 개발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신인류를 인간 손에서 탄생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프로젝트로 이것의 동기를 단순히 돈벌이로만 생각한다면 오해다. 그들의 비전에는 어떠한 질서와 한계에도 구속되지 않는 인간의 자유와 능력을 실험하고 실현하려는 강력한 도전정신이 담겨있다.
그러나 인류가 얼마만큼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지와 그 방향이 옳을지는 당장에 알 수 없고 예외적인 환경의 미국식 자유주의를 무조건 예찬하기엔 신중해진다. 또한 계몽의 당위성을 주장함도 아니다. 다만 국가는 이미 근대화를 진행하여 근대식 체계를 갖추었고 체계는 근대사상에서 발아했기에 그 출발의 계몽정신을 되돌아보고 나면 형태만 달라졌을 뿐 새로운 권위들에 억압받는 한국 사회가 보인다. 더구나 강력한 자유와 혁신으로 추동하는 미국식 제도를 따라가면서 체계와 세계관에서 불화가 일어나곤 하는 사회에는 권위와 질서, 한계를 무너뜨리는 진정한 자유에 대한 고민이 먼저 필요할 것 같다.
2024-02-1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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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비트코인 ETF 승인은 블록체인 변화의 서막
지난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상장을 승인했다. 작년 말부터 SEC의 승인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무르익으며 새해 들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승인이 있기 전날 SEC의 SNS 계정이 해킹돼 승인되었다는 뉴스가 삽시간에 퍼져 전 세계를 열광시킬 정도로 국내외 투자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블랙록, 피델리티 등 승인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거대 투자사들은 비트코인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고객에게는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이번 승인은 단순히 비트코인 ETF라는 하나의 상품에 그 파급 효과가 그치지 않는다. 비트코인 ETF가 투자상품으로 승인되면서 이제 연금에서부터 투자 포트폴리오에 이르기까지 모든 투자에 적용될 수 있게 됐다. 그렇기에 SEC의 승인은 블록체인 업계뿐만 아니라 기존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는 기념비적인 결정이 됐다.
그런데 사실 ETF라는 상품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결정의 의미가 쉽게 와닿지 않을지 모른다. ETF란 ‘Exchange Traded Fund’의 줄임말로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펀드’라는 뜻인데, 다양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펀드의 장점과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주식의 장점을 합한 것이다. ETF에 투자한 투자자는 직접 매수하지 않고도 여러 자산에 투자할 수 있고, 주식처럼 증권 거래소에서 거래하며, 전체 포트폴리오의 성과에 따라 수익을 거둔다. 예를 들어 안정적인 금과 비교적 변동성이 큰 상품을 모두 포함해 ETF 하나를 구성할 수도 있고, 아마존이나 테슬라 같은 빅테크 기업과 은행의 주식을 혼합해 ETF를 구성할 수도 있다. 비트코인 ETF의 출시는 주식처럼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직접 매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에도 거래할 수 있던 비트코인을 주식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게 된 사실에 왜 그리 호들갑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먼저 투자자들이 ‘월렛’이라는 디지털 자산용 지갑을 따로 준비해 관리하거나, 가상자산 거래소에 별도로 가입하는 등의 번거로움과 불편을 걱정할 필요 없이 비트코인 거래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각국의 금융사들이 비트코인을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비트코인 시장엔 막대한 자금이 유입돼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하거나 시장 상황이 보다 개선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자산 시장에 새로운 자본이 유입되면서 블록체인 기술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블록체인 업계와 투자자들을 열광하게 하는 이유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같이 비트코인 관련 상품을 만드는 투자사들은 이를 매수해 보관해야 하는데, 당장 그런 보관 기능을 담당하는 인프라 서비스인 커스터디(Custody)에 기술과 자본이 모이게 될 것이다. 그 커스터디 서비스는 우리 정부도 추진하는 토큰 증권에도 적용돼 점차 다양한 서비스를 위해 확장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전개가 비트코인 ETF 승인의 파급 효과라 할 수 있다.
반면, 탈중앙화를 외치며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에 대한 혁신을 기치로 시작된 비트코인,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이 ETF 승인을 시작으로 기존 시스템에 편입되는 것은 사실상 블록체인 본연의 모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블록체인 기반 모델이 금융시장에서 취급하는 상품 중 하나가 되는 모습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트코인 ETF 승인은 우리가 디지털 자산과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미래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기존 기득권과 마찰이 있었다. 산업혁명 당시 자동차의 출현으로 마부의 생계가 위협받자 ‘적기 조례’로 대응했던 사례를 기억해 보자. 현재의 주식시장은 17세기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거래소에서 시작되었고 몇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완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시세 조작이 여전히 존재하고, 금융 상품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수익성만 쫓아 가입하는 불완전 판매 사례도 계속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주식이나 투자 상품을 투기나 사기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설령 다소 부작용이 있더라도 기술 혁신에 따른 커다란 사회적 변화의 흐름을 거스르기는 힘들다. 블록체인이 가져올 여러 가지 변화와 전환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여유가 필요하다. 이번 SEC의 결정은 블록체인과 관련한 변화의 서막이 될 것이다. 진지한 관심으로 블록체인 산업 발전에 기대와 응원이 있기를 바란다.
2024-02-0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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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비효율을 선택할 용기
청년들의 각양각색 고민이야 그 유형이나 깊이가 참으로 다양하겠지만, 꼭 빠지지 않는 게 있다면 ‘진로’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는 청년이나 대학에 입학하는 청년 모두 청소년기에 경험하는 ‘진로탐색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에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진로탐색 기간이 충분치 않은 것도 문제지만, 어떻게 진로탐색을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고등학교 생활은 가만히 앉아 공부만 하기에도 버겁고, 그 기간 동안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탐색할 방법을 알 기회도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무전공 입학제도를 제공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1년간 다양한 전공과목을 들어볼 기회를 제공하고, 2학년부터 학부를 선택해 공부할 수 있게 하는 대학이었다. 학부를 몇 번이고 계속 바꿀 수 있고, 전공 변경에 대한 조건을 달거나 페널티를 주지 않는 곳이었다. 그것도 문과나 이과에 대한 구분 없이 말이다. 오히려 선택의 폭을 너무 넓혀서인지 전공을 쉽게 정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았고, 계속 전공을 바꾸느라 학교를 오래 다니는 학생들도 많았다. 농담과 진담을 반씩 섞어 “좋긴 한데, 너무 비효율적이다”라는 말이 오갔던 기억이 있다.
최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무전공 입학정원 확대 정책’ 예찬론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대학생 때 기억이 났다. 이 장관은 대학교에 무전공 입학제도를 도입하고 전공 자율선택제를 확대하자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 각 부문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에 한 가지 전문성을 강화한 인재뿐 아니라, 융합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게 이 장관의 주된 논지다. 또한 그동안 한국의 고등교육이 학과별, 전공별로 구분되어 있어 학생들 전공 선택이 유연하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다. 문과와 이과로 나뉜 교육과정을 볼 때, 진로탐색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한 대한민국의 일원으로서, 이 지점에 대한 문제의식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전공 제도가 정답’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 장관의 논지는 결과 중심적인 접근이고 너무 이상적이다. 무전공으로 입학한 모든 학생들이 문·이과를 넘나드는 융합형 인재로 성장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다양한 전공을 선택하고 고민하느라 시간을 지체하고 결국에는 문과 또는 이과 한 가지 전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다가올 빅블러 시대에는 다양한 산업 간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전문직은 한 가지 유형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고 관련 경험과 자격이 중요하다. 대학에서 다양한 전공을 배우고 조합했으면 사회로 나아가 활용해야 하는데, 그만한 밭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써먹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정부가 추진 중인 무전공 입학제도는 입시에서 입학정원의 4분의 1(25%)가량을 ‘자유전공학부’나 ‘광역선발’로 선발한 대학은 그렇지 않은 대학보다 국고 인센티브를 더 많이 가져가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등급 간 차이가 20억~30억 원에 이른다고 하니, 이 제도는 대학의 자율화를 추구하지만 역설적으로는 의무성을 띤다. 자율을 추구한다고 말하면서도 접근 방식은 의무적이라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무전공 입학에 대한 여러 우려와 걱정에도, 경험자로서 무전공 입학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딱 한 가지 때문이다. 적어도 문·이과 상관없이 듣고 싶은 전공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대학 생활 동안,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갈지 상상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경제학도 들어보고 국제 정세도 공부하고 문학도 공부하고 법 수업도 들어보면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상상했다. 대학을 단순히 취업 준비의 단계로 생각하지 않고, 공부하고 고민하는 곳으로 대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그게 비효율적이라고 말한다면, 맞는 말이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진로를 정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뒤처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안 그래도 진로 때문에 흔들리는 시기에 더 많이 흔들리고 후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이 값지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무전공 입학제도를 도입하고 확대하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대학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이 변해야 한다. 중고등학교 교육에서도 학생들이 다양한 진로를 생각할 수 있도록 참여의 기회를 많이 열어주고,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폭넓은 분야에 진출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이런 비효율을 택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귀한 한 학기를 불확실성에 투자하고, 노력을 쏟고, 수많은 돌다리들을 두드려보고 건너보는, 그런 비효율적인 용기 말이다.
2024-02-0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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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엑스포 유치 실패를 딛고 글로벌 도시로
2023년 11월 29일 새벽 부산시민과 엑스포 유치위원회 관계자들은 조여드는 가슴을 부여잡고 2030월드엑스포 개최지 최종 투표 과정을 지켜보았다. 결과가 발표 나자, 대부분 언론은 엑스포 유치 실패에 대하여 힐난을 쏟아부었다. 미디어들은 시민들과 관계자들의 실망하고 오열하는 모습을 내보내며 유치위의 실패와 현 정부의 무능함을 강조하였다. 더욱 답답한 것은 현 정부와 부산시는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부산시민들도 강하게 표현은 하지 않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해하고 있다.
엑스포 유치 활동 과정에서는 보수 정당의 약점이었던 홍보 전략 및 기술의 미진함이 더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다. MICE 산업 관계자라면 누구나 승리를 너무 강하게 확신하는 유치위원단에 다들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었을 것이다. 정권과 부산의 도시 분위기가 바뀌면서 엑스포 홍보는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구심점이었다. 그 구심점을 다차원적인 관점에서 활용해야 하는데, 엑스포 유치라는 기본적인 목표 달성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내부 홍보 전략에서는 실패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언론과 국민, 정부 무능함만 강조
정부·부산시, 대응없이 침묵 일관
도시 발전 다차원적 전략 차원
과정 평가와 목표 재설정 시급
도시 브랜드 마케팅에 활용하고
서울 세계청년대회 특수 노려야
부산시의 2030월드엑스포 유치 활동은 유치도 목표였지만 '글로벌 허브도시, 창업금융 도시, 문화관광 매력 도시'로 급부상하기 위한 도시 마케팅적인 복안을 가지고 임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부산과 엑스포 유치위 관계자들은 왜 적극적으로 부산시민과 국민의 아픈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대응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는가 반문하게 된다. 답답했던 것은 실패에 대해 최고 책임자의 한마디 사과로 모든 것이 끝나고 활동과 연결되었던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었던 점이다. 이로 인해 더 많은 실망과 비난을 퍼부었을지도 모른다.
디지털행정부의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현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데이터 기반을 가지고 이번 결과를 언급하지 않았다. 월드엑스포 유치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중요한 이벤트다. 그런 관점에서 구글의 트렌드 검색어에 ‘부산’이라는 키워드를 살펴보면 왜 실패했는지 그 이유와 성과를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후보지 3곳의 홍보가 어떻게 달랐고, 사우디아라비아가 1차 투표에서 바로 유치 티켓을 확보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2022년 7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17개월간 평균 종합 검색수는 이탈리아 159회, 부산 259회, 사우디아라비아 96회로 부산이 가장 많은 검색수를 나타냈다. 하지만, 사우디는 유치전 막판인 2023년 9월부터 11월까지는 이전 평균이었던 86회에서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검색수를 보인다. 9월(149), 10월(151), 11월(129) 등이다. 데이터를 근거로 보면 이탈리아와 한국은 사우디에 비해 조금 일찍 홍보를 서둘렀고, 사우디는 마지막 한두 달 정도에 홍보 폭탄을 쏟아부은 결과이다.
부산은 고배를 마셨지만, 세계적인 시선을 끄는 데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구글에 부각된 '부산'이라는 키워드를 도시브랜드 마케팅 엔진으로 전환해야 한다. 엑스포를 계기로 본격적인 도시브랜드 홍보가 시작되었고, 지금부터는 글로벌 도시브랜드 강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레이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엑스포 유치 노력을 초기 투자 비용으로 생각하고, 그 성과를 내기 위한 전략이 더욱 절실하다. 그동안 엑스포 유치를 위해 쏟아부었던 열정과 투자를 더 큰 가치로 부산 시민에게 돌려줄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맥 풀린 상태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동안 전 세계에 뿌린 노력과 열정이 식기 전에 부산은 노력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릴 준비를 해야 한다. 월드엑스포 도전 덕분에 우리는 가덕신공항을 2029년에 개항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2029년 본격적인 해외 관광객과 물류의 집중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사전 정지 작업을 해야 할 시점이다.
급선무가 2027년 서울 개최가 확정된 천주교 행사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다. 부산도 그 행사의 특수를 누릴 준비를 해야 한다. 2023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렸던 세계청년대회에서는 전 세계에서 150만 명, 2016년 폴란드 크라쿠프에는 350만 명의 청년 가톨릭 신자들이 모였다. 세계청년대회 본 행사는 6일간 열리지만, 이 행사 전후로 2~4주 개최국 곳곳을 순례하게 돼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거의 한 달짜리 행사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맥 놓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서울로 집중될 100만이 넘는 청년들을 어떻게 부산으로 끌어들일 것인가에 대한 전략과 기술, 그리고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 부산은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오는 이들 청년을 KTX와 국내선 항공, 고속도로망을 통해 부산으로 끌어들일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부산이 이런 좋은 기회를 어떻게 재도약의 기회로 삼을 것인지 기대해 본다.
2024-01-3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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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룡 칼럼] 걷기 좋은 부산을 다시, 생각한다
간혹 어떤 교차로를 건널 때에 숨이 가쁘다. 가로등 신호가 허용하는 시간이 부족한 탓이다. 대체로 건널목의 신호는 1초에 1.2m를 걷는 성인의 보폭에 맞춰져 있다고 한다. 십자 교차로나 교행(交行) 육차선이 넘는 곳은 약 30초를 부여한다. 이보다 작은 도로는 20초 정도에 그친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노인층이 많아진 사정을 고려할 때, 건널목을 건너는 시간을 다시 조정해야 할 요인이 충분하다. 순전히 60대 중반인 나의 경험적 판단이긴 하다. 그러함에도 운전하지 않고 우리 도시를 즐겨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한 시민이 거듭 느낀 구체적인 불만이다. 신호등에 쫓기는 일은 간혹 가로수 뿌리가 밀고 올라온 보도블록에 발길이 채일 때 느끼는 통증에 못지않은 모독이다. 과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것인가? 도시는 거시적인 시각뿐만 아니라 미시적이고 섬세한 시선을 요구한다.
아직은 보행하기 힘든 요소 많아
더 고도화된 도시 디자인 필요
차 다니지 않는 길 더 많이 만들고
공기 오염 획기적으로 감축해야
과도하게 규정된 형식서 벗어나
역동성 끌어내야 열린 도시될 수 있어
자동차화(motorization)가 가져다준 편의와 풍요를 모르는 게 아니다. 자동차 산업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번영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선진국에 이르게 한 요인임에 틀림이 없다. 이와 더불어 놓치지 않아야 할 사실이 있다면 그 사회적 비용이다. 교통사고 희생자를 없애야 하고 공기를 오염시키는 매연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보행 공간을 확대하고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길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기술 혁신으로 공기 오염을 획기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자동차 도시가 아니라 인간의 도시로 가려면 가로, 보도, 쉼터 등의 보행자 공간을 충실하게 갖추어야 한다. 도심과 비도심을 아울러 부산은 아직 보행 도시라 하기 힘든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 국내외에 도시브랜드가 급성장하고 있는 근래의 사정을 고려하여 더 고도화된 도시 디자인이 요긴하다.
부산의 가치를 더 높인 가장 주요한 요인은 아무래도 바닷가 경관에서 찾을 수 있겠다. 해운대와 광안리의 명성이야 말할 필요가 없으나 송도와 다대포의 변신도 놀랍다. 북항 재개발이 진행 중이고 영도와 기장 바다도 분주하긴 마찬가지다. 도시를 아는 데 걷기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고 한다. 또한 걷기는 침착함, 편안함, 활력의 회복, 상쾌함의 감정 등을 더하는데, 뇌과학자인 셰인 오마라는 해안가의 자연환경이 가장 많은 활력을 준다고 한다. 이는 시골 전원과 도심의 녹지보다 앞서는 치유의 지표를 보인다. 그러니 350km가 넘는 부산의 연안이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다를 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걷기 좋은 도시는 역시 도심을 중심에 두고 판단해야 한다. 바닷가 경관이 아름답고 친수공간이 번듯해도 도심이 무미건조하다면 그 도시는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이달 말에 철거한다는 소식이 들려서 해운대 바다마을 포장마차촌을 둘러보았다. 솔밭 끝에 자리한 이 장소는 20여 년이 되었고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유명 배우와 거장 감독이 찾은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탕웨이가 왔고 김동호 위원장이 자리가 없어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술잔을 나누었다는 일화도 들었다. 본디 60개의 점포가 30개로 줄었으나 더러 젊은이들이 모여 즐겁게 해산물을 안주 삼아 얘기꽃을 피우고 있어 하나의 섬처럼 고립된 장소지만 흘러나오는 불빛이 정겹기만 하다. 여기서 불과 스물다섯의 나이인 1970년에 쓴 책이라 놀라움을 더하는 리처드 세넷의 〈무질서의 효용〉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도시에 필요한 ‘접촉점’(contact point)의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생동하는 도시, 살면서 갖가지 시련과 도전을 적절하게 대처하는 인격을 만들어내는 도시를 위해 창조적인 무질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야시장은 열대지역이라 가능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선진국 도시에도 광장과 골목의 가게와 노점이 사람의 눈길을 끄는 게 사실이다. 리처드 세넷은 2020년 건축가 파블로 센드라와 협업해 〈무질서의 디자인〉을 썼다. 50년 동안의 일관성에 다시 놀라게 되는데 여기에서도 그는 현대 도시의 엄격하고 과도하게 규정된 형식을 비판한다. 그는 유연하지 못한 환경이 사람들의 자유로운 행동을 억압하고 비공식적인 사회관계의 숨통이 막히게 하며 도시의 힘이 자라지 못하게 가로막는다고 주장한다. 그의 견해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면서 과도하게 규정된 형식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도시의 다이너미즘을 이끌어야 한다. 북항 재개발은 물론이고 도심을 다시 디자인하는 일에도 본디 부산이 지닌 문화 혼종성과 접촉 지대의 특이성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그럴 때 다양한 계층과 이민자와 이주 노동자가 한데 어울릴 수 있는, 바다로 세계로 열린 도시가 될 수 있겠다. 이러한 내재 가치를 충분한 잠재력으로 지닌 부산인 만큼, 이제 제대로 실천할 일만 남지 않았겠는가?
2024-01-2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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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프로크루스테스의 공천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이름은 몰라도 그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 인근 케피소스 강변에 사는 악당이다. 여인숙을 운영하는 그는 찾아오는 손님들을 철제 침대에 눕혔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침대 크기에 맞추어 죽였다. 침대 길이보다 키가 큰 손님은 튀어나온 만큼 머리나 다리를 톱으로 잘라 내고, 키가 작으면 늘여서 죽이는 식이다. 설령 침대에 키가 딱 맞는 손님이 오더라도 죽는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키가 큰 손님에게는 작은 침대를, 키가 작은 손님에게는 큰 침대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기준을 상황에 따라 바꾸는 게 더 큰 문제다.
여야 공천 과정 불공정 논란 잇따라
말로만 ‘시스템 공천’ ‘국민 참여 공천’
실제는 ‘낙하산 공천’ ‘고무줄 잣대’
어떤 제도든 권력자의 의중 배제 못해
기만적 명분보다 제대로 된 인물 중요
국민은 심판, 정치는 책임지는 게 선거
총선이 7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공천 경쟁도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각 당은 공정함을 자신한다. 국민의힘은 ‘시스템 공천’을 통해 계량화된 지표들로 후보들을 평가함으로써 밀실 공천, 담합 공천을 근절하겠다고 선언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국민참여공천제를 도입하여 국민이 공천 기준부터 의견을 개진하게 함으로써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공천을 하겠다고 밝혔다. 공천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거기에 걸맞은 인물들을 추천하겠다는 약속 자체는 환영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아니, 의구심을 품는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 본다.
실제로도 약속은 3일을 못 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7일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서울 마포을 출마자로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을 소개했다. ‘시스템 공천’을 발표한 지 하루 만이다. 갑작스러운 ‘김경율 출마’ 선언에 마포을 당협위원회장인 김성동 전 의원부터가 크게 반발했다. 그 전날에는 인천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이 같은 방식으로 소개되면서 윤형선 인천 계양을 당협위원장으로부터 “낙하산 공천”이라는 비판이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원회의 후보자 적격·부적격 판정을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 기준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했던 까닭에서다. 과거 고문치사 사건에 연루돼 징역을 살았던 정의찬 당대표 특보에게 적격 판정을 내렸다가 이 사실이 알려지고 여론이 악화하자 판정을 뒤집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보복 운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이경 상근부대변인은 또 어떤가. 그는 검증위원회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았지만 이의 신청을 했고 당 이의신청처리위원회는 이를 ‘기각’이 아닌 ‘계속 심사’ 대상으로 최고위원회에 보고했다. 유독 친이재명계 인사들에게 한없이 자애로운 기준이 적용되는 게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솔직히 시스템 공천이라는 명목하에 제시되는 각종 기준은 다 기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제도를 마련하든 권력자의 의중이 배제될 수는 없는 이유에서다. 예컨대 도덕성이나 당 기여도 같은 정성 평가 항목들은 그런 여지를 충분히 남겨 놓는다. 면접이 공정한지도 잘 모르겠다. 2016년 제20대 총선 당시 유승민 의원이 면접을 못 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한 건 아닐 것이다. 이미 정해진 결과에 명분을 쌓기 위한 허례허식이라면 정책 발표든 심층 면접이든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답을 정해 놓고 짜 맞추는 공천은 프로크루스테스의 행위와 다를 게 없다.
우리는 어떤 제도든 당대표나 지도부의 의사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100% 공정한 공천 제도는 없다. 사실 당대표와 지도부가 자신들과 손발 맞출 인물을 전략적으로 영입하고 공천하는 게 잘못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형편없는 인물을 데려와 물의를 빚거나 이해할 수 없는 공천으로 선거에 참패하더라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데 있다. 적어도 옛날에는 당 총재가 전권을 쥐고 공천을 결정했기 때문에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묻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2000년대에 접어들어 총재 권한이 해체되고 당내에 경선이 도입되면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졌다. 많은 이들이 경선은 공정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 경선이라는 게 결국 권력자의 선택을 받거나 주류에 편승한 인물에게 열성 당원들의 몰표가 쏟아지는 구조라면 전략공천과 다를 게 없는 거 아닌가. 외려 “당원들이 선택했다”는 이유로 그 결과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게 하는 면책사유만 되고 있다.
원칙과 책임이 바로 선다면 시스템 같은 게 없더라도 공천은 권위를 인정받을 것이다. 밀실 공천이면 어떤가. 후보자를 추천한 이유가 타당하다면 밀실 공천이라고 한들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이고, 그저 자기 사람 심을 용도라면 시스템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어차피 결정은 국민이 한다. 정치는 책임만 잘 지면 된다.
2024-01-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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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유명인의 피의사실 공표, 국민의 알권리인가
지난해 11월 24일, KBS 9시 뉴스는 ‘단독’이란 타이틀을 달고 유명 배우와 유흥업소 실장의 사적인 대화 녹음 파일을 고스란히 보도했다. 해당 배우가 실장을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남녀 간의 사적인 대화 내용까지 공영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그렇게 2달여 동안 숱한 보도기사가 쏟아지면서 그 배우는 디지털 감옥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도대체 해당 언론들은 어떻게 통화 내용을 단독으로 입수하여 공개하고, 당사자의 경찰 진술 내용까지 단독으로 확인하여 보도할 수 있었을까. 2차례에 걸친 마약 모발 감정이 음성으로 나왔음에도 그는 법정에 서기도 전에 경찰과 언론에 의해 여론재판을 받았다.
국민의 알권리라는 명분으로 쏟아지는 유명인에 대한 피의사실과 관련된 보도가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죄와 상충되는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할 문제다.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죄는 피의자가 기소되기 전에 수사기관 등이 피의사실을 공표할 때 성립하는 죄다. 피의자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고자 제정됐지만, 국민의 알권리와 충돌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동안 기소 전 피의사실을 알리는 언론 보도가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오면서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형법에 버젓이 처벌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소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유명 배우, 디지털 감옥 속에서 운명
사적 대화 내용까지 방송에 마구 공개
피의사실공표 내로남불 정쟁거리 전락
무죄추정과 피의자 인권 적극 고려해야
언론 무분별한 보도 강력히 제재하고
법원의 금지명령 등 세부 입법 추진해야
먼저 국민의 알권리의 대상으로서 ‘피의사실’과 ‘범죄사실’은 구별되어야 마땅하다. 수사기관에 의한 ‘피의사실의 공표’는 피의자에 대해 수사를 한 수사기관의 주관적인 의견이 개입될 수밖에 없고, 무죄추정의 원칙상 이는 알권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워 피의사실의 공개를 요구하는 언론의 행태나 그러한 요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표했다는 수사기관의 해명은 이해하기 어렵다. 수사 상황에 대한 보도가 검찰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 역할을 할 수는 있으나,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는 공권력에 의한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국민들에게는 그 내용이 진실이라는 강한 신뢰를 부여하고 피의자나 그 주변인들에게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기에 공표는 신중해야 한다.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서 대법원은 공표 목적의 공익성과 내용의 공공성, 필요성, 공표된 피의사실의 객관성 및 정확성, 피의사실의 공표로 인하여 생기는 피침해이익의 성질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과연 이번 사건에서 고인이 된 배우의 피의사실 공표에 공익성과 피침해이익에 대한 형량 판단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2022년 9월에 배우 L 씨가 약에 취해 걸어 다녀 경찰이 출동했다고 언론은 실명까지 보도했지만, 결국 혐의없음으로 종결되었다. 해당 배우는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었는데 마약과는 무관하다는 게 경찰의 최종 결론이었고, 신문윤리위원회는 해당 언론에 대해 주의 조치를 결정했다.
그 사건을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경찰의 사건 흘리기와 언론의 받아쓰기 행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피의사실 공표 논란은 그동안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수사 당시에 법무부는 기존 수사공보준칙을 폐지하고 공표 금지의 강도를 더욱 높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했다. 그러나 해당 규정 역시 수사 상황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고 절차도 복잡해 실무상 실효성이 없었다.
사문화된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더 이상 ‘내로남불’의 정쟁거리로 둘 것이 아니라, 피의사실공표를 일률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무죄추정의 원칙과 피의자 인권을 고려해 기소 전 단계에서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수사기관이 흘리고 언론이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을 방지하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입법안이 필요하다.
또한 수사기관의 판단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법원의 피의사실 공개 금지명령제도의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보도와 방송, 언급 등의 금지를 명령할 수 있는 가처분 신청 제도처럼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해 법원의 판단을 통하여, 금지명령 신청이 있으면 명예훼손이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고려해 법원이 신속히 공포 금지명령을 내리고 위반 시 처벌하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언론 역시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하여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여 유죄를 속단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나 추측, 예단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을 자중하여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한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여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고인이 된 배우의 죽음은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그 죽음을 계기로 달라지는 바가 있기를 바란다.
2024-01-1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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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부모라는 극한 직업
‘극한 직업’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노동의 강도가 높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피하는 직업을 일컫는다. 만약 부모라는 타이틀의 직업이 있다면 그 일은 조금 특수할 것이다. 자녀가 어린 시절에는 육아라는 육체노동이, 자녀가 커갈수록 정신노동이 함께 요구되지만 노동에 따른 보수가 주어지기는커녕 부모는 돈도 쓰고 고생도 직접 한다. 심지어 근로계약은 충격적이게도 종신계약이며 퇴사하고 싶어도 퇴사할 수 없다. 정년도 없고 은퇴도 없다.
최근 부모와 함께 살며 경제적, 심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캥거루족은 청년세대를 넘어 중년세대로 확대 중이라고 한다. 자녀가 스무 살 성인이 되면 다 키웠다는 말은 오래전이고, 대학을 졸업하면 끝나는 줄 알았다가 이제는 결혼해서 집을 구하고 아이를 낳아서도 부모의 지원이 계속된다. 해마다 역대 최저 출생률 기록을 갈아치우며 전 세계가 인구소멸을 우려하는 한국 사회에서 부모라는 역할의 무게와 그 의미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
독립 못 하는 성인층 갈수록 늘어
젊은 세대 효 인식 옅어지는 반면
자녀에 대한 책임·희생 요구 여전
부모 역시 완전한 존재일 수 없어
현실적 역할 변화 모색 절실한 때
보다 유연한 관계로 자녀 대해야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세대를 불문하고 국경을 초월한다. 또한 부성애와 모성애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도 공유하는 강력한 사랑의 감정이다. 그러나 사랑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방식은 사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한국은 전통사회와 점점 멀어지면서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효(孝)의 문화가 빠르게 희석되었다. 반면 부모가 자녀에게 가지는 책임감과 희생정신은 과거와 거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부모는 양육자를 떠나서 자녀보다 30년 정도 먼저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인생 선배이지만 사실 자라고 나서 보면 부모 역시 나만큼 불완전하고 불안정하고 부족한 사람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건 그들이 매번 현명하지 않을 수 있으며 나와 똑같이 실수하고 불투명한 미래가 불안하고 마찬가지로 살아가는 게 고단한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자녀에게 항상 강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야 하고 자녀를 위해 부모의 삶을 희생하는 게 당연시되거나 개인이 가족 안에서 지워지는 경험들은 늘 옳은 것일까.
예컨대 이혼 소식이 자주 들렸던 요즈음, 자녀가 있는 부부의 이혼 기사에는 이혼 부부의 자식들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빠짐없이 들렸다. 물론 너무 안타까운 일이고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겠지만 한편으론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자녀를 위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불행을 택해야 하거나 혹은 그렇게 자녀 때문에(자녀의 입장에서는 본인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고 사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행복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혼가정의 자녀가 반드시 불우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편견 또한 작용한 것은 아닌가 싶다.
국적도 성별도 파트너도 얼굴도 이름도 거의 모든 걸 내 의지에 따라 바꿀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는 게 있다면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일 것이다. 그 때문일까 과거 천륜이라고 불린 절대성이 오늘날까지도 부모와 자녀 사이를 절대적이고 수직적인 관계로 고착시킨다. 이로 인해 부모를 같은 인간이자 일생의 동료이자 또는 하늘이 맺어준 첫 번째 친구로서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너무 많은 책임감과 부담감이 예비 부모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새 생명이 가져올 기쁨과는 별개로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무거운 미래가 훤히 보이기 때문에 감히 아이를 갖겠다는 결심을 하지 못하고 출산을 포기한다.
부모의 지나친 책임감에 대한 극단적인 사례라면 끊이지 않고 전해지는 가족 동반 자살 소식이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살하는 이 사건들은 부모가 자녀를 곧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왜곡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어릴 적 누군가의 보살핌에 의존하며 살아가지만 설령 부모가 부재하더라도 그와 무관하게 아이의 삶은 계속될 수 있다.
미국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엄마가 쓴 에세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다 보면 부모가 자식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부모 스스로의 대단한 착각인지 알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아들이 총기 난사를 한 사실에 대해 납득하지 못한 채로 아들의 범죄를 마주하고 자신과 아들의 자아를 분리시키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며 상실의 아픔을 이겨 나간다.
부모와 자녀는 운명공동체도 아니고 지금 시대는 연좌제를 집행하던 전통사회도 아니다. 장기적으로 부모라는 극한 직업에도 현실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이로써 부모와 자녀는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건강한 사랑 위에서 각자의 삶에 주체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궁극적으로 보다 유연한 관계로 다가설 수 있다. 부끄럽게도 내 부모님 역시 극한 직업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새해에는 조금이라도 해방시켜 드릴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
2024-01-1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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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에 바란다
부산시는 지난해 12월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 출범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 거래소 운영을 담당할 우선협상대상자로 부산BDX컨소시엄이 선정됐다. 세계 최초로 공공성을 갖춘 디지털자산거래소를 열겠다는 부산시의 의지가 현실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국내외 우려의 시선과 날선 비판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게 추진한 결과에 대해 박수를 보낸다. 사실 가상자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자산에 대한 중앙정부의 곱지 않은 시선과 블록체인 업계에 불어닥친 한파로 인해 거래소 사업이 좌초되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해를 넘기기 전에 첫 삽을 뜨게 된 것이다.
BDX컨소시엄에는 IT기업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플레이어들이 참여해 사업 진행의 안정성, 그리고 확장성까지 두루 갖췄다고 평가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거래소 운영사 선정 과정에서 이 점이 주효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부산시는 우선협상대상자와의 협의를 거쳐 사업자를 최종 지정하게 되고, 올해는 그토록 고대하던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가 출범하게 된다. 그다음에는 자연스럽게 거래소 설립으로 인한 효과가 어떻게 될지로 관심이 옮겨가게 될 것이다. 여기서 부산 시민들과 지역 업체들의 바람이 이루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현재 BDX컨소시엄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면면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지금으로서는 컨소시엄에 참여한 업체 각자의 역할에 대해 파악하기 어렵지만, 부산 지역 업체들의 역할과 비중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컨소시엄에서도 다각도로 고려를 했겠지만, 지역 현안들이 논의의 대상이 되고 지역의 각종 정보와 의견이 수집·전달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은 컨소시엄에서 부산 지역 업체가 직접 참여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 기관과 공기업들의 지역 이전을 적극 추진해 왔고, 다양한 SOC 사업에서도 지역 업체들의 참여를 적극 권장해 왔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물론, 부산 지역 업체의 참여가 능사는 아니다. BDX컨소시엄은 부산에 본사를 두고 사업을 수행할 것이기에 부산 지역에 기여하는 유무형의 경제적 효과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신사업 성장 모델로 지역에서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한 효과와 기대를 사업자의 손에만 맡겨두기보다는 부산시도 일정 정도 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는 공공성을 갖춘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민간사업자들이 막대한 자기 자본을 투여해 영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사업이다. 따라서 거래소 시스템 구축과 운영에 경제성과 효율이 고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부산시는 그동안 민간 거래소에서 문제돼 왔던 시장감시, 상장심사, 예탁결제 기능이 별도 기구로 분리돼 상호 견제되는 분권형 거버넌스를 통해 공공성을 높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분권형 거버넌스는 블록체인 사업을 영위하는 부산 지역 업체들이 참여할 만한 기회가 되기는 어렵고, 그 자리도 공직자나 외부 유력 인사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지역 경제 파급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혹자는 실력 있고 검증된 업체들이 제대로 된 사업을 수행한다면, 지역에서 나눠 먹기식으로 사업을 꾸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얘기한다. 이에 백번 동의한다. 그러나 우선협상대상자에게 디지털자산거래소 사업을 맡기는 대신 공공성을 강조하며 부산 지역이나 부산 시민을 위한 조건을 제시하고 약속을 받아낼 수 있는 시기는 현실적으로 지금 밖에 없다. 그렇기에 BDX컨소시엄 측이 나서서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를 재차 강조해 주길 바라는 바다.
고난도의 업무나 일을 배울 때, 해당 업무에 익숙한 선배나 전문가로부터 배우는 것이 빠르고 확실하다. 혼자서 할 때보다 성장 속도가 비교할 수 없이 높기 때문이다. 부산 지역 업체들도 스스로 투자와 노력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기왕에 부산시가 엄청난 공을 들여 업계 스타들을 데리고 온다면 이참에 성장성 있는 부산 기업들도 함께 경험하고 배우며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면 일석이조의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사업자에게 맡겨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 기업도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부산시가 그 장(場)을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
2024-01-0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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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오늘의 운세
〈부산일보〉 홈페이지 우측 한 편에 ‘부산일보 오늘의 운세’ 배너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 사주나 운세에 큰 흥미를 갖지 않는 편이지만 웬일인지 한번 클릭해 보고 싶었다. 최근 각종 연말 모임에서 ‘내년 운세 보고 왔다’거나, ‘연말 정리 겸 내년 운세는 꼭 봐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 것 같다. 내심 궁금해져서 클릭해 보았는데 아쉽게도 생각했던 말이 쓰여있지 않았다. 운세가 좋다거나 나쁘다는 직관적인 메시지 대신에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한 날’이라는 생활 지침 같은 문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싱겁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자꾸 생각났다. 비단 오늘뿐 아니라 매일매일 기억하면 좋을 말 같았다.
누군가는 신년운세로, 누군가는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비는 소원으로, 누군가는 교회나 성당에서 간절히 기도하며 새해를 맞는다. 제각기 모습은 다르지만 마음은 같을 것이다. 2023년 한 해를 살아낸 스스로와 주변인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2024년 새해를 희망차게 열고 싶다는 그 마음 말이다. 새로운 해에 모든 일들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바람은 작년 한 해가 쉽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는 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2023년은 모두에게 어려운 한 해이기도 했다.
지난해 많은 사람들 힘겨운 삶 겪어
국가가 최소한의 안전망 지원해야
정부 역할 감시하는 것 매우 중요
그래서 신문·뉴스 챙겨 보겠다 다짐
총선에서의 권리 행사도 필수적
이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길
2023년에는 유독 ‘경제 한파’라는 단어가 많이 보였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예측한 한 해 경제성장률은 1.4%로, 잠재성장률인 2.0%에도 못 미쳤다고 한다. 2023년 성장률이 낮은 대표적인 이유로는 수출 감소도 있고 국제정세의 여파도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등 세계 시장이 침체되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중동 분쟁까지 겹쳤다. 물가가 치솟아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렸고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875조 원을 넘어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온갖 경제 지표들이 마이너스를 가리키고 있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2023년이 마무리된 것이다.
경제 뉴스를 보면, 2024년을 시작으로 한국이 저성장 장기화 기로에 놓일 것이라는 전망만을 말하고 있다. 경제가 얼어붙고 소비가 줄면, 중소기업들의 고용이 둔화하고 소상공인들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결국 서민들의 삶도 힘들어진다는 뜻이다. 어떤 뉴스를 찾아 읽어 봐도 뾰족한 방안은 없다.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버텨나가야 할까. 결국 나아질 때까지 버티는 방법밖에는 없어 보인다.
버티는 것은 우리의 몫이지만, 버틸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망을 지원해 주는 것은 정치의 몫이기도 하다. 얼어붙은 민생을 챙기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온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새해 연하장에서 ‘국민의 말씀을 경청하고 민생을 더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전했다. 기대했던 부산 엑스포 유치가 아쉬운 결과를 맺고 연이은 해외 순방으로 지지율이 하락한 데 대한 최소한의 방어인 듯하다. 윤 정부의 방향성이 ‘가치와 이념’에서 ‘민생과 현장’으로 변경된 것은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쉬운 행보만을 보여왔는데, 새해에 민생을 챙기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꼭 이뤄졌으면 한다.
그런 정부를 잘 감시하는 게 어려운 시절을 통과하는 국민들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험담이지만, 힘들수록 어려운 뉴스는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정말 정부가 민생을 위한 정책들을 내놓는지, 사회의 기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제대로 비판할 수 없고 알맞은 방향성을 제시할 수도 없다. 이는 개인적인 반성이다. 화가 나는 뉴스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고,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순간에도 외면했다. 그게 당장의 나를 편안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한 명의 국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올 한 해 동안은 열심히 뉴스를 챙겨 보고, 신문을 읽겠다고 다짐했다. 어렵고 답답하고 화가 나는 뉴스일수록 천천히 여러 번 읽어보려고 한다. 다가오는 4월 총선에서도 꼭 권리를 행사하고, 정부가 민생에 도움이 되는 행보를 보이는지 감시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겠다. 물론 나 한 명 노력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마음도 있지만 어려운 상황이 돌아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한 명의 국민으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의 운세’가 내게 말했듯이, 나는 나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그 마음을 내 가족에게로 넓히고, 친구들에게로 넓히고, 우리 동네 과일가게 아주머니와 네일아트 사장님에게도 넓혀서 그들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2024년을 맞이하고 싶다. 그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세상 돌아가는 일을 더 적극적으로 살피고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그게 결국 세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드는 일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2024-01-01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