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승현의 남북 MZ] 탈북 MZ, 남북 통합의 ‘가교’로 부상
제22대 4·10 총선에서 탈북 공학도 출신의 청년이 국회에 입성했다. 탈북 MZ세대 출신의 국회의원은 21대 국회를 포함해 지역구와 비례대표에서 모두 4명이 당선됐다. 이는 탈북민의 정치 참여 다변화와 탈북 MZ세대의 부상을 알리는 움직임이다.
그뿐이 아니다. 작년에 미국 워싱턴DC에서 한미 양국의 탈북민들이 참여하는 ‘젊은 탈북민 지도자 총회’가 열렸다. 참석한 북한 출신 청년 10명은 변호사, 건축설계사, 작가, 기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영화감독, 정치인, 연구원 등의 직업으로 각자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젊은이들이었다. 이들 대부분이 용산 대통령실은 방문해 보지 못했지만 백악관, 국무부, 의회, 싱크탱크 등의 미 당국자와 관계자들은 청년들을 주목했고 백악관·국무부 등에 초청하여 원탁회의를 가졌다.
총회는 그동안 양국 정부의 대북 통일·북한 인권 정책 수립 과정에서 사실상 소외됐던 기성 탈북 세대를 대신해 탈북 후 정착의 경험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부상한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경청하고자 마련됐다. MZ세대 탈북 청년들의 지향성은 이들의 발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 통역을 앞세우고 무대에 올라 북한 인권 실태를 고발하던 이전 탈북민들과 다르게 청년들은 유창한 영어와 한국어로 ‘자유’와 ‘평화’에 대해 열띤 연설을 했다.
특히 기성 탈북민 세대는 자신들의 경험을 국제사회에 눈물로 호소할 수밖에 없었지만 고등교육과 다양한 경험을 보유한 탈북 젊은 세대는 분단을 뚫고 온 각자의 생존 투쟁을 서술할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들에 관심을 두는 것은 남북 모두를 경험한 MZ세대라는 독특성도 있지만, 향후 한반도 문제의 새로운 해법을 국제사회에 제시할 수 있는 차세대 리더 그룹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2023년 12월 통일부 발표 기준으로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총 3만 4078명이며 이 중 30대 이하 비율은 72%(한국 도착 당시 나이를 기준)에 달한다. 상당수가 젊다 보니 탈북 청년의 적응은 빠를 수밖에 없다.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한국행이고 남북 두 체제의 경험자이기에 그들의 강점은 명철한 두뇌와 도전 정신일 수밖에 없다. 탈북민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입국한 지 20여 년 만에 청년들을 중심으로 의사, 변호사, 교수, 박사, 공무원, 종교인, 국회의원, 언론인, 은행원, 창업가 등 전 분야에 촘촘히 진출했다. 하지만 이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북한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그만큼 한국 사회에 잘 스며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젠가 탈북민 주무 부처인 통일부 관계자가 한국 언론은 탈북민의 성공적인 정착 사례보다는 실패 사례에만 적극적으로 반응한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듯 이들 속에도 다양한 고민과 선택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도 있다. 사회주의 체제에 살던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쉽게 적응할 수 없음을 참작하더라도 사회 적응 압력과 관습적 제약 등을 이겨 낸 탈북 MZ세대의 놀라운 적응력은 우리 사회가 발견 못한 아주 희소한 사례일 수 있다.
북한 장마당세대이면서도 한국의 대학에서 MZ세대를 가르치고 있는 필자의 관점에서 북한의 생존 터전인 장마당과 한국 자본주의 경쟁 체제를 동시에 경험한 탈북 MZ의 역할은 한쪽에만 머물 수 없다. 북한의 장마당세대에는 이들의 도전이 의식 변화의 촉매제가 될 수 있고 한국의 MZ세대는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상대를 포용하는 토대가 된다. 이것이 교집합을 이룰 때 남북의 MZ는 자신들의 삶을 한반도 안에서 함께 계획하고 상생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영호남 유일의 탈북 학생 대안학교인 부산 강서구 장대현학교를 찾은 주한독일대사 미하엘 라이펜슈툴은 학생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무려 16년 동안 독일 연방 총리를 역임한 동독 출신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와 함께 역시 동독 출신인 요아힘 가우크 전 대통령과 같은 정치인이 있었기에 독일 통일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메르켈 전 총리와 가우크 전 대통령이 통일 이후 통일국가의 지도자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독일대사가 말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통일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통일 전후의 통합이며 이를 감당할 인재가 중요하다.
남북한 주민 간 소통과 이음에 기여할 수 있는 탈북 MZ세대는 치열하지만, 의미 있는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들을 주목하는 이유를 상기하면 한국 사회가 관심을 둬야 할 이유가 된다.
2024-04-16 [18:08]
-
[홍순연의 도시 공감] 도시민이 찾는 새로운 즐거움, 수변공간
부산은 바다의 도시다. 16개 구·군 중 10곳이 해안에 접해 있으니 부산의 어느 곳을 지나더라도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바다는 도시민에게 관망의 대상이지 직접적으로 접근이 허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영도의 흰여울 문화마을과 절영해안산책로는 1990년대만 하더라도 군사지역으로 묶여 접근이 어려운 공간이었다.
지금은 해안가를 따라 걷다 보면 동삼동 중리 해변까지 연결돼 해녀들의 성게김밥도 먹을 수 있다. 이렇게 바다를 느끼며 걷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지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지금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리항은 어떤가. 작은 횟집들이 즐비한 조그만 어촌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높은 아파트와 호텔이 수변공간 인근에 들어서 항구와 주거 시설이 공존하는 공간이 되었다.
사실 우리는 수변을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없었던 것 같다. 예로부터 섬이나 해안가에는 왜구의 침입이나 습격을 막기 위해 해안 마을이나 주요 섬의 백성들을 내륙으로 이주시키는 공도(空島)정책이 펼쳐졌고, 포구나 항구는 수산물의 저장과 어항 보호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막았다. 도심은 항만을 중심으로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항만 시설과 산업 시설 그리고 넓은 산업도로로 인해 바다와 간격이 벌어지면서 시민들의 바다 접근은 더 어려워졌다. 그러다 보니 “부산하면 바다 아니가”라고 하지만 해수욕장을 제외하고 전망의 용도 외에 바다를 활용할 방법을 찾는 일은 항만공사나 어촌계 등의 몫이 되어버렸다. 그러는 사이 바다는 우리의 인식 밖으로 밀려났다.
사실 해수욕장을 제외한 부산의 수변 지역은 시민들이 즐기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북항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이런 인식에 변화가 일어났다. 2009년 해양수산부와 부산항만공사 주도로 북항 토지이용계획이 수립될 당시 시민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라운드 테이블에서 배후 도시의 접근성과 수변공간 활용에 관한 많은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이 과정에서 원도심과 북항을 연결하는 기본 축이 구축되고 접근성 향상 방안이 논의됐다. 부산의 원도심에서 수변까지 접근이 가능한 지금의 모습이 여기서 형성된 셈이다.
최근엔 이순신대로가 개통돼 북항재개발로 바뀐 공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 구간을 지날 때마다 1부두의 건축물과 오래된 창고 그리고 새롭게 조성된 북항마리나와 건설 중인 오페라하우스의 모습을 본다. 역사·문화적인 장소성과 새롭게 구축된 공간이 앞으로 어떻게 활용될지 궁금하다. 그리고 덱을 통한 부산역과 도심 간 이동이 수월해지면서 북항은 앞으로 부산의 대표적인 수변공간으로 시민들의 새로운 활동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싱가포르는 수변공간을 중심으로 시민들에게 다양한 활동 무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바다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클라키(clarke Quay) 구역의 경우 예전엔 물류 창고가 밀집한 곳이었으나 역사·문화 자원을 중심으로 경관적 요소를 보존·활용하는 방식으로 지역의 고유성을 지키면서도 동시에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또 주변의 보트키(Boat Quay)와 연결해 수변공간을 걷고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외 생태 다양성을 위한 ‘그린 앤 블루 플랜(Green and Blue Plan)’이라는 50년 단위의 장기 도시계획도 눈여겨 볼 만하다. ‘생태’ ‘휴양’ ‘기능’ 수요를 맞추는 녹지와 수변공간을 조성하려는 계획인데 시민의 휴양 공간과 생태학적 개선, 도시 활력 제공의 측면에서 균형감 있는 계획을 수립 중이다.
북항 또한 역사·문화적 공간과 새로 조성되는 공간의 조화를 염두에 둔 세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수변공간을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지도 고려해야 한다. 아직 익숙하지 않기에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이 북항이라는 공간을 바탕으로 시민들의 바다 접근성을 높여 주는 징검다리가 되어야 한다. 이를 계기로 부산의 수변공간에서만 맛보는 즐거움을 제공해 주었으면 한다.
부산에는 3개 국가어항과 13개 지방어항, 12개 어촌정주어항 등 총 50개의 어항이 해안선을 따라 산재해 있다. 지금은 기능적인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바다의 개념을 바꾸는 공간으로 수변 계획이 수립되었으면 한다. 즉 바다는 언제나 위험한 곳이 아니라 해양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다만 현재의 어항 기능과 향후 새로 시도되는 기능 간 조화를 위한 과정도 놓쳐서는 안 되겠다. 앞으로 기장에서 다대포까지 획일적인 모습이 아니라 생태와 사람 그리고 다양한 역사·문화적 지역성을 살린 수변공간 계획을 수립해 시민들이 바다도시의 아름다움을 한껏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
2024-04-09 [17:59]
-
[유인권의 핵인싸] 사회의 물리현상-민주주의의 균형추
사회에도 물리적인 성질이 있다. 쉽게 달아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경향이 그렇다. 물질이 뜨거워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비열이라고 하는데, 비열이 작을수록 쉽게 덥혀지고 쉽게 식는다. 비열이 클수록 천천히 달아올라 오랫동안 지속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 사회는 비열이 작은 셈이다. 비열은 에너지가 전파되는 속도와 관련이 있다. 확산 속도와 밀도(단위 부피당 질량)가 커질수록 비열은 작아진다. 우리 사회의 질량(변화에 저항하는 정도)도 그다지 큰 것 같지 않다. 비교적 능동적으로 변하는 편에 속하는 듯하다.
반면 확산(전파)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핫’ 뉴스로 온 나라가 뜨거워지는 것이 순식간이다. 이 전파 속도는 매질에 따라 정해지는 고유양인데, 매질의 밀도에 반비례하고 장력에 비례한다. 가늘고 가벼울수록, 또 팽팽하게 당겨질수록 속도가 커지고 그 진동수도 커진다. 헬륨처럼 가벼운 매질에서 같은 힘을 주어 말하면 속도가 커지고 진동수가 올라가는 것(높은 소리가 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즉, 이 사회는 비교적 가벼운 데 반해, 사회적 빈부나 이해의 격차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은 상당히 커서 전파 속도가 매우 커진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는 우리 사회에 딱 맞는 전략 산업인 셈이다. 변화무쌍한 현대 사회에서 나름 상당한 강점이다.
예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정보 공유와 의사소통이 빨라졌는데도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커지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자석의 극성과는 정반대로, 같은 성향끼리는 당겨서 잘 뭉쳐지는데 다른 성향끼리는 서로 상극이 돼 멀어지고 소통이 단절되는 경향이 점점 더 짙어진다. 정보화가 고도화될수록 사회의 공감대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극성에 따라 편향된 정보로만 똘똘 뭉친 양극화된 집단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는 양극화된 30%씩을 제외한, 정치적 성향이 미미한 부동층 40%를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늘 관건이 된다. 결국 결정권은 중도 40%에게 있는 셈이다. 어떻게 결정돼도 양극화된 30%는 그대로 있어서 사회적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이 부동층은 비교적 가볍고 온갖 정보에 민감해서 짧은 시간 동안 쏠림 현상이 상당하다. 이는 반도체를 이용한 신호제어의 원리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된 두 집단은 각기 배타적 정의감에 불타고 있는데, 서로 반대편을 불의로 규정하고 있어서 타협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이견이 존재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단지 유념할 것은 이 사회의 균형추가 각기 정의를 주장하는 양극단이 아니라 부동층의 쏠림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거철이 끝나면 대부분의 경우 부동층은, 마치 작용에 대한 반작용처럼, 본인들의 선택을 후회한다. 왜냐하면 마치 선거가 어느 한쪽의 ‘정의’에 대한 진지한 판결을 내린 것처럼 돼버리기 때문이다. 실은 정의감에 도취된 다른 한 편에 대한 적절한 차이의 경종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 결과 잠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졌던 균형추는 다음 선거에서 부동층의 반작용에 의해 반대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어쩌면 정치적 신념이 약하거나 없는 부동층의 불안한 쏠림이 염려스럽고 못 미더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이들에 의해,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이, 사회는 균형을 잡게 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저울추를 들고 좌우로 움직이며 중심을 찾아가듯이, 오른쪽으로 혹은 왼쪽으로 조금씩 왔다 갔다 하면서 서서히 균형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닌가 한다.
우리는 해방 이후 40여 년 동안 균형추 없이 한쪽으로 편향된 역사적 경험을 가졌었다. 1990년대 이후 비로소 민주주의가 정착하면서 그나마 자연스럽게 여당과 야당을 오고 가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균형 잡기의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데, 이는 평형의 중심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거 이후가 훨씬 더 중요하다. 어느 한쪽이 정의로움을 공인받았다고 착각하는 순간 국민은 이를 여지없이 알아챈다. 어느 쪽이든 정의감에 도취된 나머지 절대 다수인 70%의 국민을 ‘불온 세력’으로 적대시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단연코 말하건대 정답은 없다. 자신만이 정답이라고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명백한 오답이다. 양비론도 불가지론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진실에 가까워지는 위대한 민주적 공존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국민을 이기는 민주정부는 없다.
2024-04-02 [18:14]
-
[김대래의 메타경제] 압축성장은 갈등도 압축한다
한국 사람들은 빠른 것에 익숙하다. 느린 것은 못 참는다. 한국 사람들의 원래 성정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고도성장 과정에서 익힌 태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조선시대 오랜 기간 동안 아주 서서히 성장해 왔던 것을 돌아보면, 빠른 것에 대한 태도는 최근 몇십 년간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배어버린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 ‘빨리빨리’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고도성장을 가능케 한 하나의 원천이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고도성장의 사례로는 우리 앞에 일본이 있었지만, 일본은 우리보다 수십 년 앞선 산업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고도성장 경험은 충분히 더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
이러한 고도성장을 우리는 흔히 압축성장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자주 써 왔으면서도 사실 그 의미를 깊이 따져 보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긴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을 짧은 시간 안에 달성하는 것이 압축이다. 그런데 이 압축이 경제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도 동시에 작용한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실제로 경제에서의 압축성장은 경제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동시에 압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사회적인 갈등마저도 압축한다. 산업화로 경제는 엄청나게 달라졌지만 우리 의식의 상당 부분은 여전해 과거에 발을 디디고 있다. 그 결과 신세대와 구세대 사이에 화해하기 어려운 인식의 차이가 생겨버렸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근본을 뒤흔들고 있는 젠더 문제도 바로 그런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기업과 정치에서 여성들이 활동할 공간은 여전히 좁다. 더 일반적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준비와 의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해외에서 우리의 저출산 위기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임을 지적하는 논의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식은 그동안 정부가 수백조 원의 돈을 저출산 극복에 쏟아부었다고 하지만,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압축성장으로 경제발전에는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반되어야 하는 사회제도적 변화를 동시에 이루어내지 못함으로써 그 대가를 뒤늦게 역시 압축적으로 겪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이라도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그동안의 성장에 대한 성찰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갈등과 간극의 극복이라 할 것이다.
나라의 존망이 걸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갈등의 해소와 간극의 극복을 최우선의 국정 과제로 제기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젠더 문제와 같이 섣불리 꺼냈다가는 역풍이 불어 정치적 인기나 득표에 별로 득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갈등을 수습하기보다는 갈등에 기대어 정치적 자산을 마련하려는 구태도 보인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남녀 간 그리고 세대 간 갈라치기가 바로 그런 나쁜 행태들이다.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어떤 비전과 정책을 가지고 경쟁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조만간 공약의 윤곽들이 드러날 것이지만, 아마도 항상 그래왔듯이 주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수많은 개발 공약이 또다시 난무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도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더 성장하여야 하고 그것도 더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는 사고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 시간의 성장 과정을 돌아보면서 압축성장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가르침을 얻는다. 오히려 천천히 갈등을 풀어가면서 지속해서 그리고 오래도록 성장 동력을 유지하는 것이 경제발전과 사회적 존립을 동시에 보장하는 길임을 깨닫는다. 그러잖아도 최근 우리 경제는 잠재성장률이 파국적일 정도로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잠재성장률 추락의 깊은 원인도, 말은 크게 안 하고 있지만, 역시 저출산에 있다.
고도성장 과정에서 압축되었던 갈등이 이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빠르게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압축의 역량은 거꾸로 갈등을 빠르게 해소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우리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그것을 우리 사회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실행할 수 있는 국민적 동의와 역량을 모으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지만 이번 총선이 그동안 함께 응축되었던 사회적 갈등들을 제대로 돌아보면서, 역으로 압축적으로 풀어가는 방법을 찾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2024-03-26 [17:55]
-
[조소영의 법의 창] 4·10 유권자의 선택을 위한 또 하나의 기준
22대 총선의 달력 없이도 유권자들에겐 지금이 선거철임을 실감하게 하는 현상이 있다. 후보자들의 시도 때도 없는 선거운동 정보 문자 알림에 노출된 과도한 피로감이 그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괴롭힘은 한두 번의 선거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이 상황은 현재로선 나아질 기미가 없다.
무한적 당선 경쟁을 해야 하는 총선 후보자들이 여전히 유권자들의 괴로움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가 뭘까? 우선 선거라는 현실에서는 시간·장소의 제한이 있는 다른 방법에 비해 선거운동 정보의 문자 전송 방법이 비용 대비 유권자 도달 정도가 압도적으로 높아서 후보자들이 선호하는 선거운동 방법이라는 점이다.
유권자 괴롭히는 선거운동 문자 폭탄
국민 권리 침해 해소할 법적 장치 필요
개인정보 수집 제한 입법 번번이 무산
이번엔 제도 개선할 후보 잘 골라내야
다음 이유는 제도적으로는 이 상황을 규율할 수 있는 관련 규정이 선거법에 없어서다. 현행 공직선거법에는 유권자 전화번호 입수 방법에 관한 규정이나 제한이 없다. 그런데다 후보자에게 선거운동 정보를 자동 동보통신 방법으로 문자메시지 전송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20명을 초과한 동시 수신에 관한 제한을 두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20명 이하를 수신 대상으로 하는 메시지는 발송 횟수의 제한이 없는 것이 된다. 그래서 문자 발송 대행업체의 주된 업무가 20건씩 나눠 보내는 문자전송서비스 제공이라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에선 유권자 스스로 선거 문자 차단 방법을 공유하거나 문자를 발신한 곳에 전화를 걸어 전화번호 수집에 대해 따지는 일도 적잖고, 당사자의 동의 없는 전화번호 수집은 개인정보 침해가 된다고 여겨 ‘118 상담센터’에 개인정보 침해 신고를 하기도 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 ‘118 상담센터’에 따르면, 21대 총선 시 선거운동 관련 개인정보 침해 신고 민원 수 5077건은 20대 총선 때의 두 배였고, 제8회 지방선거 때는 8480건이었다고 한다. 정치 지평의 극단적 양분화, 팬덤 정치에의 의존적 정치 현상에 대한 우려가 깊은 이번 총선에서는 더한 상황이다. 원한 적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유권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선거운동 정보 문자는 ‘공해’이자 ‘폭탄’이다.
물론 날아온 문자메시지는 안 읽으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번번이 깜박이는 문자 도달 신호는 일상의 큰 번거로움이 되고 있다. 공직선거법은 수신 거부 의사표시를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문자에 담으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수신 거부 신청 절차에 관한 규정은 없다. 그래서 문자 하단의 차단 안내 절차는 실행이 까다롭고 시간이 걸리는 게 현실이다. 이건 민폐다.
이런 국민의 불편은 권리 침해로 직결된다. 그래서 선거 현장을 변화하게 할 입법적 장치의 설계가 필요하다. 행정안전부나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공직선거법 개정 관련 의견으로 공직선거 시 개인정보 처리 관련 제도 개선에 관한 협조 요청을 하는 것도 결국엔 공직선거법 개정이 해결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간 국회에서도 문자 폭탄 공해 방지를 위한 법 개정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8년 이상민 의원이 대표 발의했던 개정안은, 후보자가 전화·문자 등을 통해 선거운동을 하려는 경우 그 사정을 선거구민에게 알리고 동의를 받아 전화번호 등을 수집하게 함으로써 개인정보 수집 근거를 규정했고, 동의 없이 전화번호 등을 수집한 자에 대해 5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처벌 규정을 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되었다.
21대 국회에도 전화 선거운동의 경우처럼 야간부터 새벽 시간대 중에는 선거운동 정보 문자 전송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이 개정안 역시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한 채 의회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될 예정이다.
개인정보 제공 동의 절차를 통해 수집한 유권자의 연락처를 정당이 제공하는 시스템 도입이나 선거운동 기간 내에 제한적으로 해당 지역의 전체 유권자 연락처를 안심번호로 제공하되 시간과 횟수를 제한하는 등의 대안적 방안들을 입법해야 하는 건 이제 다음 국회의 몫이 되었다.
그러니 새로운 국회 구성권자인 우리 유권자들이 4월 10일 유권자다운 선택을 잘해야만 한다. 번번이 우리 유권자들이 감당해야만 했던 이 불편함을 법제적으로 시정하기 위한 관심과 의지를 가진 그들을 잘 골라내야 하는 것이다.
2024-03-19 [18:05]
-
[문우석의 기후 인사이트] 북극해의 이중성: 지킬과 하이드
빛과 어둠, 선과 악, 양립할 수 없는 양극성의 힘, 그리고 그 이중성….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인간 본성의 이중성을 탐구하는 깊이 있는 작품이다. 지난해 필자는 ‘북극해와 지구온난화’를 주제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계절에 따른 북극해의 너무나도 상반되는 모습들을 청중에게 어떻게 쉽게 전달할까’를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딸아이가 읽던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강연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북극의 해빙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예보하는 것은 마치 지킬과 하이드처럼 이중적인 사람의 행동을 미리 내다보는 것과 비슷하다. 한때는 자상하고 침착하며 배려심 많은 지킬의 모습을 보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돌변하며 화를 참지 못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하이드의 모습이 북극해의 변화 모습과 참 많이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북극해의 이런 성질은 북극의 해빙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예측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극해의 모습은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이 너무나도 다르다. 정반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여름철 북극해에는 24시간 태양이 비춘다. 0도에 가까운 온도에 눈이 녹아내려 곳곳에 아름다운 ‘물 웅덩이들’(melting ponds)이 생겨나고 겨울철 바다를 덮고 있던 얼음들이 녹으며 자연의 신비로움을 품은 짙은 파란색의 바다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와 반대로 겨울은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이 지속된다. 따뜻한 열기를 제공했던 여름철 태양이 사라지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뼈까지 날카롭게 스며드는 추위가 밀려온다. 빠른 속도로 얼음이 자라고 끝이 보이지 않는 얼음 세상이 된다.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하이드의 성질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운 여름철 북극해의 모습에서 나온다. 여름철 북극해에 내리쬐는 햇빛은 표면의 색에 따라 그 흡수율이 달라진다. 얼음이나 눈처럼 하얀색은 약 70%가 넘는 태양 에너지를 반사시키고, 바다와 같이 짙은 색은 약 80%에 가까운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게 된다. 여름철 바다를 덮고 있던 얼음이 녹으면 태양의 열을 효과적으로 흡수하는 조그맣고 아름다운 물 웅덩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얼음 사이사이로 조그맣게 드러난 물 웅덩이들이 높은 흡수율로 태양열을 받아들이고 이 열은 그 주변의 얼음을 재빠르게 녹이기 시작한다. 더 빨리, 더 깊이, 더 많은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 이렇게 얼음이 녹고 바다가 드러나면 조그만 일에도 하이드가 폭발적인 화를 내며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듯, 북극해의 얼음도 급격히 빨리 녹으며 순식간에 많은 양이 사라지기도 한다. 조그만 물 웅덩이처럼 너무나도 작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니 언제 어떻게 얼마나 불안정한 상황과 반응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가을이 찾아오면 햇빛이 점차 사라지며 광기 어린 하이드는 조금씩 지킬 박사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열을 주는 햇빛이 사라지고 북극해는 장주기파를 통해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잃어간다. 이 과정은 굉장히 안정적인 과정이다.
여름철 얼음이 많이 녹았다면 빠른 속도로 얼음을 생성시키고, 여름철 얼음이 평소보다 덜 녹았다면 느린 속도로 얼음을 생성시켜 결과적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얼음의 양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광기 어린 하이드가 집안의 물건을 던지고 부수어 놓은 것을 돌아온 지킬 박사가 그 던져진 물건들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집안의 곳곳을 청소하면서 예전의 모습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북극해는 매년 정기적인 주기성을 바탕으로 일정한 시간에 불안정과 안정을 되찾으며 균형을 회복한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온난화는 이러한 북극해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여름철 하이드의 변덕스럽고 폭력적인 성격이 더 강화되고 있으며 지킬은 이를 되돌리려고 더욱 바빠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킬이 마지막을 자살로 마무리한 것처럼 어느 순간 이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다. 이것이 필자를 포함한 우리 과학자들이 걱정하는 면이다.
북극해가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세심하게 관찰하고 이를 통해 가까운 미래의 상황을 예측해야 한다. 온난화라는 외부적인 요인이 없어도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조그만 일에도 불 같이 화를 내는 하이드를 막아내는 지킬의 시스템을 더욱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올 겨울도 지킬을 만나려 영하 40도의 추위와 사나운 파도를 뚫고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향해 북극으로 과학자들이 떠난다고 한다. 그들을 응원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2024-03-12 [18:03]
-
[주승현의 남북 MZ] 북한 붕괴론과 한국 소멸론
한국에서 북한 붕괴론은 지난 30여 년 동안 5번 정도 거론됐었다. 첫 번째가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던 1990년대 초반이고 두 번째가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이다. 세 번째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2008년이고 2011년 김정일 사망과 김정은 등극 시기에 또 한 번 북한 붕괴론이 등장했다. 다섯 번째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는데 그즈음에 ‘통일 대박론’ 구호가 우리 사회를 휩쓸었고 통일 비용 계산과 통일 편익 산출 경쟁도 벌어졌다. 요즘 다시 북한 붕괴론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정작 국민들은 시큰둥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북한이 붕괴한다면 우리에게 닥칠지 모를 알 수 없는 재앙을 경계하는 심정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작년부터 외신은 ‘한국 소멸론’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다 아는 것처럼 저출산이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은 소멸하나?(Is South Korea Disappearing?)’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출산율이 흑사병이 창궐했던 14세기 유럽의 인구 감소를 능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국가의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CNN도 저출산에 따른 한국의 병역자원 부족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한국이 50만 명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 한국군의 새로운 적(敵)으로 떠올랐다고 CNN은 분석했다. 앞서 뉴욕타임스는 한국이 병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합계출산율(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이 한국보다 배로 높은 북한이 언젠가 남침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지난해 우리의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인구 유지에 필요한 2.1명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외신의 지적대로 한국 저출산의 속도와 지속 기간은 전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여서 유례없는, 역대 최저, 세계 꼴찌 등의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다. 올해 합계출산율은 지난해보다 더 떨어진 0.6명대로 예상한다. 북한의 출산율은 어떠한가. 유엔의 ‘2023 아시아태평양 인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합계출산율은 1.8명으로 집계됐는데 북한도 출산율 내림세에 있다. 다만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 0.72명에 비교하면 북한은 그 배 이상 수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 북한 인구도 2616만 명(통일부 발표)으로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 시기 2400만 명 수준과 비교하면 인구 증가세를 이어 가고 있다.
정말 북한이 한반도에서 먼저 붕괴할 것인가. 한국이 지구상에서 먼저 소멸할까?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남북의 위험 경고음이 증폭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북한 붕괴론과 한국 소멸론의 이면에는 분단과 경제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북한 붕괴론은 고립과 경제 파탄에서 기인하며 한국은 섬 같은 환경에서 지나친 경쟁, 청년들이 감당할 수 없는 집값과 사교육비 등이 초저출산을 초래했다. 그리고 이 중심에 있는 세대가 남북의 MZ세대이다. 북한에서 경제난 이후 태어나 성장한 세대를 ‘장마당 세대’라고 하는데 대규모 아사 사태를 목격한 M세대는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고 있으며 ‘장마당’을 통해 성장한 Z세대는 시장과 한류의 영향을 받아 풍요로운 통일을 꿈꾼다. 반면 한국은 청년층이 겪어야 할 경쟁 압력과 취업과 주거, 사교육비 등의 냉혹한 현실로 서서히 가라앉는 배에 비유된다. 결국, 한반도 분단 상황에서 남북 MZ세대의 상황은 공통으로 녹록지 않은 것이다. 사실 북한 문제의 해결이든 한국 저출산 해법의 등장이든 전 국가적으로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도 10년이나 20년 이내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향후 북한은 ‘장마당 세대’를 중심으로 사회·세대 구조가 재편될 것이고 한국에서 저출산의 당사자는 MZ세대이다. 남북 모두 필히 존폐가 달린 20~30년의 미래 개혁에 이들이 세워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 와중에 한국은 노동인구가 부족해 외국인 노동자의 대거 유입과 이민 활성화가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미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작년 출산율이 0.72명까지 추락했으니 인구문제는 우리가 원하든 아니든 바뀔 수밖에 없다. 5000년의 한민족·한 핏줄은 이제 남과 섞여 사는 것이 필요조건이 된 세기적·세계적 변화의 물결을 피할 수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더 회의적인 것은 난민과 이민노동자의 물결만으로 우리의 미래를 지켜 낼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붕괴와 소멸의 기로에서 한반도 분단 상황은 결국, 인구구조 재편을 포함하여 조만간 한반도에 닥칠 동시다발적이고 복합적인 쓰나미를 가속할 것이다. 저출산이든 경제나 안보 문제이든 남북이 분단 문제 해결로 대안을 찾아야 하는 생존의 경계선에 있는지도 모른다.
2024-03-05 [18:11]
-
[홍순연의 도시 공감] 지역소멸, 생활인구 협업으로 돌파구를
우리나라의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도시들은 최근 지역소멸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거, 의료, 교육, 생활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정책 수립에 노력하고 있다. 지역마다 소멸이 진행 중인 속도와 특성 등은 다르겠지만 대체적인 원인은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지역소멸의 주요 원인을 꼽자면 일자리로 대표되는 경제적 격차, 정주 여건 등 사회기반시설의 열악 등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 맞춤형 일자리 창출과 산업 진흥, 매력적인 정주 여건 조성 지원, 생활인구 유입을 통한 지역 활성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특히 지역에 체류하는 사람까지 그 지역의 인구로 여기는 새로운 인구 개념인 ‘생활인구’를 도입하여 관광 유형, 군인 유형, 통근 유형, 외국인 유형, 통학 유형으로 나누어 다양한 경로의 유입을 위한 방안을 찾고 있는 중이다.
부산 지역의 경우 인구감소 지역으로 동구, 서구, 영도구가 있으며 관심 지역으로는 금정구, 중구가 이에 해당한다. 현재 추세라면 앞으로 인구감소 지역은 도시 내에서 점점 늘어날 것으로 판단된다. 인구감소 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은 인구소멸 자금을 활용해 지역 특성에 맞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서구는 의료관광과 병원 일자리 확보에 초점을 맞췄으며 외국인 의료관광을 위한 인프라 확충과 간병인 등 지역민 일자리 창출에 재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영도구는 커피 복합문화 공간 조성과 이와 관련한 직업 교육을 통한 커피산업 육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 외에 해양치유센터 조성을 통한 지산학 연계 사업도 추진 중이다. 동구는 북항 재개발 이후 차츰 유입될 젊은 층을 위해 기금 전액을 보육환경 개선에 집중하여 투자하고 폐교 복합개발 등 도시재생사업의 연계성을 높이는 계획을 수립 중이다.
이밖에 부산창조혁신센터는 이들 지역에 워케이션센터를 운영하여 유입되는 생활인구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로 각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계획들은 기존의 관리형 도시계획과는 다르게 생활인구와의 파트너십이 필요하며 조직과 시스템, 커뮤니티 등 주체 간 협업이 중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생활인구가 지역의 다양한 생활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행정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통합 연계형 행정조직과 워킹그룹 형식의 부처 간 의견수렴 창구를 다각화하는 전략을 마련해 기본을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동네 사람 지도와 같은 사람 간 연결망을 통해 상인, 주민, 예술인, 청년 등 거주민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가 이어지도록 행정이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더불어 민간의 협력 기업들과 함께 지속해서 소통하고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는 방식으로 사업 모델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소 3년 이상 지역의 참여를 이끌 수 있는 유연한 조직으로 시스템이 전환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 내 이미 구축되어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와 지원 네트워크가 통합적인 시스템으로 결합되어야 하겠다.
기존에 마을 단위 사업이 많이 진행된 지역 또한 소멸 지역에 해당한다. 이러한 사업 기반을 바탕으로 이미 지역 내에는 여러 조직이 구축돼 있으며 그동안 운영 역량과 구성력 그리고 실천적인 활동을 유지하고 있는 조직들도 존재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를 새로 바꾸는 ‘리브랜딩’을 통해 조직력을 강화하고, 비즈니스적 접근 등을 통해 소멸 지역의 맞춤형 조직으로 전환해야 인적자원 확보가 가능할 것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협업 사업들을 연결한다면 지역 내 필요한 지원 네트워크 조직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생활인구 개념으로 조직을 연결한다면 지역 내뿐만 아니라 역량 있는 커뮤니티 간 연결도 더 활발해질 것이다.
작년 말 ‘영청넷’이라는 영도 지역 청년조직들의 네트워크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구성원들은 직장이 영도에 있어 청년 활동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본인을 소개할 때 “저는 물리치료사이지만 지금 문화기획자, 크리에이터 디렉터입니다”라고 소개하는 모습을 보고 이제는 자기 본래의 캐릭터 외에 또 다른 ‘부캐릭터(부캐)’의 시대가 됐음을 실감했다. 하나만 잘하는 전문가가 아닌 다양함을 엮어 내는 전문가들은 이미 지역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생활인구가 주요 의제 발굴과 참여자로서 지역 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된다면 비록 인구가 줄고 있는 지역이라도 크게 활기를 띠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지역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생활인구의 사회적 교류 등 다양한 활동 영역의 확장을 통해 지역 커뮤니티와 생활인구를 연결하는 협업모델 구축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았으면 한다.
2024-02-27 [18:08]
-
[유인권의 핵인싸] 더 중요한 것은 시간과 방향이다
세상 만물의 원리가 ‘움직임(운동)’에서 시작됐다는 것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움직임’이라는 것은 ‘시간’에 따라 ‘위치’가 변하는 현상으로 시공간의 의미를 모두 함축한다. 모든 과학은 결국 시공간에 존재하는 물질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들의 ‘변화’에 주목한 뉴턴의 직관이다. 일정 시간 동안 위치가 변하는 ‘움직임’을 정량적으로 나타낸 것이 바로 ‘속도’다. 눈을 감은 채로 조용한 차를 타고 있으면, 출발하거나 설 때를 제외하면 차가 아무리 빠르다 해도 그 움직임을 직접적으로 알아챌 수가 없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두 가지를 눈치챌 수 있다.
첫째, 움직임(운동)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눈을 뜨고 뒤로 움직이는 창밖을 봐야만 ‘움직임’을 알게 된다. 즉, 시간도 위치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전지구적으로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시간과 위치를 알려주는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도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상대론적인 보정이 필수적이다.
둘째, 움직임(운동·속도)의 ‘변화’는 절대적이다. 즉, 원래 정지 상태에서 일정한 속도를 갖기까지 속도가 증가하거나,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다가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가 줄게 되면, 우린 아무리 눈을 감고 있어도 이를 즉시 알아챌 수 있다. ‘외력(외부의 힘)’이 있는 것이다. 여기엔 속도가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방향’이 있다.
결국 우주의 비밀은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상대적인 것’과, 얼마동안 어떻게 변하는지를 의미하는 ‘변화율’에 있다. 바로 이 ‘변화율’을 다루기 위해서 새롭게 도입된 수학적 도구가 미적분학이며, 문·이과를 막론하고 ‘변화’를 다루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 두루 사용된다. 단순히 변화가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적절한 시간 동안 변화한 정도와 그 방향에 따라, 즉 순간 및 평균변화율의 부호와 크기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우리가 경험하는 이 사회현상들도 이것들을 벗어날 수가 없다. 즉, 부와 권력도 모두 상대적인 것이며, 모두가 얼마나 많아질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지만, 실은 ‘언제’ 몰릴 것인지,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될 것인지, 그 변화율이 훨씬 더 중요한 관건이다. 재화의 속성상 물가와 주식은 결국 언젠가는 오를 것이 분명하지만 언제 얼마나 오르느냐, 그것이 그때 나의 필요에 맞을 것이냐가 훨씬 더 중요한 관건이라는 뜻이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한다. 많이 보도된 내용이지만,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임상의사(한의사 포함)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평균 3.7명에 훨씬 못 미치며, 오스트리아(5.4명)나 노르웨이(5.2명)의 절반 수준이란다. 지난 정부 때부터 지적돼 온 얘기다. 한편, 전 국민 의료보험으로 낮은 의료수가와 열악한 전공의 근무환경 등 상당히 어려운 여건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모든 수험생들과 직장인들은 모두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다른 직업에 비해 월등히 좋은 경제적 여건과 직업적 안정성을 지향한다고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이런 특권이 부족한 의사 수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번번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은 의료인들의 강한 저항에 맞닥뜨려야 했다.
의료혜택이 필요한 국민의 입장에서 나라의 의료 인력이 충원된다는 일은 정말로 환영할 일이지만, 불과 1년 만에 3000명에서 5000명으로 3분의 2를 갑작스럽게 증원시킬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또 이렇게 한다고 해서, 특히 ‘상대적으로’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역·필수 의료에 대한 문제가 해결될 성질의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의대생이 갑자기 매년 2000명씩 증가하면 교수도, 교실도, 특히 실습이 중요한 의료교육 현장이 어떻게 수용가능할 것인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아무리 의료인들의 저항이 완강했던 탓이라지만, 지난 19년 동안 단 1명도 증원이 없다가 갑자기 일시에 3분의 2를 증원시킨다는 이런 충격적 변화율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보다 장기적인 방향성을 갖고, 변화율을 치밀하게 생각해서 차근차근 진행시키는 그림을 로드맵이라고 한다. 도무지 이 나라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로드맵이 없다. 작년엔 갑자기 아무 절차나 이유도 없이 막대한 연구개발비가 삭감되고, 줄어드는 학령인구와 심각한 지역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첨단 분야의 급격한 증원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등, 솔직히 이 정부의 종잡을 수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일들이 전혀 미덥지가 않은 이유다. 이렇듯 변화율이 요동치고 예측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면 시스템은 안정성을 잃고 혼돈에 빠질 확률이 크다. 선거를 앞둔 지금 시점에선 특히 더 그렇다.
2024-02-20 [18:09]
-
[김대래의 메타경제] 화합과 변화의 상공회의소를 기대한다
부산의 경제통계들을 살펴보다 보면 흐름이 크게 바뀌는 몇 개의 시기가 보인다. 이제까지의 흐름과는 다른 추이로 접어드는 시점인데, 그런 변곡점들을 거치면서 부산 경제의 성장과 장기 침체가 이어져 왔다. 통계에 따라 변화의 시기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여러 종류의 지표에서 공통으로 변화가 나타나는 몇 개의 시점이 있다. 그런 시기 가운데 가장 강력한 연도의 하나는 1989년이다.
이 시기는 한국 전체로서도 큰 변화의 해였는데, 임금의 상승과 노동조건의 개선으로 노동집약적 산업이 한계에 직면하면서 대전환이 시작되던 해였다. 한국의 초기 공업화를 이끌었던 부산의 핵심 공업이 바로 노동집약적 산업이었기 때문에, 한국 전체에서 나타났던 이러한 흐름은 부산에서 더 강력하게 나타났었다.
신발산업이 본격적인 타격을 입고 그로 인해 임금체불과 높은 실업률이 부산을 휩쓸기 시작한 해가 1989년이었다. 이전까지와는 달리 일자리를 찾아 부산으로 들어오던 사람보다, 일자리를 찾아 외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한 것도 1989년이었다. 광역시가 되는 1995년이 기장군의 편입으로 인구가 가장 많았던 해로 기록되고 있지만, 기장군 인구를 제외한다면, 사실상 인구의 정점도 1989년 무렵이었다.
그러한 1989년에 부산상공회의소는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창립 100주년 기념으로 부산상공회의소는 부산 경제의 역사를 정리한 ‘부산경제사’를 출간하였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두드러진 성과였다. 돌이켜 보면 그때까지 부산상공회의소는 많은 일을 하면서 시민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긴 것 같다.
부산직할시 승격 운동도 부산상공회의소가 주도하였고, 부산은행의 설립에도 상공인들의 노력이 컸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부산 경제에 위기론이 등장하였을 때 극복을 위한 정책들을 구상하고 제안한 것도 부산상공회의소였다. 강서의 넓은 땅에 새로운 공업단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것도 부산상공회의소였고, 부산 경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자료가 필요할 때 먼저 찾았던 곳도 상공회의소였다.
그러나 100주년을 기념하던 그 이후 부산상공회의소의 역할은 이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상공회의소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상공회의소의 역할이 더 컸던 것은 지방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방정부가 지역 경제의 발전에 필요한 정보 제공과 연구를 제대로 맡지 못하던 시절에는 상공인과 상공 단체들이 그 공백을 많이 메워 왔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지방정부는 좀 더 커지고 하는 일도 많아졌다. 지방시대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였고, 지역에 대한 구상을 지역 스스로 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1992년에 현재 부산연구원의 전신인 동남개발연구원이 개원한 것은 그런 점에서 커다란 전환이었다.
부산연구원이 생기면서 그동안 부산상공회의소가 담당해 온 연구의 기능을 사실상 지방정부가 맡는 시대로 변화되었다. 1998년 외환위기가 몰아치면서 모든 조직이 구조조정을 강요당하는 과정에서 부산상공회의소도 조직을 축소하였고, 그 과정에서 조사 기능을 많이 줄였는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부산시가 설립한 연구원이 있었고 또 중앙정부의 지역 경제 관련 조사 통계 기능이 점차 강화되었기 때문이었다.
부산상공회의소가 출범한 지 올해로 135년이 된다. 과거에 비해 역할이 줄어들었고 강력한 리더십에 의한 효율적인 조직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지난 수년 동안 상공회의소 회장 선거를 둘러싼 편 가르기로 인해 부산상공회의소의 이미지도 적지 않게 추락하였다.
그런 점에서 좀 있을 회장 선거를 앞두고, 이번에 또다시 부산 상공계의 분열을 걱정했던 시민들의 우려가, 부산 상공인들의 양보와 타협으로 해소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나아가 이제 시민들은 상공회의소가 화합의 바탕 위에서 이제까지와는 많이 달라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민들은 부산상공회의소가 지역 경제에 대해 더 많은 역할을 담당해 주길 바라고 있다. 기업들의 튼튼한 성장만이 부산 경제의 궁극적인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들어설 새로운 집행부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포용력과 실천력으로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해 가는 큰 변화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 부산상공회의소가 가지고 있었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DNA를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올해로 출범 135주년을 맞는 부산상공회의소가 큰 전환의 시험대에 들어서고 있다.
2024-02-13 [18:06]
-
[조소영의 법의 창] 개 식용 종식 특별법과 문화의 갈등
지난 1월 8일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약칭 개 식용 종식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실태조사나 개 사육 농장 등의 신규 운영 금지 등 공포일로부터 즉시 시행 예정인 규정도 있지만, 이른바 식용 금지 조항은 3년의 유예기간을 지난 2027년부터 누구도 개를 식용 목적으로 사육·도살·유통·판매할 수 없게 되었다.
20대 국회에서도 개 식용 금지를 위한 여러 법안이 발의됐으나 모두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 드디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대안이 채택된 것이다. 이 특별법은 개 식용 금지만을 담았던 이전의 동물보호법 개정 내용에 더해 개 식용 관련 업종에 대한 폐업 및 전업 지원 등을 통한 산업구조의 변경까지 포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개 식용에 대해서는 국내외의 비판 여론이 꾸준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큰 국제행사 시엔 해외 동물보호단체들의 항의가 있었고, 손흥민 선수의 SNS에 악성 누리꾼들이 ‘개·고양이·박쥐나 잡아먹는 인간’ 또는 ‘개고기나 먹어라’ 등 인종차별적 비난을 올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개 식용을 둘러싼 갈등의 첨예한 대립은 동물복지 인식의 변화와 향상 이후에도 계속되어 왔다. 2021년 말 ‘개 식용의 공식적 종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 기구’로 농림부·관련 단체·비영리 기구·전문가·정부위원 등이 참여한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가 출범되었지만,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개고기 판매가 합법이라거나, 합법도 불법도 아닌 사각지대에 있어 제재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었다. 개는 축산법상 가축이므로 식용 고기가 될 수 있다는 육견 농가의 강력한 주장이었다. 하지만 축산법은 사육 가능하고 농가의 소득 증대에 기여할 수 있는 동물을 가축으로 지정해 산업을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그래서 개가 축산법상의 가축에 포함된다는 것이 개 식용을 인정한 근거는 될 수 없다.
식용 가축 처리에 관한 법은 축산물위생관리법과 식품위생법이다. 축산물위생관리법은 도살부터 가공·유통 과정까지 위생 검사를 받아야 하는 가축에 대해 규정하는데, 개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이 법에는 허용되지 않은 고기의 유통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식품위생법을 적용하게 된다. 그런데 식품위생법령상 개고기는 ‘식품에 사용할 수 있는 원료’에 해당하지 않아서 식품 원료로 유통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식품위생법에 의해 처벌된다. 즉 개고기 유통은 관련된 현행법상으로도 불법인 것이다.
그렇다면 관련 법률의 해석·적용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왜 특별법 제정이 필요했던 것일까. 국민 전부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 할지라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할지라도, 일부의 개 식용이 문화로 오래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원래 문화를 바꾸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특정 문화를 법적 강제로 바꾸는 것이 정당화되려면, 기다릴 수 없을 만큼의 시급성이나 법으로 강제해야 할 만큼 사안의 중대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아마도 반려동물 양육 가구 600만 시대인 현재, 개 식용 종식을 위한 금지법의 도입은 중대성을 가지는 사회적 문제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입법 목적의 정당성과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입법 과정에서 국회는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했어야 했다. 다양한 반려동물 중 왜 개 식용 종식이 더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였는지를. 그랬다면 적어도 평등 위반의 시비는 잦아들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민법 개정안이 계류 중인 현재로는, 육견 농가의 재산권 침해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폐업과 전업을 지원하는 것 외에 상당하고 합리적인 보상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더 어려운 문제는 이른바 식용 금지 조항의 예외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개 식용 종식이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일 수는 있다. 하지만 사체 식용이건 영업이 아닌 개인의 사적 행위이건 예외 없는 금지와 처벌의 대상으로 한 것이, 행여 일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우려는 없었는지 국회가 충분히 고민한 것인지 묻게 된다.
개 식용 문화가 있던 대만이나 홍콩,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개 식용 금지 법제화로 국민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노력을 하고 있고, 우리의 입법도 그 자체로는 의미가 있다. 불완전한 법 내용이 문제일 뿐. 하지만 법은 통과되었고, 이제 공은 정부와 지자체에 넘겨졌다. 그러니 강제적 변화에 따르는 문제들에 대한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대책이 강구되길 바란다.
2024-02-06 [18:05]
-
[문우석의 기후 인사이트] 기후위기와 과학적 명제
지난해 8월, 우리나라는 전국에서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14명의 안타까운 생명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 불과 3년 전 여름인 2020년에도 한반도에 내린 극심한 비는 전국적인 홍수와 산사태를 발생시키며 48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같은 해 6월, 가까운 중국 또한 수십일 동안 지속된 최악의 홍수로 세계 최대 크기의 싼샤댐이 붕괴될 수 있다는 공포스러운 보도가 여러 날 뉴스의 한 면을 장식했다. 일본 역시 유례없는 홍수와 산사태로 말미암아 막대한 피해를 매해 여름 겪고 있다. 기후적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올해 2024년에는 과연 어떤 일들을 예상할 수 있을까. 적도 바다의 온도가 높아지는 엘니뇨가 강화되며 과거와는 또 다른 상황들이 예고되지만 그 피해의 정도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최소한의 피해가 생기고 인명 손실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희망할 뿐이다.
유례없는 이상기후와 자연재해
명쾌한 해답 없어 두려움 확산
과학적 규명으로 위기 극복해야
매해 발생하는 홍수나 산사태, 산불, 폭염 같은 이상기후를 전하는 뉴스의 말미에는 이러한 자연재해들이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온난화와 결부되었을 것이라 한다. 온난화로 말미암아 이상기후와 자연재해들이 발생한다는 논리적 연결고리는 통계적으로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여러 비정상적인 상황들을 해석하고, 이와 더불어 아직은 불완전하지만 과학적 의의를 지닌 기후 모델의 결과들을 통해서 찾게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통계적 방법들을 통한 샘플의 비교와 복잡한 유체 역학식을 수치적으로 푸는 기후 모델의 결과는 이상기후가 온난화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에 대한 명쾌한 논리를 제공해 주지는 못하였다.
인간 생활 속에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가 여름철 동아시아의 이상기후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지구가 더워지는 것과 시간당 200mm의 국지적 폭우의 연결 관계는 무엇인가. 캘리포니아의 기록적인 가뭄과 최악의 산불은 공기 중에서 증가하는 이산화탄소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지금의 과학적 지식은 위의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충분한 지식과 이론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이상기후와 온난화의 연관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면 온도가 높아지는 열역학적인 조건이 대기와 해양의 유체 운동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근본적이며 본질적인 이론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대기 역학은 바다만으로 이루어진 지구에서 발생하는 저기압 생성 메커니즘과 이러한 저기압의 생성과 소멸이 만들어 내는 대기 대순환에 대한 이론을 가지고 있지만, 대륙과 해양이 공존하는 지구상의 다양한 현상에 대해서는 모든 전문가가 동의하는 이론이 아직까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여름철 우리나라 이상기후의 기저에 깔려 있는 동아시아 몬순의 메커니즘을 정립하지 못했고, 겨울철 밀려오는 한파의 역학적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부족한 이론적 배경과 과학적 명제는 온난화로 인한 다양한 이상기후와 대기 현상의 원리를 대중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무지에서 비롯되는 미래에 대한 사회적인 두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2019년 12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사람들 사이에 급속도로 번져가며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이유는 어느 누구도 이 바이러스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지’ ‘미확인’ ‘알 수 없는’이라는 단어들이 불러오는 공포감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은 문을 걸어 잠그게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서 사람들이 일상을 찾고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계기는 전 세계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공표되었던 전문적이며 과학적인 사실이었다. 과학적 사실들이 축적되며 얻게 된 백신이 결국은 코로나 사태를 조기 종결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혹자는 아직까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과학에 대한 실망과 유례없는 이상기후와 늘어나는 자연재해로 인한 두려움으로 ‘이제 더 이상 과학은 답이 될 수 없다. 실천과 참여만이 남아 있을 뿐’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걸어 잠근 문 안에서 사람들이 식물을 키우고, 독서를 하고, 음악을 들으며 소중한 일상의 회복을 희망하고 적응해 갔듯이, 이상기후를 살아가는 현시점에서 온난화 극복을 위한 ‘실천과 참여’가 중요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이상기후의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는 명확한 과학적 명제는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하며 새로운 기후위기의 시대를 극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코로나 시대의 종말이 과학적으로 개발한 백신에 의해 이루어졌듯이 이러한 과학적 승리가 기후위기에도 적용되기를 희망한다.
2024-01-30 [18:18]
-
[주승현의 남북 MZ] 흥남부두와 영도다리
대학에서 근현대사 수업을 하다 보면 한국전쟁과 관련된 사건 속에 자연스럽게 ‘영도다리’와 ‘흥남부두’ 얘기가 나온다. 사실 다른 지역에서 교수로 활동할 땐 지나칠 법한 내용이긴 했는데 부산이라는 지역적 특징과 필자의 출생지가 묘한 조화로 스토리를 이어 주기 때문이다. 필자의 고향은 ‘흥남부두’가 속한 함흥이고 현재의 직장은 영도다리를 건너야만 되는 위치에 있다. 북한의 함흥에서 태어난 사람이 현재 부산의 영도다리가 있는 곳에서 사는 까닭이 의아해할 법도 한 남북 단절과 외면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작고한 영도 출신의 가수 현인이 1953년에 발표한 대중가요 ‘굳세어라 금순아’는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정착한 피란민이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금순이를 영도다리 난간 위에 앉아 기다리는 애끓는 심정을 담아내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 수도로 불렸던 부산에 와 있던 피란민들은 서울 수복 후 부산을 떠나 고향으로 갈 수 있었지만, 흥남철수작전 등으로 내려온 이북 출신들은 끝내 돌아가지 못하고 부산과 그 주변 도시에 터를 잡는다. 그래서 학교 학생 속에는 실향민 가족이 제법 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면 학생들은 확연하게 집중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MZ세대에 속하는 함흥 출신의 교수가 영도에서 사는 것도 궁금할 테고 자신들이 매일 오가는 영도다리에서 울려 나오는 노래의 실체도 그제야 파악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도다리 입구에는 1.5m 높이의 현인 동상이 자리해 있는데 동상의 오른발을 건드리면 영도대교 곳곳의 스피커에서 ‘굳세어라 금순아’가 울려 퍼진다. 부산에 내려와 집을 구하던 어느 날 영도다리 입구의 노래비에서 그 사연을 읽고 주변에 집을 구했다. 그리고 나는 가사에 나오는 흥남부두를 매일 되읊으며 고향을 그리고 있다.
이쯤 되면 학생들은 1000만 관객의 눈물을 짓게 했던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발표한다. 영화의 시작은 흥남철수작전이다. 흥남철수는 한국전쟁에 참여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린 유엔군 10만 5000명과 피란민 10만 명을 193척의 선박을 통해 열흘간 구출한 대대적 후퇴 작전이었다. 흥남을 떠난 마지막 배 빅토리호는 150명이 정원인 화물선이지만 군수물자 25만t을 버리고 함흥 지역의 피란민 1만 4000여 명을 태웠다. 하지만 승선한 사람과 승선하지 못한 사람들로 수많은 금순이의 운명이 갈라졌다.
그럼에도 생명의 배 빅토리호에서는 감동적인 기적이 일어났다. 신생아의 탯줄을 이로 끊어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탄생했던 것이다. 태어난 아기들은 미군에 의해 ‘김치1~김치5’로 불렸다. 한국식 이름을 잘 모르는 미군이 태어난 순서대로 숫자를 매겨 가며 ‘김치’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흥남 출신의 실향민인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모와 누나도 이 배를 타고 남측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1951년 1·4후퇴 시기 ‘부산으로 와라, 영도다리에서 만나자’ 했던 피란민들은 73년이 지난 지금 생존한 이가 많지 않다. 한국전쟁으로 생긴 1000만 명에 달하는 이산가족 중에 정부의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는 지난해 기준 13만 3983명이며 이 중 9만 4102명이 사망했고 생존자의 85%(3만 4341명)가 80대 이상일 정도로 이산가족의 고령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평생 가족을 그리는 아픔과 고통 속에서 흥남부두와 영도다리를 서성이던 금순이들은 하늘나라로 떠나지만, 이 땅에서는 분단이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새해부터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 400여 발의 포탄을 연이어 발사했고 김정은은 한국은 주적이며 기회가 온다면 초토화해 버리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한반도의 안보 상황은 엄중하다 못해 심상치 않다.
흥남부두에서 화물선을 타고 내려왔던 피란민 세대, 배를 곯으며 보릿고개를 넘기던 전쟁 세대는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짧은 기간에 한국을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는, 지금 안보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인식하지 못한다고 질책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수업 내내 필자는 학생들을 관찰한다.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금순이’었고 수업을 통해서라도 그 사실을 깨달은 후 학생들의 태도는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산의 근현대 질곡의 역사와 피란민의 애환이 서려 있는 역사 현장을 MZ세대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아픔과 고통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고신대 교양학부 교수(통일학·경영학)
2024-01-23 [18:06]
-
[홍순연의 도시 공감] 도시재생의 새로운 거점시설 활용법
쇠퇴한 도시의 사회·경제·물리적 재생을 단계별로 추진해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2010년부터 시작된 도시재생사업이 벌써 14년이 지났다. 당시엔 생소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이 아는 용어가 됐다. 정부도 2013년에 이를 장려하기 위해 ‘도시재생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고, 이후 네 번이나 개정했다.
도시재생사업 지역은 새해 들어서도 전국에 20곳이 새로 선정됐다. 이 지역에는 2027년까지 국·지방비 1조 2032억 원이 투입돼 56개의 거점공간과 공공임대주택 등이 조성될 예정이다. 부산에선 사상구와 남구가 새로 지정됐는데, 도시재생 종합정보 체계에 따르면 현재 부산에는 36개의 도시재생사업 지역이 있으며 순차적으로 사업이 마무리되는 곳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10년 넘게 이 사업이 진행되면서 계획과 추진 체계, 운영 방식에 대한 기본 틀이 잘 갖춰진 덕택에 지역별로 수립된 활성화 계획도 현장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부산은 마무리되는 도시재생 지역이 나옴에 따라 사업 종료 이후의 계획에도 제도적인 뒷받침을 위해 작년 8월 도시재생 사후관리 조례도 제정했다. 이로써 외형적인 부분에서 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공공적인 틀은 어느 정도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업화 모델은 여전히 고민이다. 대부분 거점시설 운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사업 종료 후 지속가능성을 위한 수익 기반의 성장 방안과 연계성 확보 그리고 운영 방식이 문제다.
사실 부산은 도시재생사업이 처음 시작된 도시다. 2010년 시는 도시재생사업을 위한 조직으로 ‘창조도시본부’를 신설해 독자적인 재생 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 중에는 전국적인 본보기로 인기를 끌었던 사업도 있었지만 지금은 주민참여 감소, 시설 노후화와 운영예산 감소 등으로 거점시설 활용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진행 중인 도시재생사업 지역에는 2~3개의 지역 단위 거점시설이 구축돼 전체적으로 약 90개 정도가 설립될 예정이다. 지역 내 유사 사업으로 지어진 거점시설까지 포함하면 부산 전역에는 200개 이상의 도시재생 관련 거점시설이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적지 않은 거점시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모델하우스로 전환하는 방안이다. 최근 시는 활용도가 떨어진 도시재생 거점시설을 15분 도시와 연계한 앵커 시설로 전환해 수익기반 자립화 모델로 이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거점시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유형별 모델하우스가 필요하다. 본격적인 기능 전환에 앞서 상품과 서비스, 상권 분석을 통한 구체적인 목표 고객을 설정해 사업의 성공 여부를 예측하는 것이다.
협업 그룹을 통한 가동률 향상도 중요하다. 대부분 지역에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주체들이 있다. 도시재생 지역의 경우 마을 관리 협동조합이 구성되어 있는 곳도 있으며 교육공동체, 문화예술인, 상인 그리고 청년 조직까지 다양한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직접 거주민뿐만 아니라 지역으로 유입된 여러 생활 조직에도 다양한 기회를 줘야 한다. 하나의 거점에 하나의 운영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협업 그룹이 시간 단위로 거점을 활용한다면 가동률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다양한 활용 기회 제공에 비즈니스 마인드를 접목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보통 거점시설의 운영조직으로 참여하려면 자격 조건이 붙는다. 예를 들면 유사 사업 운영 실적, 직원 숫자, 신인도 등인데, 이를 갖추기 위해서는 3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초기 창업자나 1인 기업, 커뮤니티 조직에는 그림의 떡으로, 결국 자격을 갖추지 못해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거점시설과 참여자를 연결하기 위해선 참여자가 제안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평가했으면 좋겠다. 기존의 조건을 최소화하고 비즈니스 마인드가 있는 운영자를 거점시설과 연결한다면 성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창업자나 1인 기업, 커뮤니티 조직 등이 이를 통해 실적을 쌓아 다양한 분야로 진출한다면 거점시설은 이들에게 훌륭한 기회의 장소가 되는 셈이다.
물론 모든 거점시설에 이를 적용하자는 말은 아니다. 200개 중 30% 정도는 이런 공간으로 전환하면 어떨까 싶다. 결국 도시재생은 지속성 확보를 위해 새로 시설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과 기존 시설을 바꿔 활용도를 높이는 방식을 혼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IT업계에서 사용하는 ‘피보팅(Pivoting)’이라는 용어가 있다. 업체의 인적 구성이나 핵심 기술에 변화를 주지 않고 사업 방향을 바꾸는 행위를 말한다. 이제 도시재생사업도 거점시설을 통해 다양한 참여와 활용이 선순환하는 피보팅이 시작됐으면 한다.
2024-01-16 [18:37]
-
[유인권의 핵인싸]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의 존엄함
코스모스(Cosmos)로 통칭되는 우주는 질서를 의미한다. 삼라만상의 운동과 변화를 지배하는 거대한 원리가 있다는 상상에서 비롯된 것인데, 무엇도 피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의미에서 이 거대한 원리를 밝혀내는 ‘과학적 법칙’은 과연 전능한 것일까.
아주 놀랍게도, 21세기의 4분의 1을 내다보고 있는 지금까지도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지구는 편평한 원반인데, 이러한 사실을 미우주항공국(NASA)은 다 알면서도 숨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극도의 혼란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지구가 편평한 200가지 증거를 나열한 2시간짜리 동영상도 있다. 성경 어디에도 지구가 둥글다는 말이 없으며, 특히 세상 종말에 구세주가 세계 만민들에게 ‘동시’에 나타날 성경의 예언을 성취시키려면 지구가 편평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지구편평론자들의 모임에 직접 찾아간 한 외국 방송사가 가로로 줄무늬가 그려진 커다란 깃발을 펼친 채 수평선까지 멀리 보내면서 이를 관찰한 영상이 있다. 깃발이 아래부터 없어지는지, 아니면 소실점이 될 때까지 다 같이 작아지면서 사라지는지를 망원경으로 관찰했다. 편평론자들은 깃발의 아래 줄무늬부터 없어지는 것을 같이 확인하면서도, 이내 지구 대기의 산란과 착시현상을 이유로 들며 지구가 편평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처럼 사람은 논리로 설득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지구가 둥글 수밖에 없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상식’이다.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구가 아주 빠르게 돌고 있다면, 지구가 더 납작해질 수는 있어도 편평해져서 반대쪽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2차원의 상태는 절대로 될 수가 없다. 어디가 반대쪽인지, 어느 한쪽만 선택적으로 특별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모서리나 가장자리가 존재할 만한 특별한 이유는 있을 수가 없기에, 지구는 둥글 수밖에 없다.
‘과학적 법칙’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상식에 가깝다. 그래서 종종 이런 상식이 깨질 때 우리는 충격에 빠지곤 한다. 반응 전후에 질량이나 전하량이 난데없이 사라질 타당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 ‘보존법칙’의 요지다. 그런데 어떤 결합에서 질량이 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결국, 사라진 질량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에너지 형태로 바뀌어 물질을 결합시키고 있다는 해석에 이르렀고, 이것은 그 유명한 ‘질량-에너지의 등가원리’의 초석이 됐다. 덕분에 ‘질량보존의 법칙’은 ‘질량-에너지 보존법칙’으로 진화했고, 우리의 상식은 확장됐다. 심지어 소립자의 경우 생성 환경에 따라 질량이 변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단 3개의 가벼운 쿼크로 구성됐다고 여겨지는 양성자가 무려 100배나 더 무겁다는 것은 질량 자체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불러왔다.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공중 격투장면은 물리학자들에게 견디기 힘든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할 때가 많다. 아무 지지대도 없는 허공에서 가격하는데, 상대방만 멀리 나가떨어지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누가 때리고 맞든지에 상관없이, 두 상대는 같은 상황이 아닐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즉 상대방이 나가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반대 방향으로 나가떨어져야만 한다. 일방적인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총알이 발사되면 반드시 반대 방향으로의 반동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또,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중성자가 양성자와 전자로 분열하는데, 그 분열 각도가 180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머지 방향으로 무엇인가가 방출되지 않고서야 도저히 운동의 균형이 맞지 않았다. 덕분에 잘 보이지 않아서 모르고 있던 무엇인가를 찾아낸 것이 바로 중성미자다. 이처럼 과학법칙은 경험과 더불어 스스로 진화하는데, 현상을 보다 알기 쉽게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큰 상식이다. 단지 한 쪽의 입장에서만 보면, 자기가 뒤로 날아가는 것은 모르는 채 상대방만 나가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자기 중심의 해석도 가능하다. 결국 자기가 뒤로 날아가 다른 무엇인가에 크게 부딪히게 될 때에야 비로소 자기도 뒤로 나가떨어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상식과 법칙의 존엄함은 ‘그렇지 않을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보편성에 있다. 결코 차별적일 수도, 일방적일 수도 없다. 표창장 하나로 집안 전체가 쑥밭이 된 기억이 생생한데, 휴대전화 잠금 해제를 거부해서 면죄가 되고, 국회가 요청한 진상규명을 거부하면서도 공정과 상식, 법과 원칙을 운운한다. 굳이 보존법칙을 들먹이지 않아도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게 마련인데, 이 뒷감당을 어찌하려나 모르겠다. 단지 둘로 갈라진 국민들과 자기들만의 ‘일방적 상식’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2024-01-09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