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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영종베이거스’와 북항 리조트(영상)
‘부산형 복합리조트’ 건립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다. 글로벌 허브도시라는 미래 전략과 맞물리면서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제25대 부산상의를 이끌게 된 양재생 회장의 취임 일성도 “총선 이후 글로벌 복합리조트 조성 추진”이다. 북항 재개발지에 복합리조트가 들어서면 지역의 랜드마크로서 관광·마이스 산업을 이끄는 한편 고용을 창출해 청년층의 역외 유출을 막는 효과가 기대된다는 것이다.
부산에서는 상공계를 중심으로 복합리조트 건립이 추진되다가 좌초된 경험이 있다. 부산이 주춤하는 사이 신개념 복합리조트가 속속 선보이고 있다. 인천 영종도에는 인천국제공항과 지척인 입지를 활용한 복합리조트가 두 곳이나 개장했다. 지난 2017년 4월 ‘파라다이스 시티’가 개장해 동북아시아에서 첫 복합리조트 시대를 열었다. 이어 지난 3월 5일 ‘모히건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이하 인스파이어)가 문을 열어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핫플로 부상하고 있는 인스파이어를 직접 찾아 부산형 복합리조트 추진에 도움이 될 시사점을 찾아본다.
■ 미국 자본 6조 투자 ‘영종베이거스’ 노려
인스파이어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7개 리조트를 운영하는 ‘모히건 게이밍 앤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모히건)’가 2조 원을 투자해 문을 열었다. 축구장 64개 넓이의 부지 46만 1661㎡(약 14만 평)에 1275실의 5성급 호텔, 1만 5000석 규모 공연장 ‘아레나’, 실내 워터파크 ‘스플래시 베이’, 길이 150m 통로에 초고화질 발광다이오드(LED) 디스플레이로 구현한 엔터테인먼트 거리 ‘오로라’, 최대 3만 명 수용 야외 공연장 ‘디스커버리 파크’가 들어섰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는 테이블 게임 150여대, 슬롯 머신 390대, 176석 규모의 전자 테이블 게임(ETG) 스타디움이 구비돼 있다. 인스파이어 카지노는 여러 신기록을 경신했다. 경제자유구역법에 따른 첫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카지노 사업 허가다.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 중 최대 규모다.
미국 투자사인 모히건 측은 현재 완료된 1단계 후속으로 4단계에 걸쳐 전체 부지 436만㎡(약 132만 평)에 대해 2046년까지 합계 6조 원을 투입해 영종도를 한국판 라스베이거스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라스베이거스가 단순 카지노의 도시가 아니라 세계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가 된 것처럼 영종도 인스파이어도 세계적 관광지로 부상할 가능성을 본 전략적인 투자라는 뜻이다. 입지로 볼 때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차량으로 15분 거리인 점을 최대한 살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 도심으로부터 1시간 내외, 항공편으로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일본 도쿄로부터 1시간 30분 이내, 홍콩과 대만에서는 3~4시간 이내 접근을 강점으로 내세울 것으로 분석된다.
■ 전 세계 K팝 팬덤을 노린 전문 공연장
인스파이어 개장을 기념해 지난달 8~9일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인 마룬 파이브가 첫 내한 공연을 가졌다. 이후 싸이, 태양, 에픽하이, 태민, 동방신기 등 K팝을 이끄는 스타 콘서트가 이어졌다. 모두 국내외에 탄탄한 팬덤을 자랑하는 뮤지션들로 최대 1만 5000석을 꽉 채운 열성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오는 6월 15~16일에는 하이브가 주관하는 글로벌 음악축제 ‘2024 위버스콘 페스티벌’도 예정돼 있다.
‘아레나’는 복합리조트로 개장하자 마자 국내 굴지의 전문 공연장으로 입지를 굳혔다. 바로 이 대목이 인스파이어가 타 리조트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모히건 측은 당초 아시아 첫 진출지로 영종도를 선택한 이유를 동북아 허브 인천국제공항과 가까운 입지로 설명한다. 전 세계의 K팝 팬이 접근하기에 수월한 점과 함께 2600만 명의 수도권 인구를 배후로 두고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 영감 불러 일으키는 디지털 미디어 아트
인스파이어 내부는 기술과 창의력이 결합한 디지털 미디어 아트가 핵심 볼거리다. 한국에서 접할 수 없었던 이국적인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에 단박에 촬영 명소로 떠올랐다. 공연장·카지노 입구와 맞닿은 150m 길이 통로 천장과 벽면에 설치된 초고화질 LED는 신비로운 숲과 바다의 풍경을 비춰 흡사 영화 ‘아바타’ 속에서 유영하는 것처럼 느낄 정도다. 30분 간격으로 등장하는 초대형 고래의 유영 장면이 최대 압권이다. 엄청난 시각적 규모에 압도되고 만다. 고래를 보러 방문하는 방문자들이 있을 정도다. 북유럽 밤하늘의 발광 현상에 빗댄 ‘오로라’ 명명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공연장과 카지노 앞의 키네틱 샹들리에 ‘로툰다’도 명물로 떠올랐다. 모두 156개의 LED 패널로 이루어진 디지털 샹들리에의 패턴이 시시각각 화려한 모양으로 변신하는 게 장관이다.
■ 단시간에 인증샷 핫플로 등극했지만…
편집 숍과 쇼핑가로 이어지는 통로에는 자연의 신비를 주제로 표현된 작품 공간 ‘인스파이어 원더’가 마련되어 있다. 빛의 다채로움을 보여주는 ‘원더 오브 라이트’, 생명과 죽음의 순환을 표한 ‘원더 오브 페탈’, 마음의 숲을 묘사한 ‘원더 오브 마인드’ 등 전시물 주변을 바장이면서 휴식을 가질 수 있다.
호텔 출입구로 이어지는 거대한 나뭇결 캐노피는 자연주의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캐노피를 뜷고 입장하면 바로 호라이즌 라운지를 만나는데 정중앙에 우뚝 선 조명 구조물과 주변의 장식이 장엄한 분위기여서 마치 고대 신전 내부처럼 느껴진다.
앞선 미디어 아트와 ‘인스파이어 원더’ 등은 투숙객이나 시설 이용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다. 평일과 주말 가리지 않고 인증샷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다만, 식당가, 편의점이 부족해 인파가 몰릴 경우 어딜 가나 장사진인 게 불편하다. 호텔 체크인 역시 대기 행렬이 길다. 공연이 있거나 주말에는 진입로 정체나 주차난을 겪었다는 방문 후기가 제법 있다. 인천국제공항을 오가는 셔틀버스 외에는 대중교통 수단이 없는 점도 단점이다. 예컨대 부산에서 서울역이나 김포공항을 경유해서 간다면 해외 출국이나 마찬가지의 시간과 수고를 각오해야 한다.
인스파이어 측은 3000명이 넘는 고용 창출과 주변 관광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인근 을왕리해수욕장과 영종국제도시의 숙박업소, 상가는 매출에 타격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쏠림 현상이 발생하기 십상인 대규모 복합리조트 개장 전 주변 상권과의 상생 방안 고려가 필수적이라는 시사점을 남긴다.
■ 부산형 복합리조트, 차별화가 중요
복합리조트(IR·integrated resorts)란 카지노 이외에 호텔과 테마파크, 고급 레스토랑, 컨벤션 시설, 엔터테인먼트, 쇼핑 등 각종 편의·오락 기능이 통합된 대규모 시설을 뜻한다. 카지노를 낀 리조트의 메카인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경우 카지노 이외의 공연이나 테마파크 등의 사업 매출이 절반을 넘는 복합리조트가 즐비하다. 전 세계적으로 복합리조트에 자본과 사람이 몰리는 게 추세다.
복합리조트 시장 경쟁은 글로벌 규모로 벌어진다. 이미 싱가포르와 마카오에서 관광 활성화와 고용 창출 성공 사례가 나오면서 각국이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일본은 2025월드엑스포 개최지인 오사카만 인공섬 유메시마(夢洲) 49만㎡ 부지에 일본 첫 오픈 카지노가 포함된 복합리조트를 2030년 개장한다. 당초 나가사키 하우스텐보스 시설을 활용한 복합리조트 계획안이 경합했다가 유메시마만 허가를 받았다. 논란이 된 오픈 카지노의 경우 내국인에게 입장료와 출입 횟수 제한을 둘 예정이다.
부산은 지난 2017년 세계적인 카지노 그룹인 샌즈와의 협의가 진행되면서 사업이 급물살을 타는 듯했지만, 복합리조트 핵심 시설인 오픈 카지노(내국인 출입 허용)에 발목이 잡혔다. 외국인 전용이 아닌 내국인이 출입하는 카지노는 특별법이 아니면 허용되지 않는다. 도박 산업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을 설득할만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법과 정서의 벽을 넘지 못하는 난관에 부딪힌 사이 샌즈는 투자처를 태국으로 바꾸고 떠났다.
2030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불발 이후 정부가 ‘글로벌 허브도시 조성 특별법’ 제정을 통한 관광·마이스 거점 도시 도약을 제시하면서 복합리조트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글로벌 허브도시 조성 특별법의 핵심은 각종 특례를 적용해 부산 전역을 규제 프리존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싱가포르나 미국 뉴욕을 능가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도시로 만드는 환경을 조성하는 의미다. ‘규제 프리존’에 힘입어 외자 유치가 수월해지는 한편 현행 관광진흥법상 불허된 오픈 카지노를 추진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는 것이다.
부산은 다시 복합리조트 사업에 불을 지폈다. 랜드마크를 지향한다면 도시의 상징이 돼야 한다. 부산은 관광·마이스뿐만 아니라 영화·영상, 오페라하우스와 같은 문화 콘텐츠 그리고 마리나를 활용한 해양레저 콘텐츠 등 타 도시에 비해 경쟁력을 가진 분야가 많다. 부산의 강점이 오롯이 녹아들어 그 자체로 부산의 상징성을 대표하는 복합리조트라면 시민 공감대는 물론 해외 투자자에도 어필할 것이다. 중요한 건 기존 복합리조트와의 차별화다. 판박이여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차별화된 부산형 복합리조트의 청사진과 시민 공감대, 그리고 치밀한 추진 전략이 성패를 가를 것이다. 미국 모히건이 2015년 영종도를 점찍은 뒤 정식 개장에 9년이 걸렸다. 부산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인천 영종도=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2024-04-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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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신뢰성에 의문부호 뜬 선거 여론조사
지난 4·10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에서만 161석을 확보하면서 22대 국회에서도 단독 과반 의석 달성에 성공했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지역구 90석에 그쳐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가 얻은 비례의석을 합쳐야 겨우 ‘개헌 저지선’을 지켜낼 수 있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그야말로 야권의 압승이요 여당의 참패인 것이다.
■제대로 못 읽은 판세
이 같은 선거 결과를 투표일 직전 주요 여론조사 내용과 비교해 보면 서로 크게 어긋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대다수 여론조사들은 투표일을 며칠 앞두고 총선 기류에 변화가 나타났다고 알렸다. ‘민주당 우세’에서 ‘여야 박빙’, 심지어는 ‘국민의힘 우세’로 추세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4일 ‘머니투데이 더300’이 지난달 20일 이후 이날까지 공표된 전국 단위 주요 여론조사의 정당지지도를 가중평균했더니, 국민의힘 36.3%, 민주당 32.4%로 백중세로 파악됐다. 엠브레인리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3일 “어느 정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느냐”라고 물은 전국지표조사에서도 국민의힘 39%, 민주당 37%를 기록했다(이하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비슷한 기간 방송사들이 발표한 여론조사들은 대체로 민주당이 앞서지만 그 차이는 미미하다고 알렸다. MBC는 민주당 40% 국민의힘 36%, KBS는 민주당 40% 국민의힘 33%, SBS는 민주당 43% 국민의힘 39%였다. 실제 의석수 격차를 고려하면 판세를 제대로 읽었다고 보기 어려운 예측들이다. 이로써 선거 여론조사의 신뢰성 논란은 또다시 거세질 수밖에 없게 됐다.
■예측 크게 어긋난 부산
부산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예측에 실패했다. 투표일 직전까지 다수 여론조사 기관들은 부산의 18개 의석 가운데 민주당 등 야권이 적게는 3석, 많게는 5석 이상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민주당이 북구갑·사하구갑·수영구 등에서 우세를 보이는 형편에서, 남구·북구을 등 5~6곳의 접전지에서 절반 정도 승리한다는 전망에서였다. 하지만 결과는 북구갑을 빼고는 모두 국민의힘 차지였다.
사하구갑의 경우 한국리서치는 지난달 21~24일 조사에서 최인호 민주당 후보(50%)가 이성권 국민의힘 후보(39%)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선다고 밝혔다. 수영구에선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1~2일 조사를 통해 민주당 유동철 후보 35.8%, 국민의힘 정연욱 후보 31.1%, 무소속 장예찬 후보 28.2%로 판세를 분석했다. 한국사회연구소는 진보당 후보의 약진으로 전국적 관심을 모았던 연제구에 대해서도 같은 기간 조사를 진행했는데, 진보당 노정현 후보가 56.7%, 국민의힘 김희정 후보가 37.5%를 각각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해운대구갑에선 ‘여론조사 꽃’이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1일까지 조사한 가상대결에서 민주당 홍순헌 후보(50.9%)가 국민의힘 주진우 후보(41.8%)에게 유의미한 차이로 우세하다고 밝혔다. 그밖에 북구을이나 남구 등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미세한 우위 속에서 접전을 벌인다고 예측됐다. 하지만 개표 결과 이들 지역에서 야권 후보들은 모두 패배의 쓴 잔을 마셔야 했다.
■민심 함부로 재단 말아야
사실 투표일 직전 여론조사가 그대로 개표 결과로 연결된 적은 별로 없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여론조사는 대부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이 최소 과반 의석은 얻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122석을 얻는 데 그쳤다. 2012년 19대 총선 때는 민주통합당 등 야권의 우세가 점쳐졌지만 결론은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 확보였다. 4년 전 21대 총선에서는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민주당 승리를 예측했으나 그 수가 180석에 이르리라고는 예견하지 못했다.
이번 총선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돼 선거 여론조사 무용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게 됐다. 조사 결과가 기관마다 들쑥날쑥이라 신뢰성 논쟁이 되풀이되며, 이 때문에 여론조사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왜곡한다는 우려까지 낳는다는 것이다.
여론조사가 선거에서 갖는 순기능은 결코 적지 않다. 민심을 민감하게 반영할 수 있어서 부정 선거나 이른바 깜깜이 선거를 방지하고, 각 당의 공천 과정에서 미리 자격 미달의 인물을 배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여론조사는 정치인과 유권자 간 소통을 돕는 도구 역할도 한다. 하지만 이런 순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정당이나 인물 중심의 양자택일 조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정책 관련 조사 비중도 늘리고, 최대한 많은 계층을 포괄하는 등 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요컨대, 민심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는 말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2024-04-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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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황혼이 삶의 열정을 가로막을 수 없다”
술자리 건배사에 ‘9988’이 유행하고 있다. ‘99세까지 88하게 살자’라는 건배사로 건강한 100수를 누리자는 뜻이다. 실제로 보험개발원이 생명보험 가입자를 상대로 집계한 평균수명은 남자 86.3세, 여성은 90.7세로 나왔다. 5년 전보다 2.8세, 2.2세씩 늘었다. 여성 평균수명이 90세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80대를 가리키는 ‘옥토제너리언(Octogenarian)’이 화제다. 바이든(1942년생)이나 트럼프(1946년생) 누구라도 당선되면 80세 안팎의 대통령이 나오기 때문이다. 1930년생 동갑으로 94세인 워런 버핏과 조지 소로스는 아직도 존재감이 확연하다. ‘1928년부터 네 남자를 훔친다‘는 인스타그램 계정(@baddiewinkle)에서 316만 9000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는 인플루언서 헬렌 윙클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젊은이들이 그들의 미래 모습에 열광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도 9988 건배사 실현하는 ‘젊은 어르신’ 점점 증가
“우리도 연예인 한번 돼보자!” 2008년 9월 창단한 아모르합창단 단원 35명 중 80세 이상 회원 12명이 오는 9일 부산 해운대문화회관 고운홀에서 특별공연을 가진다. 기업인, 주부, 교수, 언론인 등 다양한 출신의 회원 12명 연령대는 80~90세. 최고 연장자는 92세 남성. 이번 공연은 8090콘서트 성격까지 띤다. ‘부산청소년합창제 특별 초청 출연, KBS부산방송국·극동방송 출연, 박근혜 대통령 취임 2주년 기념 한마음 축제 특별 출연, 일제 강제 동원 희생자 합동 위령제 위로 공연, 부산가곡연주협의회 창립기념 공연’ 등 전국구 시니어 합창단이다.
이번 공연을 준비 중인 8090 합창단원들은 “어떻게 보면 마지막 무대랄까…”라고 운을 띄우지만, 매주 월요일 부산 신부산교회에서 공연을 준비하면서 보이는 열정과 에너지는 100세 합창제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이는 들어도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겠다는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다. 공연을 준비하는 이해원 씨는 “노래로서 ‘우리는 건강하다. 삶을 건전하게 살고 있다. 인생의 즐거움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황혼이 인생의 열정을 가둘 수 없다’라고 떼창하는 공연이다. 황혼이란 해 질 녘 노을에 물든 하늘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을 뜻한다. 하지만, 어느 시인은 “황혼의 태양이 가장 밝고 아름답다”라고 말했다.
난타·합창·영상제 등 황혼의 열정 곳곳에서 벌어져
부산 남구노인복지관 난타 동아리 ‘두드림’. 최근 80대 신입 2명을 포함한 15명의 회원은 매주 북을 두드리면서 액티브한 삶을 살아간다. 북을 두드리는 난타 공연의 특성상 체력적인 소모가 크지만, 어울림 회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달 주간보호센터와 요양병원, 어린이집 등을 대상으로 자원봉사 공연을 펼친다. 주간보호센터에서는 치매를 앓는 환자들에게는 나무 숟가락을 나눠줘 공연에 참여하게 한다. 공연 중간에는 실버체조 공연도 곁들여 지겨울 시간조차 없다.
어울림에서 10년째 활동 중인 이옥자 씨는 “배운 것을 남을 위해 봉사하고, 건강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기쁘고, 건강해지는 기분”이라면서 “바쁘게 살기 위해 최근에는 난타 공연 봉사와 함께 수영까지 배우고 있다”라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남구노인복지관 송지원 사회복지사는 “어르신들이 봉사 자체를 굉장히 보람 있게 생각하고, 운동과 함께 친구들을 사귀는 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송 복지사는 “베이비 부머 세대들이 쏟아지면서 사회참여 활동에 대한 욕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 “노인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어르신들도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다 많이 보여줘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황혼의 열정을 막는’ 장애물은 연령차별주의, 에이지즘(Ageism)
나이를 이유로 노인들을 차별하는 사회적 편견을 일컫는 말이다. 백세시대에 접어들었지만, 노화를 평가절하하는 세상에서 자발적·비자발적 연령차별주의가 알게 모르게 내재돼 있다. “이제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에는 난 너무 늦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는 늦었다” 등 스스로에 대한 자발적 연령차별주의도 무시하기 어렵다. 노화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새롭고 도전적인 경험과 기회를 시도하려는 자신감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들기 때문이다. 성별, 인종, 계급, 빈부와 관계없이 모두가 나이가 들기 때문에,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동희 노인생활과학연구소 대표는 “나이가 70~80세가 되면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연령차별주의가 여전히 판을 치고 있다”면서 “이런 사회적인 시선과 틀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한 대표는 “유럽에서는 액티브한 시니어들의 등장이 너무나 당연하다”면서 “80+, 90+, 100+ 시대가 이미 도래했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발적·비자발적 연령차별주의를 뛰어넘는 ‘젊은 어르신’ 증가
카메라 촬영과 디지털 편집 등 새로운 기술과 연기를 배우느라 땀 흘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부산 동구 자성대노인복지관 영상동아리. 지난해 열린 제13회 부산실버영상제에서 ‘우리 며느리’란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외국인 며느리와 함께 사는 다문화가정의 여러 에피소드를 담았다. 70대가 주류인 영상동아리 회원 7명은 영화감독과 배우, 스태프 역할을 교대로 맡으면서 영화를 제작한다.
회원들은 “TV나 영화에서 보기만 하던 배우와 감독 활동을 직접 하면서 스스로 살아있음과 자부심을 굉장히 느낀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내가 연예인, 영화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라면서 “영상제 시상식에서 주변 친구와 가족의 격려와 칭찬이 큰 힘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은숙 자성대노인복지관 관장은 “개인의 경제 사정과 관계없이 재가복지서비스를 받는 어르신들이 우울감이 있다면,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육체적·정신적으로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장은 “자성대노인복지관에서 실버영상제 대상을 3차례나 수상했다“면서 ”어떤 주인공 할머니는 ‘내년에도 주인공을 한번 더하고 싶다’고 찾아오시기도 한다”라고 웃음을 터트렸다.
창립 때부터 14년간 부산실버영상제 심사위원장 역할을 맡고 있는 안수근 동명대 명예교수는 “노인들이 디지털영상 촬영과 편집, 연기 등 창의적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살아온 가치 있는 삶을 다음 세대와 공감할 기회가 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안 명예교수는 “작품을 제작하고 팀워크를 이루는 과정에서 영원한 청춘이 된다”면서 “앞으로 실버영상아카데미 등 체계적인 노인 교육시스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3회 영상제 공모주제는 “세대와 공감을, 세상에 영감을”, 올해 14회는 “가치 있는 세월, 같이 있는 세대”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에 대한 연령차별주의의 극악한 표현이 “늙으면 죽어야지”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뿐만 아니라, 노인 스스로 자신에 대해 부정적 고정관념도 극복해야 한다. 스스로에 대한 연령차별주의는 나이 탓만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거나, 노력해도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하게 만든다. 연령차별주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노력과 자신감과 용기를 꺾어버리기 때문이다.
한동희 대표는 “황혼이 삶의 열정을 결코 억누를 수 없다”면서 “사회적으로 80, 90세 등 노령층이 연령차별주의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내 나이가 어때서’라면서 자신있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9988을 위해서.
2024-04-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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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총선 '색깔 투쟁'? 중요한 건 알맹이!
“색으로 표심을 꽉 잡아라!”
바야흐로 ‘색깔 투쟁’의 시즌. 색깔은 4·10 총선 앞두고 여야 정당들이 띄운 승부수다. 눈에 단박에 각인되는 색은 백 마디 말보다 호소력이 짙은 법. 지지층 규합에도 이미지 쇄신에도 큰 도움이 된다. 선거 때마다 ‘컬러 마케팅’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 정치적 무기, 색깔
색깔이 얼마나 민감한 정치적 사안인지 최근의 ‘신경전’ 사례가 잘 보여준다. 지난 9일 프로축구 충남아산FC 개막전 현장. 국민의힘 소속인 김태흠 지사와 박경귀 아산시장이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나와 시축을 한 게 문제가 됐다. 원래 홈팀 유니폼은 파란색인데 굳이 붉은 옷을 착용한 것은 선거용 아니냐는 의혹. 파장은 SNS를 통해 일파만파 퍼졌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지난달 29일 MBC 뉴스 일기예보 화면에 미세먼지 농도를 나타내는 숫자 ‘1’이 커다란 파란색으로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상징색이나 기호와 유사하다는 의심이 터져 나왔다. 이를 놓고 사람들이 이편저편으로 나뉘었다. 지금도 갑론을박, 설왕설래가 계속된다.
28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색깔 투쟁은 이제 전초전을 지나 막판 전면전으로 치닫는다. 전국 곳곳이 빨주노초파남보, 알록달록 색상의 향연. 정당 현수막과 당을 상징하는 점퍼·선거복, 선거 관련 유세 용품들이 유권자들의 망막을 물들이느라 여념이 없다.
■ 정당 상징색 변천의 역사
정당 색깔은 눈에 잘 띄는 원색이 대부분이다. 상징색은 대체로 갈린다. 보수는 붉은색 계열, 진보는 푸른색 계통. 이는 곡절의 변천사를 겪은 끝에 굳어진 것이다.
가장 극적인 색을 꼽자면, 단연 빨강이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0년간 사용해 오던 파랑을 과감히 버리고 빨강으로 상징색을 교체했다. 보수의 색깔은 한나라당 때까지 파란색이었다. 불온의 상징이던 빨강의 족쇄를 벗어던진 결과는 총선 승리였다. ‘레드 콤플렉스’로부터의 정서적 해방. 보수가 스스로 빨강을 품으니 진보 쪽에서도 한결 홀가분해질 수밖에. 이후 빨강은 보수의 색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말 국민의힘은 ‘ㄱㅎ’ 로고와 파란색의 결합을 시도했지만 현재는 단일한 빨간색으로 돌아온 상태다.
그 파랑을 상징색으로 가져온 것은 민주당이다. 원래 1987년 평화민주당 때부터 녹색과 노란색을 썼는데 2012년 총선·대선에 패하고는 파란색을 전면에 내걸었다. ‘안정’ ‘신뢰’ ‘청년’ 등의 이미지가 중도를 품는 외연 확장에 보탬이 됐는지 민주당은 2016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된다. 민주당은 ‘바다파랑’(2014년), ‘이니블루’(2016년)를 거쳐 여전히 파랑 계열을 견지한다. 지난 1월 파랑에다 보라와 초록을 보태 세 가지 색깔의 상징색을 내놓기도 했다.
■ 진보-보수 또렷한 색깔 구도
노란색은 어떨까. 노랑은 노무현의 색이었다. 대선 승리로 전국에 노랑 물결이 넘쳤던 2002년, 그때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노랑의 주인은 2013년부터 정의당으로 넘어갔다. 초록은 2016년 안철수 대표가 만든 국민의당 색깔이다. ‘녹색 돌풍’이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보수당 합당 과정에서 다른 색에 섞이고 만다. 이번 총선 국면에서 노란색과 녹색은 서로의 단짝이 되었다. 정의당과 녹색당이 뭉친 녹색정의당에서 두 색깔은 함께 쓰인다.
지금 제3정당을 노리고 있는 정당들의 색깔 싸움도 치열하다. 돌풍의 조국혁신당은 짙은 파란색(트루블루)을 중심으로 한 파란색 계열을 당 색깔로 채택했다. 주황은 개혁신당에서 오랜만에 빛을 봤다. ‘개혁’ 혹은 ‘대담함’을 상징하는 ‘개혁 오렌지’라는 별칭이 붙었다. 새로운미래는 밝고 역동적인 민트색(튀르쿠아즈 블루)을 선보였다.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과 국민의미래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대표 색을 각각 따른다.
이로써 이번 총선의 색깔 투쟁은 진보의 푸른색 계열과 보수의 붉은색 계열의 대비라는 선명한 구도를 형성했다.
■ 화려한 외관보다 내실 기해야
색깔 정치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선거철만 되면 유독 극성인데, 당의 정체성과 쇄신의 이미지를 통해 한 표라도 더 얻으려는 데 목적이 있다. 심지어 정당의 간판 색깔을 통째 바꾸는 시도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표절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색깔은 곧 정치적 무기인 것이다.
그렇다고 필요에 따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색깔이 정당의 본질일 수 없다. 중요한 건 구태를 벗고 쇄신 의지를 다져 실제 현실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21대 총선 때 미래통합당의 사례가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무너진 보수 진영의 재건을 목표로 파격적인 색을 내놓았는데, 그 이름도 거창한 ‘밀레니얼 핑크’였다. 승부수는 통하지 않았다. 자기반성은 부족했고 내실 다지기보다는 겉치장에 치중했던 탓이다. 선거 참패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니,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외관이 화려하다 해서 저절로 변화가 오는 건 아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현실을 바꾸려면 그에 걸맞은 정책, 정강 등을 통해 내실을 알차게 채워야 한다. 진짜 실력을 갖춘 정당만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알맹이는 부실한데 겉만 바꾼다면, 그건 꼼수 아니면 속임수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 했다. 국민들이 그걸 모를 리 없다.
2024-03-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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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테무깡’ 습격, 안전지대는 없다
백화점 셔틀버스가 노선버스처럼 시내를 다니며 쇼핑객을 실어나르던 시절이 있었다. 공짜이다 보니 라면, 계란, 우유 등 생필품을 사러 백화점 버스에 오르는 게 1990년대 흔한 풍경이었다. 손님을 빼앗긴 동네 슈퍼마켓과 전통시장은 매출이 급락했고 대기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민원이 빗발쳤다. 급기야 정부가 법을 개정해 공짜 버스를 금지했다. 2000년대 들어 도심 주거지 주변에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이에 골목 가게와 전통시장 상인들이 상권 몰락을 호소하며 들고일어났다. 정부는 또 법을 고쳐 대형마트 일요일 휴무를 법제화했다.
오프라인 손님 쟁탈전에 다크호스가 등장했다. 인터넷 쇼핑몰이 저변을 넓히면서 유통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한 거다. PC에서 모바일 환경으로 전환된 뒤는 앱에 기반한 이커머스가 대세로 떠올랐다. 모바일 앱으로 주문하면 새벽에 문앞까지 신선 식품이 배달되는 세상이다. 이른바 소비의 시공간 변화다. 최근 부산에서 백화점과 대형마트 폐점이 잇따르고 있는 근본 이유다. 코로나19 시절 익숙해진 비대면 구매 습관이 몸에 붙어 매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되살아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동네 마트까지 사라져 인터넷 주문이 아니면 식품을 구매하기가 힘들어지는 현상을 뜻하는 ‘식품 사막화’라는 개념까지 등장했다.
이 와중에 더 큰 지각 변동을 예고하는 대형 쓰나미가 들이닥쳤다. 이른바 ‘알테쉬’(알리, 테무, 쉬인)로 대표되는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한국 공략이다. 저가와 무료 배송을 앞세워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잠식하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 ‘공습’으로까지 묘사된다. 알리와 테무는 공격적인 회원 확보를 통해 단기간에 14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단숨에 국내 2위(알리)와 4위(테무)로 뛰어올랐다. 국내 물류 기지를 계획하고, 대대적인 저가 할인 공세를 펼친다. 벌써부터 국내 온라인 쇼핑몰 폐업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먼저 매를 맞은 미국에선 염가 매장 폐점이 잇따른다. 한국도 쓰나미를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안전지대는 없다.
■ 소비 시공간의 변화
‘출근길 도시철도 좌석에 앉아 주말에 입을 티셔츠를 결제하고, 근무 중 회사 화장실에서 오전에 다 쓴 자택 화장실 휴지를 주문한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지난해 카드 사용 데이터를 분석했는데, 오전 6~7시 도서 구입이 증가한 점 등을 들어 ‘시간 주권’을 새 소비 트렌드로 규정했다. 오전 이른 시간에 책을 구매하는 경향이 등장한 건 새벽이 소비의 시간으로 ‘발견’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는 스스로 부여한 소비의 경계 확장이라는 것이다. 잠들기 전 네이버 웹툰을 보기 위해 ‘쿠키’를 결제하는 것도 마찬가지.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모바일 앱을 이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시공간의 변화다. 소비자들이 가성비뿐만 아니라 시성비(시간+가성비)를 추구하는 시대가 됐다.
시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형마트가 일요일 쉬건, 평일 쉬건 상관 없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전통시장은 시성비 시대에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매출이 줄고 폐점이 잇따르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인터넷 쇼핑몰이 다 잘나가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가구·가전·식품·의류를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 중 7만 8580곳이 폐업 신고를 해 집계 이래 최다를 기록했다. 폐업으로 몰린 가장 큰 이유는 알리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와의 경쟁에서 도태된 것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를 같이 취급하는데 동일한 제품이 중국계 플랫품에서 훨씬 싼 데다 무료로 배송해 주니 국내 온라인 쇼핑몰이 설 곳이 없어져 버린 탓이다.
■ ‘테무깡’·‘알리깡’ 전성시대
테무 앱을 깔았더니 바로 ‘앱 신규 고객 전용 26만 원 쿠폰 팩’과 ‘신규 앱 고객 전용 13만 원 할인권’과 함께 관심 상품 리스트가 떴다. 26만 원에 홀려 아무 물건이나 사기 십상이다. 당장 필요 없지만 싼 가격에 현혹돼 물건을 사서 쌓아 놓는다는 의미에서 ‘정크(junk·쓰레기) 커머스’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신났다. 특히 젊은 소비층 사이에 인기다. 요즘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테무깡’, ‘알리깡’이라는 신조어를 곧잘 접하게 된다. 알리와 테무에서 배달된 택배 상자를 뜯는 영상물을 올리고 신규 회원 가입을 유도하는 것이다. 24시간 이내에 다른 고객을 유치하면 추가 파격 할인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테무는 다단계와 유사한 회원 확장 마케팅으로 2월 기준 한국에서만 581만 명의 회원을 모았다.
중국 기업 핀둬둬(PDD)가 2022년 미국 보스턴에 설립한 테무는 미국 유통 시장에서도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2월에 열린 미국 ‘슈퍼볼(미식축구 결승전)’ 30초짜리 중간 광고에 90억여 원을 들일 정도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경우 800달러(우리 돈 107만여 원) 미만은 관세가 없는데, 테무는 이를 활용해 저렴한 생활용품을 중국에서 무료로 배송하는 마케팅 방법으로 미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파죽시세다. 테무의 성장에 저가 할인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의 다이소에 비견되는 미국 저가 상품 판매점 체인 패밀리달러는 매장 1000곳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유통 업계에 곧 닥칠 재앙일지도 모른다.
알리는 국산 브랜드를 입점시키고 국내 배송을 시작해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K베뉴’라는 한국산 판매 코너에 CJ제일제당, 농심, 삼성전자 등이 들어와서 직판 형태로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예컨대 CJ제일제당의 햇반(210g·24개)은 정가 4만 4400원에서 56%를 할인한 1만 9536원에 판매 중이다. 국내 최저가 수준이라 국내 플랫폼에 대한 역차별 논란까지 불렀다. 자금력과 회원수를 앞세운 중국계 플랫폼의 파상 공세가 먹히면서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 장악력은 한층 커지고 있다. 또 알리 측은 서울 인근에 대형 물류센터를 짓는 것을 포함한 1조 5000억 원 투자 계획을 우리 정부에 제출했다. 국내 유통업계의 지각 변동은 불가피한 상태다.
■ 중국 이커머스 격전장된 한국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들에 한국 이커머스 시장은 매력적이다. IT 보급이 잘 되어 있고, 물류 인프라가 뒷받침이 되는 시장이다. 게다가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층이 두텁다. 한국이 중국발 쇼핑 플랫폼 격전장이 된 까닭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중국 내수 시장의 침체, 누적된 재고를 떨어내야 하는 다급한 사정도 주요한 배경이다. 초저가, 무료 배송의 이면에는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지배적 사업자가 되기 위해 지금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고 이용자를 늘리려는 전략이 있다. 1000원짜리 초저가 상품이라도 중국에서 한국까지 무료 배송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파격 할인과 쿠폰을 뿌리는 마케팅 전략을 고수하는 이유다.
해외 이커머스 앱에서 거래가 발생하면 관세, 통관, 물류비가 붙지 않는데다 전기 제품의 경우 안전·전자파 인증을 받지 않기 때문에 무임승차로 사업을 키운다는 비판이 거세다. 국내 소상공인들은 역차별 피해를 받고 있다고 반발한다. 또 반품 불편이나 짝퉁, 위해 식품과 의약품, 청소년 유해 매체물 판매도 이미 사회 문제가 됐다. 정부가 뒤늦게 외국계 이커머스 플랫폼에 국내와 동일한 처벌 기준을 적용하는 등의 대책을 발표했지만 중국계 이커머스의 성장세를 꺾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중국 이커머스의 파상 공세에 한국 유통업계 어떻게 될까? 부산 금정구 부산대학교 앞 상권을 들여다 보면 멀지 않은 미래상을 엿볼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상권 조사에 부산 표집 대상은 20곳인데, 이 중 부산대 앞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23년 4분기 27.2%로 상가 넷 중 하나 이상이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평균 7.9%에 비하면 3.5배 가량 폐점한 곳이 많다. 젊은층을 겨냥해 성업했던 옷가게, 잡화류 등 가게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젊은 층이 오프라인 매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줄었기 때문이고, 알리와 테무의 등장으로 이커머스 쏠림이 심화된 탓이다.
■ 규제 완화, 토종 경쟁력 높이는 게 대책
최근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는 추세 속에 부산에서도 적용 사례가 나오려 하고 있다. 한데, 한국 인터넷 쇼핑몰과 부산대 앞 상권 침체 사례를 비춰볼 때 의무 휴업일 조정만으로 추세가 반전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예컨대 대형마트가 오프라인 매장을 물류 기지로 활용해 새벽 배송을 하고 싶어도 밤 사이 영업을 금지하는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족쇄를 차고 경쟁하는 꼴이다.
중국계 플랫폼이 한국 소비자 반응에 대응하는 속도를 보면 두려움마저 생긴다. 알리는 최근 환불·교환에 대한 국내 불만이 일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체제를 도입해 호응을 얻고 있다. 초저가뿐만 아니라 서비스 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춰 가고 있는 셈이다. 테무의 모기업 PDD는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는데, 자산 가치가 1년 새 50% 가까이 올라 1696억 3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225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이런 거대 자본이 작정하고 물량전으로 밀고 들어오면 살아남을 국내 플랫폼이 있을까?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자칫하면 국내 유통 시장이 글로벌 브랜드에 잠식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계처럼 될 수 있다. 토종 OTT 티빙과 웨이브가 1000억 원대 적자를 내며 고전하는 사이 막대한 자금력과 콘텐츠를 앞세운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는 이제 국산 드라마·영화 제작까지 주도하며 K콘텐츠를 쥐락펴락하는 존재로 부상했다. 유통 시장에서도 이 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
이제 쇼핑에 국경은 없다. 초저가 상품을 좋은 서비스로 제공하는 곳에 몰리는 소비자를 탓할 수 없다. 시성비를 추구하는 현명한 소비자들을 붙잡으려면 손님 쟁탈전에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체력을 갖춰야 한다. 지금껏 한국 시장 안에서 안주하면서 가격·품질·서비스 혁신에 소홀했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역차별 해소를 비롯해 일자리 보호나 유통 주권을 지키는 차원에서 규제 완화 조치를 마련하는 등 정부의 개입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정부 대책이 만능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목하 새로운 차원의 소비자 쟁탈전이 시작되고 있다.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경쟁력이 관건이다. 한국 유통업계의 생존은 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때 보장될 것이다.
2024-03-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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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1억 코인’ 어디까지 달리나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프로그래머가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암호화폐 비트코인을 개발해 세상에 공개했던 2009년 1월에만 해도 가격은 0에 가까웠다. 당시에는 사이버머니 같은 데 왜 돈을 써야 하는지도 몰랐고 코인의 가치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2010년 5월 22일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한 프로그래머가 비트코인 1만 개를 건네고 두 판에 30달러인 파파존스 피자를 구매한 게 최초의 거래였다. 1비트코인이 0.003달러였던 것이다. 그런 비트코인이 최근 ‘꿈의 가격’으로 불리는 1억 원을 돌파했다. 14년 전 단돈 30달러만 투자했으면 지금 1조 원의 자산가가 돼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비트코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를 찾는 개인투자자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향후 시장 전망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도 쏟아지고 있다.
∎‘꿈의 가격’ 1억 원 돌파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11일 국내 거래소에서 사상 처음 1억 원을 돌파했다. 올해 들어 급등세를 이어 오다 지난달 28일 전고점이던 8270만 원(2021년 11월 9일)을 돌파한 데 이어 ‘꿈의 가격’으로 불리는 1억 원을 뚫고 올라선 것이다. 두 달 남짓한 기간 70% 이상 급등했다. 세계 자산시장에서 비트코인은 시가총액이 1조 4200만 달러 수준으로 은(銀)을 넘어섰고 금(金),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엔비디아, 사우디 아람코, 아마존, 구글에 이어 8위에 올랐다.
비트코인 불장 덕분에 전 세계에서 매일 1500명가량의 ‘백만장자’(100만 달러, 13억 원 이상의 자산가)가 탄생하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한다.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비트코인으로 15억 원을 번 공무원이 압구정 ‘현대아파트 사러 간다’는 글을 올려 진위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017년 한 방송에서 비트코인을 2000년대 초 유행하던 아케이드 게임인 ‘바다이야기’에 비유하며 도박이고 사기라고 했던 발언까지 소환되고 있다. 가치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이 “비트코인은 생산적이지도 않고 내재가치도 전혀 없다”고 한 발언도 다시 화제다. 최근의 비트코인 광풍을 두고 ‘포모(FOMO) 증후군’을 겪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포모 증후군이란 유행에 뒤처지는 것 같아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로 투자와 관련해서는 자신이 매수하지 않은 종목의 급등으로 수익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미 현물 ETF 승인 제도권 진입
최근의 비트코인 열풍을 이끈 것은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1월 10일(현지시간) 블랙록, 피델리티, 아크인베스트 등 11곳의 자산운용사가 출시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했다. 비트코인이 ETF로 거래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ETF 거래가 시작되면서 이들 자산운용사 계좌로 개인 투자자금이 몰렸다. 이들 투자자금은 기초자산인 비트코인에 대한 투자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가상자산 시장의 큰손을 뜻하는 ‘고래’들도 시세 차익을 노리고 동반 매입에 나서면서 비트코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SEC의 ETF 승인이 수급 차원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음지에 내몰리던 비트코인이 당당히 양지로 나왔다는 점이다. 이는 전통 금융과 가상자산 시장의 벽이 무너지고 제도권 안에서 함께 경쟁하고 성장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이다.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거래한다는 것은 가상자산에 대한 대중의 긍정적 인식 변화를 유도한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가상자산 시장이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비트코인에 이어 또 다른 가상자산인 이더리움 현물 ETF 승인 절차도 시작됐다. 영국 런던증권거래소도 가상자산 관련 상장지수증권(ETN) 거래 신청을 받는다고 발표하는 등 각국에서 가상자산의 제도권 진입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반감기 전후로 요동친 가격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제도권 화폐의 인플레이션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해 애초 발행량을 2100만 개로 한정했다. 그중 이미 1950만 개 정도가 채굴됐다. 채굴에 따른 보상으로 주어지는 비트코인 개수는 4년마다 반으로 줄도록 설계돼 있는데 이를 반감기라 한다. 올해 4월이면 4번째 반감기가 돌아오는데 현재 6.25개인 채굴 보상이 3.125개로 줄어든다. 역사적으로 비트코인 공급량이 반으로 준 2013년, 2017년, 2020년 반감기를 기점으로 가격이 상승했다. 2013년 첫 반감기를 지나고 1년도 되지 않은 그해 말 비트코인 가격은 1240달러로 41배나 뛰었다. 2017년 초 1150달러이던 가격은 반감기를 거치며 1만 9000달러까지 치솟았다. 2020년 3차 반감기 후 6만 5000달러까지 치솟던 가격은 중국의 채굴 금지와 테슬라의 비트코인 결제 정책 철회 등 악재로 조정을 받는가 싶더니 2021년 11월 6만 8990달러로 역대 신고가를 경신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다. 비트코인은 15년 역사 동안 가격이 폭락하는 두 번의 ‘크립토 윈터’를 겪었다. 2017년 정점을 찍은 후 2018년 12월에는 3400달러로 하락했다. 고점 대비 80% 이상 폭락하면서 가상화폐 ‘무용론’까지 등장했다. 이후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NFT(대체불가토큰) 등이 도입되고 블록체인 산업생태계에 대한 기대가 확산하면서 2023년 11월 다시 역사적 최고점을 찍었다. 그러나 2022년 5월 루나 사태와 세계 3위 가상화폐 거래소 FTX 파산, 글로벌 금리 인상 등이 맞물리며 두 번째 그립토 윈터를 겪었고 2023년 1월 1만 6000달러까지 폭락했다.
∎‘2억 간다’ vs ‘거품이다’
신영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당분간 비트코인의 견조한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고 8만~10만 달러에 도달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역사적으로도 반감기 이후 1년가량 상승세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SC)와 미국 번스타인 등의 보고서를 종합하면 연내 15만 달러(약 2억 원)까지 상승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25년 20억 달러 돌파 등 장밋빛 전망도 쏟아진다. 금 ETF 등장 후 가격이 대세 상승기에 진입한 것처럼 향후 비트코인 가격도 급등락 없이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표적 가상화폐 긍정론자인 마이클 세일러 마이크로스트래티지 회장은 “비트코인은 금의 모든 훌륭한 속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금이 지닌 결함은 갖고 있지 않다”며 “앞으로 디지털 금이 돼 뿌리 깊은 투자자산인 금을 대체할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나 단기 시장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역사적 가격 변동성을 고려하면 현시점에서 비트코인 투자는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장난이나 재미 기반의 ‘밈코인’이나 인공지능(AI) 코인 급등은 투기적 시장 신호라는 분석이다. JP모건 체이스는 비트코인이 4월 이후에는 4만 2000달러로 내려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반감기 이후 상승장을 이어 가던 이전 흐름과 달리 이번 강세장은 ETF 승인, 반감기, 금리 인하 등 호재가 이미 가격에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가상화폐 시장의 앞길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변동성이 클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재의 비트코인 역사적 고점 돌파가 ‘크립토 스프링’의 시작인지 이미 ‘크립토 섬머’를 지나고 ‘크립토 윈터’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인지 전문가 의견도 갈린다.
비트코인의 향후 시장 전망과는 별개로 최근 가상자산을 둘러싼 글로벌 시장에서의 제도화 움직임은 블록체인 특구 확대와 디지털자산거래소 출범 등 블록체인 산업생태계 조성을 미래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는 부산에는 긍정적 분위기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2024-03-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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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이젠 녹색이야”
산업혁명 이후 세계 각국의 도시들은 과밀화로 도시 내 녹지율이 급격히 낮아졌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의 불로뉴 숲이라든지,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조성됐다. 그게 도심 속 자연이라는 개념의 ‘공원 같은 도시’였다면, 지금은 도심 속에 파편적으로 흩어진 숲과 숲, 공원과 공원을 이어주는 ‘도시 같은 공원’ 형태로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도시 계획 역시 전통적인 도시 개발 모델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생태적 접근 방식으로 전환된다. 부산도 이런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지난 4일 시청 내 푸른도시국이 신설돼 그 시작을 알렸다. '도시 속의 공원'에서 '공원 속의 도시 부산'으로 도시 구조를 재편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공원이나 정원, 생태 도시·도시 숲 조성은 물론이고 기후변화 대응 등 향후 부산의 녹색 정책이 여기서 펼쳐질 예정이다. 바야흐로 ‘녹색 공간(그린 인프라)’이 도시 경쟁력이 되는 시대. 여기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딘 부산이다. 어디를 바라보고, 어떻게 헤엄쳐야 할까?
■싱가포르, 길이 될까?
황폐한 농장, 썩고 오염된 강….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했을 당시 싱가포르의 모습이 이랬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노력 끝에 싱가포르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정원 도시가 됐다.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녹지율이 높아지고 있는 특이한 국가가 바로 싱가포르다.
싱가포르 친환경 도시계획의 비전은 ‘정원 속 도시’다. 도시에 정원을 짓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자연으로 만들겠다는 녹색 도시에 대한 강한 비전을 담고 있다. 이는 도심 속 정원 가든스 바이 더 베이를 비롯해 보타닉 가든, 주얼창이공항 등에서 잘 느껴진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싱가포르 녹지정책의 핵심은 바로 ‘연결’이다. 시민들이 짧게는 250m, 멀어도 400m 안에 접근 가능한 공원이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실제로 싱가포르 포트 캐닝 파크 주변에는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이스타나, 워메모리얼, 에스플란데 파크가 자리 잡고 있다. 공원과 공원 사이는 연결(혹은 선형)녹지 형태의 그린웨이가 구축돼 있다. 그 주변으론 주거, 상업, 문화시설을 배치하고, 생태통로도 갖춰 생물의 종 다양성도 확보했다. 공원과 공원의 연결 외에도 녹색으로 뒤덮인 수직 고층 빌딩, 생태 중심 디자인 건축물 등은 정원 속 도시 싱가포르의 면모를 한껏 보여준다.
세계적인 추세 또한 녹지의 연결이다. 요컨대 뉴욕은 센트럴파크를 중심으로 100만 평이 넘는 대공원과 시민 생활권역 내 중소 공원들이 친환경 보행길로 네트워크를 이룬다.
싱가포르나 뉴욕이 부산시가 추구하는 그린 인프라 방향의 정답은 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분명 힌트는 될 수 있을 것이다.
■ ‘녹지’가 왜?
싱가포르와는 결이 좀 다르지만, 일본 도쿄도 녹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롯폰기힐스, 미드타운, 아자부다이힐스는 도쿄의 주요 재개발 지역이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첨단복합단지 아자부다이힐스는 중앙광장을 포함해 전체 부지 면적의 37%가 녹지다. 건물의 옥상 부분까지 녹색으로 덮여 있을 정도다. 옛 일본 방위청 자리에 2007년 들어선 초고층 복합상업단지 미드타운은 부지 면적의 40%가 녹지다. 이쯤 되면 ‘도심 속의 공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2003년 콤팩트시티의 효시로 개발한 롯폰기힐스 역시 넓은 녹지와 문화 공간 등을 통해 매년 3000만~4000만 명이 찾는 도쿄의 명소가 됐다. 근래 도쿄를 관광하는 여행객들은 “무료했던 도시가 활기 넘쳐 보인다”고 말할 정도다. 그 활기의 한가운데 바로 녹지가 있다. 도쿄의 고밀도 개발은 넓은 녹지 공간을 통해 경쟁력 있는 공간을 만들어 도시 활력을 높이고 도시와 시민에게 기여한다는 점에서는 장점이다. 다만 초고층이기에 도시경관 훼손과 같은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는 게 단점이다.
도시의 70%가 녹지로 조성돼 유럽의 허파로 불리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버려진 공장을 수경 재배 농장으로 바꾼 영국의 뉴어크, 산업 부지를 자연공원으로 탈바꿈한 독일 베를린처럼 자연이나 녹지와 함께할 길을 찾아낸 도시들이 점점 늘고 있다. 외국 사례만 있는 건 아니다. 전남 순천시는 일찍부터 생태와 정원이라는 가치를 품고 도약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처음 개최(2013년)할 당시에는 단순히 정원에만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지난해 국제정원박람회 때는 그 범위를 도심권, 국가정원, 순천만 습지 등 도시 전체로 확장했다. ‘도시가 정원이다’라는 박람회 캐치프레이즈는 순천시의 지향점이 어딘지를 말해 준다. 경북 포항시는 2016년부터 2021년 말까지 6년간 축구장 66개 규모인 47만여㎡의 도시 숲과 녹지 공간을 조성해 철강 산업 중심의 회색 산업도시를 지속 가능한 녹색 생태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찰스 몽고메리는 저서 <행복한 도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시 녹지는 건강한 주거 공간을 이루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라고.
■그럼, 부산은 어디로
부산시는 푸른도시국 신설을 계기로 전국 최고의 공원 도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물론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푸른도시국의 조직이나 최근의 부산시 행보를 보면 국가 정원에 너무 목매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 정원 같은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너무 골몰해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무엇보다 생활밀착형 녹지 확충, 이를 기반으로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는 도심 속 녹지 연결이나 그린웨이 조성도 국가 정원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서 싱가포르 사례에서 보았듯이 도시에 1만 평짜리 공원 하나를 짓는 것보다 1000평짜리 공원 10개를 조성해 이를 연결하는 게 시민들에게는 훨씬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40년 부산도시기본계획에도 나와 있듯이 ‘도시공원·녹지의 연결성 부족’ ‘조성된 공원의 비효율적 사용’ 등은 부산시가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공원과 공원, 숲과 숲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녹지의 가치와 효율성이 더 높아진다.
부산에는 낙동강이 있지만 인접한 일부 시민을 제외하곤 걸어서 가기엔 접근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언제든지 낙동강으로 갈 수 있는 녹지를 기반으로 한 보행로가 만들어져야 한다. 공원이나 숲과 같은 녹지를 이용하는 주체는 시민이다. 녹지는 도시의 구색 갖추기가 아니라 녹지가 시민의 일상과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부산시가 구현하는 ‘15분 도시’도 시민 곁으로 성큼 다가올 수 있다. 현재 지역별로 파편화된 공원을 산림·하천·해안 축으로 연결하고, ‘15분 도시’와 발맞춰 어느 곳에서든 15분 안에 녹지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도시의 가치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 연관이 있다. 사람들의 삶의 질은 공원이나 녹지의 넓이와 직결된다. 그래서 1인당 공원 면적을 따지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도시의 미래를 위해, 단순히 아파트만 높게 쌓을 것이 아니라 녹지도 더 많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 도시 전문가들은 흔히 행복한 도시는 걷기 좋은 도시라 말한다. 걷기는 시민의 건강과 직결되고, 보행길은 녹지와 연결된다. 사람이 걷는 곳은 상권이 활성화된다. 궁극적으로 걷기 좋은 도시라고 하면 ‘시민 건강-경제-도시 환경’이 한 축이 돼 향상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도시 경쟁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단 얘기다. 어쩌면 향후 부산의 도시 경쟁력도 녹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와 자연은 공존할 수 없다’는 생각은 이제 우리 손으로 뒤엎어 버리자.
‘미군 55보급창이 있던 곳은 인근 동천과 함께 하구 숲을 이루고, 경부선 철길이 지나다니던 곳에는 숲길이 이어진다. 북항에서부터 도심을 가로질러 낙동강까지 ‘녹지 회랑’이 이어지는 부산.’ 부산시가 그리는 2040년의 녹지 모습이다. ‘녹색 꿈’이 야무지게 영글기를 바란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2024-03-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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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21세기 골드러시’ 천연수소를 찾아라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문제가 전 지구적 이슈가 된 이후 친환경 에너지원 발굴은 인류 전체의 과제가 됐다. 지구를 보호하면서 현재의 인류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에너지원 발굴은 금세기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된 것이다.
현재 인류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주목하고 있는 대상은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자연력과 우주에서 발견된 원소 중 가장 풍부한 수소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이미 ‘2050년 탄소중립 추진 전략’을 선언한 우리 정부는 탄소중립 전략의 핵심으로 수소를 꼽고 이와 관련한 정책 추진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수소의 에너지원 활용에는 아직 넘어야 할 문제가 있다.
■ 기존 수소 활용 단점 극복할 천연수소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흔하기도 하고 물의 3분의 2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로 일반인에도 익숙하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새로운 대체 에너지원으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수소의 생산 비용이 발목을 잡는다.
수소는 가장 가벼운 원소로 다른 원소와 반응성이 높아 수소 그 자체로만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 다른 원소와 화합물로 존재해 순수 수소를 분리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산업적인 공정을 거쳐야 한다. 이에 따라 그레이(회색) 수소, 블루 수소, 그린 수소 등으로 나뉜다. 그린 수소는 이산화탄소 발생이 거의 없는 청정한 수소지만, 비싼 비용이 단점이다. 그래서 현재는 메탄을 수증기와 반응시켜 수소를 얻은 방식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그레이 수소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이런 이유를 들어 수소를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최근 이 같은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 바로 천연수소의 발견이다. 지구의 지층에서 수소가 자연적으로 샘솟는 곳이 알려진 것이다. 화산에서 가스가 나오듯 방출되는 수소를 활용한다면 기존 수소 활용의 단점도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 지구 땅속에 5만 년 사용량
천연수소의 놀라운 가능성이 알려지면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이를 찾으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데 최근 프랑스 그르노블알프스대와 알바니아 과학자들이 알바니아의 한 광산 지역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천연수소 샘을 발견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가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연구진은 광산에서 나오는 물의 흐름을 추적한 끝에 땅속 1㎞ 지점에서 자연적으로 수소를 뿜어내는 물웅덩이를 발견했는데, 30㎡ 크기인 이 한 곳에서 솟아 나오는 수소만 연간 11톤 규모라고 한다.
연구팀은 여기뿐만 아니라 인근 갱도와 동굴에서도 방출되는 수소 가스를 찾았다. 이를 종합한 결과 이곳에서 나오는 수소 가스는 연간 최소 200톤이 넘으며, 순도도 84%에 이를 정도로 분석됐다. 지금까지 보고된 천연수소 방출량 중 최대 규모다.
천연수소가 이곳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근래 알려진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미발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지하에는 최대 5조 톤의 수소가 있다고 한다. 현재 전 세계의 연간 수소 소비량이 1억 톤 정도임을 고려하면 앞으로 5만 년가량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다.
■ 미국 등은 정부 차원 지원 박차
엄청난 규모로 추정되는 지구 지층의 천연수소가 시장에 나오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천연수소 추출 가능 지역의 지질조사를 비롯한 여러 관련 사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추출을 위한 기술적인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 이를 감안하면 수년 또는 그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천연수소의 대량 매장이 확인된 이상 이의 활용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 등은 천연수소 탐사·발굴에 지원을 확대하는 추세다. 지난해 미국 정부는 땅속의 청정한 수소를 탐사하고 추출하는 기술 연구에 2000만 달러의 지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층에 매장된 수소의 일부만 추출해도 수천 년 정도는 에너지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작년 전국 5개 지점에 측정 장치를 설치해 국내 최초로 천연수소 발생을 확인했다.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도 ‘21세기 골드러시’의 대상인 천연수소를 발굴·활용할 수 있는 첫발은 내디딘 셈이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과제가 많고 또 석유나 천연가스처럼 에너지원으로서 신기원을 열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만큼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러다 혹시 우리나라에도 정말 ‘에너지 대박’이 터질지 누가 알겠나.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2024-03-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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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건국전쟁’ 흥행이 씁쓸한 이유
■흥행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감독 김덕영)이 지난 21일 관객 80만 명을 돌파했다. 개봉 20일 만이다. 특정 인물, 특히 과거 정치 인사에 대한 다큐로는 이례적인 흥행 속도다. ‘건국전쟁’ 속편도 곧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런 열기는 관객의 순수한 호응에 따른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테다. 제작사의 새로운 홍보 기법에 힘입은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해당 제작사는 청년 관람객이 영화표를 인증하면 표값 전액을 되돌려주는 이벤트를 진행해 사재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이변이라 할 정도의 흥행에 대한 설명으로 충족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장면1
‘울산시 총무부서는 최근 시청 내 부서와 산하기관 등에 ‘2024년 직원 MT 추진 계획’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쪽지로 전해져 온 별도의 공문에는 21일부터 27일까지 오후 7시에 남구 삼산동의 영화관 특정 상영관(192석)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계획이 제시됐다. 해당 상영관에선 영화 ‘건국전쟁’이 상영된다. … 한 공무원은 “‘자율’이라면서 특정 시간·특정 극장·상영관을 제시해 압박하고 있다”며 “관람하겠다고 나서는 직원이 없자 ‘이러면 (시장에게) 찍힌다’는 말이 나왔다. 결국 강제로 영화를 보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 다른 공무원은 “여당 인사들의 ‘관람 인증 릴레이’가 벌어지는 영화 관객수를 늘리려 여당 소속 단체장이 공무원을 동원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울산시 공무원노조도 … “많은 부서에서 자율이라는 명목하에 특정 영화 ‘건국전쟁’ 관람을 MT로 정하고 있다”며 “특정 정치성향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영화를 공무원 조직에서 굳이 단체관람을 추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이는 지난 20일 <세계일보>가 보도한 기사 일부분이다.
■장면2
‘건국전쟁’ 관람에는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과 김영호 통일부장관 등 현 정부 국무위원들도 적극 참가하고 있다. 김덕영 감독이 지난 13일 SNS에 올린 영상에서 유 장관은 전날 ‘건국전쟁’ 관람 후 “역사적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많은 분이 꼭 와서 봐주셨으면 좋겠다”라고 권했다. 김 장관도 지난 17일 ‘건국전쟁’ 관람 후 “큰 감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또 지난 20일 <문화일보> 칼럼을 통해 “‘건국전쟁’은 올바른 역사 인식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자유민주통일의 시발점임을 웅변한다”고 역설했다.
■장면3
일부 개신교계와 보수·우익 세력이 ‘건국전쟁’ 흥행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양상이다. 부산 세계로교회를 비롯해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각 지역의 크고 작은 교회들이 연일 단체 관람을 이어오는 것이다. 부산 세계로교회는 ‘건국전쟁 영화 세계로교회 1200명 관람 후기’란 유튜브 영상을 통해 교인들의 감상후기를 소개해 놓았다. 한국자유총연맹은 지난 15일부터 자체 홈페이지에 댓글 응원과 관람 사진을 올리는 ‘건국전쟁 관람 인증 챌린지’를 시작했다. 한국자유총연맹은 이 챌린지를 다음 달 26일까지 계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 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에서도 회원들끼리 후기를 올리는 등 ‘건국전쟁’ 관람을 독려하고 있다.
■정치권이 더…
정치권, 정확히는 여권이 총선을 앞두고 ‘건국전쟁’ 띄우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그 선두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지난 설 연휴 중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건국전쟁’에 대해 “역사를 올바르게 알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이승만 대통령기념관 건립 사업에 500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인사들도 잇따라 대열에 합류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 등이 ‘건국전쟁’을 관람한 데 이어 현역 의원이나 총선 출마 예정자들도 SNS 등에 관람 후기를 올리고 있다. 그중 부산의 어느 의원은 “오는 4월 총선은 제2의 건국전쟁이다. 반드시 자유 우파가 승리해서 건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로 이어진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되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순수한가?
‘건국전쟁’의 흥행을 미심쩍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이념몰이 목적의 관객 동원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의심은 진영을 떠나 과거에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가 개봉했을 때 이해찬 전 총리 등 당시 여권 인사들이 앞다퉈 관람했다. 문재인 정부 때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건국전쟁’의 영화적 수준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그런 것은 상당 부분 개인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건국전쟁’ 흥행의 배경이 순수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은 지적할 수 있겠다. 총선을 코앞에 둔 지금 시점이라 특히 더 그렇다.
2024-02-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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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정치인 숏폼 홍보, 할 거면 제대로 하라
총선을 50여 일 앞둔 정치권에서 신경 쓰는 부분이 20~30대 젊은 세대들의 표심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이다. 이들의 표심을 얻기엔 기존 방식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정치권이 숏폼(short-form)이라는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숏폼이란 글자 그대로 짧은 길이의 영상을 말한다. 짧게는 15초에서 길게는 10분 이내의 영상까지 다양하다. 흥미를 유발하고, 웃음을 추구하는 강렬하고 짧은 콘텐츠. ‘영상이 길면 보지 않는다’는 예능 상식이 이제 총선 주자들의 홍보까지 바꿔 놓는 모양새다.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중장년이나 고령층에도 간결하고 쉬운 형식이 더 잘 ‘먹힌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홍보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유권자의 입장에선 마냥 좋게만 인식되는 건 아니다.
■이용 많은 젊은 세대 공략에 주효
고령사회로 넘어가는 한국이지만 여전히 20, 30대의 청년 인구는 28.8%(2023년)에 달한다. 이들의 마음을 잡지 못하면 선거에서 이기긴 힘들다. 이 때문에 정치인이면 청년들의 표심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각 당의 예비 후보나 주자들은 숏폼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거나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틱톡(TikTok)을 비롯해 인스타그램의 릴스(Reels), 유튜브의 쇼츠(Shorts) 등 여러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숏폼을 선보인다. 정치판에서 숏폼을 활용하는 이유는 짧은 형식으로 정보를 전달해 유권자들이 총선 주자들의 정책, 캠페인 메시지, 현재 정치적 이슈 등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총선 주자 입장에선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나 동영상을 통해 시각적으로 자신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홍보 수단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 정보를 접하곤 한다. 지난해 3월에 나온 ‘소셜미디어‧검색포털 리포트 2023’에 따르면 전국 15~59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68.9%가 숏폼을 시청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20대는 82.9%, 30대는 73.9%가 숏폼을 접해 봤다고 답했다. 숏폼이 젊은 층에서 최적의 플랫폼으로 평가받는 만큼, 이들을 공략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숏폼 활용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2022년 대선 찍고, 이번 총선서도 활용
숏폼은 2022년 대선에서도 활용됐다.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15초짜리 숏폼이 화제가 됐다. 탈모 관련 지원 정책을 검토하겠다는 취지의 영상이었다. 이 후보의 숏폼이 화제가 되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가세했다. 국민의힘은 당시 유튜브를 통해 59초 분량의 생활 밀착형 공약을 제시하는 영상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정치권은 4·10 총선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서울 동작구을 출마를 준비하는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즉석 길거리 인터뷰를 하는 숏폼 채널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나 전 의원은 판사 출신으로 로스쿨 입학시험 문제를 푸는 영상을 제작해 한 달 만에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대전 서구갑 출마를 준비하는 유지곤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는 자신이 올린 인스타그램 릴스 동영상의 조회수가 수백만 회를 넘었다. 숏폼을 통해 선보인 ‘나루토춤’은 젊은 세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춤으로 ‘유 후보가 포인트를 맛깔나게 살렸다’ 등의 호의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나경원 전 의원을 비롯해 몇몇 예비 후보들의 이 같은 홍보 방식이 먹히자 다른 총선 주자들도 숏폼을 활용해 하나둘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쇼츠나 릴스 등에서 유행하는 ‘나루토춤’ 등을 활용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후보들부터 선거 브이로그, 경력과 스펙 소개 영상, 대형 정치 유튜브 채널 출연까지 활용 형태도 다채롭다. 이뿐만이 아니다. 4·10 총선이 다가오면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 주요 정당들도 숏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정도다.
■짧은 시간 주요 메시지 전달… 몰입도 높아
숏폼 영상은 스마트폰으로 쉽게 볼 수 있게 세로로 촬영하고 단 몇 초 만에 시선을 사로잡을 콘텐츠를 올리는 게 핵심이다. 장점은 짧은 시간에 주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결하고 강렬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어, 유권자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은 큰 강점이다. 숏폼 영상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쉽게 공유된다. 공유와 확산 자체가 기존 소셜미디어보다 빠르다는 얘기다. 따라서 더 많은 유권자에게 전파할 기회가 많다. 또한 공유와 댓글 등을 통해 더 큰 관심과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 영상이 짧아 제작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유권자 반응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어 피드백을 통한 자기 개선도 가능하다.
유권자들은 여러 출마자의 숏폼을 시청할 수 있어 그들의 정책과 의견을 비교·평가할 수 있어 좋다. 영상이 짧아 바쁜 일상에서도 정치적인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짜뉴스 양산될 가능성 높아
숏폼은 보통 짧은 시간에 정보를 전달해야 해 정책 내용을 축약해야 한다. 이에 출마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책의 세부 내용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요컨대 청년들의 세대 아픔에 공감하고 보듬어주는 정서가 담겨 있으면 좋은데 영상이 짧다 보니 이런 것은 빠지고 출마자의 춤 같은 행위가 더 크게 부각될 수 있다. 가짜뉴스나 허위 정보에 더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짧은 콘텐츠인 만큼 내용이 조작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정교하게 만든 조작 영상은 검색 등을 통한 진위 검증 자체가 쉽지 않다. 최근 화제가 됐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거짓 음성은 숏폼 형태로 퍼져나가, 수천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처럼 가짜뉴스가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 자칫 정치를 후퇴시킬 수 있다. 시각적 효과를 통해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숏폼에 30분만 노출돼도 사고력과 기억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잠깐 마비된다는 얘기도 있다. 관련 전문가들은 “숏폼을 지나치게 보면 마약과 같은 중독 현상에 빠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숏폼 같은 동영상 마케팅을 받아들일 때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총선 주자들이 제시하는 정보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그들의 정책과 목표를 심층적으로 비교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숏폼에 잘못 빠지면, 총선 출마자에 대한 판단마저 흐려질 수 있다.
■이왕 ‘숏폼’ 한다면 제대로 해야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선보이는 숏폼은 최근 유행하는 챌린지를 정치인들이 따라 하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일단 짧은 영상과 쉬운 글로 유권자들의 눈길은 끌게 됐지만, 이 정책이 왜 필요하며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메시지가 잘 안 보인다는 얘기가 들린다.
숏폼 콘텐츠가 대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총선 출마자들의 공약은 흥미만 끌면 되는 게 아니다. 짧고 강렬하게 내지른 뒤 ‘아무튼 잘해보겠다’는 식의 홍보는 곤란하단 얘기다. 20~30대 청년 유권자들은 숏폼에 대해 처음에는 재미에 무게를 두었으나, 최근에는 내용을 보는 경향이 많아졌다. 그만큼 총선을 앞두고 젊은 유권자들이 깐깐해졌다는 얘기다.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은 좋다. 하지만 잘못 만들면 자칫 경박스럽다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정치인의 숏폼은 유권자와의 소통과 그 진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 좋다. 재미와 내용,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20대 한 청년 유권자는 “하고 싶은 공약이나 메시지를 담아야지, 정치인이 나와서 어설프게 춤추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후보자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청년들을 이해하는 것은 청년들이 원하는 것을 청년들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2024-02-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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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지역인재전형 확대, 지역 교육 지형 바꿀까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 휘문고 길 건너편 S학원 인근. 오후 늦은 시간, 고급 승용차들이 비상등을 켠 채 도로 3~4차선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거하고 있다. 어떤 이는 그냥 우두커니 차를 세운 채 차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학원에서 나온 자녀들을 다음 학원으로 데려다주기 위해서다. 의대 증원이 발표된 다음 날인 7일, 이 일대는 대형학원의 ‘의대 진학 설명회’가 잇따라 열리면서 학부모와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부산에서 고등학교 재학 중인 딸과 함께 2년째 방학마다 대치동 학원가를 찾는다는 송 모 씨(48)는 “의대 정원 확대가 발표되고 나서, 학부모들의 눈빛이 달라졌다”면서 “완전 장난 아니다”라고 말한다. 송 씨는 “일타강사가 몰린 대치동 학원가에 오랫동안 단련된 서울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지방 학생이 정시로 상위권 대학에 가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고 토로했다.
■‘의대 증원+지역인재전형 확대’ 파장 폭발적
정부는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해 2025년도부터 지역 국립대와 정원 50명 이하 미니 의대를 중심으로 의대 정원을 2000명으로 대폭 늘리고, 신입생의 60%까지 지역인재전형을 확대하기로 했다. ‘비수도권 위주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와 ‘지역인재전형 비중 60% 이상 확대’가 동시에 결합되면서 의대 지역인재전형 선발 인원이 현재 1068명에서 최소 2배가량인 2018명으로 급증할 예정이다. 현재 지방권 의대 27곳은 전체 모집정원 2023명의 52.8%인 1068명을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최소 2배 이상 급증하는 셈이다. 대한민국에서 파급력이 가장 큰 입시 정책의 변화로 엄청난 후폭풍이 불고 있다. 벌써부터 지역인재전형을 노리고 중학생들의 지방 전학 얘기마저 나올 정도다.
■지역인재전형 비율 계속 높아질 듯
현재까지 지역인재 입학 비율을 60%로 높였던 지역 대학들이 향후 80%까지 올릴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실제로 부울경 일부 의대의 경우 지역 출신 신입생 비중을 전체 정원의 80%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사회에서는 의대 증원분을 지방 의대로 집중할 것과 증원 인원 100%를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해야 한다고 요청하는 상황이다. 눈앞에 닥친 지역 의료체계 붕괴에 대처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책이라는 판단이다. 의대 지역인재전형 규모는 향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지역 A 의대 입학 업무를 담당했던 K 교수는 “졸업 후 지역에 남는 것은 지역인재전형 학생들”이라고 단언한다. K 교수는 “의대생 졸업 이후 경로에 대한 통계를 내고 있다”면서 “지역인재전형 학생들은 졸업 후 20~30% 외에는 대부분 지역에 남지만, 수도권 출신들은 20~30%를 빼고는 서울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지역 출신이 지역에 남을 확률이 통계적으로도 훨씬 높다는 결론이다. 현실적으로 인턴과 레지던트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지역에서 학생을 선발할 수밖에 없고, 지역 의료 서비스를 위해서는 지역인재전형이 긴요한 정책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지역인재전형 100% 확대 가능성은
K 교수는 “전국 경쟁으로 뽑힌 학생과 지역인재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내신 등급이 0.3 정도 차이가 나지만, 의대 교육에는 큰 차이가 없다”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 나오는 100% 지역인재전형은 입시 체계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대학 입학에서 최저등급을 요구하는데, 수시는 물론이고 정시에서도 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 의대 관계자들은 대학 자율로 맡기더라도 지역인재전형 비율은 80%가 최대치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지역 의대 관계자는 “상당수 지역 의대가 벌써부터 지역인재전형 입학 비율을 60% 수준으로 확대하고 있고, 의대 증원과 함께 이 비율도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역 학생에게 기회 될까
부산 지역 고등학교 입시 담당 교사들은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지역 학생들에게는 확실히 기회가 늘어난다”고 입을 모은다. 의대 정원이 2000명 늘어나면 현재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이공계 합격생의 78.5%가 의대 진학 가능권에 속하게 된다. 신입생 10명 중 8명은 의대에 지원해도 합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역 고등학교를 졸업한 비수도권 합격생의 경우 그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다.
부산 S고 입시 담당 H 교사는 “2000명 정원이 늘어나고, 지역인재전형까지 확대되면서 지금 고3에 올라가는 학생들은 전국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최소 한 명씩은 의대에 더 들어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지역 학생은 전국보다는 지역 내부에서의 경쟁이 훨씬 수월하다”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당장은 올해 새학기부터 수도권 상위 대학 신입·재학생의 중도 이탈이 급증하고, N수생이 대거 몰리면서 최저 등급 컷이 높아질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역 대학 입학처장을 역임했던 W 교수는 “지역 공대의 몰락, 2024년도 합격생의 등록 포기 등 장기적으로 논란은 불가피하겠지만, 지역 의료 공백 해소와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는 당근책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 가속화 계기
지역에서는 지역 의대 중심의 의대 증원과 지역인재전형 비율 확대가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의대 증원으로 청년인구가 늘고, 의료체계가 갖춰지면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이전했던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기러기 부부’들에도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마다 KTX에 몸을 싣고 서울 집으로 가던 분위기에서 서울 집을 정리하고 지역으로 결합하는 추세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또한, 자녀를 가진 공기업 직원의 경우 근무처를 서울본부에서 지역 본사 우선 지원으로 흐름이 바뀔 전망이다. KDB산업은행 등 공공기관 직원들이 지방 이전에 반대하거나, 단독 부임하는 속내도 결국 ‘자녀 교육 환경’이기 때문이다. 지역인재전형에 지원하려면 고등학교를 해당 지역에서 졸업해야 가능하다. 3년 뒤인 2028학년도부터는 중학교부터 의대 소재 지역에서 다녀야 한다. 지역 소재 공공기관의 경우 가족 전체가 자연스럽게 지역 본사 소재지로 옮길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상황이다.
의대 지역인재전형 확대가 이런 수도권 중심의 교육 열기에 미세하게나마 균열을 낼 수 있다는 바람도 생겨나고 있다. 또한, 강남 학원가를 중심으로 자녀만 지역 중고교로 진학시키는 ‘지방 유학’ 문의도 쇄도하고 있지만, 자녀 교육 특성상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지역 학원 관계자는 “비수도권 학생, 특히 의대가 밀집한 부울경 학생들이 의대를 진학하기에 수도권보다 매우 유리한 구도가 됐다”며 “부모 직장 등 조건이 갖춰지면 초등학교 때부터 아예 지방으로 이주하는 가족이 늘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흐름은 국가균형발전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수도권 인구의 지역 분산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공공기관 지역균형인재 취업도 노려볼 만
의대 지역전형 확대 정책 발표에 앞서 비수도권 공공기관이 신규 직원을 뽑을 때 전체 채용 인원 중 35%를 지역인재로 선발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도 국회를 통과되면서 지역균형발전에 청신호로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 비수도권 공공기관의 지역인재(지역대학 졸업자 또는 졸업예정자) 채용 비율을 35%로 의무화했다.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에 대해서도 지역인재 채용을 독려하도록 하는 규정을 넣었다. 지방대 출신 취업 준비생들의 공공기관 취업과 이로 인한 정착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문제는 대학 입학 단계에서 거점 국립대와 서울 중위권 대학에 동시 합격하면, 서울로 가는 추세를 막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S 교사는 “10년 이상 고3 제자와 학부모들을 보고 있으면, 4~6년 뒤에 지역 공공기관 입사를 염두에 두고 대학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면서 “공공기관 지역인재 전형은 지역 출신 대학생들이 고향에 남을 수 있는 정책으로 생각된다”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우려와 기대
서울 상위권 대학은 물론이고, 지역에서도 이공계 출신들의 잇따른 이탈이 예상된다. 특히 지역 대학의 이공계 우수 인재들이 대거 의대로 흡수될 경우 자동차·조선 관련 제조업 위주의 부울경 산업 현장을 주도할 인재를 찾기 어려울 우려가 높다. 일각에서는 의사만 양성하고, 대학 이공계 R&D 예산은 축소하는 국가에 과연 미래가 있느냐는 의문마저 제기할 정도이다.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이공계 이탈 현상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의대 증원 확대 정책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가 던지는 메시지의 불명확성도 우려를 증폭시킨다. 과연 심각한 지역의료체계 복원과 지역균형발전 차원인지, 혹은 정권마다 매번 총선을 앞두고 내세우는 여론 호도용 정책인지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세대의 수도권 쏠림 탓에 부산을 비롯한 비수도권의 인구 감소가 심각한 상황에서는 바람직한 측면도 배제하기 어렵다. 의사 전문직의 지역 정착과 지역의료체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된다면, 지역 주거 환경도 한층 높아질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혁신도시 조성과 공공기관 지역 이전 정책 등도 한층 힘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마저 갖게 된다. 지방의대의 증원과 지역인재 채용 확대가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 인구집중 완화, 지역 회생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2024-02-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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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캘리포니아 엑소더스의 교훈
‘California Dreaming.’ 1960년대를 풍미한 마마스앤파파스는 꿈만 같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삶을 노래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류 기업과 인력이 떠나고 도심은 노숙자로 넘쳐나는 악몽을 겪고 있다. 이른바 캘리포니아 엑소더스(탈출) 현상이다.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꼽혔던 캘리포니아 인구는 2020년부터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초유의 인구 감소 지역으로 전락했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줄줄이 떠나고 인구는 50만 명 이상이 순유출된 상태다. 삶이 팍팍해서 떠나고, 기업 활동에 애로를 느낀 업체들이 앞다퉈 짐을 싼 탓이다. 이런 대규모 유출은 전례가 없던 터라 미국 내에서는 초미의 관심사이자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대탈주를 부추기는 건 경제적 요인이다. 그중 으뜸은 주거난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월세를 연체하다 강제 퇴거로 내몰리기 일쑤고, 노숙자로 전락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물가 앙등, 교통난도 캘리포니아를 등지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 대목에서 언뜻 한국의 상황이 겹쳐진다. 사람과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탓에 내부에서 초과밀 경쟁이 발생해 옴짝달싹 못하게 된 곳, 치솟는 아파트 가격에 젊은 세대의 미래가 저당잡히고, 삶의 모든 지표가 바닥을 쳐 ‘국가소멸’의 경종이 울린 곳. 바로 일극화된 한국의 수도권이다. 과밀의 폐해가 공통 키워드로 엮이는 캘리포니아 엑소더스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찾아야 할까?
■ 글로벌 IT 기업도, 인력도 탈주 행렬
테슬라, 휴렛팩커드, 오라클, 찰스슈왑 등은 이미 탈 캘리포니아를 감행했다. 포춘지 선정 글로벌 1000대 기업에 속한 기업 중 10곳 이상이 수년 사이 짐을 쌌다. 100명 이상 규모 기업으로 확대해 보면 60곳 이상이 떠났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메타), 아마존은 캘리포니아 본사를 유지하는 대신 미국 내 다양한 지역으로 사무실과 시설을 확대하고 있다. GDP만 놓고 보면 캘리포니아 경제 규모는 웬만한 국가급으로 일본과 독일 다음인 세계 6위 수준이다. 이러한 거대 경제권에 파열구가 생긴 것이다.
인구는 2020년 3950만 명에서 지난해 3896만으로 54만 명이나 줄었다. 한번 꺾인 인구 추세는 속절없이 추락 중이다. 유권자가 줄자 연방 하원 의석이 53석에서 52석으로 줄어드는 수모까지 겪었다. 캘리포니아 이탈 요인은 과도한 법인세, 고용 규제, 교통난, 도심 노숙자와 범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주거 비용이다. 샌디에이고 지역 매체 CBS8에 따르면 침실 한 개짜리 주택의 평균 월세는 2400달러(우리 돈 320만 원)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침실 2개짜리 아파트에 월 5000달러(우리 돈 670만 원)가 예사다. 평범한 직장인 가족이 단란하게 살 수준을 한참 넘어서 버리는 것이다.
월세 연체로 인한 강제 퇴거는 사회 문제로 번진 지 오래다. LA타임스는 LA카운티에서 월세가 5% 오르면 2000명이 노숙자로 전락해 거리로 나온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노숙자를 줄이기 위해 행정 당국이 코로나19 기간 퇴거 유예 명령을 내렸지만 지난해 유예가 종료된 뒤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에 퇴거를 놓고 소송전 비화, 시위 등 갈등이 잇따르고 있다.
■ 과밀 피해 분산으로 각자도생
스탠포드대와 UCLA처럼 좋은 대학이 즐비하고, 여기서 배출되는 인재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을 차리고 이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덕분에 도시에 활력을 주는 성장 모델. 이 선순환이 캘리포니아의 성공 비결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성장 모델에 한계가 온 것일까? 대탈주 현상의 근저에는 과밀의 폐해가 있다. 수용할 수준을 넘은 인구가 몰리면서 발생한 혼잡 비용이 너무 커졌다는 거다. 주거난과 교통난이 초래되고 빈부 격차와 범죄율까지 덩달아 악화된 것이다.
지난달 18일 부산 동구 ‘창비 부산’에서 자신의 신간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 북콘서트를 열었던 미국 출신의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는 “LA 한인들은 미국 중부로 많이 이사 간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부산일보 2024년 1월 22일 보도)고 전했다. 파우저 교수는 “런던과 도쿄 같은 대도시는 삭막한데, 서울이 그렇게 변해 가고 있다”면서 ‘도시 속 자연과 소통하는’ 매력 때문에 살고 싶은 도시 1순위로 부산을 꼽았다. 주거난, 교통난을 피해 캘리포니아를 떠나 텍사스 등 다른 주로 이주한 이들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자문해야 한다. 한국 수도권에서도 젊은 세대가 꿈꿀 수도 없는 높은 집값과 교육비 부담에 결혼과 츨산을 포기하고, 최장 3시간 출퇴근과 ‘지옥철’ 등 살인적인 교통난이 흔하다. 캘리포니아를 탈출하게 만드는 상황에 버금간다. 그런데, 왜 캘리포니아 엑소더스처럼 서울 엑소더스, 수도권 엑소더스는 일어나지 않는 걸까?
■ 다시 수도권 집중 망령
새해 윤석열 대통령은 지방민을 여러 차례 깜짝 놀라게 했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저출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과잉 경쟁을 개선하기… 위해 지방균형발전 정책을 확실하게 추진하겠다”고 다짐해서 큰 기대감을 갖게 했다. 저출생 문제의 본질이 지방소멸을 자양분으로 살찌는 수도권의 과도한 집중에 있다는 대통령의 정확한 진단과 해결책이 반갑게 들렸던 것이다. 하지만, 연이은 수도권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확장 계획 발표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지역균형발전의 포기 선언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비수도권 지역 대학에서 반도체를 전공한 인력은 자연스럽게 수도권 클러스터에 취업하는 구조가 된다. 반도체 생산 기업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지역에는 인력을 받아줄 회사가 없으니 지역 대학이 애써 키운 인재들은 서울과 경기도로 유출될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 지난해 부산에서 수도권으로 순유출된 1만 1260명 중 20대가 5000명이 넘는다. 해마다 이런 식으로 젊은 세대가 취업을 위해 지역을 떠나니 지방소멸과 수도권 집중의 악순환 고리는 공고화될 뿐이다. GTX 확장 계획은 겉으로 교통 불편 해소를 내세우지만 실은 수도권의 비대화를 더욱 부추기고 지방 고사를 가속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노선을 충청과 강원도까지 확대하겠다니, 수도권 블랙홀의 흡입력을 키워 일부 지방까지 준수도권으로 만들 작정이다. 지역균형발전을 다짐하면서 622조 원을 투자해 346만 개 일자리를 만든다는 반도체 클러스터나 134조 원을 들여 GTX를 확장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캘리포니아 엑소더스 행렬은 숨막히는 밀집 상태를 벗어나 낮은 주거비 등 쾌적한 생활 환경을 찾아 떠난 거다. 캘리포니아에 남은 사람들도 과밀이 해소되고 그 덕분에 주거난과 교통난에 숨통이 트이면 삶의 질이 개선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집중의 폐해는 분산으로 풀면 된다.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억지로 개입하지 않고도 수요와 공급 불일치 해소 과정에 분산의 지혜가 발휘되는 중이다. 이를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지역균형발전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국가 시책으로 수도권 일극화 집중을 부추기는 경로 의존이 반복된다. 윤 대통령 스스로 인구절벽과 국가소멸의 위기 원인이 수도권의 과잉 경쟁이며 해결책이 지역균형발전이라 선언해 놓고도 수도권에 거미줄 교통망을 깔고 기업과 인력을 빨아들이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한다. 이미 수도권이 과포화되어 지속불가능하다는 진단이 나왔는데 인공호흡기를 달아 생명을 연명하겠다는 것이 아니면 뭔가.
이대로라면 국가소멸의 묵시록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닥쳐오게 된다. 재앙을 피하려면 서울 엑소더스, 수도권 엑소더스가 필요하다. 수도권 인구가 해마다 지역으로 유출되고, 기업의 탈 수도권 행렬 뉴스가 들릴 때 비로소 한국은 ‘사라지는 국가’로의 진행을 멈추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수도권은 캘리포니아 엑소더스와 정확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2024-02-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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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김정은의 ‘전쟁할 결심’ 실전으로 이어질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해를 넘기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중동 전면전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으며 세계는 지금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해 들어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 고조가 지구촌 평화를 위협하는 새로운 요소로 등장했다. 외신들이 잇따라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주목하기 시작한 가운데 북한의 움직임에 무심하던 백악관에서조차 김정은의 도발을 우려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잊고 지내는 사실이지만 한반도는 지금도 전쟁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휴전’ 상태다. 언제든 전쟁이 재개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희박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한반도가 안고 있는 숙명적 리스크다.
∎김정은 “전쟁 준비를 서두르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연말 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을 적대적 두 교전국 관계로 정의하며 ‘남조선의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를 명령했다. 헌법을 고쳐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이자 ‘불변의 주적’으로 명기하고 ‘통일’을 삭제했다. 선대 수령들이 추진한 정책마저 전면 부정하며 남북 관계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최근 평양의 통일거리 남쪽 입구에 세워져 있던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도 철거한 사실이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됐다.
새해부터는 대남 도발 수위도 높이고 있다. 지난 5일 백령도 북방 장산곶과 연평도 북방 등산곶 일대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으로 200여 발의 포격을 강행했다. 14일에는 동해상으로 고체연료 추진체계가 적용된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24일에는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 여러 발을 발사한 게 우리 합동참모본부에 포착됐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미사일총국이 개발 중인 신형전략순항미사일 ‘불화살 3-31’형이라고 보도했다. 접경지역에서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핵 전술 고도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외신, 한반도 전쟁 가능성 주목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시그프리드 해커 교수는 북한전문매체 38노스 기고문에서 “한반도 상황이 한국전쟁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며 “북한 관영매체에 등장하는 ‘전쟁 준비’ 메시지는 북한이 통상적으로 하는 ‘허세’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도 미국 외교안보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에서 “2024년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소한 염두에는 둬야 한다”고 밝혔다. 갈루치 교수는 1994년 1차 북 핵 위기 당시 미국 특사로 대북 협상을 담당하면서 북한 핵무기 개발 중단을 대가로 경수로와 관계 정상화를 약속한 북미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켰던 인물이다.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해 미국 정부와 언론의 관심도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23일(현지시간) 백악관 언론 브리핑에서는 ‘북한이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느냐’ ‘북한의 군사 태세에 변화 조짐이 있느냐’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 존 커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우리는 핵 능력을 포함해 군사력의 지속적 증강을 추구하는 체제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김정은 위원장)의 수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군사 동향에 대해서도 “매우, 매우 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예멘 후티 반군과의 충돌 등의 안보 현안에 밀려 있던 북한 이슈가 다시 살아나는 기류다.
∎한미 선거철 틈타 몸값 키우려는 의도
일부에서 제기되는 한반도 전쟁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실제 무모한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북한이 최근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내부 체제 보안을 강화하고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정부의 재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몸값을 높이는 동시에 한국의 4월 총선에도 영향을 미치려는 복합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선거철이면 도발을 감행했다. 2012년 말 미국 대선 직후 한국 대선 직전 시기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 핵실험을 실시했다. 또 2016년 미국 대선 두 달 전 핵실험을 다시 감행했다.
북한도 전면전은 정권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전쟁 능력을 강화하고 남한을 향한 태도가 강경해지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김 위원장이 정말 전쟁을 원하고 있음을 시사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도 북한은 자멸하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한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고 이길 수 없다는 것도 너무 잘 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 정권이 진지하게 전쟁을 준비한다면 무기와 탄약을 러시아로 보내지 않고 비축하고 있을 것이라며 실전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음을 시사했다.
∎우발적 확전 가능성에는 대비해야
북한의 전쟁 도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축하면서도 국지적 도발 가능성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 북한이 일부 영토와 군을 상대로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압박 중심 대응이 위험을 키울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한미 간 억제 조치 강화가 위기 상황을 사전에 봉쇄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 압박 기반의 강압적 방식은 때론 상황을 더 악화시켜 왔다고 밝혔다. 지금은 북한의 침공보다는 남북 간 우발적 충돌에 따른 확전 가능성을 크게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미동맹이 공고해지고 북미 대화 가능성이 희박해지면 북한이 제한적 방식의 핵무기 사용 방법을 찾아낼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이 자멸을 원하지 않겠지만 그가 어떤 세계관을 가졌는지 우리가 잘 모른다는 것은 그의 오판 가능성도 포함하는 이야기다. 현재 북한은 핵무장이 고도화돼 언제든 핵을 쓸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한반도에서 우발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즉시, 강력하게, 끝까지’란 표현으로 우리 대응 전략을 밝혔는데 이런 게 확전 가능성을 키울 수도 있다. 북한의 위협에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지만 위기관리는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한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 경제적으로도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게 우리 딜레마다. 북한 도발에 대한 충분한 억지력을 확보하면서도 위기관리를 위한 노력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남북 간에 군사 채널이든 뭐든 있었는데 지금은 북한이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까지 없앤 마당이다. 한미일 공조는 물론이고 중국과의 외교를 통한 통합 억지력도 필요한데 우리 외교에서 취약해진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재집권이 몰고 올 다양한 영향에 대해서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 집권 시 북미 간에 소위 비핵화 교섭이 아닌 핵 군축 교섭이 진행되고 한국의 핵무장 요구가 비등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래저래 한반도 안보 상황에 대해 다각도로 대비해야 하는 한 해다.
2024-01-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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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AI 야구 심판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올해는 한국 프로야구가 획기적 변신을 꾀하는 해다. 볼·스트라이크 자동 판정 시스템(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이 도입되고, 투수의 공 던지는 시간을 제한하는 ‘피치 클록’도 시행된다. 그 밖에 베이스 크기 확대, 수비 시프트 제한 등 새롭게 도입되는 제도가 여럿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1일 이사회를 열어 이를 공식 확정, 발표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눈길이 쏠리는 것은 당장 개막전부터 적용되는 ABS다. 이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정확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과 기술적 오류나 인간적 감성의 부재를 지적하는 견해가 부딪치기 때문이다.
■ AI 심판 어떻게 운용되나
주심 대신 기계가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ABS는 인공지능(AI) 심판 혹은 로봇 심판으로 불린다. 미국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도 아직 공식 도입하지 않았으니, 한국이 어찌 보면 세계 최초인 셈이다. 그동안 고교 야구와 프로야구 2군 경기에서의 시범 운용을 지켜본 심판들이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동의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ABS 방식은 이렇다. 여러 각도에서 설치된 카메라가 미리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해 놓은 뒤 공이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오면 이어폰을 통해 주심에게 음성 신호로 전달하고, 심판은 이 소리를 듣고 볼 혹은 스트라이크 ‘콜’을 한다. 이를 위해선 고도의 AI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 공정성과 정확성이 장점
ABS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정확성과 공정성이다. 그동안 주심의 판정 때문에 선수와 심판 사이에 숱한 갈등이 일었던 게 사실이다. TV 중계 화면에 잡히는 스트라이크 존과 심판 판정이 어긋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선수는 선수대로 억울해했고, 심판은 심판대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런 모습을 보는 팬들 역시 스트레스를 받았다.
ABS는 정교한 센서와 알고리즘을 통해 정확한 판정을 내리는 데 더 유리하다. 인간의 판정은 선수나 팀, 경기장 분위기 등 다양한 외부 요소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이런 주관적인 영향을 제거해 오류를 줄이고 모든 팀에게 공평한 판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 AI 심판의 긍정적 매력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보다 빠른 판단으로 판정 갈등이나 논란을 줄여 경기 진행 속도를 높이는 장점도 있다.
4년간의 2군 경기 시범 운용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볼카운트에 대한 이의제기는 별로 없었다고 한다. 시합하는 양쪽 팀에게 동일한 ABS가 적용되면 공정성 논란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1군 경기에 도입할 경우에도, 적어도 사람으로 인해 일어났던 판정 실수는 막을 수 있을 것으로 KBO는 보고 있다.
■ 기술 오류 우려, 스포츠 묘미 실종?
하지만 ABS는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센서 오작동이나 소프트웨어 버그 등 기술적 오류로 잘못된 판정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결국 경기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판정 불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현장의 선수들이 AI 판독의 정확성에 회의적이다. 투수마다 던지는 공의 높이, 탄도, 움직임이 제각각이라서다. 판독이 각도에 따라 다를 경우, 각도 하나 비틀어지면 그 경기의 모든 스트라이크 존은 달라진다.
AI 심판이 적용된 고교 야구를 지켜봤다는 김성근 감독은 최근 유튜브 채널에서 이런 말을 했다. “기계가 스트라이크를 안 잡아주니까 타자가 이를 악용한다. 배트를 휘두르지 않는 거다. 투수는 하는 수 없이 한복판으로 슬슬 던져야 한다. 이러면 야구의 질이 떨어진다.”
ABS에서는 주심이 AI의 음성을 전달받아야 하니까 직접 판단할 때와 달리 약간의 시차가 있다.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2스트라이크 3볼’에서 누상의 주자가 뛰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뒤늦게 스트라이크 판정이 날 경우, 주자는 다시 돌아와야 한다. 볼 판정 시간이 지연되면 이뿐만 아니라 각종 상황에서 집중력과 긴장감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야구의 묘미는 그때그때의 순간적 판단과 센스에 있는데, 그것이 반감되는 것이다. 주심의 개성 넘친 스트라이크 콜과 멋진 액션을 볼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심판의 판단이나 감정도 경기의 일부로 여겨져 왔다. 심지어 논란이나 갈등까지 경기의 재미 중 하나로 보는 사람도 있다. AI 심판은 이런 인간미를 없앤다는 점에서 아쉽다.
■ 한국 야구 발전의 계기로
AI 야구 심판 1군 리그 정식 도입. 결국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은 한국에게 돌아왔다. 고교 야구와 2군 경기의 시범 운용에서 ABS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게 KBO의 판단이다. 메이저리그는 트리플A에서 AI 심판을 적용한 결과 경기 진행 시간이 더 늘어나자 도입을 유보한 상태다.
어쨌든 새로운 제도의 시행이 확정된 만큼 선수들은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 때부터 변화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개막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즌이 열리면 ABS에 대한 여론이 어떤 식으로든 형성될 것이다. 새 제도에 대한 면밀한 체크와 함께 그에 걸맞은 재조정 작업도 필요에 따라 제기될 수 있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건 경기의 품질과 야구팬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다. 요컨대, 한국 야구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한국 야구의 미래에 최선의 선택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갑진년은 한국 야구 변신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향후 세계 프로야구의 트렌드를 주도할 역량도 여기 달려 있다.
2024-01-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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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한국판 NASA’ 안착, 초대 청장이 관건
우여곡절 끝에 지난 9일 우주항공청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무려 9개월 만이다. 그동안 쟁점이었던 연구개발(R&D) 기능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새로 설립되는 우주항공청이 모두 수행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항공우주연구원의 소속은 한국천문연구원과 함께 우주항공청으로 편입됐다. 앞으로 대전에 있는 두 연구원을 이전할 경우 국회의 동의 절차를 밟도록 했다. 모두 더불어민주당의 요구를 받아들인 절충안이다. 항공청은 현 정부의 국정 과제에 따라 경남 사천에 터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우주항공청법 통과로 숙원이던 항공청 설립은 본궤도에 올랐지만, 앞으로 우주항공 전문기관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고비를 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초대 청장의 역할을 꼽고 있다.
■ 파격적인 인력 확보 중요
단독 기관으로 출범하는 항공청의 조기 안착 여부는 초대 청장의 활약에 달렸다는 게 중론이다. 신생 기관인 만큼 항공청의 조직과 인력 관리를 통한 부처의 정체성 수립부터 예산 배정을 위한 정치권과의 소통, 국민의 지지 확보를 위한 홍보 전략 등이 모두 초대 청장의 몫이다. 이를 원활하게 수행하면서 항공청을 초기에 반석 위에 올려놔야 하므로 그만큼 인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보다 앞선 외국의 사례가 좋은 참고가 될 듯하다. 특히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의 초석을 다진 제임스 웨브 국장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임스 웨브 국장은 국무부 차관 출신의 공무원이었지만, 우주 탐사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당시 예산 낭비라는 의회의 공세를 막아내며 230조 원에 달하는 아폴로 계획을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정치권과 소통을 통한 우호적 여론 확보, 조직의 안정 등 초기 어려움을 뛰어난 리더십으로 이겨냈다. 신설 기관인 우주항공청을 이끌 초대 청장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아랍에미리트(UAE)가 초대 우주청장으로 30대의 여성 과학자를 임명한 파격적인 인선도 의미 있는 참고 사례가 될 만하다. UAE 첨단과학기술부 장관 겸 우주청장인 사라 알 아미리(37)는 2021년 2월 UAE의 화성 탐사선 ‘아말’의 화성 궤도 진입을 성공시켜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국적과 상관없이 해외의 젊은 인재를 영입하고 이들과 적극적인 협업을 끌어내면서 2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화성 탐사선의 발사 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했다.
■ 열린 시각의 종합적 지원 필수
항공청을 실질적으로 움직일 연구원의 인선도 최대한 열린 시각으로 문호를 넓히는 게 중요하다. 항공청이 우리나라의 우주 개발과 탐사 활동에 대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만큼 조직과 연구 인력 구성에 다른 정부 부처와는 다른 개방성과 유연성의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연구원의 연봉부터 예산과 조직 운영의 자율성 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다른 부처와의 형평성 문제가 언뜻 제기될 수도 있겠으나 항공청의 조속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파격적인 수준의 종합적인 지원은 불가피하다.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세계 우주 탐사 경쟁에 우리나라도 항공청 설립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가세한 이상 아낌없는 정책 지원을 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국민 여론도 별다른 이견은 없어 보인다. 지난해 과기부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국민들이 우주항공청의 성과 달성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최고의 인재 유치’와 ‘안정적인 예산 확보’를 꼽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런 여론을 바탕으로 우수한 인재들이 우주항공청이 들어설 경남 사천에서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정주와 교육 등 환경 개선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주항공청의 역할 정립과 세부 과제 수립, 우수 연구원 유치·확보, 업무 분장 등과 같은 사안에서 전문가의 시각이 존중돼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권이나 정부의 지나친 간섭은 항공청의 앞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의 여망을 안고 항공청이 설립되는 만큼 정부는 정부대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후방에서 가능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만이 우리 국민에게 태극기를 단 우주 탐사선의 항해를 하루라도 빨리 보여줄 수 있는 길이 되리라 생각된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2024-01-13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