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Biz] CEO와 차 한 잔 - '삼진어묵' 박용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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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 베이커리' 아이디어로 삼진어묵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박용준 기획실장. 부산일보DB

신데렐라처럼 나타난 기업 삼진어묵. 이 기업을 이끌고 있는 박용준 기획실장을 비즈Biz로 초대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지금 회의 중이라는 문자가 뜨더니 오후 내내 전화가 없었다. 기분이 '거시기' 했다. 다음날 전화를 걸었더니 또 회의 중. 화가 치밀어 오를 즈음 전화가 왔다. 언제나처럼 공손한 목소리다. 화를 낼 수도 없고.

"오뎅 공장에서 무슨 회의가 그렇게나 많습니까?" 그러자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회의를 자주 합니다"라며 웃는다. 어묵 공장에서 직면하는 한계가 무엇일까. 어묵 제조에서 한계로 여길 만한 게 있기나 한 걸까. 이런 건방진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았다.

위생 개선 품목 다양화로
어묵의 재발견 인기 이끌어
안주하지 않고 연구에 혼신
어묵 변신 2탄 보여줄 것


- 위생적인 생산 관리와 다양한 품목 개발 2가지가 도약의 비결이라고 보는데 맞는 지적인가.
▲그렇다. 위생상태가 나쁘고 품목이 단순해 한계에 봉착했음에도 그냥 당연한 일인 양 버티고 왔다. 그런 한계점을 극복하려니까 창업보다 더 힘이 들었다.

- 어묵 재료는 불결하다는 선입견을 걷어 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위생 문제를 소비자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다른 생산 공장에 많이 가보았다. 대기업들이 많이 하는 생산방식을 연구하기도 했다. 그 결과 설비부분에서 과감하게 투자를 했다. 이 분야를 맡아줄 고급인력을 영입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시에 수익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결정했다.

- 흥미 있는 얘기다. 위생문제 개선이 창업보다 힘들었다는 말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대기업뿐이 아니다. 비용을 들여 프랑스, 일본에서도 전문가를 모셔와 위생교육과 생산시스템관리 교육을 했었다. 무모한 투자로 결론지어질 수도 있었으나 멈추지 않았다.

- 결과는.
▲몇 년간의 고생 덕분에 회사 관리 매뉴얼이 완성되었다. 여기에 부산시민의 전폭적인 지원이 겹쳐지자 매출증대가 가능해졌다. 40여억 원이던 매출이 지금은 600여 억 원에 이른다. 수출 100만 달러도 넘었다.

▲삼진어묵은 어묵 제조 공장 내부를 공개한다. 사진은 지난 8월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부산 사하구 장림동 삼진어묵 공장을 방문하여 박용준 기획실장과 대화하는 모습. 부산일보DB

- 그런 변신을 시도하기까지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자신이 그저 '금수저' 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미국에서 회계학을 공부했다. 졸업 넉 달 뒤인 2011년 12월 귀국했다. 이후 어묵에 모든 것을 걸었다. 우리는 전혀 다른 어묵을 만들어 냈다. 어묵과 관련한 음식문화도 바꾸어 놓았다.

- 고생담을 떠올린다면.
▲방학 때 한국 잠시 들어왔는데 공장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공장가동률이 20% 이하였다. 무리한 확장으로 대출도 많았다, 뭐라도 도와야 된다고 생각했다. 회장님의 건강도 안 좋았다. 당장 필요한 것은 영업이었다. 영업하러 엄청 많이 돌아다녔다.

영업 확대를 통한 공장가동률 높이기는 쉽지 않았다. 각사의 제품의 맛도 비슷하고 부산어묵으로 이름도 비슷했다. 새로운 거래처나 새로운 매출처를 찾을 수 없었다. 이익을 늘리기 위해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는데 가격경쟁만 하는 것은 함께 죽자는 것이어서 그 또한 정답이 아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갑갑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어떻게 새로운 것을 할 수 없을까 갈등이 이어졌다. 그 때 커피업체가 눈에 들어왔다.

- 커피 업자들로부터 배운 점은.
▲커피 사업자들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 재빨리 파악하고 소비자들에게 맞춰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반해 어묵 생산자들은 소비자에게 맞춘다기보다 중간 판매상들에게 맞추고 있었다. 당시엔 꼬치용 판매가 대부분이었다. 소비자들은 간식도 원하고 디저트도 원하고 집에서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요리도 원하는데 소비자들한테 다가갈 생각도 않고 유통업자들에게만 맞춰왔던 것이다. 소비자를 두려워한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 어묵 제조사들은 공장 내부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인데 그것을 깨뜨린 장본인이라고 들었다.
▲위생상태가 나빠서라기보다 폐쇄적인 마인드가 문제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외부에 보여줘 봐야 무슨 소용 있나, 우리는 생산만 잘하면 된다. 생산자로서의 고집이 강했던 거다. 근데 우리 회사는 다 오픈이 가능하도록 관리 체계를 갖추면서 언론이든 고객이든 생산시설을 완전히 공개했다.

-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평가가 많다. 어묵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가져 왔다고도 한다.
▲자신 있게 보여주는 데엔 엄청난 시설투자가 뒤따랐다. 시설투자 여파로 지금도 회사 수익이 그리 높지 않다. 매출은 높은데 수익률은 3~4% 밖에 안 된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고, 지금도 계속 시설과 사람에게 투자한다. 언젠가는 빛을 발할 것이고 어느 시점에는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이다.

▲삼진어묵 대표 제품인 `어묵 고로케`. 부산일보DB

- 위생문제는 여기서 줄이고 제품의 다양화에 대해 듣고 싶다.
▲세상은 변하고 어묵 소비자들의 입맛과 기호도 짧은 시간 만에 바뀐다. 과거엔 어묵의 종류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생존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반찬용이나 꼬치용 정도의 구분이면 그만이었다. 이런 고정관념이 무너지자 어묵이 바뀌었다.

반찬도 될 수 있고, 간편식으로도 먹을 수 있고, 주식으로도 먹을 수 있고, 고급 디저트도 되고. 어묵 고로케를 만들 때 소비자들에게 조리 없이 바로 먹어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 주는데 유의하였다. 그래서 빵가루도 묻히고 종이 손잡이도 만들었다. 어묵은 바로 먹기에 좀 부적절하다는 인식을 걷어내자 제품의 다양성으로 눈을 돌릴 수 있게 됐다.

- 지금까지 만들어진 독특한 것 중 가장 인기를 끈 제품은.
▲어묵 고로케가 가장 인기를 누린다. 어묵 디저트를 만들자는 발상은 내가 먼저 꺼냈다. 하지만 아이디어에 그쳤다. 그것을 현실화시킨 분은 어머니다. 며느리로서 어머니는 30년간 회사에서 어묵을 직접 생산하셨다. 숨은 장인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어머니 덕택에 순탄한 길을 걸었다고 봐도 되나.
▲뭐든지 새롭게 처음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처음에 만들었던 새 상품도, 처음 열었던 매장도 실패했었다. 어묵일번가라는 매장을 재래시장 안에 만들었는데 이것도 실패였다.

▲2017년 9월 삼진어묵 첫 해외 매장인 싱가포르점이 오픈했다. 부산일보DB

- 앞으로 계획은.
▲해외 진출을 확대할 계획이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매장이 문을 열었다. 올해 안에 6개 매장이 새로 운영될 것이다. 어묵이라는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다, 어묵은 영어로도 어묵이다. 어묵이라는 이름으로 매장을 오픈하고 있고 나아가 전 세계 어묵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피자나 스시처럼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음식으로 어묵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

- 어묵의 변신에도 한계가 있지 않겠나.
▲한계라고 생각하는 순간 한계가 찾아온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확보할 것이라는 생각뿐이다. 기존의 제조사들은 사양산업이라 생각했는데 한계를 넘었다. 또 다른 한계에 봉착하기 전, 대충 3~4년 뒤엔 새로운 뭔가를 하고 있을 거다. 기대해도 좋다.

- 어묵이 또 변신하나.
▲준비하고 있다.

어묵에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준 청년 박용준. 전편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이란다. 어떤 일이 전개될지 하도 궁금해서 취재진에게 힌트만 달랬더니 어묵청년은 전화를 끊는다. "회의시간 늦겠네" 라면서.

디지털본부 new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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