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속 아이 안고 22층 계단 2분 만에… 기적 만든 막내 소방관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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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남부소방서 119구조대 이형우(오른쪽) 팀장과 김근환 대원. 울산 남부소방서 제공 울산 남부소방서 119구조대 이형우(오른쪽) 팀장과 김근환 대원. 울산 남부소방서 제공

“어떻게든 아기를 무사히 구조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33층짜리 울산 남구 삼환아르누보 건물이 거대한 불길에 휩싸인 지난 8일 밤. 울산 남부소방서 119구조대 3팀 대원들이 급히 화재 현장에 투입됐다. 화세(火勢)가 최고조에 달한 시점이었다. 불길은 외벽을 타고 건물 전체를 집어삼키며 거대한 불기둥을 만들었다. 건물 안은 불길과 연기, 탈출을 시도하는 주민들의 비명이 뒤섞여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울산 화재 119구조대 김근환 씨

연기 마실라 맨손으로 얼굴 감싸고

20㎏ 넘는 장비 매고 ‘한달음’

“버텨준 아이·주민들에게 감사”


대원들은 1층부터 주민대피를 유도하며 한 층, 한 층 올라가다가 21층과 22층 사이 계단에서 갓난아이를 안고 내려오는 한 엄마를 발견했다. 정신없이 맨발로 뛰어 내려오던 엄마는 화재 상황에 충격을 받은 듯 패닉 상태였다.

구조대 이형우(42) 3팀장은 아기는 성인과 달리 연기를 조금만 마셔도 치명적일 수 있다고 보고, 막내인 김근환(32) 소방사에게 “얼른 아기부터 데리고 먼저 건물을 빠져나가라”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엄마로부터 아기를 건네받은 김 소방사는 아기를 달래듯 가슴에 품고 연기가 자욱한 계단을 한달음에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기가 연기를 마실까 걱정돼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아이의 얼굴을 살포시 감쌌다. 김 소방사가 산소통 등 20㎏이 넘는 장비를 매단 채 아기를 안고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분 30초에서 2분 사이. 김 소방사는 무사히 아기를 구급대에 맡겼고, 뒤따라 나온 아기 엄마가 울면서 아기를 찾는 것을 보고 구급대로 안내한 뒤 숨 돌릴 틈도 없이 여분의 산소통을 짊어지고 다시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12일 김 소방사는 “먼저 대피하던 주민들이 한쪽으로 길을 터 준 덕분에 더 빨리 나올 수 있었다”며 “주민들에게도, 버텨 준 아기에게도 모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형우 팀장은 “갓난아이의 경우 숨을 내쉬는 흡입력이 약해 구조용 호흡기를 착용해도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어 빨리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게 중요했다”며 “요구조자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김 소방사에게 아이를 부탁했다. 막내지만 현장에선 목숨을 맡기고 신뢰할 수 있는 팀원이다”고 말했다.

김 소방사는 특전사(13공수여단) 출신 임관 1년 차 소방관이다. 평소 울산 동구의 집에서 남부소방서까지 16㎞를 1시간 30분 동안 뛰어 출퇴근한다고. 그는 “평소 조카들을 안아 본 경험이 있어 아기를 안고 내려오는 데 조금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웃음 지었다.

권승혁 기자 gsh0905@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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