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교열기자가 하는 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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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정개 개편, 자지단체장'이라고 된 원고를 신문에는 '정계 개편, 자치단체장'으로 내보내는 게 교열기자의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히 틀린 글자만 고치는 게 다는 아니다. 어감(뉘앙스)을 살피며 전체 문장에서부터 토씨(조사) 하나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게 교열인 것이다. 이를테면 '일본 지진피해 돕기'라는 말. 이 말은 '일본이 지진피해를 당하도록 돕는다'고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니 교열 기능이 살아있는 언론이라면 '지진피해 일본 돕기'로 기사가 나가는 것이다. 아래는 어느 교수가 보내온 원고.

'야권에서는 국민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무상복지를, 그리고 여권에서는 필요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선별적 복지정책이 현 한국 현실에 맞는 복지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글은 부산일보에 이렇게 나갔다.

'야권에서는 국민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무상복지, 그리고 여권에서는 필요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선별적 복지정책이 현 한국 현실에 맞는 복지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손댄 곳은 단 한 군데, '보편적 무상복지를'이다. 여기서 토씨 '를'을 없앤 까닭은 '선별적 복지정책이'와 대칭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야권…보편적 무상복지를…여권…선별적 복지정책이…' 구조가 되어서는 균형이 맞지 않았던 것. 물론 '보편적 무상복지가'로 고쳐도 됐겠지만 그보다는 그냥 '를'을 빼는 것이 간단했다. 아래는 어느 시인이 보낸 원고.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손사래 쳐서 오라 그러고 낯선 사람이 지나가면 누구 집을 찾아왔는가 물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신문에는 이렇게 실리지 않았다. '손사래 쳐서'가 어색했기 때문. '손사래'는 '어떤 말이나 사실을 부인하거나 남에게 조용히 하라고 할 때 손을 펴서 휘젓는 일'이다. 그러니 원고대로 두면 아는 사람더러 오라는 게 아니라 가라는 뜻이 돼 버린다. 신문에는 이렇게 나갔다.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손짓을 해서 오라 그러고….'

이게 교열기자가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신문사에 글을 보내는 교수며 시인이며 투고자들이 부끄러워할 것도, 쑥스러워 할 것도, 거리낄 것도 없다. 세상에 완벽한 건 없는 법이니까. 안 그러면 무엇 때문에 신문사들이 교열기자를 두겠는가. 이진원 기자 jinw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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