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삶 별난 취미] <1> 사냥 즐기는 이기주 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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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순간서 무뎌진 손의 감각 살아나"

"직장∼집∼직장." 혹시 내 얘기는 아닌지? 평생 일만 하던 시대는 지났다. 평균 수명이 곧 100세에 이른다는 보고서도 있다. 일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취미는 '자의적인' 선택이다. 정력적인 삶의 주인공이라면 으레 별난 취미 한두 가지는 지니고 있다. 별난 삶, 별난 취미를 탐색했다.

도시화로 얻은 것도 있겠지만 잃어버린 것도 많다. 수렵도 그중의 하나다. 온실 속 화초가 된 세대에게 그래서 수렵은 '야성 회복'의 로망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사냥감을 쫓을 때 충전되는 묘한 본능이 곧 희열인 것이다.

기장서 흙 빚으며 겨울 사냥 즐겨
"작품에 매달린 자신의 삶 성찰"


청사 이기주(72) 경성대 공예학과 명예교수도 그랬다. 그는 평생 대학에서 도예를 가르쳤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손이 무뎌지듯 그의 감각과 상상력도 둔감해졌다. "사냥은 감각적입니다. 사냥꾼도, 사냥감도 서로 쫓고 쫓기면서 자신의 모든 감각을 완벽하게 다 가동시키지요. 죽고 살고가 한순간에 달렸으니까요."

사냥으로 회복된 감각은 시나브로 작업에 스며들었다. 그가 고희를 넘긴 지금까지도 하루 10시간 이상을 도자 작업에 투자할 수 있는 것도 사냥의 효과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곧 개인전도 치른다. 그것도 일본에서다. "아마 퇴임 후 첫 개인전이 될 겁니다." 예술가라고 하더라도 퇴임하면 작품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그는 확실히 정력적이다.

그가 취미로 사냥을 선택한 것은 40대 초반이었다. "벌써 30년이 지났네요." 지난 1973년 일찌감치 대학교수가 된 그는 더 이상의 변화가 요구되지 않는 '안정된' 대학생활이 못내 아쉬웠다. 그때 요구된 것이 '자극'이었다. 보통은 예술이 그 자체로 '쉼'이겠지만 그는 예술이 아닌 분야에서 휴식이 필요했다.

사냥은 그런 쉼의 선택이었다. "사실 어릴 때부터 사냥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그는 경기도 화성에서 자랐다. 산이 많아 포수들이 자주 동네를 찾아왔다. "그때마다 제가 포수 심부름을 했지요."

그는 두 자루의 총을 가졌다(실제로는 경찰서 영치 중). 이탈리아의 베네리 제품인 라파엘로 루소와 스페셜이라고 했다. 하지만 진짜 사냥의 동반자는 '루비'다. 영국 포인트 종을 일본에서 개량한 사냥개인데, 꿩을 잡는데 꼭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주로 기장 일대로 사냥을 나간다. 물론 겨울 사냥철에만 가능하다. 가장 최근은 지난해 11월 1일부터 지난 2월 28일까지였다. "멧돼지를 쫓을 때도 있지만 거의 다 꿩을 잡습니다. 사냥 시즌에는 으레 주 4일을 사냥터에서 지냅니다."

그는 대학에서 흙을 뭉쳐 사람을 빚었다. 퇴임 뒤에는 동물을 주제로 삼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을 갈구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의미 없는 것을 만들려는 노력이다. 그동안 지나치게 구상적인 삶을 살았고 그런 작품에 매달렸다는 사실을 성찰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기장에 청사요를 짓고 삽니다. 하지만 거의 매일 산목미술관(해운대신시가지)으로 출근하지요." 이유가 있다. 퇴임 후 출근을 멈추니 병이 났다. 우울증이 심했다.

"사냥을 좋아한 화가가 많아요. 사실주의로 유명한 쿠르베도 그랬지요. 그의 말년 작품 중에는 늘 사냥개가 도사리고 있었는데…." 하지만 그는 아직 소와 말 빚기를 더 좋아한다며 웃었다.

백현충 기자 cho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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