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렉시글라스 위에서 펼친 붓질 없는 미묘한 색의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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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 대표 작가 장승택

장승택 '무제'. 갤러리 데이트 제공

후기 단색화의 대표 작가로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 미술관에서도 큰 관심을 받는 장승택 작가. 프랑스 파리 국립장식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1989년 프랑스 알베르 샤노 아트센터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기획전을 보여준 장 작가. 장 작가는 요즘 부산 해운대 갤러리 데이트 전시를 통해 새로운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장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는 이들은 어리둥절해하거나 난감해할 수 있다. 단색화 2세대 대표주자로 정통 회화를 전공했지만 사실 장 작가의 작품이 과연 회화가 맞는지 미술계에선 오랫동안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장 작가의 작품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그림은 찾을 수가 없다. 그의 작품은 그림이라기보다 하나의 사물에 가깝다. 붓질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캔버스의 천마저 거부한다. 장 작가는 레진, 두꺼운 아크릴판, 플라스틱 판재, 플렉시글라스 같은 재료를 활용해 작품을 만든다.

이번 부산 전시도 플렉시글라스를 이용한 작품들이다. 투명한 플렉시글라스 박스 위에 작가가 직접 만든 묽은 아크릴 물감을 에어브러시를 사용해 수십 번 색을 입힌다. 수십 번이나 뿌리고 말리는 과정을 거치면 수십 개 생겨난 층들은 묘하게 겹쳐지며 여러 가지 색을 만들어낸다. 미묘한 색의 잔치이다. 정면에서 언뜻 보면 단색화지만, 계속 쳐다보면 속에 밴 색들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오는 것 같다. 특히 옆면에 흘러내린 색들의 흔적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장 작가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미지의 영역을 표면화시키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겹겹이 쌓인 층들은 시간을 거스르고 공간을 건너가 물질과 정신의 영역을 오가는 느낌이다.

이런 측면에서 장 작가의 작품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회화의 요소가 없지만, 행위의 반복을 통해 고유의 정신성을 드러낸 단색화의 작업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오히려 단색화의 특징을 드러내면서 현대적인 재료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미국과 유럽의 박물관과 현대미술관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장승택 개인전=15일까지 갤러리 데이트. 051-758-9845.

김효정 기자 ter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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