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옛 한바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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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의 옛 한바다호는 국내 대표격 실습선이었다. 그것이 개척한 바다는 1만 명의 선장·기관사를 탄생시킨 바다였다. 한국 해기사의 요람이었다.

한바다호는 1975년 일본 규슈 우스키조선소에서 건조했다. 3500t급, 길이 100m, 지상 8층 높이. 1993년 한나라호가 탄생하기 이전 18년간 국내 최고 기능의 실습선이었다. 옛 한바다호 건조를 최종 결정한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대일청구권 자금 3억 달러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680만 달러를 한바다호를 만드는 데 전격 배당했다. 그 결정은 해양입국의 포부를 담은 것이었다. 실제 이 실습선에서 배출된 해기사들은 세계 곳곳 해운사에 진출해 연 2억~3억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한바다'라는 이름은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지었다. 1975년 11월 17일 한바다호 명명식은 한국해양대의 조도 캠퍼스 준공식과 함께 치렀다.

한바다호의 활약은 숨가빴다. 1976년 대만-싱가포르 항해, 1977년 태평양 횡단 항해실습을 마친 뒤 9월부터 128일간 13개국 2만 7000마일의 역사적인 세계일주를 했다. 해양대 학생 184명과 함께 일간지 기자 3명, 신동우 화백이 동승해 꿈 같은 세계일주기를 썼다. 1979년 대한국제법학회와 함께 독도를 항해했으며 1982년 한·미수교 100년 때 한바다호는 뉴욕에 입항한 뒤 한·미 친선 선상리셉션을 치렀다. 1991년 한바다호는 관공선으로 해방 이후 사할린을 첫 방문해 교포들에게 역사책과 태극기를 전했다. 한바다호가 감당한 역할은 큰 바다 같았다.

그 만만찮은 역사를 품은 채 한바다호가 퇴역한 것은 지난 2005년 10월. 이후 10여 년간 한국해양수산연수원의 실습선 역할을 했으며 올 하반기에 이 역할도 마감한다. 그래서 지금 옛 한바다호를 선박박물관으로 만들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역시 문제는 예산이다. 당위성과 필요성은 충분한데 연 유지비용 1억 원, 육지로 끌어올릴 경우 초기비용 10억 원이 할까, 말까를 주저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시와 국립해양박물관의 결단이 필요하다.

미국 샌디에이고의 유명한 선박박물관은 차치하더라도 목포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을 가면 야외에 그 지역 어선들이 전시돼 있다. 그 배들을 통해 그곳의 바다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해 놨다. 부산이 못할 게 뭐 있나. 최학림 논설위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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