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공존하는 '도심 속 무덤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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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Mori-삶과 죽음, 빛과 어둠, 나와 나 아닌 것의 공존'에서 전시 중인 문진우의 작품들. 갤러리 수정 제공

짙은 어둠 속 무덤 위에 버려진 인형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뒤편 건물의 창(窓)에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무덤 옆에 서 있는 나무의 잔가지에 앉아 있는 새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쓸쓸해 보인다.

중견 사진가 문진우(59)가 카메라 렌즈에 담아낸 부산 남구 문현동 무덤 마을의 풍경이다. '돌산마을'로도 불리는 이 마을은 일제 강점기에 조성된 공동묘지 위에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판자촌을 지어 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아직도 묘지가 있고 집이 있고, 그 사이 길이 있고 길가에는 또 묘지가 있어 삶과 죽음이 뒤엉켜 존재하는 곳이다. 10여 년 전 마을 벽에 벽화가 그려지고 SNS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지만 주거환경에 큰 변화는 없다.

문진우 15번째 사진전
산복도로 '갤러리 수정'

갤러리 수정(부산 동구 수정동)에서 2월 6일까지 열리는 문진우 사진전 'Memento Mori-삶과 죽음, 빛과 어둠, 나와 나 아닌 것의 공존'은 무덤 마을과 그 속에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이 별개가 아니다'라는 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치열한 경쟁 속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문득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전시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듯한 시든 꽃과 버려진 인형, 죽음의 아이콘인 무덤과 까마귀, 생계와 학업을 위해 무심히 마을을 오가는 주민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해 뜨기 전 새벽이나 해가 진 뒤의 저녁, 빛과 어둠의 모호한 경계를 담은 작품들은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듯 빛과 어둠이 다르지 않음도 일깨워준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인 'Memento Mori'를 전시 타이틀로 삼은 작가의 의도가 읽힌다. 문 사진가는 "여기 와서 지천에 널린 주검 사이를 걸어보면 처음에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지만 몇 번만 와서 걷다 보면 두려움보다는 삶 앞에서 겸손해지는 맘이 들 것이다"고 말한다.

문 사진가는 오랜 기간 골목, 달동네를 비롯해 부산의 변방과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이번 전시는 그의 15번째 개인전이다. 사진집 <하야리아(HIALEAH)>(2014)와 <비정도시>(2016)를 출간하기도 했다.

▶문진우 사진전 'Memento Mori-삶과 죽음, 빛과 어둠, 나와 나 아닌 것의 공존'=2월 6일까지 갤러리 수정. 입장료 1000원(주차 시 2000원) 자율 납부. 051-464-6333.

박진홍 선임기자 jhp@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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