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의 시네아트] 너는 여기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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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와 전쟁 트라우마 안고 살아가는 청부업자

'너는 여기에 없었다'.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퇴역군인 조(호아킨 피닉스)는 개인적 의뢰를 받아 대신 처리해주는 일을 하며 연명 중이다. 그가 주로 청부 받는 일은 성매매 조직에 납치된 미성년자를 구조하는 일이다. 언뜻 정의로운 일처럼 보이지만 속살은 조금 다르다. 조는 기계처럼 정확하고 건조하게 일을 처리한다. 딱히 정의감에 택한 일도 아니다. 어린 시절 학대를 경험한 조는 그저 익숙한 일을 담담히 처리할 뿐이다. 하지만 이따금 과거의 상처들이 자신을 덮칠 때면 수시로 자살충동에 휩싸이기도 한다. 아니 그가 하는 일 자체가 일종의 간접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러던 어느 날 상원의원의 딸 니나(예카테리나 삼소노프)의 구출의뢰를 받은 조는 애써 눌려온 자신의 어둠과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매우 불친절한 영화다. 아동학대와 전쟁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 납치된 아동을 구하며 살아간다는 설정은 한편으로 매우 작위적이고 상징적이지만 명료함은 거기까지다. 전작 '케빈에 대하여'에서 소시오패스 아들을 둔 엄마를 통해 모성 신화를 해체했던 린 램지 감독은 이번엔 폭력과 트라우마를 도구 삼아 쉽사리 들추기 힘든 내면으로 자맥질 한다. 관객은 최소한의 설명과 스쳐지나가는 단서를 통해 인물의 상황과 지나온 세월을 짐작해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신이 영화의 인력에 이끌려 행간을 적극적으로 짐작하는 사이 어떤 구체적 설명보다 인물의 깊은 어둠과 마주할 수 있다. 린 램지 감독은 장면과 장면의 틈, 관계와 관계 속에 발생되는 긴장감을 바탕으로 관객의 마음속에 심상을 투영하는데, 이건 고통과 폭력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보다 촉감처럼 감각하는 쪽에 가깝다.

린 램지 감독의 절제된 형식미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 돋보여


'택시 드라이버'(1976)의 2018년도 버전이라 해도 좋을 만큼 곳곳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이 영화는 동시에 '택시 드라이버'와는 전혀 다른 호흡과 손길로 인물의 내면을 조각해나간다. 수시로 자살을 꿈꾸는 조의 현재는 트라우마가 얼마나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살아있는 반응이다. 영화는 언뜻 드러나는 조의 기억을 실마리 삼아 그가 얼마나 폭력을 머금고 자라났는지를 더듬어 나간다. 한편 조가 건조하게 수행하는 폭력과 그 힘을 활용해 저지하는 아동폭력은 조의 트라우마가 물리적 실체를 띈 것과 다름없다. 그 결과 구출대상인 소녀 니나는 조의 과거이자 여물지 않은 겉으로 드러난 조의 또 다른 영혼처럼 보이기도 한다. 린 램지 감독의 절제된 형식미, 호아킨 피닉스의 넘치지 않는 연기가 주는 원숙미, 조니 그린우드의 감각적 음악의 삼박자는 트라우마라는 주제와는 별개로 아름다울 지경이다. 설명하거나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훨씬 풍성한 것을 감각할 수 있음을 새삼 일깨워주는 영화다.


송경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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