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칼럼] 부마민주항쟁과 국가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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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논설위원

사흘 전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는 대전 시민과 학생들이 이승만 독재 정권에 맞섰던 1960년 3·8 민주의거 기념일을 49번째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이보다 앞서 올 1월에도 정부는 대구 시민과 학생들이 이승만 독재 정권에 맞섰던 1960년 2·28 민주운동을 48번째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이들은 내년부터 정부 행사로 기념식을 거행하게 된다. 평소 같으면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국가기념일 지정' 뉴스가 각별했던 건 부마민주항쟁 덕분이다. 부마항쟁이 한국 현대사 4대 민주항쟁 중 유일하게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다.

어느 운동이 더 '의미 있다'거나 '우월하다'의 문제를 말하려는 건 아니다. 많은 연구자가 지적하듯 '유신체제에 결정적인 종말을 고한' 사안의 중요성이나 파급력에 비해 부마항쟁은 확실히 저평가돼 왔다. 부마항쟁은 4월혁명 이후 20년 만에 '유신 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친 대중투쟁의 전통을 부활시킨 역사적인 사건이고, 이후 1980년 서울의 봄, 5·18광주민주항쟁으로 나아가는 동력이었으며,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음에도 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나 가치 평가는 인색했다.

내년이면 부마민주항쟁 40주년
중요성·파급력 비해 평가 낮아

39년 만에 기념재단 출범 성과
두 도시 간 항쟁 기념일도 합의

'국가기념일' 지정에 힘 모으되
부산민주재단 설립도 고민해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따르더라도 '민주화운동'(제2조 정의)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이라고 나와 있다. 민주화운동 사례로도 '2·28대구민주화운동, 3·8대전민주의거, 3·15의거, 4·19혁명, 부마항쟁, 6·10항쟁'을 제시했다.

며칠 전엔 부마항쟁 39주년 기념 전시가 열리고 있는 부산민주공원에 가 보고 깜짝 놀랐다. 약 330㎡(100평) 규모의 기획전시실은 휑뎅그렁하다 못해 초라했다. 계엄령 이후 부산대학 정문을 지키는 공수부대, 구 부산시청 앞에 진주한 탱크와 장갑차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지만 그 몇 장의 사진이 거의 전부라고 하니 말문이 막혔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각각 비상계엄과 위수령이 발동돼 무차별 강제연행이 이루어진 부산·마산 등 경남 일원이 맞나 싶었다.

부마항쟁은 왜 시민사회 일각의 자체 추모 행사로만 머물고 '공식적인 국가기념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일까. 사건의 진상과 그 역사적 의미가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시민들의 무관심도 한몫했다. 올해에 그나마 성과가 있었다. 부실 논란에 휩싸였던 정부의 '부마항쟁 진상조사보고서'가 보강 조사 과정을 거쳐서 다시 발표되고, 항쟁의 정신을 기리고 재조명할 부마항쟁기념재단이 39년 만에 첫발을 뗐다. 국가기념일 날짜를 두고 10월 16일(부산)과 18일(창원)로 나뉘었던 두 도시가 16일로 합의했다. 지난주에는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범국민추진위원회'가 정식 출범하고, 100만인 서명운동도 시작했다.

기념재단에서 할 일이 많을 것이다. 부산과 창원으로 이원화 된 재단 사무실 직원 간 화합, 10월 16일로 국가기념일이 지정되더라도 공식 행사는 부산과 창원 어느 한 곳에서 열려야 하는 문제, 40주년을 맞는 내년도 사업 준비 등 안정적인 자산 확보 등 재정 문제 해결 등이 그것이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역할 정립도 필요해질 것이다. 언뜻 재단 설립으로 사업회는 역할을 다한 듯싶지만 부마항쟁이 부산의 민주화운동 전부가 아닌 만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요컨대, 재단과 사업회를 합칠 경우, 자칫 '부산'이 사라질 우려가 있다. 내년이면 설립 30주년을 맞는 사업회는 부산민주공원 위탁 운영 외에 부설기관으로 민주시민교육원과 민주주의사회연구소를 두고 있지만 임의수탁 중이다. 이들 기관의 미래는 부산의 민주주의 이론 확산과 계승을 위한 활동과도 맞물려 있다. 가칭 '부산민주재단' 설치 및 운영 조례를 만든다든지, 지금부터라도 진지한 고민을 이어가야 한다.

기념재단 출범 직후 고호석 상임이사를 만났을 때 "왜, 다시 부마인가요?"를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한 팻말에 쓰인 조지 산타야나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는 명언을 들려줬다. 부마항쟁이 단순히 과거의 소환이 되어선 안 되고, 현재적 과제로 살려내는 책무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국가기념일 지정은 그 출발점이다.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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