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약왕’과 ‘따라꾸미’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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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용 동의대 게임애니메이션공학과 교수 ㈔한국멀티미디어학회 회장

며칠 전 제자에게서 ‘따라꾸미’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다. 책의 제목 ‘따라꾸미’라는 말이 생소하고, 사랑하는 제자가 표지 디자인을 직접한 책이라기에 약간의 흥미를 느끼기는 했지만, 영상과 관련 있는 책도 아니고 유명 작가가 쓴 책도 아니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저 동네 약사가 20년 동안 마약 중독자들을 만나면서 보고 들은 마약중독자들의 실제 상황을 기록한 책이라고 소개하기에 나와는 상관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일상처럼 그저 읽다만 책들 사이에 올려 두었다. 그러다가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서 연일 광고 하고 있는 송강호 주연의 ‘마약왕’ 이라는 영화가 계속 눈에 들어 오기도 하고 70년대 부산을 무대로 한 영화이기에 끌려서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본 후에 엔딩이 조금 아쉽게 끝난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청소년들이, 대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엔딩부분에 주인공 송강호가 홀로 저택에 갇혀서 누군가 자기를 잡으러 온다는 환상, 환청같은 것을 보고 듣는 장면을 보며 ‘따라꾸미’ 책 표지에서 봤던 ‘실제와 망상이 혼합된 미행의 상황’이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연구실에 돌아와 ‘따라꾸미’라는 책을 펼쳐 보았다. 제목 옆에 ‘실제와 망상이 혼합된 미행의 상황’이 다시 한 번 눈에 들어왔다. 실제 중독자들의 사례를 들어 집필된 내용이라 그런지 꽤나 사실감 있고 흥미로운 내용들이 펼쳐졌다.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아니 전혀 관심조차 없었던 ‘마약’이라는 것과 ‘중독자’, 또 그 가족들의 아픔이 담담히 그려져 있어 마음에 작은 파동이 일어났다. 그렇게 책장을 넘기다 따라꾸미 사례 4가지를 보면서 영화 속 송강호가 따라꾸미 상태였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책에도 소개되었듯이 ‘따라꾸미’는 중독자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은어이다.

마약의 문제는 영화에서처럼 70년대에 잠시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마약중독 문제는 심각하다. 영화에서처럼 본인의 의지 없이도 마약에 중독될 수 있다.

몇 해 전 ‘감빵일기’라는 드라마에서 본 장면이 떠오른다. 마약 투여로 실형을 살고 출소하는 재소자에게 바로 접근하여 또다시 마약을 투여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는데, 경찰들이 자신들의 실적을 위해 마약 판매상과 손을 잡고 일부러 마약 중독자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 때는 단순히 드라마니까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표현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전문가의 견해를 들어보니 실제로 ‘인간사냥’이라는 그들만의 은어가 존재했다. 마약 판매책을 잡기위해 힘없는 중독자를 사냥감으로 표적하여 그들을 더 깊은 중독의 세계로 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마약의 문제가 그저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때인 것 같다. 나만, 내 가족만 아니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 괜히 드러내서 더 큰 문제를 야기 시킬 필요가 있냐는 방관, 중독자 자신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는 무관심, 분명히 고민해 볼 문제이다. 책 속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중독의 위험성보다 저들을 안을 수 없는 이 사회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의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중독, 그로 인한 따라꾸미.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아픈 현실인지를 더 사실적이고 확실하게 말하며, 표현해 주는 것이 그 어떤 마약 캠페인 보다 효과가 있을 것이다.

미디어의 힘은 강력하다. 문화를 이끌어갈 차세대 문화인, 미디어인들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어쩌면 이런 고민을 너무 늦게 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자책마저 든다.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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