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선] 샵쥐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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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향 소설가



샵쥐를 아는가? 얼마 전 친구가 물었다. 쥐는 아니라고 하길래 요즈음 쓰는 줄임말인가 싶어 단어를 떠올려 조합해 보려 했으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 말을 빠르게 발음해 보란다. 정답은 ‘시아버지’였다. 빠르게 소리 내어 말한 것을 줄여 글자로 표기한 것이었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자 역사성 갖춰

무분별 줄임말 그냥 둬도 되는 것일까

우리 얼 말살 만행 겨우 100년 전 일

말모이·김복동 할머니 유언 되새겨야

설 명절에 조카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면서도 마치 외계어를 감상하는 듯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재미 삼아 몇 번 무슨 말인지 물어보았는데, 자꾸 묻다 보니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중에는 아예 조카들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몇 평도 안 되는 작은 거실에서 그만 언어의 사회성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취준생이나 알바 같은 줄임말은 뉴스에도 등장하고 일부 줄임말은 국어사전에도 당당하게 올라가 있다. 줄임말을 쓴다고 야단쳤다가는 꼰대 소리나 듣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저렇게 소통이 되지 않는 낱말의 무분별한 쓰임을 그냥 두고 보기만 해도 되는 것일까.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그러므로 개인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책상을 의자라고 부르고 의자를 책상이라고 부른다면 이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상호 간에 약속되지 않은 말로 소통에 장애가 생기는 것을 언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언어의 속성에는 역사성도 있다.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탄생하며 사라진다. 짜장면이 틀린 말이었다가 지금은 자장면과 혼용해서 같이 쓰인다. 와이파이라든가 스마트폰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도 그리 오래전의 일은 아니다. 신조어는 널리 쓰이기도 하고 사회성을 획득하지 못하면 사라지거나 쓰임에 맞게 바뀌기도 한다. 언어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생명체처럼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폭발할 듯이 일어나는 이 줄임말의 세계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언어 속성 중의 하나라고 보아야 할까.

얼마 전 친구들과 함께 영화 ‘말모이’를 보았다. 영화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어학회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사전 편찬 작업 중인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내란죄로 몰아 검거, 고문하고 투옥한 사건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이 ‘말’을, 저렇게 수많은 사람의 목숨으로 지켜낸 이 처절한 말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난달 소천하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이신 김복동 할머니께서 재일 조선학교에 수차례에 걸쳐 수천만 원을 보내고, 별세하시기 직전에는 남은 재산 전부를 기부하셨다는 뉴스를 보았다. 조선학교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 끌려갔던 동포들이 세운 학교로 처음에는 우리말을 가르치기 위해 세워진 ‘국어 강습소’였다고 한다. 일본의 모든 학교에 해당하는 ‘고교 무상화’가 조선학교만 배제된 것을 알게 된 김복동 할머니께서는 몇 년 전부터 사비를 털어 학생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의 유언 역시 조선학교를 지키라는 것이었다. 텔레비전 속 조선학교 아이들은 능숙하지는 않지만, 우리말을 곧잘 하였다. 일본 말이 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은 쓰지 않으면 점점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말을 열심히 공부한다는 조선학교 학생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70여 년 동안 일본 땅에서 우리말을 지켜온 그들의 노력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민족말살정책을 쓰면서 우리말과 글을 못 쓰게 한 것은 바로 말과 글이 그 민족의 혼이며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사람의 희생 끝에 만들어진 조선어학회의 말모이는 단순한 사전이 아니다. 말모이 작업은 바로 우리의 말과 얼을 지키는 일이었다. ‘조선학교를 지켜라’는 김복동 할머니의 유언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올해는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3·1운동 이후 일제는 통치 방식을 무단통치에서 문화 통치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언론 검열을 강화하고 민족 분열을 획책하여 친일파를 대거 양산했다. 우리의 혼과 얼을 말살한 만행이 겨우 10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샵쥐 라는 말로 이후 100년, 200년까지 우리가 ‘우리’를 지켜나갈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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