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괄도 네넴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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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퇴준생’(퇴사 준비하는 사람), ‘인싸’(인사이더) 정도는 쫓아갔었다.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JMT’(존맛탱·매우 맛있음)도 들어본 적은 있다. 그렇다면 ‘TMI’(Too Much Information·너무 과한 정보), ‘혼코노’(혼자 코인 노래방에 가다), ‘법블레스유’(법이 너를 지켜주길), ‘톤그로’(얼굴 화장품 톤이 맞지 않음), ‘번달번줌’(번호 달라 하면 번호 줌)은? 모두 근년에 유행한 젊은 층의 신조어들이다. 금시초문이라면 당신은 영락없이 ‘아재’ 이상의 연세로 분류된다. 저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지금 젊은이들의 언어 세계는 신조어로 들끓고 있다.

‘급식체’ 혹은 ‘야민정음’이라는 문화가 그 바탕이다. ‘급식체’는 급식을 먹는 세대인 10대들이 자주 쓰는 말초적이면서도 거친 문체를 뜻한다. ‘야민정음’은 ‘야구 갤러리’와 ‘훈민정음’이 합쳐진 용어.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 사용자들이 포털의 일반인 사용자를 걸러내려는 그들만의 언어를 가리킨다. 처음에는 간단한 줄임말의 형태를 띠었다. 이제는 국어와 외래어를 합치거나 자음과 모음을 해체해 단어 조합의 근본적인 문법까지 뒤흔드는 수준이다. 모양이 비슷한 글자로 바꾸거나 아래위를 뒤집은 ‘댕댕이’(멍멍이), ‘커엽다’(귀엽다), ‘띵언’(명언), ‘롬곡옾눞’(폭풍눈물)은 애교 수준이다. ‘세종머앟’(세종대왕), ‘끠꺼속’(피꺼솟·피가 거꾸로 솟는다), ‘윾니클로’(유니클로) 같은 극단적 언어유희는 거의 암호에 가깝다.

급기야 기업들까지 상업적 마케팅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배송을 강조한 SSG닷컴의 ‘쓱’ 광고, 패션기업 LF의 ‘냐’ 캠페인, 롯데면세점(LDF)의 ‘냠’ 캠페인처럼 영문 이름을 한글로 읽거나 시각적으로 착안한 사례도 있고, ‘괜찮네’의 초성을 딴 홈쇼핑 브랜드 ‘ㄱㅊㄴ’도 있다. 며칠 전에는 ‘팔도 비비면’ 35주년 기념 한정판이 대박을 터트렸다. 언뜻 ‘괄도 네넴띤’으로 보이는 글씨를 한정판 포장지에 활용했는데 일주일치 물량이 출시 23시간 만에 매진됐다.

대중의 지지를 받는 말이 많아지면 우리말의 풍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신조어들 중에는 기발한 것도 많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조어는 생명이 길지 않다. 한글의 제자 원리까지 무시한 문자 해체와 조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국어의 파괴”와 “과도한 기우”라는 주장이 충돌한다. 결국 말글살이의 주인인 우리 국민들이 걸러낼 것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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