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 쏘아대는 ‘긴급재난문자’에 시민들 “짜증나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 사상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 모(31) 씨에게 긴급재난문자는 ‘스팸 문자’에 가깝다. 언제부턴가 하루에 수차례씩 ‘어처구니없는’ 재난문자가 오면서, 이제 그는 긴급재난문자가 수신돼 ‘사이렌’ 소리가 울려도 휴대폰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이 씨는 “긴급한 내용도 아닌 데다, 업무 회의나 중요한 통화 중에 긴급재난문자 수신음이 울려 통화가 중단돼 곤란했던 적이 셀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부산 사하구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 모(51) 씨에게 재난 문자는 ‘동심파괴 알람’이다. 박 씨를 포함한 보육교사들이 아이들을 볼 때도 수시로 긴급재난문자를 받아, 특유의 사이렌 소리에 아이들이 기겁하고 울어 ‘소동’이 빚어질 때가 많다. 박 씨는 “차량 통제 등을 긴급재난문자랍시고 시도 때도 없이 보내와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부산시, 차량 통제·통행금지 등

긴급 재난과 거리 먼 문자 남발

시민 혼란 부추기고 민원 속출

정작 재난 땐 시민 외면 우려도

이처럼 긴급 재난 상황 시 각 지자체에서 일괄적으로 송출하는 긴급재난문자 서비스(CBS)가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민폐만 끼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긴급 재난’과는 거리가 먼 내용을 담은 문자가 하루에도 수차례 발송돼, 혼란을 가중시키고 실제 재난 발생 시 시민들의 안전불감증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다.

4일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는 부산시가 지난 1월 송출한 긴급재난문자 12건 중 8건을 ‘부적절 송출 사례’로 규정해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는 일부 구간 교통 통제 등 단순 행정 내용과, 긴급재난문자 송출 기준에 없는 미세먼지 주의보에도 긴급재난문자를 송출한 데 따른 것이다.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 관계자는 “매월 각 지자체별로 긴급재난문자 발송을 ‘남발’하거나, 행정 안내에 그치는 문자를 발송했을 경우 ‘자제 요청’을 하고 있다”며 “정작 긴급한 재난 상황 시 필요한 문자 서비스가 시민 혼란을 부추기고 행정 안내문으로 비칠 우려가 있어 중앙부처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긴급재난문자 송출 권한은 지난해 8월 16일 자로 각 지자체에 일부 이양됐다. 현재 재난문자를 송출하는 기관은 행안부, 지방자치단체, 기상청, 재난대비기관 등이며 ‘사회 재난’은 각 지자체에서 일괄적으로 담당한다. 문자 송출 허가 주체도 일선 시청 과장과 상황팀장에 그쳐 긴급재난문자 송출에 개인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도 큰 실정이다.

부산시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시·구청에 접수된 긴급재난문자 관련 민원만 수백여 건으로, 학계는 긴급재난문자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불만이 지속적인 ‘습관화’로 이어져 생기는 안전불감증을 우려했다. 경성대 심리학과 이수진 교수는 “긴급재난문자 남발이 시민의 ‘재난 인지’에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명확한 재난의 정의를 규정하고 사회적 인식에 따른 매뉴얼을 수립해 발송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산시는 “송출 기준이 명확히 수립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민들의 불편을 감소시키고자 보내는 것”이라며 “재난 발생 시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혼란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