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문명 로드를 가다] 상. 중국 문명의 보고 ‘태산’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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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괴석 곳곳에 새겨진 한자, 中 명산에 남은 문명의 역사

태산의 기암괴석과 절벽에는 한자 유적이 즐비하다. 왼쪽 사진 맨 오른쪽에 당나라 현종이 예서로 쓴 글을 금색으로 새긴 ‘천하대관 기태산명’이란 비문이 유명하다. 태산의 기암괴석과 절벽에는 한자 유적이 즐비하다. 왼쪽 사진 맨 오른쪽에 당나라 현종이 예서로 쓴 글을 금색으로 새긴 ‘천하대관 기태산명’이란 비문이 유명하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은 남북한, 중국(대만·홍콩 포함), 일본, 베트남 등이다. 이들 국가의 문명 연구와 소통에서 한자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자 대상이다.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가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의 일환으로 2월 19~25일 ‘유가사상의 발원지’ 중국 산둥성 일대에서 시행한 한자 문명 로드 첫 번째 답사를 동행 취재했다. 유적지 탐방을 통해 한자 문화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명하고 새로운 시대 ‘신한자문화권’ 구축 가능성을 모색해본다.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는 향후 10여 차례 동아시아 한자 문명 로드를 답사할 계획이다.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中 산둥성 일대 답사 동행 취재

‘신한자문화권’ 구축 가능성 모색

세계자연문화유산 등재된 태산

‘산악 중의 공자’ 등 무수한 예찬

진시황·무제 등 봉선의식 행한 곳

태산의 신에게 제사 올리던

‘타이안대묘’도 갖가지 비문 보유

■중국 명산의 으뜸 태산

케이블카를 타고 수백 개의 계단을 오른 끝에 도착한 중국 산둥성 타이안(泰安)시 태산(泰山) 정상. 해발 1545m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짙은 운무가 산허리를 휘감았다. 지상과 선상의 경계가 모호했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는 기암괴석과 절벽에 새겨진 한자 유적이 즐비했다. 태산은 그렇게 인문의 향기와 명산의 아우라를 한껏 뿜어냈다. 세계 자연문화유산으로 1987년 등재됐고 연간 관광객이 4000만 명이 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태산 정상 가까이에 이 산의 정체성을 담은 ‘오악독존(五嶽獨尊)’이 새겨진 바위가 보였다. 중국의 명산인 오악은 동악 태산, 남악 형산(衡山), 서악 화산(華山), 북악 항산(恒山), 중악 숭산(嵩山). 오악독존은 태산이 중국의 오악 중에 으뜸이란 말이다. ‘공자는 성인 중의 태산이고, 태산은 산악 중의 공자다’ ‘태산을 보고 나면 다른 악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도 태산 예찬론과 맞닿아 있다.

태산은 일출, 일몰, 운해, 기암괴석 등 자연 경관과 제왕이 하늘과 땅에 왕의 즉위를 고하고, 천하의 태평함에 감사하는 ‘봉선(封禪)의식’이란 인문 경관이 결합한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사기>에는 진시황 이전에도 72명의 왕이 태산에서 봉선의식을 거행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 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부터 한나라 무제, 당나라 고종과 현종, 송나라 진종, 청나라 건륭제 등이 태산 정상에 올라 봉선 의식을 거행했다. 수많은 임금이 태산에 갈 때마다 곳곳에 사당을 세우고 불상을 만들었고 돌에 글자를 새기며 수많은 문물고적을 남겼다. 태산에서 봉선의식을 하는 것은 사람들이 태산이 가장 높고 가장 크며 만물이 생성되는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자 두보 이백 마오쩌둥(모택동) 등 많은 중국 유명인들이 태산에 올랐다. 특히 공자가 태산에 올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흔적은 오악독존 바위 인근에 있는 공등석(孔登石). 공자는 태산에 오른 소감으로 ‘등태산소천하(登泰山小天下·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아보인다)’를 언급했다. “공자는 천지만물의 기본을 인(仁)으로 봤어요. 만물이 생성되는 곳이자 인(仁)의 방향이 산(山)과 동(東)입니다. 오악 중 동쪽에 있는 산으로 동악으로 불리는 태산이 인의 방향에 있습니다.” 동행한 정경주 경성대 한문학과 명예교수가 공자와 태산의 상관관계를 설명했다.

태산 정상으로 올라가던 중 커다란 절벽의 표면을 깎아 금색 글씨로 쓴 비문이 눈길을 사로 잡았다. 예서의 대가인 당나라 현종이 직접 쓴 ‘천하대관 기태산명(天下大觀 紀泰山銘)’이다. 이 비석은 봉선의 동기와 규모, 과정에 성현의 공덕을 찬양한 것으로 중국 서예발전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도 태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은 이어졌다. 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 부인 덩잉차오가 쓴 비문이 대표적이다. ‘등태산간조국산하지장려(登泰山看祖國山河之壯麗·태산에 올라 조국 산과 강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보라)’라는 비문이다. 태산의 정상인 옥황정 부근에는 무자비(無字碑)가 서 있다. 높이 5.2m의 비석에는 아무런 글씨도 새겨져 있지 않다. 이날 동행한 산둥대 중국학과 수중 교수는 “한(漢) 무제가 이 비석을 세웠는데 자신이 하늘과 동급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것도 표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글자를 새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태산 인근에 있는 중국 삼대 궁전 ‘타이안대묘’. 태산 인근에 있는 중국 삼대 궁전 ‘타이안대묘’.

■중국의 삼대 궁전 ‘타이안대묘’

태산 인근에는 휘황찬란한 고건축인 타이안대묘(泰安岱廟)가 있다. 길이 405.7m, 폭 236m, 넓이가 무려 9만 6000㎡에 이른다. 이곳은 진시황 때부터 태산을 순례하기 전에 이 산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사당이다. 대묘의 본전은 천황전으로 공묘의 대성전, 자금성의 태화전과 함께 중국의 삼대 궁전으로 손꼽힌다. 대묘 안에는 타이안박물관, 북송시대의 벽화, 봉선을 기념해 새긴 비문 등이 있다.

중국 산둥성 태산/글·사진=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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