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794> 3일부터 개막?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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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국산 생마 약 15g에 해당하는 마를 통째로 갈아 넣었습니다.’

어느 음료 병에 붙어 있는 선전 문구인데, 깔끔하지 않은 이런 광고를 보면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다. 물론, 직업병인 줄 안다. 하지만, ‘국산 생마 15g을 통째로 갈아 넣었습니다’면 생마’와 ‘마’가 중복되는 걸 피할 수 있었는데, 싶어 많이 아쉽다. ‘했던 말을 자꾸만 반복하면, 좀 없어 보이는 법.

‘교도소는 죄수를 감옥에서 사회로 내놓기 전에 죄수를 교화시키는 곳이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에 실린 ‘내놓다’의 보기글이다. 한데, ‘죄수를’을 두 번이나 써서 깔끔하잖다. 둘 가운데 어느 것이든 지워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실 이런 정도라면 ‘국립’ 하고도 ‘표준’ 하고도 ‘사전’에 실리기엔 별로 마뜩잖은 문장인 것.

*야단치다: 소리를 높여 호되게 꾸짖다.(애가 모르고 그랬으니 애에게 너무 야단치지 마라./아무리 조용히 하라고 학생들을 야단쳐도 소용이 없었다.)

역시 표준사전 뜻풀이인데, 보기글 ‘애가 모르고 그랬으니 애에게 너무 야단치지 마라’가 어색한 이유 역시 중복 때문이다. ‘애가 모르고 그랬으니 너무 야단치지 마라’나 ‘모르고 그랬으니 애에게 너무 야단치지 마라’쯤이면 좋았을 터.

어느 신문 칼럼 제목 〈단 한 사람이라도 내게 ‘잘했다’는 사람이 있기를〉도, 〈단 하나라도 내게 ‘잘했다’는 사람이 있기를〉이나 〈단 한 사람이라도 내게 ‘잘했다’는 이가 있기를〉쯤이라야 ‘사람 중복’을 피한다.

‘2018 삼성화재배 월드마스터스가 3일부터 개막한다.’

이 문장에선 ‘3일부터 개막’이 어색하다. 표준사전을 보자.

*부터:(체언이나 부사어 또는 일부 어미 뒤에 붙어)어떤 일이나 상태 따위에 관련된 범위의 시작임을 나타내는 보조사. 흔히 뒤에는 끝을 나타내는 ‘까지’가 와서 짝을 이룬다.(1시부터 5시까지/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썽이다./너부터 먼저 먹어라.…)

‘부터’를 쓰려면 ‘범위’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데, ‘개막’은 어떤 범위나 기간이 아니라 단 한 번으로 끝나는 일. 그러니 ‘3일(에) 개막’이라야 했다.

‘콜롬비아 작가 안드레스 솔라노…한국어 강사로 일하던 아내를 만나 2013년부터 서울 이태원에 정착했다.’

어느 신문에서 본 문장이다. 정착을 범위로 본다면 ‘부터’를 못 쓸 것도 없다. 하지만, ‘2013년 서울 이태원에 정착했다’처럼, 빼더라도 별로 어색하지 않은 걸 보면, 역시 ‘부터’가 쓸데없다는 걸 알 수 있다.

jinwoni@busan.com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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