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799> 징글징글하게 끼리끼리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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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생일’을 본 관객 열에 아홉은 눈이 시뻘개져서 영화관을 나섰다.’

이 문장에서 이상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면 ‘얼굴이 시퍼래진 동네 사람 몇이 회관으로 달려왔다’라는 문장에서도 마찬가지일 터. 힌트는 모음조화다. 틀린 말은 ‘시뻘개져서’와 ‘시퍼래진’인데, 비슷한 말인 ‘시뻘겋다, 시퍼렇다’를 활용해 보면 얼추 이해가 된다.

*시뻘겋다-시뻘건-시뻘겋고-시뻘게

(새빨갛다-새빨간-새빨갛고-새빨개)

*시퍼렇다-시퍼런-시퍼렇고-시퍼레

(새파랗다-새파란-새파랗고-새파래)

이러니 ‘시뻘개지다, 시퍼래지다’라는 말이 있을 수 없다. ‘시뻘게지다/새빨개지다, 시퍼레지다/새파래지다’인 것. 아래 시에서 보듯이 ‘시퍼래지고’가 아니라 ‘시퍼레지고’, ‘벌개지며’가 아니라 ‘벌게지며’라야 한다.

‘…/시들지 않은 마음은 하염없이/뻗쳐오르고 시퍼레지고 벌게지며/이렇게 부드덕거리며 기세등등할까/…’(조향미 ‘이 가을’)

여기서 비밀 하나. 모음조화는, 사실 알고 보면, 서로 다른 여러 모음이 조화롭게 옹기종기 어울리는 게 아니다. 양성 모음은 양성 모음끼리, 음성 모음은 음성 모음끼리, ‘끼리끼리’ 어울리는 현상인 것.

4월 16일, 선장과 선원들은 도망가고, 나라는 구조에 손을 놓아 300명이 넘는 생때같은 목숨이 스러진 지 5년째 되는 날. 자유한국당 4선 중진 정진석 의원이 ‘오늘 아침 받은 메세지(→메시지)’라며 “세월호 그만 좀 우려 먹으라 하세요.…이제 징글징글해요..”라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내용에 관해서는, 뭐, 할 말이 없다. 다만, ‘징글징글하다’라는 말만 짚고 넘어가자. 아래는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

*징글징글하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몹시 흉하거나 끔찍하다.

보다시피, ‘징글징글하다’는 ‘징그럽다·지겹다’는 말이 아니라 흉하고 끔찍하다는 뜻. 그러니 뜻을 잘못 알고 썼으리라(고 믿는다). 징그럽다·지겹다도 ‘품격언어상’을 받을 말은 아니지만…. 아래는 같은 당 차명진 전 의원이 이보다 하루 전인 1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자식 시체 팔아 내 생계 챙기는 거까진 동시대를 사는 어버이의 어버이의 한 사람으로 나도 마음이 아프니 그냥 눈감아 줄 수는 있다.’

역시 내용은 넘어가자. 이 글의 문제는, 한 문장에서 ‘내’와 ‘나’가 각각 다른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 ‘내’를 빼야 문장이 바로잡힌다. 같은 글의 ‘쳐먹다, 쇄뇌’는 ‘처먹다, 세뇌’가 옳다. 정당이 아무리 정치적인 주장이 같은 사람끼리 모인 단체라지만, 국어 실력마저 닮을 것까지야 없지 싶은데…. jinwoni@busan.com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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