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800> 하늘이 흐려워?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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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우리가 쓰는 말이라는 게,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어서, 근본이 있고 이유가 있고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용언의 으뜸꼴(기본형)을 규범과 법칙에 따라 활용하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규범과 법칙을 알면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확 줄어드는 것이다.

‘연싸움을 하던 아이들은 뜻대로 되지 않자 발을 동동 굴렸다.’

사실, 이렇게 잘못 쓸 사람은 별로 없을 터. 누구라도 발은 굴리는 게 아니라 구른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동동 굴렀다’로 쓸 것이다. 한데, 이런 건 어떨까.

‘다시는 함부로 앞에 나서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공굴렀다.’

공굴렀다…? 아니, ‘공굴렸다’인가? 이렇게 헷갈리는 가장 큰 이유는 으뜸꼴을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이나 생각 따위를 흔들리지 않도록 다잡다’라는 뜻으로 쓰는 말은 ‘공글리다’다. 그러니 ‘공글렸다’로 써야 옳았던 것.

‘20대 여성 A씨는 4주 전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왼쪽 발목을 접질렀다.’

이 문장에 나온 ‘접질렀다’도 으뜸꼴을 잘 몰라 생긴 실수다. ‘심한 충격으로 지나치게 접혀서 삔 지경에 이르다’라는 뜻으로 쓰는 말은 ‘접질리다’다. 그러니 ‘접질렸다’로 써야 했다.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문추가 말에 채찍을 가하여 창을 꼰아들고 곧바로 달려 나와 다리 위로 올라섰다./군청 앞에 분식집을 차려 6년 동안 번 돈은 사진집 출판에 꼴아박았다.’

여기 나온 ‘꼰아들고/꼴아박았다’도 으뜸꼴이 ‘꼬나들다/꼬라박다’임을 알았더라면 ‘꼬나들고/꼬라박았다’로 바르게 썼을 터.

〈[오늘날씨] 전국이 꽁꽁… 손이 시려워 발이 시려워…〉

어느 기사 제목에 나온 ‘시려워’는 ‘시려’라야 했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자.

*시리다: 몸의 한 부분이 찬 기운으로 인해 추위를 느낄 정도로 차다.

으뜸꼴이 이러니 ‘시리-+-어→시리어/시려’가 된다.(활용꼴이 ‘시려워’가 되려면 으뜸꼴이 ‘시렵다’라야 할 터.) 비슷하게 생긴 형용사 ‘느리다, 비리다, 쓰리다, 아리다, 흐리다’ 따위를 활용해 보면 ‘시려워’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더욱 쉽게 알 수 있다.

㉠ 느려워, 비려워, 쓰려워, 아려워, 흐려워

㉡ 느려, 비려, 쓰려, 아려, 흐려

㉠이 아니라 ㉡이 옳은 표현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시려워’는 근본 없고 난데없는 표현인 것. 말에는, 아직 족보가 살아 있다. jinwoni@busan.com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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