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외성 ‘남문 기단석’ 추정 유물 발굴

이선규 기자 sunq17@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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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촉석문 앞 진주대첩광장 조성 사업지에서 진주성 외성의 옛 남문 터 기단석으로 추정되는 석재 유물이 발굴됐다. 남문은 당시 진주성의 상징이자 주 통행문으로 이용됐다. 진주시 제공 진주성 촉석문 앞 진주대첩광장 조성 사업지에서 진주성 외성의 옛 남문 터 기단석으로 추정되는 석재 유물이 발굴됐다. 남문은 당시 진주성의 상징이자 주 통행문으로 이용됐다. 진주시 제공

진주성 촉석문 앞 진주대첩광장 조성 사업지에서 옛 진주성 외성의 남문 터 기단석이 발굴됐다.

진주대첩광장 조성 부지에 대한 문화재 정밀발굴조사를 벌이는 한국문물연구원은 이미 발굴된 110여m에 이르는 진주성 외성벽에서 진주교 방향으로 수십 m 떨어진 지점에서 옛 외성 남문 터의 기단석 유물을 발굴했다고 28일 밝혔다.

외성벽 인근서 확인

진주성도 등에 기록된

남문 위치 확정 가능성

남문 터의 추정 규모는 길이 15m, 너비 4m인데 이번에 남문의 기초부분 기단석으로 추정되는 석재 유물 일부가 출토됐다.

진주외성 남문은 임진왜란 이후 축조됐다. 이에 따라 조선후기 진주성 외성 남문의 위치는 기록과 진주성도 등으로 미뤄보면 현재의 진주교 북측 사거리로 이어진 도로 일원으로 추정된다고 진주시 문화재 관계자는 말했다.

지난 26일 문화재 조사 현장을 찾은 조규일 진주시장은 현장에서 “110m에 달하는 진주성 외성벽에 이어 남문 터로 추정되는 기단석이 발견돼 매우 기쁘다”며 “남문은 당시 진주성의 상징이자 주된 통행문으로 사용된 만큼 이 기단석이 남문 터로 확정되면 우선적으로 복원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된 촉석문 앞 진주대첩광장 조성 사업지에 대한 문화재 정밀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 배수로부터 고려시대 토성, 조선시대 진주외성까지 각기 다른 형태의 유구가 출토됐다.

진주성이란 한 공간에서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여러 시대가 공존하는 역사적 유물이 잇달아 출토돼 상당한 의미를 던지고 있다.

진주시는 장기적으로 이번 발굴된 진주외성, 토성, 기타 유적 등을 활용한 천년고도 진주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고, 이를 적극 관광자원화할 계획이다.

이선규 기자 sunq17@


이선규 기자 sunq17@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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