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801> ‘조선’통신사…라뇨?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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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대영박물관(大英博物館): 영국 런던 블룸즈버리(Bloomsbury)에 있는 국립 박물관….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다 보면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과 맞닥뜨린다. 이 ‘대영박물관’도 그 가운데 하나. 위화감을 느끼는 부분은 ‘대영(大英)’이라는 표현이다. The British Library, British Airways, British Trade Association을 영국 도서관, 영국항공, 영국무역협회로 불러야 하듯이, ‘The British Museum’은 ‘영국’박물관으로 부르는 게 정상인데, 왜 ‘대영’박물관이라 쓸까.

사실 이 ‘대영’이라는 표현엔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제국주의 시절 일본이 ‘Great Britain’을 직역한 말이기 때문이다. 대영제국을 본떠 ‘대일본제국’이 되고 싶었던 그들에겐 필요한 번역이었던 것. 게다가 지금은, 어느 나라에도 ‘대(大)’ 자를 붙여 주지 않는 마당에 유독 영국에만 붙이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서는 자리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는 법(웹툰 ‘송곳’ 대사). 하니, 말을 쓸 땐 어디에 서 있는지를 챙겨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19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선정되지 못했다.’

이 기사 문장에서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라고 썼다면, 무슨 짓이냐는 소릴 듣기 십상이었겠다. ‘문재인’과 ‘대통령’ 사이에 ‘한국’이 빠진 건 그가 한국 대통령이라는 걸 독자가 알기 때문이고, 이 독자들은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일본 매체는 반드시 ‘한국 대통령’이라고 쓸 터. 선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2019 조선통신사 축제.’ 내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행사 이름이다. 한데, ‘조선’통신사라…? 주관하는 부산문화재단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사절을 조선통신사라고 한다.’

아니다. 조선 시대에 ‘조선통신사’라는 사절을 파견한 적은 없다. 그냥 ‘통신사(通信使)’였기 때문이다. 중국에 보내던 사절인 정조사(正朝使), 성절사(聖節使), 동지사(冬至使), 사은사(謝恩使)뿐만 아니라 일본에 보낸 수신사(修信使) 앞에도 ‘조선’을 덧붙이지 않았다. 당연히, 지금 사전에도 그렇게 올라 있다.

물론, 일본은 우리 통신사를 ‘조선통신사’라 불렀다. 우리가 ‘명나라 사신,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 했듯이, 그들도 어디서 온 사신인지 밝혀 불렀던 것. 하니, ‘조선통신사’는 우리가 불렀던 이름도 아니고, 부를 이름도 아니다. 한데, 궁금하다. 통신사를 계승한 수신사는 그냥 수신사라 부르면서, 왜 유독 통신사만 ‘조선통신사’라고 부를까. 한국 사람들이, 대체 왜….

jinwoni@busan.com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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