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해양문학상 소설 부문 우수작] 쑹거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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쑹거/이대연


속도를 높이지 않았는데도 바람이 매서웠다. 봄이라 하기에도, 겨울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날씨였다. 황선장은 한손만으로 스쿠터 핸들을 움직여 중심을 잡으며 점퍼의 깃을 세웠다. 앞마당에 만개한 개나리만 보고 봄 점퍼를 입고 나왔다가는 자칫 낭패를 볼 뻔했다. 바닷바람이 철없이 차가운 거야 모르지 않지만, 매년 이맘때마다 배신감 아닌 배신감을 느끼는 것을 보면 아직 사람이 덜 됐다. 뱃사람이 바다를 따르고 계절을 따라야지, 제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고나 있으니 풍어가 다 웬 말일까 싶기도 했다.

“사람이 돼야지.”

말소리가 바람에 씻겨 날아갔다.

멀리 우그러진 지붕이 보였다. 지난번 포격 때 입은 피해였다. 포탄 자국들이 보이지 않게 가림벽을 두었지만 지붕은 가려지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야 그때의 아찔함과 두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흔적들을 죄다 지우고 싶어 했지만 정부에서는 무슨 무슨 체험관이라 하여 견학 장소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 덕에 관광객들이 몰려 돈이라도 돌면 모를까 근래에는 찾는 이가 거의 없었다.

“견학은, 니미럴, 볼견 자 견학이 아니라 개견 자 견학인 거지.”

입이 험한 정길 형은 지나다닐 때마다 욕을 하곤 했다.

포격이 있던 무렵 황선장은 이곳에 없었다. 가진 재산이라고는 물려받은 배 한 척뿐인데 출항을 나갈 때마다 손해가 나니 그대로는 늘어가는 빚을 감당할 수 없었다. 배는 임대를 주고 남의 배를 탔다. 한 몇 년 원양, 근해 가리지 않고 일한 덕분에 간신히 빚을 갚고 배도 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포탄이 날아드는 난리통에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안절부절 못했을 아내를 생각하면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스쿠터에서 내려 버팀쇠를 세우는데 황선장의 아내가 용케 알고 내다봤다. 미닫이 출입문이 열리면서 선팅지로 써 붙인 ‘꽃게탕’이 ‘꽃게라면’과 겹쳐 알아보기 힘들게 일그러졌다. ‘꽃’자만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밥 좀 줘.”

“내일 출항 나갈 사람이 한가하네. 밥 먹으러 여까지 오고.”

황선장은 아내의 어깨를 토닥여 식당 안으로 밀어 넣으며 자신도 뒤따라 들어갔다. 손님 올 시간이 아니라지만 비어 있는 식당을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주방으로 가 밥상을 차리는 아내의 얼굴이 여전히 뚱했다. 자꾸 뭍으로 나가자고 보채는 아내를 달래기가 쉽지 않았다. 아내의 고향이 육지여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다 갚았다 싶었던 빚이 언젠가부터 다시 늘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돈 쓸 일도 많아졌다.

“식당이든 꽃게잡이든 하나라도 제대로 돼야지. 배 팔고 가게 팔고 육지로 가자. 거기서 식당 하자. 내가 주방일 보고 당신이 배달하면 되잖아.”

아내 말이 틀린 것 하나 없는데도 황선장은 공연히 서운했다. 서운하고 서러웠다. 밤새 술을 펐다. 한 잔 마시고 서쪽을 보고 욕했고, 또 한 잔 마시고 북쪽을 보고 욕했다. 다시 한 잔 마시면 동쪽을 보고 욕했다. 한국이고 중국이고 다 정나미가 떨어졌다. 모두 말 뿐이었고, 모두 제 잇속만 챙기기 바빴다.

“자. 얼른 먹고 가. 손님들 올 시간이야.”

아내가 철쟁반에 차린 밥상을 퉁명스럽게 내려놓았다. 손님 없는 걸 뻔히 아는데 흰소리를 했다. 출항 준비로 바쁠 텐데 부질없이 시간 보내지 말고 서둘러 가서 일하라는 말을 참 멋대가리 없이 돌려 말했다.

“그래서, 유경이 아버지는 타기로 한 거야?”

아내가 느닷없이 정길 형 얘기를 꺼냈다. 어제 한 얘기를 기억하고 한 말이었다.

“밥 먹고 가보려고……. 오늘 한 번 더 얘기해보고, 그래도 싫다 하면 어쩔 수 없고…….”

“화상들……. 누가 누굴 챙기니…….”

아내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토하며 주방으로 갔다. 손님도 없는데 어디서 그리 많은 설거지거리가 나왔는지 등을 보인 채 한 더미 쌓인 그릇을 닦기 시작했다. 황선장은 숟가락으로 밥을 뜨다 말고 아내의 야윈 등판을 바라봤다. 잰 손놀림 때문에 들썩이는 아내의 어깨가 출렁이는 바다 같았다. 그릇 부딪는 소리가 파도소리처럼 요란했다. 저 바다에서 젊은 날의 행복을 건져 올렸고, 두 아이를 건져 올렸고, 고된 삶을 이겨낼 힘을 건져 이때까지 살아왔다. 바다를 따라야 하는데……. 황선장은 숟가락 가득 밥을 떠 입에 우겨넣었다.

“올해만…….”

“뭐라고?”

아내가 수돗물을 끄고는 고개만 돌려 곁눈질로 힐끔 황선장을 돌아보았다. 황선장이 무디게 밥을 씹으며 다시 큰소리로 말했다.

“올해만!”

입에서 밥풀이 튀었다.

“올해만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당신 말대로 할게…….”

잠시 침묵이 흘렀고, 주방에서 낮게 한숨 새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곧 아내가 다시 수돗물을 틀었다. 수압 높은 물소리가 식당 안에 크게 울렸다.

황선장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아내가 주머니에 뭔가를 찔러 넣었다. 꺼내보니 비닐봉지에 담긴 떡이었다.

"쑹거야. 쑹거 주는 거니까 낼 나가서 많이 잡어와."

웬 떡이냐는 물음에 아내가 답했다. 황선장은 ‘쑹거 주는 굿’을 떠올렸다. 풍어제 때 올리는 굿 중 하나였다. 긴 무명천을 양쪽에서 잡아 파도처럼 흔들고, 그 위에 떡을 던진다. 말하자면 무명천은 바다요, 떡들은 물고기인 셈이다. 만신이 떡을 나눠주면 선주들은 앞섶을 열어 품 안에 떡, 아니 고기를 받는다. 만선을 기원하는 것이다. 어릴 적에는 쑹거가 떡을 이르는 말인 줄 알고 쑹거 달라는 말을 곧잘 하곤 했다. 그러나 쑹거는 떡을 뜻하는 말도, 물고기를 뜻하는 말도 아니었다. 그냥 ‘쑹거’였다. 어른들에게 물어도 몰랐고, 인터넷이란 걸 알게 되면서 검색을 해봐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알아낸 것은 쑹거의 정확한 의미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 뿐이었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물고기가 되기도 했고, 돈이 되기도 했고, 적당히 얼버무려서 ‘복’이 되기도 했다. 전날 돌잔치를 한 어촌계장 손녀 돌잡이 떡이려니 싶었지만 아내의 마음이 고맙고 짠했다.

"쑹거 받았으니 만선하겠네."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 황선장에게 아내는 비닐 랩으로 두른 냄비를 내밀었다.

“이건 유경 아부지 주고……. 보나마나 어포 조각에 소주나 마시고 있을 건데……. 콩나물국이야. 속이라도 풀라고 해.”

황선장은 안장을 열어 좁은 수납공간에 기울어지지 않게 잘 받쳐서 냄비를 넣고 스쿠터에 올라탔다. 시동 버튼을 누르자 푸릉, 하는 소리만 나고 정작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황선장은 하는 수 없이 스쿠터를 밀기 시작했다. 밀다가 버튼을 누르면 시동이 걸리기도 했다. 힘주어 밀면서 몇 미터를 달리다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버튼을 눌렀다. 힘없는 엔진음과 함께 간신히 시동이 걸렸다. 황선장은 잽싸게 스쿠터에 올라타 시동이 꺼지지 않도록 엑셀을 당겼다. 그제야 아내에게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봤다. 아내는 보이지 않고 노란 개나리만 바람에 흔들렸다. 황선장은 다시 한 번 엑셀을 당겼다. 스쿠터가 더디게 속도를 높였다.

조합 사무실은 번화가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허름한 건물 이층에 세 들어 있었는데, 선주협의회나 어촌계 같은 번듯하고 체계 잡힌 조직들이 있어 굳이 필요 없는데도 무슨 조합입네 이름 붙이고 건물에 세까지 얻어 자리를 잡은 것은, 그냥 갈 데가 없어서였다.

“우리 놀이터 하나 만들까?”

선주들 몇이 모여 술을 마시다가 누군가 제안했고, 마침 운반선 모는 정선장네 낡은 건물 이층이 세가 나가지 않아 고심하고 있던 차라 공짜에 가깝게 얻었다. 간혹은 마을 행사 준비로 모여 부산을 떨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선주건 선원이건 할 일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술이나 푸는 장소였다. 그마저도 포격 때 사라질 뻔했지만 운 좋게 무사했다. 조합원들은 천우신조라고 했고, 가족들은 하늘의 무심함을 탄식했다.

황선장이 도착했을 때 사무실 안에는 정길 형 혼자 있었다. 평소 같으면 끼리끼리 모여 심심풀이 화투를 치거나 바둑을 두거나 낮술로 무료함을 달래는 이들 예닐곱은 있어야 했는데, 다들 조업 준비를 하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꽃게 철에 대한 기대감은 버릴 수 없는 듯했다. 겉보기에는 불한당처럼 사람 구실 못할 것 같이 생겨먹은 위인들이었지만, 바다에 나가면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성실한 뱃사람들이었다.

정길 형 혼자 있는데도 사무실 안은 어수선했다. 탁자 위에는 소주 두 병이 거의 비어 있었고, 황선장 아내의 짐작을 확인이라도 해주듯 보기에도 푸석한 말라비틀어진 어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무슨 일인지 철제 캐비닛은 활짝 열려 배 딴 생선마냥 안에 든 물건들을 쏟아낸 채로 방치되었다 그 가운데 풍어제 때 쓰는 깃발이 보였다. 근방에서 많이 잡히는 13종의 물고기를 상징하는 깃발과 오색기였다. 흡사 관리를 소홀히 한 창고 같았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뭔가 모르게 생경한 분위기에 황선장은 잠시 주춤했다. 들고 있는 냄비 안에서 국물이 찰랑거려 신경이 쓰였다. 비닐 랩을 씌웠는데도 어쩐지 넘칠 것 같은 불안감에 그대로 서서 흔들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황선장 왔냐?”

소파에 길게 기대앉아 술 취한 눈으로 멍하니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던 정길 형이 황선장을 알아보고 인사했다. 인사라고는 해도 그리 반가운 기색은 아니었다. 황선장은 탁자로 가 냄비를 내려놓았다.

“애들 엄마가 형님 속이나 풀라고 갖다 주랍디다.”

“남북 평화무드라네.”

“평화무드요?”

“응, 평화무드.”

정길 형은 취한 사람답지 않게 발음이 명확했다. 황선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러면 NLL 너머로 도망치는 황당선도 잡을 수 있는 거냐? 그 새끼들 잡아 족칠 수 있는 거냐고.”

황당선은 조선시대 황해에 출몰하던 중국 해적을 일컫는 말이었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을 정길 형은 황당선이라고 불렀다. 황당해서 황당선이라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곳 사람들에게 중국 어선은 황당을 넘어 절망이었다.

이천 년대 초반부터 눈에 띄게 늘어난 중국 어선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하루에도 이삼백 대가 인근 해역에서 조업을 했다. 보란 듯이 버젓이 조업을 하다가 해경이 출동하면 슬그머니 북방한계선 너머로 도망을 갔다. 해경이 작전을 수행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이 단지 선박의 수가 어마어마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치어도 못 빠져나가는 지금 2㎝의 촘촘한 유자만, 어선 두 대로 싹쓸이를 해가는 쌍끌이 저인망 조업, 바다 밑을 헤집어놓는 형망 등으로 해산물의 씨를 말리는 건 물론이고 생태계까지 교란시키고 있었다.

한 번 조업을 나가면 서른 상자는 잡아오던 꽃게잡이가 두 상자로 줄었다. 일 년에 삼사 억은 벌어야 그물 값에, 기름 값에, 선원들 급료에, 이것저것 빼고 그나마 먹고사는데, 일 억을 벌기가 힘들었다. 조업을 나가는 일이 손해였고, 조업을 나갈수록 빚이 늘었다. 황선장처럼 남의 배를 타는 이도 있었지만 제자리에서 버틴 이들은 결국 배 팔고 집 팔아 빚잔치를 하고 야반도주하듯 육지로 쫓겨났다.

사정 뻔히 아는 황선장이었지만 맞장구를 쳐주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았다.

“내일 같이 나갑시다.”

“어딜?”

“조업. 지난번에 말했잖아, 형님.”

“조업 나가면 밥이 생기냐, 돈이 생기냐?”

정길 형의 말에 황선장은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그래도 다 놓아버릴 수가 없어 마음의 끈 한 가닥을 간신히 부여잡고 농으로 눙치려 들었다.

“왜 그래? 형님 일당 잘 쳐준다니까. 형님만한 뱃사람이 어디 있나. 내가 이 근방에서 젤로 잘 쳐줄게.”

“니 좆이다, 씨발.”

황선장은 정길 형의 무심한 반응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럼, 백 날 천 날 이러고 살 거야? 사람들 일할 시간에 술 처먹고 취해가지고, 육지 나가서 고생하는 형수님 보기 부끄럽지 않냐? 유경이 보기 부끄럽지 않아?”

정길 형이 눈을 가늘게 뜨고 황선장을 바라봤다.

“너는 아직 살만한가 보다? 그래, 니 배 버리고 남의 배 타서 돈 벌어 와갖고 빚잔치 하니까 살만 허디?”

그가 빈정거렸다.

“황선장 너 나가 있는 동안 미련하게 조업한 사람들 다 어떻게 됐냐? 진수, 빚 때문에 자살하고 창석이, 온가족 뿔뿔이 흩어져서, 야, 낮에는 노가다 뛰고 밤에는 대리 뛴단다! 그리고…… 나는, 나는…….”

정길 형은 말을 끊더니 웃옷을 들쳐 올렸다.

“진수, 창석이, 그리고 나…… 계속 조업하면 너도 우리처럼 된다…….”

황선장은 정길 형의 맨살을 바라봤다. 여기저기 꿰맨 자국들이 훤히 드러났다. 황선장은 눈을 감아버렸다.

황선장이 나가 있는 동안 불법조업에 참다못한 어민들이 중국어선 두 척을 나포한 일이 있었다. 국회에서 대책 토론회를 한 직후였다. 불법조업에 대한 해경의 단속을 더욱 강화 하겠다고 했지만, 해경은 이미 열심히 단속하고 있었다. 중국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하겠다고 했지만, 중국 정부는 귀띔으로도 듣지 않았다. 중국에 조업권을 넘김 북한의 탓이라고도 했다. NLL은 육십 년 넘게 그렇게 있었고, 북한은 육십 년 넘게 그래 왔다. 새로운 내용도, 희망을 가질 만한 내용도 없었다.

중국어선 백여 척이 해경에 쫓겨 NLL을 넘어갔다가 은근 슬쩍 다시 남하해 조업 중이었다. 어민들이 끌고 간 어선 삼십 척이 거리를 두고 중국 어선들과 대치했다. 그때 외떨어진 중국 선박 두 척이 보였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해경의 출동에 겁을 먹어 배를 버리고 도망간 듯했다. 황당선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진입하기는 꺼려졌지만 비어 있는 배 두 척 정도는 나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고 수준은 될 것 같았다.

그 가운데 정길 형의 방진5호가 있었다. 제일 먼저 도착해 제일 먼저 황당선에 등선했다. 조타실을 접수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앞뒤 보지 말고 물에 뛰어들었어야 했다. 어민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황당선이 멀어졌고, 굳게 닫혔던 조타실 문이 열리면서 중국선원들이 나왔다.

정길 형은 훗날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 배들이 멀어지는데, 나 혼자 지옥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더라. 이놈들이 야차구나 싶더라고. 그런데 신기하지? 한 놈씩 조타실에서 나오는데 필름이 천천히 돌아가는 것 같았어. 슬로우 비디오 말이야. 현실 같지가 않아서 그랬나? 영화 같더라니까.”

사실 섣불리 등선한 것은 정길 형의 실수였다. 해경 특공대에게도 칼과 손도끼 등으로 저항하는 그들이었다. 심지어 화염병을 사용하기도 했다. 간혹 배를 버리고 도망하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안심할 일은 아니었다. 곧 무자비한 폭행이 이어졌다. 마침 황당선들이 다시 남하했다는 연락을 받고 출동한 해경의 경고방송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목숨을 잃었을지 모른다. 그들은 서둘러 도주하려 했지만 금세 따라잡은 어민들에게 붙잡혔다. 무수한 골절과 자상을 입은 정길 형은 서른 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고서야 간신히 살아났다. 기왕의 고리 빚에 수술비가 더해졌다. 정길 형은 배와 집을 팔았지만 빚을 다 갚지는 못했다. 형수는 뭍으로 일하러 나가고, 유경이와 정길 형은 작은 월세방을 얻어 이사했다.

황선장은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손을 휘저어도 담배가 잡히지 않았다. 아내가 또 갖다버린 모양이었다. 정길 형이 담배와 라이터를 던져주었다.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이 빨자 현기증이 일었다. 중심을 잡기가 힘들어 눈을 감으며 소파 깊숙이 몸을 기댔다. 정길 형이 일어나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뒤이어 금속끼리 부딪는 소리가 들렸다. 일상에서 듣기 힘든 묵직한 금속음이었다. 황선장은 소파에 기댔던 몸을 일으켜 한두 모금 빤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소리 나는 쪽을 바라봤다. 정길 형은 철제 캐비닛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었는데 제법 길이가 있는지 캐비닛 가장자리에 걸려 쉽게 빠지지 않는 듯했다. 황선장이 뭔가 싶어 일어나려고 할 때 금속제의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쇠파이프라고 해야 할지 창이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 미터가 조금 넘는 쇠파이프 끝에 한 뼘쯤 되는 날렵한 양날검을 박은, 보기에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물건이었다.

“야, 황선장! 이게 뭔 줄 아냐?”

정길 형이 의기양양하게 들어보였다. 황선장은 직감적으로 그것의 출처를 알 수 있었다. 불법조업을 하는 어선의 선원들이 쓰는 무기였다. 그들은 접근하는 해경 특공대를 향해 마치 투창처럼 이 무시무시한 흉기들을 던졌다.

“형님 만석부두 갔다 왔어?”

묻는다기보다는 나무라는 말투였다. 인천 만석부두에는 나포된 불법조업 선박 30여 척이 보관되어 있었다. 엊그제 보이지 않는다 싶더니 그곳에 다녀온 듯했다. 그러나 해경이 수거했을 흉기가 어째서 정길 형의 수중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 이걸로 해적 놈들 배때기를 확 쑤셔버릴 테다!”

창을 잡은 정길 형은 더욱 독기가 올라 소리쳤다. 무협지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이 싸우는 시늉을 하는데 독기가 올랐어도 취기는 어쩔 수 없는지 팔다리가 흐느적거리고 중심을 잡지 못해 간간이 몸이 흔들렸다. 가뜩이나 취한 사람이 흉기를 들었으니 무슨 일이라도 내지 않을까 겁이 났다.

“끔찍한 소리 하지 말고 얼른 그 흉한 것 좀 어디다 치웁시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긴 창을 휘두르는 정길 형에게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럼 내가 당한 꼴은 끔찍하지 않냐? 내 몸에 난 상처들은 흉하지 않냐? 왜, 나도 어디다 치워버리지 그러냐?”

정길 형이 정색했다. 취하고 독기가 오르고 흉기를 들었어도 어딘가 장난기가 묻어 있던 정길 형의 태도가 가라앉았다. 황선장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일이 꼬이고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정길 형을 달랬다.

“형님, 서운하게 왜 그러쇼.”

그러고는 아내가 준 냄비를 들고 사무실 한구석에 있는 간이주방으로 갔다. 라면이나 끓여먹고 간단한 안주거리를 해결하는 곳이었다. 비닐 랩을 걷어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불을 켰다.

“왜 다들 나만 갖고 그래! 왜, 왜, 왜! 다 죽여 버릴 거야!”

비명 갖기도 하고 절규 같기도 했다. 정길 형은 소리를 지르며 들고 있던 창으로 소파를 내리쳤다.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분을 담아, 한을 담아 내리쳤다. 소파의 탄성이 쇠파이프로 된 창 자루를 밀어냈다. 정길 형의 취한 몸이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리더니 맥없이 넘어졌다. 꼴이 우스웠다. 하루에도 통발을 오천 번씩 올리고 내리던 몸이, 수 미터가 넘는 파도와 싸우던 몸이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꼴이 우스웠다. 황선장은 발로 창을 밀어 벽 쪽으로 굴려 보내고는 정길 형을 일으켜 소파에 앉혔다.

“형님, 올해만…… 올해까지만 해보자. 그리고 아니다 싶으면 다 같이 형수 있는 데로 나가자.”

“니가 제일 나빠…….”

정길 형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때…… 그때 혼자만 나가지 말고 같이 나가지……. 나도 좀 데리고 나가지 그랬냐. 그랬으면…….”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린 정길 형의 어깨가 들썩였다.

“미안해, 형님……. 내가 미안해……. 그러니까 우리 같이 살자. 형님도 살고, 유경이도 살고, 형수도 살고…… 나도 살고, 우리 가족도 살고…….”

황선장이 가만히 정길 형을 안아 어깨를 토닥였다.

“우리가 언제 나라 믿고 살았어? 사람 믿고 바다 믿고 살았지…….”

두툼한 겨울 점퍼가 짠물에 젖어들었다.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정길 형은 담배를 찾았다. 황선장은 탁자에 놓인 담뱃갑에서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여 준 후 쇠파이프 창의 날카로운 부분에 두툼하게 신문지를 감고 테이프를 둘렀다. 아무래도 사무실 안에 흉기를 두는 것이 안심이 되지 않았다. 정길 형의 눈치를 보며 담배 한 대와 함께 슬그머니 들고 나왔다. 건물 지하 창고 구석에 숨기고 파출소 김순경에게 전화해 조용히 수거해가라고 일렀다. 출처를 묻는 질문에 황선장은 그냥 주웠다고 둘러댔다.

지상으로 올라와 한시름 놓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위층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깨지는 소리가 났고, 비명이 울렸다. 황선장은 다급히 뛰어올라갔다. 탁자에 냄비가 엎어져 있었다. 콩나물이 쏟아지고 국물이 흥건했다. 바닥에는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소파 옆쪽에 나뒹구는 슬리퍼 한 짝도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정길 형은, 발을 부여잡은 채 소파에 앉아 고통을 참고 있었다. 뜨거운 콩나물 국물에 덴 것인지 유리조각에 베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황선장은 정길 형의 발을 확인했다. 유리조각이 박혀 있었다. 통풍이 안 되는 고무장화 안에서 수십 수백 번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박이며 이십 년을 버텨온 발은 조그만 유리조각에도 쉽게 상처가 났다. 황선장은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상처를 소독한 다음 캐비닛 안에서 풍어제 때 쓰던 무명천을 찾아 길게 찢어 발을 감쌌다. 그리고 괜찮다는 정길 형을 반강제로 스쿠터에 태워 보건소로 데려갔다.

“박 선장 발이 애기 발처럼 뽀야네. 예쁘게 꿰매 줄 테니까 술 마시지 말고 약 꼬박꼬박 드십쇼.”

어부의 발이 뽀얄 리 없는 데도 보건소장이 실없는 농담을 했다. 오랜만에 듣는 박선장이라는 호칭이 쑥스러운지 수술침대에 누운 정길 형이 헛기침을 했다.

밖으로 나오니 날이 저물고 있었다. 발에 흰 불대를 감은 정길 형을 부축해 스쿠터를 향해 가는데 꼬르륵 소리가 났다.

“형님, 배고파?”

“내 배에서 난 소리 아니다. 니 배가 허기진가 보지.”

농을 치는 것을 보니 술이 깨는 듯했다. 황선장은 주머니 안에 든 떡이 생각나 정길 형에게 건넸다.

“쑹거야. 만선하라고.”

웬 거냐고 묻는 질문에 황선장이 답했다. 정길 형은 무심히 비닐을 열어 떡 하나를 입에 넣었다.

시동이 또 말썽이었다. 황선장은 스쿠터를 밀며 달렸다. 속도가 붙었을 때 버튼을 누르자 시동이 걸렸다. 황선장은 멈추지 않고 잽싸게 스쿠터에 올라탔다. 스쿠터가 길게 주차장을 한 바퀴 돌아 되돌아왔다. 정길 형이 뒷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자신의 허리를 감싼 것을 확인한 황선장이 다시 출발했다.

“이번 조업은 얼마나 있으려고?”

“모르는 사람처럼 뭐 그런 걸 물어. 날씨 봐서 있는 거지.”

보통은 출항하면 열흘이나 보름은 바다 위에서 생활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획량이 신통찮으면 그냥 돌아와야 했다. 기름 값이라도 아껴야 했다.

“오래 있다 와라. 그래야 다음번에는 나도 같이 나가지.”

황선장의 스쿠터가 갑자기 도로를 벗어났다. 덜컹거리며 포장 안 된 맨땅을 달리기 시작했다. 몸이 오르내리며 흔들렸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때렸다. 정길 형이 노랫가락을 흥얼거렸다. 청학백학이 놀던 자리 깃이 떨어져 보저……. 쑹거타령이었다. 황선장이 뒤를 받았다. 에허어리 쑹거어~.


청룡황룡이 놀던 자리 비늘 한쌍이세 가졌네

에허어리 쑹거어

칠성제석님 놀던 자리 명복이 떨어졌네

에허어리 쑹거어

운구대감이 놀던 자리 금은보화가 솟아났네

에허어리 쑹거어


정길 형이 떡 하나를 황선장의 입에 넣어주었다.

“쑹거야. 만선하라고.”

일몰의 서양이 그물처럼 내려앉았다. 황선장이 라이트를 켰다. 무명천처럼 흰 빛 한 줄기가 길게 뻗어나갔다. 스쿠터가 출렁이며 그물 위를 내달렸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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