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세상 속으로] 부산기록원 설립, 지금 준비해도 늦다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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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8월 28일 자 부산일보 8면 '부산시 국산품 껌팔이 소년 직업 보도식' 행사 광고. 1965년 8월 28일 자 부산일보 8면 '부산시 국산품 껌팔이 소년 직업 보도식' 행사 광고.

1965년 8월 28일 자 부산일보 8면에 실린 ‘부산시 국산품 껌팔이 소년 직업 보도식’이란 광고는 낯설다. “우리 롯데 껌팔이 소년들은 샐러리맨으로 거리에 나섰습니다”라는 광고 카피와 함께 까까머리 소년과 단발 소녀가 똑같은 옷을 맞춰 입고 정렬해 행사를 치르는 사진이 실렸다. “‘미제 껌도 있습니다’라며 남의 눈을 두려워하던 비굴한 소리도 낼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한 달에 꼬박꼬박 일정한 돈을 받게 됐으니까요”라는 문구가 뒤따르지만, 광고만으로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하긴 쉽지 않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우리 하늘에는 기쁨이’라는 문구가 짝지어 나오는 걸 보면 껌팔이 소년의 수기를 원작으로 그해 개봉해 전국을 울음바다로 만든 영화 장면처럼 이들 껌팔이 소년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생겼음을 짐작할 수는 있다. 거기까지였다. 이날 행사가 어떤 배경에서 열렸는지, 이들이 바람처럼 남 눈치 보지 않는 어엿한 월급쟁이가 됐는지, 궁금증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부산시립시민도서관에서 책자를 찾아보고, 부산시 홈페이지와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에서 기록을 검색했지만, 허탕만 쳤다. 롯데그룹 측에 문의했지만 “모르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부산 기록 집대성한 아카이브 없어

제대로 된 부산 정체성 탐구 한계

지방기록물관리기관 설립은 의무

예산 탓하며 10년 넘게 추진 안 해

미적거리는 사이 기록물 멸실 위기

기억 사라진 도시 후손에 물려줄 판

광고만으로는 전후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고, 남겨진 자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과거를 재구성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1965년이면 내가 태어난 당대의 일인데도 힘겹게 시대를 건너온 사람들의 기억은 선사시대처럼 까마득했다. 매주 금요일 70년이 넘는 부산일보 광고면을 훑어 당대의 사회상을 풀어내는 연재를 하면서 늘 부딪히는 문제다. 부족한 자료의 한계를 절감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용과 재인용을 거쳐 잘못된 정보들이 온라인에서 확대 재생산되는 장면도 숱하게 만난다.

부산의 기록을 집대성한 오프라인 공간과 신뢰할 디지털 보존서고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간절한 것도 그래서다. 알고 봤더니 법적 의무사항이다.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별다른 제재가 없다는 게 한계지만,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광역시·도의 지방기록물관리기관 설치·운영을 의무화했다. 그에 맞춰 경남기록원은 전국 최초의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이란 타이틀로 지난해 5월 21일 창원시 옛 경남보건환경연구원 건물을 리모델링해 운영에 들어갔다. 경남보다 준비는 먼저했지만 서울기록원도 오는 15일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뒤늦게 문을 연다. 민간 기록까지 수집해 서울에 관한 기록물 정보를 제공하는 허브 구실을 자임했다.

기록물과 관련해 부산은 한참 뒤처졌다. 부산시청 본청에 기록연구사 2명이 지하1층 부산시기록관에서 기록물을 관리하지만, 인력은 턱없이 모자라고 기록관은 이미 포화상태다. 공공기관이 생산한 행정 기록물만 보관하고, 행정 내부망을 통해 공무원만 접근할 수 있다는 한계도 뚜렷하다. 공공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개인과 기관이 소장한 날것의 부산 관련 기록물은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흩어져 있다.

부산의 정체성인 부산학을 체계적으로 집적한 아카이브도 없다. 부산시사편찬위원회가 부산학을 다룬 〈항도부산〉 발간을 비롯해 부산의 역사를 수집·연구하지만 2명뿐인 인력으론 역부족이다. 부산연구원의 부산학연구센터는 부산의 미래와 관련한 프로젝트 차원에서 과거를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자료 집적과는 거리가 있다. 대학에서 생산한 부산학 성과 공유도 제대로 된 네트워크가 없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이 연제구에 있지만, 국가의 관점에서 기록과 정보를 관리하고 특히 재난에 대비한 조선왕조실록 태백산본 분산 보존의 역할에 방점이 찍혀 있다. 부산의 관점으로 부산의 기억과 기록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관리하는 컨트롤타워인 부산기록원이 필요한 이유는 차고 넘친다.

부산기록원 설립은 2007년 12월 기본계획을 세운 뒤 10년 넘게 의미 있는 진척이 없다. 지난해 부산연구원에서 ‘부산기록원 설립 필요성 및 방향 설정 연구’라는 현안 분석 자료를 내고 내부검토는 하고 있지만, 예산 한 푼 없이 뒷전으로 밀려난 상태다.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부산기록원 설립에 미적거리는 사이 부산의 정신적 자산인 기록들은 훼손과 망실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먼구름 한형석 선생의 삶을 재조명할 수 있었던 건 중국에서 어렵사리 가져와 간직한 자료 덕분이었다. 그중 숫자보로 기록된 ‘광복군가집 제1집’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유족의 힘만으로 자료를 보존하는 건 버거운 일이다.

골목이 사라지면서 부산을 만든 골목의 기억도 사라지고 있다.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라는 한탄을 할 때는 이미 늦었다. 부산기록원 설립은 선택 사양이 아니다. 지금 준비해도 이미 늦다.

ttong@busan.com

이상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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