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805> 다수호기?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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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국내 원전 4곳이 사상 최악의 사고를 냈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처럼 부지 한 곳에 원자로 여러 개가 밀집된 '다수호기(多數號機)' 원전이지만 이에 대한 위험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인터넷에서 본 뉴스인데, ‘다수호기(多數號機)’라는 말이 거슬린다. 원전 업계에서 쓰는 말인 듯한데, 제대로 된 용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원전을 세는 단위는 ‘호기’가 아니라 ‘기’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기(基): ①무덤, 비석, 탑 따위를 세는 단위.(묘역은 사방 십 리인지라 그 안에 있던 백성들의 가옥, 전답은 물론 수천 기의 조상 묏자리까지 빼앗겼으니….〈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②원자로, 유도탄 따위를 세는 단위.(대륙 간 탄도 유도탄 12기/정부는 현재 43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내년까지 55기로 늘려 국내 전력의 40%를 충당할 예정이다.)

반면 ‘호기’는, ‘예방정비를 마친 고리원전 3호기와 4호기가 내일 재가동된다’처럼 쓴다. 즉, 각각의 순서를 표시할 때 쓰는 말인 것. 그러니 ‘4개 호기, 다수호기’ 따위 표현은 어색할 수밖에 없다. ‘우리 비행대대는 전투기 12개 호기로 편제돼 있다’처럼 쓰는 것과 다름없는 것. 아니면, ‘하나부터 열까지’를 ‘하나부터 십까지’나 ‘일부터 열까지’로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다시 예를 들자면, ‘우리 비행대대는 전투기 12기(대)로 편제돼 있다/우리 비행대대 3호기, 4호기는 지금 정비 중이다’처럼 전체 숫자를 셀 때는 ‘기’, 각각의 순서를 나타낼 때는 ‘호기’로 구별해 써야 한다.

‘4개 호기’는 ‘4기’, ‘다수호기’는 ‘밀집 원전’, ‘단일호기’는 ‘단일(단수) 원전’쯤으로 쓰면 될 터. 단위어를 정확히 쓰지 못하면, 언어능력을 의심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된다.

‘어획량이 늘면서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오징어 가격도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 횟감용 살아있는 오징어는 위판장에서 한축(20마리)에 최고 6만4000원까지 했다.’

어느 신문 기산데, 역시 어색한 부분이 있다. 한 축이 20마리라는 풀이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축’이 이 자리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표준사전을 보자.

*축: 오징어를 묶어 세는 단위. 한 축은 오징어 스무 마리를 이른다.

살아 있는 횟감용 오징어를 ‘묶어서’ 셀 리는 없으니 사실상 ‘축’은 마른 오징어에만 쓰는 말이라는 얘기. 해서, 살아 있는 오징어는 그냥 ‘마리’면 충분했다.(덧붙이자면, ‘횟감용’도 ‘횟감’이면 충분했고….)

jinwoni@busan.com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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