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카메룬 ‘언어 전쟁’

이춘우 기자 bomb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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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개가 넘는 종족 언어가 있는 아프리카 55개 국 가운데 영어권이 20개 국, 불어권이 24개 국에 이를 정도로 두 언어가 아프리카 언어를 장악하고 있다. 영어권 아프리카와 불어권 아프리카는 언어를 넘어 정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제국주의 식민 정책의 산물이다. 일례로 1994년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르완다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탄자니아에서 회의를 열 예정이었으나, 프랑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불어권 국가의 운명을 영어권 국가들에게 맡길 수 없다는 이유였다. 르완다는 내전 당시 불어를 사용했다. 2000년 들어, 영어권인 우간다에서 30년간 생활한 폴 카가메가 집권하면서 르완다는 불어와 영어를 함께 쓰는 국가가 됐다.

르완다와 함께 카메룬도 영어와 불어를 공용어로 쓰는 이중 언어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카메룬은 1960년 프랑스 점령지 동카메룬이, 1961년 영국 점령지 서카메룬이 독립해 하나의 나라가 됐다. 10개 주 가운데 8개 주가 불어를 사용하는 프랑코폰, 2개 주가 영어 상용의 앵글로폰 지역이다. 프랑코폰이 지역과 인구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지배 세력의 언어도 불어다. 37년간 장기 집권 중인 폴 비야 대통령도 프랑스 유학파다. 카메룬은 르완다와는 달리 역사적으로 종족 사이 큰 분쟁은 없었지만, 최근 몇 년 새 앵글로폰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카메룬의 언어 갈등은 영어권 분리주의 무장 세력의 등장으로 내전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16년 영어권 법률가와 학생, 교사들이 영어 차별 정책에 항의해 벌인 시위가 유혈 진압되면서, 영어권 분리 독립운동이 시작됐다. 분리주의자들은 2017년 10월 북서부주, 남서부주 2개 영어권 지역에 암바조니아라는 독립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무장 투쟁에 나섰다. 분리주의자들은 불어권 지배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학교를 공격하고 교사와 학생들을 납치, 살해하고 있다.

계속되는 유혈극으로 앵글로폰 지역 수십만 명의 학생들이 등교 공포에 시달리고 있고, 50만 명 이상의 국내실향민이 발생했다. 지난 20일에는 세 살배기 아이가 잔혹하게 살해됐다. 영어권 지역 유혈 사태를 두고 분리주의자들과 카메룬 정부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3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카메룬의 언어 갈등이 일시적인 정치적 충돌이 아니라, 내전으로 치달을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카메룬 언어 전쟁의 저변에는 유럽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 정책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춘우 편집위원 bombi@


이춘우 기자 bomb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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