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지역 신문의 쓸모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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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디지털영상본부장

발행 부수를 인증하는 한국ABC협회의 2018년 12월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간지 166개사의 발행 부수는 모두 963만 1921부다. 전년대비 0.16% 감소했다. 일본에선 지난 10년간 1000만 부 줄었으니 일본의 폭락세에 비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소폭이다.

“지역 일간지 평균 발행 부수가 25만 부이니, 해마다 지역 일간지가 4개씩 폐간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美 경영난 지역지 폐간 속출

동네 뉴스 없는 ‘뉴스 사막’ 확산

정치 투표도 중앙에 동조화

지자체 효율 저하 등 부작용

급기야 시민사회 ‘펀드’ 지원

한국 포털은 지역 뉴스 차별

시장 논리 아닌 공공재로 봐야

지난해 일본 마이니치신문을 방문했을 때 ‘디지털 퍼스트’ 전환 계기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일개 신문사의 하루 발행 부수가 1000만 부를 넘고, 집집마다 충성스럽게 신문을 구독하는 ‘신문 대국’의 영화가 무색했다.

그래도 미국에 비하면 한국과 일본의 사정은 낫다. 한국과 일본에선 아직 폐간한 신문사가 나오지 않았다. 반면 미국에서는 2004년 이후 일간지 60여곳, 주간지 1700여곳 등 모두 1800개 신문사가 폐간되거나 합병돼 사라졌다. 문 닫은 일간지 대다수인 53곳은 발행 부수 5만 부 이하로 작은 행정 구역(카운티)을 권역으로 하는 ‘동네 신문’이었다.

지난해 12월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방송〉에 소개된 노스캐롤라이나대 보고서는‘동네 신문’이 사라진 ‘뉴스 사막’이 미 전역에서 확산 중이라고 우려했다. ‘동네 뉴스’가 없어지자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유령 신문사’까지 횡행하면서 정치 갈등을 부추기고 민주주의까지 위협한다는 경고음을 울린 것이다.

지역 여론의 공백이 지역 공동체에 초래한 폐해는 충격적이다. 지역 정치와 경제는 물론 일상 생활 전반에 끼친 악영향을 분석한 실증 연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지역 신문 퇴장 이후 지역 정치가 중앙 정치에 동조화된 결과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허약한 한국에선 기시감이 느껴질지 모르겠다.

지난해 12월 저널오브커뮤니케이션에 실린 〈신문 폐간이 정치 양극화 초래〉에 따르면 대통령 - 상원 의원 선거 때 지역 신문이 폐간된 선거구에선 분할 투표 비율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1.9% 낮았다. 유권자들이 지역의 시선이 담긴 지역 뉴스를 접하지 못한 채 양대 정당 프레임의 전국 뉴스를 통해 정보를 얻은 탓에 후보 선택에 동조화가 일어났다는 의미다.

지역 신문이 사라진 지역에선 지자체 재정 건전성이 나빠지고 경제도 악화된다는 연구 결과는 놀랍기까지 하다.

지난해 7월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열린 〈지방재정컨퍼런스〉에서는 신문이 폐간된 지역 지자체의 차입 비용이 증가하면서 행정 효율성이 떨어지고 주민 세 부담까지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조사 결과 지역 신문이 폐간된 카운티의 지방채 이율은 평균 0.11%p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의 감시를 덜 받게 되고,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사이 임금과 고용, 세금 등 모든 지표에 비효율성이 증가했다는 것이 연구의 핵심이다.

이 밖에 〈신문이 유독물질 배출을 줄이는가〉는 미 환경보호국(EPA)의 ‘유독물질배출목록’과 지역 신문의 위치 정보를 비교했다. 연구자들은 지역 신문의 보도로 배출량이 29%나 줄어든 사례 등을 근거로 지역 신문과 환경 보호의 상관성을 밝혔다.

급기야 지역 신문의 쇠퇴가 초래한 부작용에 위기를 느낀 시민사회에서 지원 운동에 나섰다. 미국저널리즘프로젝트(www.theajp.org)는 “시장 경제가 지역 신문을 퇴출시킨 결과 민주주의가 위협 받게 됐다”는 취지를 내세우면서 지역 뉴스를 부흥하기 위한 4200만 달러(우리 돈 500억 여원) 펀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적자생존이 미덕인 나라에서 파산 위기의 지역 신문을 지원하는 시민운동이 벌어지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 이유는 ‘동네 뉴스’는 대체재가 있는 상품이 아닌 대체 불가한 공공재라는 뒤늦은 자각 때문이다.

시선을 돌려 한국의 지역 신문이 처한 곤경을 생각해 본다.

한국에서 ‘지역 뉴스의 사막’은 포털에 있다. 포털의 뉴스 유통량이 압도적인데도 재경 매체만 ‘콘텐츠 제휴 매체’로 입점되어 뉴스 메뉴를 독차지하고 있다. 반면 지역 매체들은 검색 결과로만 노출된다.

네이버와 카카오 두 포털이 올해 검색 알고리즘을 바꾼 뒤 상황은 더 나빠졌다. 지역신문의 특종이나 1보 조차 검색 결과 상단이 아닌 몇 페이지 뒤로 밀려나기 일쑤다. 지역 매체는 디지털 공론장에서 ‘도편 추방’된 거나 마찬가지다.

지역의 목소리가 사라진 뒤의 사회적 폐해는 미국 ‘뉴스의 사막’이 반면교사다. 포털에서 차별 받는 지역 뉴스. 시장 논리를 들이댈 것이 아니라 공공재로 바라볼 때 해답이 있다.

dojune@busan.com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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