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찬핵과 반핵의 흑백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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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권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며칠 전 한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 반핵 단체에서 부산 기장에 건설되는 동위원소 생산용 원자로를 반대한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지난 부일시론 지면에서 언급했던 고준위 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에 대한 나의 비판적 의견 때문인 듯도 했다. 솔직히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찬반을 떠나 그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물었어야 했기 때문이다. 반핵 단체에서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부터 되물었다. 여하한 ‘원자로’ 건설도 반대하는 연장선인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불조심’을 위해 요리하는 가스 불을 켜는 것도, 캄캄해서 촛불을 켜는 일도 덮어놓고 반대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이후 찬찬히 설명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동위원소 생산용 원자로는 기존에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원자로와는 비교도 안 되는(천분의 일도 안 되는) 작은 용량이며, 둘째 현재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 중인 동위원소의 생산은 그 자체로 방사선 기술의 응용으로 경쟁력이 유망한 새로운 산업 분야라는 것, 셋째 원전 지역인 기장을 비발전 분야 연구단지로 전환하는 상징적 의미도 큰 데다 의료용 중입자치료기와 더불어 방사선 기술연구의 시너지효과가 상당하리라는 것이다.

사용후 핵연료 정책 재검토위원회

원전 관계자 원천 배제 이해 안 돼

원전, 대체에너지 개발 때까지 필요

극단적인 찬반 입장 강요는 성급

찬핵, 정치적 논리에 갇히지 말고

반핵, 막연한 이상주의 벗어나야

사실 핵물리학을 전공하는 교수로서 핵에 대한 찬반 입장 표명을 강요받는 현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물론 나에게도 궁극적인 의미에서 분명한 입장이 없진 않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극단의 양쪽 모두 무조건적으로 명분에만 집착하는 모양새다. 열이 펄펄 끓어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를 앞에 놓고 싸움을 벌이고 있는 부모들처럼 말이다. 결국 어느 경우에도 막대한 국가 에너지원인 원전을 지금 당장 꺼버릴 수도,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 결론이다. 원전은 국가의 에너지정책이라는 장기적인 큰 틀에서 다뤄져야 한다. 따라서 아직은 해결책이 없는 핵폐기물과 사고의 위험성 때문에 의존도를 점차 낮춘다 해도 친환경 대체에너지 연구가 실용화되기까지 원전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조차도 인간의 에너지 소비에 대한 궁극적인 의식 변화가 없는 한 결국 모두 실패할 것이다. 이런 엄중한 현실을 두고 무조건 찬성 혹은 반대의 입장만 주장하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일이다.

언젠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위탁을 받아 원전 지역 환경방사능의 모니터링 연구를 진행하고 그 연례행사로 주민 설명회가 열린 적이 있었다. 주변 환경방사능에 큰 문제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데, 한 주민이 일어나더니 극렬하게 항의하는 것이 아닌가. 한수원에서 수주한 연구 결과를 어떻게 믿겠느냐는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친환경 국가인 독일에 오래 머물다가 곧장 부산대 교수로 부임했던 나로서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원전 지역 주민들의 불신이 얼마나 극심한지 실감했는데, 더 큰 충격은 그다음이었다. 어수선한 행사장을 나오는 길목에서 조금 전 설명회 자리에서 난리를 친 바로 그 주민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정말 수고하셨다”며 90도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공손히 명함을 건네더니 공직에 출마할 예정이라고 했다. 뒤통수를 세차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은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그리고 지극히 사적인 이유만 있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 깨달음이 찾아왔다. 우리 사회에 여러 논란이 빚어질 때마다 그 갈등의 본질은 거의 대부분 개인의 사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다는 것.

지난달 29일 출범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에 원전 지역 관계자, 환경 단체, 원자력계 대표 기관 및 단체 관련자는 원천 배제됐다. 이해 당사자는 모조리 제외하고 해당 이해 관계의 결정을 중립적인 인사들에게 맡기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남북 문제와도 판박이인가. 재검토위원회가 출범하는 날 아침에 반핵 단체들은 규탄 성명부터 발표했다. 더욱 놀랄 만한 일은 이토록 중요한 공론화 준비 과정이 그 어떤 주요 언론에서도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가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결정이 찬반이라는 양쪽 극단의 대결로 귀결되고 결국에는 국민에게조차 알릴 필요 없는 냉소적인 사안이 됐다는 것은 커다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양비론이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단 두 개의 선택지로 국민을 몰아가는 일은 흑백논리와 결코 다르지 않다. 찬핵론자들은 만연한 안전 불감증과 터무니없는 아전인수, 가짜뉴스를 이용한 정치적 논리에서 벗어나고, 반핵론자들은 무조건적인 반핵 이상주의에서 헤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원전 지역 단체 역시 고질적인 보상금 병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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