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비아토르-여행하는 인간] ②빌바오의 재발견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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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미술관이 빌바오의 전부라고 생각한 건 ‘착각’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전경. 기존의 전통적인 미술관과는 판이하게 다른 형태와 공간을 창조했다. <출처: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홈페이지>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전경. 기존의 전통적인 미술관과는 판이하게 다른 형태와 공간을 창조했다. <출처: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홈페이지>

흔히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면서 수도 마드리드, 북동부 카탈루냐의 바르셀로나, 남부 안달루시아의 세비야와 그라나다는 주요 코스로 잡지만 빌바오가 포함된 북부 바스크 지방까지는 웬만해선 가지 않게 된다. 아무래도 짧은 여행 기간을 감안하면 마드리드에서 빌바오까지, 고속열차로 5시간이나 소요되는 곳을 다녀오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도 굳이 빌바오까지 가고자 한다면 필시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최근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20세기 건축’에 등재된 미국 건축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솔로몬 R.구겐하임)도 훌륭하지만, 프랭크 게리에 의해 지어진 빌바오구겐하임도 그에 못지않다. 미술품을 소장하는 공간이라는 기능적 관점을 넘어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작품이다. 게다가 제프 쿤스의 거대한 꽃 강아지 ‘퍼피’와 ‘튤립’,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 리처드 세라의 ‘시간의 문제’ 등 다양한 현대 미술품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내외부를 장식한 작품들 가운데 제프 쿤스의 거대한 꽃 강아지 ‘퍼피’가 맨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내외부를 장식한 작품들 가운데 제프 쿤스의 거대한 꽃 강아지 ‘퍼피’가 맨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외부에 전시 중인 제프 쿤스의 '튤립'.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외부에 전시 중인 제프 쿤스의 '튤립'.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건물 외부에 설치돼 있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건물 외부에 설치돼 있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1층에서 영구 전시 중인 리처드 세라의 '시간의 문제'.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1층에서 영구 전시 중인 리처드 세라의 '시간의 문제'.

그런데 정작 빌바오에 도착해서 놀란 것은 빌바오구겐하임이 빌바오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한 도시의 랜드마크 건축물이 그 지역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현상인 ‘빌바오 효과’ 덕분이겠지만 ‘제(대로) 알(지) 못(한)’ 빌바오였다. 1997년 빌바오에 솔로몬 R.구겐하임 분관이 유치됨으로써 쇠퇴하던 조선·철강 공업도시의 경쟁력을 세계적으로 드높인 건 맞지만 그것은 전체 그림의 일부일 뿐이다. 그보다 더 오래된 도시 재생 스토리와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추진된 프로젝트가 있었다. 왜 빌바오를 두고, ‘모더니즘의 도시’, ‘디자인의 도시’라고 하는지 현지에 가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도시 전체가 현대건축 거장들이 꾸민 거대한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도 세트장이 아닌 삶의 터전에 파고든 생활예술 일부라는 게 놀라웠다.



스페인의 대표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빌바오 공항. 스페인의 대표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빌바오 공항.

빌바오 공항 내부에 설치된 디자인 의자. 빌바오 공항 내부에 설치된 디자인 의자.

도시의 관문인 공항부터 남달랐다. 날개를 편 새 같기도, 비행기 같기도 한 공항 터미널은 스페인의 대표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해 2000년 문을 열었다. 빌바오구겐하임을 끼고 있는 네르비온 강을 가로지르는 보행자 전용 다리 ‘수비수리(Zubizuri)’도 그의 작품이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연상시키듯 곡선 형태가 디귿(ㄷ) 형태로 구부러진 독특한 모양의 다리다. 건너편에는 ‘건축계 노벨상’으로 통하는 프리츠커상 2019년 수상자인 일본인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가 설계한 트윈 타워 ‘이소자키 아테아’가 우뚝 서 있다. 길거리를 지나다 독특한 외관의 캐노피(지하철 출입구)에 이끌려 다가갔더니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지하철 역사다. 노먼도 1999년 프리츠커상 수상자다.


스페인 빌바오 네르비온 강을 가로지르는 보행자 전용 다리 ‘수비수리’. 빌바오 공항을 설계한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작품이다. 스페인 빌바오 네르비온 강을 가로지르는 보행자 전용 다리 ‘수비수리’. 빌바오 공항을 설계한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작품이다.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독특한 외관의 캐노피(지하철 출입구).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독특한 외관의 캐노피(지하철 출입구).

Carlos Ferrater가 디자인한 독특한 디자인의 아파트. 유리와 금속 등 매우 현대적인 재료를 사용했다. Carlos Ferrater가 디자인한 독특한 디자인의 아파트. 유리와 금속 등 매우 현대적인 재료를 사용했다.

빌바오미술관(Bilbao Fine Arts Museum) 글래스 스크린. 빌바오미술관(Bilbao Fine Arts Museum) 글래스 스크린.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맞은편에 2002년 문을 연 GRAN HOTEL DOMINE BILBAO. 디자이너 Javier Mariscal의 실내 디자인이 돋보이는 호텔 로비.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맞은편에 2002년 문을 연 GRAN HOTEL DOMINE BILBAO. 디자이너 Javier Mariscal의 실내 디자인이 돋보이는 호텔 로비.

그 밖에 ‘뉴 빌바오’를 이끈 유명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서 발견됐다.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1992년),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1996), 여성 최초 수상자가 된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2004) 등 프리츠커상 수상자만 해도 여럿이었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을 지낸 멕시코를 대표하는 건축가인 리카르도 레고레타,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를 디자인한 아르헨티나 태생의 미국 건축가 시저 펠리도 보였다. 그들의 예술혼이 담긴 공간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처럼 공공기관뿐 아니라 대학의 부속 건물, 병원, 호텔, 아파트, 상업공간 등으로 아주 다양했다. 밤이 되면서 조명이 하나둘 켜지자 도시는 더 환상적인 풍경으로 변했다. 자정이 넘도록 네르비온 강변과 도심을 걸었지만 피곤한 줄 몰랐다.



스페인 건축가 후안 콜 바로(Juan Coll- Barreu)가 설계힌 '바스크 건강관리국(Basque Health Department)' 본사 건물. 이 건물은 독특한 외양뿐 아니라 에너지 효율까지 높다고 한다. 스페인 건축가 후안 콜 바로(Juan Coll- Barreu)가 설계힌 '바스크 건강관리국(Basque Health Department)' 본사 건물. 이 건물은 독특한 외양뿐 아니라 에너지 효율까지 높다고 한다.

와인거래소에서 복합커뮤니티 시설로 변신한 ‘아스쿠나 센트로아’. 와인거래소에서 복합커뮤니티 시설로 변신한 ‘아스쿠나 센트로아’.
아리아가 극장 앞에서 거리 공연을 관람 중인 시민들. 아리아가 극장 앞에서 거리 공연을 관람 중인 시민들.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를 가지고 있는 빌바오 중앙기차역.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를 가지고 있는 빌바오 중앙기차역.

빌바오를 떠나던 날 초고속열차 렌페를 이용하기 위해 들른 중앙기차역인 ‘아반도’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치 성당에 들어온 듯 대형 스테인드글라스가 빛을 받아 황홀하게 빛났다. 이젠 그 누구도 스페인 북부의 소도시 빌바오를 구겐하임미술관 하나만 바라보고 찾아가선 안 될 것이다. 빌바오엔 간다면 도심 ‘건축 산책’은 꼭 해 보길 권한다. 네르비온 강변의 아리아가 극장을 출발해 ‘수비수리’ 다리를 건너고, 빌바오구겐하임과 모유아광장, 치바리궁전을 지나쳐서 와인거래소에서 복합커뮤니티 시설로 변신한 ‘아스쿠나 센트로아’에 들렀다가 전면이 유리로 된 독특한 건물인 ‘바스크 건강관리국 본사(세데 데 오사키데차)’를 거치다 보면 빌바오의 진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빌바오는 지금도 성장하는 ‘현재진행형’ 도시일지 모르겠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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