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광복절] 부산 독립운동 시설 현주소·대책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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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운동의 聖地(성지) 부산, 역사의 순간 기릴 곳 없는 禁地(금지) 되다

부산 서구 동대신동에 위치한 부산광복기념관. 중앙공원과 민주항쟁기념관 인근에 위치한 이곳은 접근성이 좋지 못하고 전시 면적도 좁아 방문하는 시민이 많지 않다. 강원태 기자 wkang@ 부산 서구 동대신동에 위치한 부산광복기념관. 중앙공원과 민주항쟁기념관 인근에 위치한 이곳은 접근성이 좋지 못하고 전시 면적도 좁아 방문하는 시민이 많지 않다. 강원태 기자 wkang@

“3·1절이나 광복절을 기념해서 가 볼 만한 곳이 없어요.” 부산진구 개금동에 거주하는 김은희(38·여) 씨는 이번 광복절 휴일을 맞아 8살 아들과 함께 서울로 갈 계획이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을 맞아 3·1운동의 발원지인 탑골공원을 가고 서대문형무소에도 들를 예정이다. 김 씨는 부산에는 아이들과 함께 독립운동사를 돌아볼 만한 공간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백산·광복기념관 등 기념관 2곳

전시면적 협소·접근성 불편

비석 등 시설물 대부분 산재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념관 절실

연구소 갖춰 체계적으로 발굴해야

■부산의 독립운동, 기릴곳이 없다

‘송상현 광장’ ‘정발장군 동상’ ‘충렬사’ ‘동래읍성’ ‘좌수영성지’. 임진왜란과 관련 있는 부산의 장소들은 곧잘 떠오른다. 이 장소들은 비교적 부산의 도심에 큰 규모로 위치해 있으며, 꾸준히 관리도 되고 있다.

반면, 부산의 독립운동 관련 시설물은 마땅히 떠오르는 곳이 없다. 부산 중구 동광동에 백산 안희제 선생을 기리는 백산기념관이 있지만, 지하에 지어진 데다 공간이 협소하다. 또 백산 선생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어 부산의 전체적인 독립운동사를 알기는 어렵다. 부산의 대략적인 독립운동사를 살필 수 있는 부산 서구 동대신동 광복기념관이 있지만, 전시면적이 좁은 데다 접근성도 좋지 않아 하루 평균 20명도 채 찾지 않는 공간이다.

두 곳의 기념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비석이나 탑, 동상 등이 부산 곳곳에 흩어져 있고, 부산의 독립운동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전무하다. 이 때문에 부산의 독립운동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부산 독립운동 기념관’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광복회 부산지부에 따르면, 경북, 광주, 대구 등 전국 16곳의 광역·기초지자체가 독립운동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경북 안동 독립기념관은 전시 규모도 큰 데다, 학술·연구 등의 기능도 갖추고 있다. 광복회 부산지부 관계는 “부산에도 한 바퀴 돌아보고 나면 부산의 독립운동사가 머리에 그려지는 정도의 규모 있는 독립운동기념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항일 운동 성지’ 명성 되찾아야

이처럼 부산 지역의 독립 운동과 관련한 기념관이 부족하다 보니, 부산의 독립운동사도 덩달아 크게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혹자들의 머릿속엔 부산이 친일 색채가 강했던 곳이라는 인식도 자리 잡고 있다. 개항으로 인해 일찍이 일본인과 일본 문화를 접하면서 친일 행위에 앞장선 것이 아니냐는 오해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부산이야말로 항일 운동의 성지라고 강조한다. 부산항을 통해 이뤄진 일제의 수탈을 적나라하게 목격한 곳 역시 부산이기 때문이다. 부산에는 1919년 3·1 운동이 시작되기 전부터 대붕회, 구세단, 대동청년단, 조선국권회복단과 같은 비밀결사가 조직됐다. 부산·경남지역의 첫 3·1운동도 역시 부산에서 퍼져나갔으며, 1920년 의열단원 박재혁이 부산경찰서를 폭파하는 등 의열 투쟁이 전개되기도 했다. 또 조선방직 노동자 파업, 부산 학생 항일운동(일명 노다이 사건) 등과 같이 민중들의 투쟁이 해방 직전까지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이처럼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항일 투쟁이 있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교육할 곳이 없어 독립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전 경성대 인문문화학부 강대민 교수는 “다른 지역의 경우 독립운동 기념관 소속의 연구소에서 체계적으로 이를 연구하는데, 부산의 독립 운동 연구는 산발적으로 이뤄지다보니 정제가 안 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연구 기능을 갖춘 독립운동 기념관이 생기면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부산의 독립운동사를 더욱 발굴할 수 도있다”고 강조했다.

■민·관 건립 의지 모여야 할 때

부산 독립운동 기념관을 조성하자는 요구는 이전부터 있어 왔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부산 보훈청과 광복회 부산지부가 오거돈 부산시장 인수위원회에 재차 건립을 요구했지만, 현재 검토조차 되지 않고 있다. 협의를 해나갈 부서도 복지정책과에서 자치분권과, 총무과로 계속해서 바뀌면서 제대로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부산시는 시의 재정여건상 독립운동 기념관을 건립하더라도 시 예산으로 건립하기는 어려우며, 국비를 받아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국비를 받기 위해서는 민간이 사업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 관계자는 “현충시설과 관련해 국비 30%를 지원 받으려면 민간에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며 “민간의 움직임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광복회 부산지부가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일 계획이다. 74주년 광복절을 기점으로 민간이 주도하는 ‘(가칭)독립운동 기념관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광복회 부산지부는 “광복회가 주도적으로 민간의 움직임을 이끌어나가려 한다”며 “부산지역 시민사회와 보훈단체, 학계, 종교계, 정·재계의 많은 관심과 의지가 필요할 때다”고 말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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