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수중고고학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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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고고학자를 꿈꾼다면 번지수가 한참 틀렸다. 해리슨 포드가 열연한 영화 속 고고학자는 모험가나 탐험가로 포장했지만, 제국주의를 등에 업은 도굴꾼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전 세계적으로 300만 척의 난파선이 있다는 바다로 배경을 옮기면 해양판 ‘인디아나 존스’가 차고 넘친다. 무려 150조 원어치의 금화와 금괴를 싣고 침몰한 러시아 함선 돈스코이호를 울릉도 근해에서 발견했다는 사기극에 놀아난 것도 얼마 전 일이다. 이들은 보물을 가득 실은 난파선 찾기에 인생을 탕진하고 종국엔 불나방처럼 허망한 날갯짓만 파닥거리기 십상이다.

1976년 신안 해저 유물 발굴을 시작으로 한 수중고고학의 역사도 난파선 발굴과 궤를 같이한다. 어부의 그물망에 잡힌 주꾸미가 고려청자를 물고 올라온 태안선 발굴처럼 우연의 행운이 뒤따르기도 했고, 무게만 28t에 달하는 중국 동전 800만 개를 실은 원나라 무역선 신안선 발굴처럼 말 그대로 보물을 건져내기도 했다. 신안선 발굴 이후 14척의 난파선과 9만 5000여 점의 도자기를 발굴했으니, 바다는 그야말로 노다지였다.

바다에서 노다지를 캤지만, 수중고고학의 관심은 보물 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보물 그 자체가 목적이라서 돈이 되지 않는 유물은 파괴하는 해저 보물 사냥꾼과는 관점이 다르다. 보물을 침몰 당시의 사람들과 함께했던 온갖 사연이 담긴 타임캡슐로 대한다. 주로 술을 담는 용도로만 추정하던 청자 매병은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역의 마도 2호선 발굴을 통해 참기름이나 꿀을 담는 생활용기로 확인됐다. 신안선 발굴에선 항해 시기와 목적지가 기록된 목간, 출항지가 기록된 청동 저울추를 통해 1323년 중국 닝보에서 일본 하카타로 가던 국제무역선임을 알아냈다. 진해 제포에서 발굴된 수중목책을 통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조선시대 수중 토목 기술을 밝혀낸 것도 보물선 인양만큼이나 값진 수중고고학의 성과다.

부산박물관은 10월 6일까지 ‘한국의 수중보물, 타임캡슐을 열다’라는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다. 신안선에서 시작한 수중발굴 40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다. 아이러니한 건 산소가 차단되는 갯벌의 보호를 받은 덕에 유물의 때깔이 좋다는 거다. 더 아이러니한 건 수중 보물창고라는 행운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침몰한 난파선의 불행에 힘입었다는 거다. 때깔 좋은 보물만큼이나 그 뒤에 숨은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좋은 기회다. 이상헌 논설위원 ttong@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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