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으로 세상 읽기] 22. 미국 소설의 독립선언 마크 트웨인 ‘톰 소여의 모험’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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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소녀에게 모험을 허하라!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에서 미시시피강을 배경으로 영국의 그늘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구사하며 문학적 독립을 이뤘다. 사진은 미국 미시시피강. 부산일보DB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에서 미시시피강을 배경으로 영국의 그늘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구사하며 문학적 독립을 이뤘다. 사진은 미국 미시시피강. 부산일보DB

“고전은 모두의 격찬을 받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은 본인에게는 무색하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왕자와 거지〉 〈아서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 등은 한 세기를 훌쩍 넘겨도 흥미와 매력이 여전하다.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그의 ‘큰아이’는 누구일까. 〈톰 소여의 모험〉에서 미국 소설은 출발했다는 것이 후대 작가 헤밍웨이의 단언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미시시피강을 배경으로, 영국의 그늘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구사하면서 문학적 독립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13세부터 인쇄공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든 트웨인은 오만가지 직업을 거치면서 ‘국민 소설가’로 가는 인생수업을 받았다. 불우한 시절의 팍팍한 경험들이 작가의 자산으로 축적되는 것은 삶의 명암이 호환성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어려움을 유머와 재치로 바꾸는데 능했던 그답게 문학적 분신들도 그늘 한 점 없이 발랄하다. 사고무친(四顧無親)의 허크는 천하태평이다. 집도 절도 없지만, 걱정이 무엇인지 모른다. 부모 잃은 소년 톰도 마찬가지다. 이모에게 혼나도 그때뿐이다. 맺힌 것이 없으니 마음에 주름 한 점 지지 않는다. 전학 온 여학생을 보자마자 지금의 여자 친구는 잊어버리는 바람둥이지만 갇힌 동굴에서 공포에 떠는 ‘여친’을 위해 울음과 배고픔을 참는 믿음직한 사나이다.

미시시피강 배경… 美 소설 출발점 돼

톰과 허크 성장통 겪는 ‘권선징악’ 얘기

“인간의 원형은 모험”이라는 사실 시사

동심 통해 함께 가는 삶의 지혜 일깨워

인류 진화의 원동력은 모험

‘버디(buddy) 영화’의 주연들과 같이 톰과 허크는 성장통을 겪는다. 심야의 공동묘지에서 벌어진 살인, 더구나 살인자가 술로 인사불성인 사람의 손에 칼을 쥐여준 것을 목격했다. 두 소년은 겁에 질려 야위어 가다가 가출했다 돌아오고 톰은 살해 사건 재판에서 진범을 밝히고 영웅으로 등극한다. 허크도 살인자가 죽은 판사의 부인에게 복수하려는 것을 알고 용기를 내서 고발한다. 학교 소풍날 동굴에서 길을 잃게 된 톰은 살인범과 직면하는 위기에 빠지지만, 무사히 벗어나고 덤으로 여자 친구의 사랑과 보물까지 얻는다. 허크 또한 보물을 나눠 갖고 판사 부인의 양자가 되는 해피 엔딩이다.

따지고 보면 권선징악의 빤한 구성인데 어떻게 고전의 반열에 올랐을까. 작가 박민규에 따르면, 끊임없이 모험에 나서는 소년들을 통해 인간의 원형이 모험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에 가능했단다. 실제 오늘의 인간을 만든 것은 호기심에 기초한 모험이다. 낯선 것, 새로운 대상을 알고 싶은 마음은 나무 위에 살던 한 무리의 유인원들을 탁 트인 사바나 초원으로 옮겨가게 했다. 그렇게 인류는 진화했다. 위험을 무릅쓴 모험과 도전이 호모 사피엔스를 만들고 문명을 빚어낸 것이다. 톰과 같은 아이들이 허크를 좋아하는 까닭도 모험가에 대한 동경에서다. 부모가 없고 학교를 안 다니고 잠도 아무 데서나 자는 허크야말로 미지의 세계로 자신을 밀어넣는 비범한 영혼이 아닌가. 후속작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허크는 달빛 가득한 미시시피 강(Moon River)을 유유히 떠가는 영원한 표류자로 진일보한다.

경쟁의 귀결은 따돌림

그러나 지금 우리 아이들은 모험이라는 인간의 본성과 욕망에서 소외되어 있다. 톰이나 허크와 같은 자유로운 친구들의 무용담을 들으면서 대리 체험할 기회도 변변치 않다. 모험에 따른 리스크를 회피하고픈 부모들은 아이들을 경쟁의 링 위로 집어넣는다. 사회가 제시하는 진학과 취업의 검증된 경로에 의존하면 만사가 오케이다. 굳이 위험이 따르는 모험을 할 필요 따위는 없다. 그런데 경쟁의 속성은 상대 평가다. 1점이라도 더 받고 한 등이라도 더 앞서면 된다. 사소한 차이가 당락을 결정하는 문화에서는 필연적으로 따돌림 현상이 일어난다. 우리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여피(Yuppie)들은 최고급 레스토랑의 예약이나 세련된 명함과 같은 미미한 것까지 차이를 다투다 살인까지 저지른다. 단 한 명만 살아남는(Last Man Standing) 무한경쟁 사회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본래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한 원리들이 경쟁이나 모험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이 더 적합할까.

이럴 때 〈톰 소여의 모험〉은 발상의 전환점이다. 어른들이 가장 꺼리는 이른바 ‘불가촉’ 친구인 허크와 함께 공동묘지와 폐가 등을 탐험한 톰은 용기도 얻고 보물도 찾았다. 사회적 소수를 포용하는 톰은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삶의 지혜 그 자체다. 왜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험을 허(許)하지 않을까. 산후조리원부터 대학교까지 설계된 궤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날것의 경험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의 천하를 다니며(行萬里路), 벗과 스승을 찾는(交萬人友) 자기주도적 모험에 나설 때, 철부지는 어른으로 탄생할 것이다.


정승민


교양 팟캐스트 ‘일당백’ 운영자


※이번 기획은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연재합니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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