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좋은 위기를 헛되이 보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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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

1957년 미국 보잉사가 시속 1000㎞의 여객기 ‘B-707’을 세계에 선보였다. 이는 시속 30㎞를 달리는 증기 기관차가 나온 지 50년 만에 무려 33배나 빠른 ‘교통수단’을 인간이 가졌다는 의미다. 그러나 50년 동안 시속 1000㎞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계는 기술력 부족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환경과 규제가 오히려 더 큰 걸림돌이었다. 공항 이·착륙 규제, 소음과 안전 문제, 그리고 경제성까지 고려하면 기술력이 뒷받침되어도 교통수단으로서 속도의 한계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았다.

일본 해운사 덩치 키워준 '한진 파산'

다시는 그런 정책 오점 되풀이 말아야

일 경제 침탈, 우리 역량 재점검 기회로

위기보다 극복 과정에 방점 찍어야

환경문제는 새로운 기업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환경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투자가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환경의 관점에서 해운산업은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우호적이고, 선박은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이다. 자동차처럼 자연을 훼손시켜 도로를 만들지 않아도 되고, 대량 수송능력 덕분에 단위당 수송에 필요한 환경오염 비율은 가장 낮다. 간혹 ‘느린 운송수단’이라는 지적을 받지만, 최근에는 물 위를 날아다니는 첨단 위그선처럼 속도의 한계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있다. 더구나 선박 그 자체가 운송수단을 넘어 거대한 정보 해상도시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해운산업은 세계 경제의 바로미터다. 최근 유행하는 ‘저성장’이라는 용어는 무역 축소를 뜻하고, 이는 곧 해운과 조선산업의 침체를 의미한다.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현상을 로렌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은 ‘뉴노멀’로 압축해서 설명했다. 지금의 저성장은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모든 국가에 시련과 도전이 강제되며, 새로운 성장 동력과 혁신산업 발굴이 요구된다는 메시지다. 한·일 경제전쟁과 미·중 무역전쟁도 이런 거시적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전쟁이 그렇지만 정치적 이유보다 경제적 이유가 더 크다. 글로벌 저성장은 그만큼 줄어든 과실을 차지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일본은 공격적인 양적 완화와 재정 확대, 엔화 가치 하락 등을 추구하는 ‘아베노믹스’를 통해서 고질적인 디플레이션 탈출에 성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웃한 한국과는 세계 곳곳에서 치열한 시장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디지털 혁명 시대를 간과한 일본의 대표 가전업체들은 세계시장 점유율 경쟁에서 잇따라 참패했다. 그 결과 소니, 파나소닉, 샤프, JVC, 도시바, 파이오니어 등 한때 세계시장을 주름잡았던 기업들은 한국과 중국 기업들에게 자신의 패권을 넘겨주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일본 소재산업은 그런 점에서 어쩌면 브랜드 완제품 시장을 빼앗기고 남은, 몇 안 되는 ‘일본 자산’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가진 일본 경제인들이 의외로 많다.

일본 경제계의 한 지인은 “일본 소재산업은 한국의 선진화된 완제품 기업들과 국제 분업을 통해 상생할 수밖에 없는데, 자손 대대로 정치말고는 해 본 것이 없는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 상황을 착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치인들은 세계 경제의 구조적 분업화와 매트릭스처럼 잘 짜인 산업 현장의 긴밀한 내적 유통 단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본 지인들은 일본이 휘두른 칼이 비수로 되돌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늘 그렇지만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의 경제적 침탈은 우리 역량을 재점검할 절호의 기회다. 저성장의 길고 깊은 늪에서 빠져나온 국가만이 새 국제 질서를 선도하며 항해할 수 있다고 볼 때 국가 역량을 총결집할 때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우리를 죽이지 않는 것은 예외 없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일갈했다. 윈스턴 처칠도 “좋은 위기를 헛되이 보내지 말라”면서 위기보다 극복 과정에 방점을 찍었다.

한진해운이 부도로 파산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2016년 8월 한진해운 부도 사태를 목도한 일본 3대 해운선사는 그로부터 2개월 뒤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운 뒤 한진의 빈자리를 차지했고 단숨에 세계 6대 선사에 올랐다. 한진해운 부도는 한국 해운정책 역사에서 최대의 오점으로 회자된다. 한·일 경제전쟁에서는 같은 실책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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