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뒤주에 쌀이 떨어졌는데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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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악수하는 폴 크루그먼(왼쪽) 뉴욕시립대 교수. 연합뉴스 지난 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악수하는 폴 크루그먼(왼쪽) 뉴욕시립대 교수. 연합뉴스

조국 후보자가 드디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이로써 후보자와 그 가족들을 두고 벌어졌던 정치적 공방과 논란이 잠잠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로 더욱 격렬해질 것 같아 근심스럽다. 신임 장관을 지지하는 이든 반대하는 이든 모두 나름의 근거와 이유가 있을 터이다. 과연 후보자 딸의 학력 문제가 마치 내란음모죄를 다루듯이 유난을 떨 만큼 큰일인지 모르겠다. 사회 지도층의 주변에 의혹이 있다면 당연히 밝혀야 할 터이다. 하지만 행정부든 입법부든 사법부든 검찰이든 언론이든 우리 사회가 가진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 자원을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를 고민하는 것이 바로 경제학이 하는 일인데, 경제학자인 내가 보기에는 편익보다 비용이 너무 크다. 일본과의 무역갈등이 아직 진행 중이고, 남북·미 대화는 여전히 진전이 없고,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도 해결될 기미가 없고, 우리나라의 주요한 수출상대국 가운데 하나인 홍콩에서는 여전히 시위가 극렬하고, 2분기 성장률은 잠정치를 밑돌고 있다. 그래서 경제 부총리까지 나서서 올해 성장률 전망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고백하는 마당에, 듣도 보도 못한 대학의 학위 위조의 의혹마저 있는 총장이 1년에 수백 장을 뿌려댄다는 표창장 양식을 가지고 이십여 명이 넘는 검사가 덤벼드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적이지 못하다.

세계적 석학 폴 크루그먼 최근 방한

한국에 ‘확장적 재정정책’ 조언

추가경정 예산안 국회 통과 한 달

예산 집행 어떻게 되는지 궁금

선심성 사업 마구잡이 사용 안 돼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 주목받지 못했지만, 며칠 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가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노벨상 수상자라고 해서 늘 옳은 말만 하는 것도 아니고, 세계적인 석학일지라도 다른 나라의 경제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크루그먼 교수도 잘 모른다는 전제를 달고 조심스럽게 한국경제에 대해 충고를 남겼는데, 바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정부가 돈을 더 쓰라는 뜻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추가경정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꼭 한 달이 되었다. 그런데 규모가 너무 크다며 정부가 예산을 삭감하지 않으면 합의할 수 없다고 버티던 야당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에 가서는 지역개발 예산을 내가 따 왔다고 자랑한다는 기사를 보니 씁쓸하다. 아무튼 야당이 원래의 추경안에 반대한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지출이 늘면 그만큼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하니 국민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정부가 한 푼의 세금도 거두지 않고 한 푼의 지출도 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부담 또한 한 푼도 들지 않을 터이니 과연 옳은 일인가? 정부는 당연히 국민들의 세금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해야 한다. 문제는 얼마나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그 돈을 쓰느냐는 데 있다.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에 선심성 사업을 마구잡이로 가져가는 작태가 바로 국민들의 세금을 가장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다.

할 수만 있다면 정부가 빚을 적게 지는 편이 좋다. 그러나 비유해 보자면 기업이 내일 부도를 맞을 형편이라면 빚을 내서라도 부도를 막아야 옳다. 더 적절한 비유를 해 보자. 뒤주에 오늘 저녁에 먹을 쌀이 떨어졌는데 빚을 지지 않으려고 굶어 죽을 것인가? 빚이 아니면 남의 집 담이라도 넘어야 옳은 일 아닌가 말이다. 조금 과장되기는 했지만 지금 우리 경제는 남의 집 담이라도 넘어야 할 판이다. 정작 국민들은 뒤주에 양식이 없어 굶고 있는데, 배부른 국회의원들은 한가로이 국민들의 부담 타령을 하고 있으니 갑갑하다.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예산안이 통과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그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다는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유유자적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갑갑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나물에 그 밥, 그 형님에 그 아우, 그 입법부에 그 행정부인가 보다.


조준현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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