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30만 원씩 10년 모아도… 결혼·신혼집 ‘미션 임파서블’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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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청년 미래보고서] 1부 - ③ 부산 청년 살림살이

매달 25일 김 모(31·남구 대연동) 씨는 근무 도중 한 시간에 서너 번 스마트폰을 흘깃한다. 월급 입금을 알리는 ○○은행 앱의 ‘푸시 알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3년째 부산 한 유통업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 씨의 7월 세전 봉급은 250만 원. 김 씨의 4대 보험, 세금, 학자금 대출(26만 원)을 뺀 198만 원으로 자동이체가 한꺼번에 몰린 다음 달 1일 ‘쩐의 전쟁’을 벌인다.

사회초년생 김 씨의 한 달살이

매월 25일 급여 250만 원 받아도

4대 보험·세금·학자금 대출에 52만 원

월세·관리 등 고정 지출 100만 원 이상

생활비 쓰면 통장 잔고 6만 4000원

中企 평균 초임 연봉 2769만 원

“연애·문화활동 꿈꾸지 못하는 청춘”

8월 1일. 휴대전화 7만 5000원, 원룸 관리비 8만 원, 보험료 15만 4000원, 월세 40만 원, 적금 30만 원 등 모두 100만 9000원이 단 하루 만에 빠졌다. 여기에 8월 15일 추가로 하이패스 이용금액 3만 8000원이 지출되는 등 8월 한 달간 고정비만 모두 104만 7000원.

비고정비로는 차 기름을 3번 채워 교통비로 18만 원, 일주일에 1~2번씩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등 생활비 35만 원이 쓰였다. 차는 3년 전 김 씨 아버지가 취업 축하 선물로 사준 아반떼 중고차다. 여기에 김 씨는 주말마다 여자친구를 만나 영화를 보거나 식사를 하는 등 연애비용 18만 2000원도 지출했다. 이 밖에 회식 후 대리비, 조카 생일 선물, 친구들과의 곗돈, 회사 선배 경조사비, 이발비, 유흥비 등으로 15만 7000원을 썼다. 8월 한 달간 비고정비 지출금은 모두 86만 9000원. 고정비와 합한 모든 지출금을 빼면 김 씨 통장에는 달랑 6만 4000원만이 남았다. 지난달에는 김 씨가 좋아하는 옷이나 신발도 사지 않았다.

김 씨는 “입사 초기 연말정산에 세제 혜택을 보기 위해 10만 원짜리 개인퇴직연금(IRP)을 가입했지만, 결국 5달 만에 남는 돈이 없어 해지했다”면서 “어떤 달은 허리띠를 졸라매 10만 원 이상 남겨도 결국 명절이나 여름휴가가 겹친 달에 다 써 버리고 만다”고 푸념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올 하반기 대졸 신입직을 채용하는 중소기업 152곳의 평균 초임 연봉은 2769만 원(세전)이다. 이는 한 달 약 230만 원으로, 김 씨보다 적은 돈을 버는 청년들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김 씨처럼 월 30만 원씩 10년간 어렵게 모으더라도, 겨우 3600만 원을 저축하는 셈이다. 결혼자금, 신혼집 마련 등을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부동산서베이 조사에 따르면 신혼부부들이 주로 입주하는 공급면적 66~99㎡ 미만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2억 1206만 원(2019년 6월 기준)이다. 최대한의 대출을 낀다 하더라도, 50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돈으로는 부모 도움 없이 결혼이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이 같은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대기업이나 금융 공공기관 등으로 이직 준비를 하며 연애나 문화활동을 아예 포기하는 청년들도 있다. 지난해 말 부산 중소기업에 취업한 송 모(29·사하구 하단동) 씨는 “부산 내 연봉 3000만 원 이상 직장에 이직한 뒤 연애를 할 계획”이라면서 “그때까지 최소한의 자금만 쓰고, 남은 돈은 토익스피킹 학원비 등 이직 준비를 위해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지역 내 대기업, 공기업 유치 등으로 ‘고임금 일자리’가 마련되지 않는 한, 사실상 부산 청년의 주머니 사정은 나아질 수 없다. 결국 한정된 월급으로도 부산에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저임금 대책 확대가 필요하다.

현재 부산시가 시행 중인 대표적인 저임금 대책은 청년 ‘희망날개통장’이다. 매달 본인이 10만 원을 적립하면, 시가 10만 원을 추가 적립해 3년 후 총 720만 원을 돌려주는 정책. 2017년 시행 후 매년 수혜자가 500명씩 늘고 있으며, 예산도 2017년 1억 8000만 원, 지난해 7억 6000만 원, 올해 13억 8000만 원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신청자도 2017년 3200명, 지난해 1050명으로 여전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신청 자격 등이 까다로워 자격 완화 등 대상자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시의회 김혜린 의원은 “중위소득 80% 이하 조건을 100% 이하로 낮춰 여러 계층의 청년이 혜택을 보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산시 관계자는 “현재 경기도에서도 중위소득 100% 이하를 자격 기준으로 정하고 있고, 저소득층은 다른 국가 복지 사업 지원도 가능하기 때문에 대상자 확대 차원에서 조건 완화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산시의회 박민성 의원은 “월 300만 원을 줄 기업이 없다면, 200만~250만 원으로도 살 수 있는 부산을 만들면 된다”면서 “직접적인 임금 보전 정책뿐 아니라, 문화, 임금, 주거 등에 대한 청년의 ‘체감 부담’을 낮출 간접적 저임금 대책도 장기적으로 고민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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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본부 정수원 PD 선우영 대학생 blueskyda2@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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