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남계서원·대구 도동서원] 유네스코도 감탄한 서원 건축美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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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남계서원의 전경. 우리나라 서원의 독창적인 배치 방식인 전학후묘(前學後廟) 방식을 처음으로 적용돼 건립됐다. 앞 부분은 후진을 양성하는 학문의 공간이고 뒤쪽은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으로 나눠진다. 함양군청 제공 함양 남계서원의 전경. 우리나라 서원의 독창적인 배치 방식인 전학후묘(前學後廟) 방식을 처음으로 적용돼 건립됐다. 앞 부분은 후진을 양성하는 학문의 공간이고 뒤쪽은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으로 나눠진다. 함양군청 제공

문득 바라본 차창 밖 가로수의 색깔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밤이면 서늘한 바람을 타고 흐르는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마음 한편에 오래도록 머문다. 어느새 가을이 깊어간다. 가을꽃도 좋고, 때 이른 단풍도 끌리지만 마음 속 허전함까지 달래주기엔 서원(書院)이 제격이다. 서원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와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유네스코는 올 7월 한국의 서원 9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대부분 경북 지역에 자리한 가운데 경남에서는 함양의 남계서원이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함양 남계서원

전형적인 조선 서원 건축 양식 표본

건물 앞은 학문 뒤는 제사 ‘전학후묘’

차로 5분 거리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

대구 도동서원

낙동강 내려다보며 배치한 건축미 탁월

퇴계 이황도 극찬한 김굉필 선생 모셔

중정당 기둥에 ‘상지’ 두른 유일한 서원

함양 남계서원, ‘전학후묘’ 우리나라 서원의 전형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함양 남계서원을 비롯해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영주 소수서원, 경주 옥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논산 돈암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등 모두 9곳이다.

유네스코는 성리학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잘 이해할 수 있으며, 건축물은 물론 원래의 지형과 주변 환경, 기록유산, 무형의 유산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고 서원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했다.

지리산과 덕유산 줄기를 내다보며 남강변의 탁 트인 들판 위로 터를 잡은 함양의 남계서원은 우리나라 서원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으로 다른 서원의 본보기가 됐다고 평가받는 곳이다.

건물 배치는 앞은 낮고 뒤는 높은 전저후고(前低後高), 앞은 강당이고 뒤는 사당인 전학후묘(前學後廟) 방식으로 지어졌다. 사당을 제일 높은 곳에 두고 강당을 거쳐 출입문까지 일직선으로 놓인 모습이다.

노유연 문화해설사는 “뒤로는 조상의 선현을 배향하고 앞으로는 후진을 양성하는 공간을 두는 것이 전학후묘”라며 “남계서원의 건물 배치는 이후 우리나라 서원이 가진 독창적인 배치 방식의 표본이 됐다”고 말했다.

함양은 조선 시대 한양을 기준으로 ‘좌안동 우함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빼어난 유학자가 많았다. 안동에 퇴계 이황이 있다면, 함양에는 일두 정여창이 우뚝하다. 조선 전기 사림파를 대표하는 유학자인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며 세워진 것이 바로 남계서원이다.

유생들이 십시일반 모은 쌀과 곡식으로 1559년 건립됐으며, 영주의 소수서원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서원이다. 남계는 서원 곁에 흐르는 시내 이름이다.

남계서원은 입구부터가 남다르다. 출입문인 풍영루는 2층 누각 형태로 1층은 문, 2층은 유생들이 공부하거나 손님이 오면 학문을 토론할 수 있는 장소다. 풍영루를 들어가면 양옆으로 연당(연못)이 있고, 연못 뒤로는 유생들의 기숙사였던 애련헌과 영매헌이 소박하게 자리 잡았다. ‘연꽃을 사랑하는 집’, ‘매화를 읊는 집’이라니…. 치열하게 성리학을 공부하는 중에도 자연을 사랑하던 옛 선비들의 풍류가 그대로 드러난다.

남계서원의 중심인 명성당. 현판을 임금이 하사한 사액서원이다. 남계서원의 중심인 명성당. 현판을 임금이 하사한 사액서원이다.

서원의 중심에는 교육공간인 명성당이 있다. 가운데 빈 공간은 유생들이 공부하던 곳이고 양쪽 방은 공부를 가르치던 스승들이 사용하던 곳이다. 명성당 뒤쪽에는 정여창 선생 등 위패가 모셔진 사당이 있다. 사당으로 오르는 돌계단 좌우에 선 커다란 배롱나무 두 그루가 아직 분홍빛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남계서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정여창의 고향이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토지’ 촬영지로 잘 알려진 개평 한옥마을이 있다. 국가민속문화재인 일두 고택을 비롯해 유서 깊은 전통 한옥 60여 채가 남아 있다.

꽃무릇이 한창인 함양 상림공원. 꽃무릇이 한창인 함양 상림공원.

고운 최치원이 조성한 ‘천년의 숲’ 함양상림(천연기념물 154호)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마침 붉은 융단같은 꽃무릇이 한창 때여서 아직 초록이 우거진 숲과 함께 여행자를 유혹한다.

달성 도동서원,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

낙동강 바로 옆에 자리한 대구 달성군의 도동서원은 우리나라 서원 건축의 백미, 성리학적 서원 건축 미학의 정수로 꼽힌다. 대니산 서북쪽 끝자락에서 낙동강을 내려다보면서 경사지를 이용해 서원의 건축 배치를 탁월하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동서원은 조선 시대 성리학을 이끈 다섯 명의 대가를 일컫는 ‘조선오현(朝鮮五賢)’ 중 으뜸으로 꼽히는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모신 곳이다. 퇴계 이황은 김굉필을 두고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며 극찬했다. 김굉필을 기리는 서원에 ‘도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전형적인 배산임수,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잡은 도동서원에 들어서면 앞을 지키고 선 은행나무가 400여 년 세월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원래 이름은 쌍계서원이고 위치도 비슬산 자락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지금의 자리에 중건돼 1607년, 선조로부터 현판을 하사받았다. 은행나무는 그때 심어진 것이다.

강당으로 올라가는 좁은 돌계단과 낮은 환주문. 삼가하고 겸손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강당으로 올라가는 좁은 돌계단과 낮은 환주문. 삼가하고 겸손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수문장 같은 은행나무를 지나 출입문인 수월루로 들어서면 보물처럼 숨겨진 공간이 마법처럼 펼쳐진다.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설 수 있는 환주문은 학문과 선현 앞에서 예를 갖추고 삼가라는 뜻을 말없이 펼쳐 보인다.

달성 도동서원의 중정당과 그 아래 기단. 기둥 위에 붙은 흰 종이띠는 조선오현 중 으뜸인 김굉필 선생을 모신 서원임을 나타낸다. 달성 도동서원의 중정당과 그 아래 기단. 기둥 위에 붙은 흰 종이띠는 조선오현 중 으뜸인 김굉필 선생을 모신 서원임을 나타낸다.

배움을 전수하는 도량인 중정당에는 굵은 민흘림기둥 여섯 개가 있고, 위쪽에는 상지(上紙)라 불리는 흰 종이띠가 둘러져 있다. 흰 띠는 조선오현 중 으뜸을 뜻하는 수현을 모신 서원임을 나타낸다. 으뜸은 하나이니 상지를 두른 서원도 전국 서원 가운데 도동서원이 유일하다.

마루 아래 기단에는 선비들의 학문 성취와 출세를 기원하는 용머리가 4개 돌출돼 있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기단을 쌓은 돌들의 독특한 모양이다. 4각, 6각 심지어 12각의 돌을 맞춰 기단을 쌓았는데, 전국의 제자들이 스승을 추모하기 위해 돌을 보내 쌓았다. 이른바 ‘다듬돌 허튼층 쌓기’ 기법이다. 색깔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 돌들이 한데 어우러져 조각보처럼 조화를 이룬 모습에 쉽사리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보물로 지정된 도동서원의 돌담. 보물로 지정된 도동서원의 돌담.

주위를 건물을 둘러싼 낮은 흙담이 단아함을 뽐낸다. 암키와와 수막새, 그리고 흙을 이용해 담을 쌓았는데, 음과 양의 조화를 구현한 것이다. 도동서원의 강당과 사당, 담장은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서원, 알고가기

서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 요즘과 비교하면 사립대학 정도로 볼 수 있다. 서당이 단순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라면 서원은 어느 정도 학식을 갖춘 유생들을 대상으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대학자들을 기리며 사당을 세워 제사도 지내는 공간이었다.

이 때문에 서원은 크게 강당과 기숙사로 이뤄진 강학 공간과 사당을 중심으로 한 제향 공간으로 나눠진다. 기숙사는 동재, 서재로 구분되는데 학생들의 학문 수준과 신분의 귀천에 따라 건물 구조와 크기가 조금씩 차이를 두고 있다. 툇마루가 있고 없고, 기둥이 둥글고 각지고 등 미묘한 차이를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서원은 예를 중시하는 유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들어가고 나올 때와 관람을 하면서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서원을 출입할 때는 동쪽으로 들어가서 서쪽으로 나오는 동입서출(東入西出) 원칙을 지켜야 한다. 여기에서 동쪽은 단순한 방위가 아니라 주인이 안에서 바깥을 바라볼 때 왼쪽을 뜻한다. 도동서원처럼 지형 상 북쪽을 향해 건물이 배치돼 있더라도 들어가는 방향에서 보면 오른쪽을 동으로 친다. 부처님을 모시는 절에서 서입동출을 하고, 탑돌이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글·사진=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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