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식민지’ 면하려면 기업 스스로 바뀌어야
“바꾸거나 바뀌거나.”
심전도 측정 스마트시계 개발업체 ‘휴이노’의 길영준 대표는 스마트 헬스케어 시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국내 업계가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애플,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대기업들에 의해 강제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휴이노, 심전도 측정 스마트워치
애플보다 3년 빨리 개발했지만
국내 인증체계 미비로 빛 못 봐
애플은 지난해 심전도 측정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시계 ‘애플워치 4’를 시장에 선보였다. 휴이노는 이보다 3년 빠른 2015년에 이미 심전도 측정 스마트시계인 ‘메모워치’를 개발한 부산에서 출발한 창업기업이다.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출신인 길 대표는 자신이 연구한 ‘다중생체신호를 이용한 혈압추정 모델’을 기반으로 심전도 측정 스마트시계를 만들어 내게 됐다. 보다 저렴하고 편리하게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게 하자는 의도였다.
글로벌 기업 애플보다 3년이나 빨랐으나 메모워치가 시장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건 국내 의료체계가 발빠르게 움직이는 업체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전도 측정 스마트워치에 대한 인증체계를 갖고 있지 않았던 건 물론, 인증에 필요한 검사장비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기에 휴이노는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올 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휴이노를 ‘규제 샌드박스 1호 업체’로 선정했다. 현재는 고대안암병원과 함께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으며, 지난달에는 국내 스타트업 가운데 최대 규모인 83억 원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남은 과제도 있다. 길 대표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선도기술이다 보니 적절한 보험 수가를 정하는 쉽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다”며 “식약처, 보건복지부, 심평원 등 여러 유관기관들로부터 협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길 대표는 스마트 헬스케어의 여러 분야에서 국내가 해외 선진국들에 비해 뒤처져 있다는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헬스케어 식민지’를 면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혁신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 길 대표는 “최근 바이오 영역 등에서 좋지 않은 소식들이 전해지지만, 이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도 모두 겪었던 일종의 성장통”이라며 “국내에서도 역량을 갖춘 헬스케어 업체들이 성장하고 있다. 정부가 규제 개선과 혁신의 기조로 시장을 개척해 나가려는 이들을 지원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