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상영작 리뷰]어떤 침묵-김은정 영화평론가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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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묵인이라는 선택


영화 ‘어떤 침묵’ 스틸컷. BIFF 제공 영화 ‘어떤 침묵’ 스틸컷. BIFF 제공

침묵은 가장 편하고 쉬운 선택이다. 타인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일을 보았을 때, 이성적으로 설득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특히 권력으로 작동하는 압제를 마주했을 때 그렇다. 그것이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라면 시스템 혹은 권력자의 부당함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긴 쉽지 않다. 지배자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침묵은 숙명 같은 것이라고 변명하고만 싶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침묵은 묵인이라는 선택이다. 미하일 호게나우어 감독의 ‘어떤 침묵(A Certain Kind of Silence)’은 이런 묵인의 선택이 무엇을 야기하는지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체코 출신의 여성 미카엘라는 어느 부유한 집에서 열 살 소년을 돌보는 보모 일을 맡게 된다. 교양 있어 보이는 집주인 내외, 깔끔하고 넓은 집, 좋은 근로 조건, 얌전해 보이는 소년까지 무엇 하나 나무랄 것 없는 일자리다. 그러나 이튿날부터 조금씩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집안에서 모든 일은 철저한 계획에 따라 행해진다. 이를테면 식사는 음식이 준비되고 가족 모두가 식탁에 앉았다하더라도 계획된 정확한 시간이 되어야만 시작할 수 있다. 집주인 내외는 미카엘라에게 집안 규칙이 적힌 여러 장의 문서를 내밀며 그것들을 모두 따르겠다는 서명을 하라고 요구한다. 또 그녀를 미아라고 부르기로 한다. 미카엘라는 한 번도 그렇게 불려본 적 없다며 미샤라고 불러달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아무 상관없다는 태도로 그녀를 ‘미아’라고 부른다.

더 중요한 문제는 미카엘라가 돌봐야하는 소년 세바스티안과의 관계에서 벌어진다. 엄격한 가정교육에서 비롯된 것인지 표정 없는 세바스티안은 억눌린 생활을 하는 듯하다. 그런 소년이 안쓰러웠던 미카엘라는 세바스티안에게 소년다운 자유로움과 개인의 취향에 대해 알려주려 한다. 소년의 얼굴엔 옅은 미소가 생기지만 이 일 때문에 미카엘라는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낯선 도시에서 생계가 막막해진 미카엘라는 결국 집주인 내외가 말하는 규칙을 철저히 준수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리곤 알게 된다.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소년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그들이 구상하는 개인성을 말살한 엘리트 공동체에 대하여.

그러나 미카엘라는 침묵한다. 이제 그녀는 안락한 그 집에서 그들이 시키는 일에 의구심을 품거나 저항 없이 그대로 따르며 ‘미아’로 살아간다. 그녀의 침묵은 동조와 같다. 표정 없는 ‘미아’가 된 그녀는 세바스티안이 다니엘로 바뀐다 하더라도 계속 침묵하리라.

미카엘라가 ‘미아’가 되는 침묵의 과정은 나치즘과 파시즘 시대의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역사 속에 묻힌 이야기들인가. 놀랍게도 ‘어떤 침묵’은 최근 유럽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을 지적한다. 유럽까지 눈을 돌릴 필요는 없다. 어쩌면 바로 우리 곁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일지 모른다. 나의 침묵이 무엇을 야기할지 무겁게 고민하게 하는 영화다.

김은정 평론가 김은정 평론가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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