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에서 만난 영화인] 영화계 ‘유리 천장’ 넘는 女 감독들 활약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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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스터 존스’. BIFF 제공 영화 ‘미스터 존스’. BIFF 제공

여성감독의 활약은 최근 국제영화제에서 살펴볼 수 있는 현상이자 화두다. 스크린과 TV를 넘나들며 연출작만 44편에 달하는 폴란드 출신의 거장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과, 첫 장편 연출작으로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한국계 호주인 문은주 감독에게 여성감독으로서 영화 연출은 어떤 일인지 물었다.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

‘미스터 존스’ 아이콘 부문 초청

스크린·TV 연출작 44편 ‘거장’

“함께 싸우고 경쟁하고 연대해야”


“여성 관객 중심 변화 ‘현재진행형’”

“어떻게 하면 여성감독으로서 저같이 계속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냐고요? 이름이 아그네스여야 하고 키가 작아야 해요”.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은 거장 아그네츠카 홀란드(사진) 감독은 위트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지난 3월 타계한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는 멘토이자 영웅이었고, 그를 존경한다며 덧붙인 말이다. 폴란드어로 아그네츠카, 프랑스어로 아녜스는 영어로 하면 모두 아그네스다.

홀란드 감독은 신작 ‘미스터 존스’로 부산을 찾았다. BIFF가 올해 처음 선보이는 ‘아이콘’ 부문에 초청받았다. 영화는 1933년 스탈린 정권 아래 소련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다. 웨일스 출신 기자 가렛 존스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대기근을 취재해 진실을 폭로한다.

‘미스터 존스’를 영화화한 이유로 홀란드 감독은 “전체주의 시기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굉장히 비극적 사건인데 잊혀서 올바르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언론인의 용기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싶었다”며 “가짜뉴스의 시대에 기자가 용기를 가지고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영화 속 언론인을 통해 말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홀란드 감독은 영화뿐만 아니라 TV 드라마, 넷플릭스까지 매체를 넘나드는 작업을 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에피소드 4편, 미국 방송사 HBO의 걸작 드라마 ‘더 와이어’ 에피소드 3편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TV 시리즈 작업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홀란드 감독은 “90년대 말 LA에 살 때 영화로는 복잡하고 혁신적인 주제를 다루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면서 “그러다 TV 케이블 시리즈에 동참하게 됐는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신인 배우를 발굴하는 재미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여성 영화인으로서는 폴란드에서 활동할 때보다 미국으로 넘어와서 ‘유리 천장’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최근 할리우드의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주인공 영화가 박스오피스 성적이 더 좋았다”며 “그동안 남성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고 여성을 데려가는 극장 문화에서 여성 스스로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영화계에 혁명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영화인을 꿈꾸는 여성감독에게 “함께 싸우고 경쟁하고 연대하라”고 조언했다.

문은주 감독

‘아이 엠 우먼’ 첫 장편 연출작

로스쿨·방송기자 화려한 경력

“의사 결정 자리에 여성 많아야”

“의사결정 자리에 여성 있어야”

한국계 호주인인 문은주(사진)감독은 BIFF 개막식 레드카펫을 아버지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80대 아버지는 아이처럼 해맑게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었다. 개막식 레드카펫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하자 문 감독은 “아버지에게 특별한 경험을 드리고 싶었다”며 웃으며 말했다.

실제 인물인 호주 출신 헬렌 레디가 미국 LA에서 가수가 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아이 엠 우먼’은 문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토론토국제영화제(TIFF)의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받았고,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는 음악영화이자 여성을 조명한 영화다.

그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헬렌 레디의 ‘아이 엠 우먼’을 듣고 강렬하다는 인상을 받았고 꼭 영화화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이 엠 우먼’의 스틸컷. BIFF 제공 ‘아이 엠 우먼’의 스틸컷. BIFF 제공

문 감독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여느 한국계 이민 가정이 그렇듯 교육열이 강한 집안에서 자랐고, 로스쿨을 나와 방송기자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항상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다는 꿈을 놓치지 않았고, TV 광고,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 연출에 이어 이번에는 영화까지 만들게 됐다.

그는 “스스로는 항상 디렉터라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감독이 될 수 있는지 몰라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하지만 자신을 믿고 계속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최근 TIFF에 참석해 깨달은 바가 있다고 했다. 문 감독은 “영화 전문지 〈인디 와이어〉에서 주목받는 여성 감독 12명을 초청해 만찬 행사를 열었다. 여성 영화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단순히 여성 감독이 영화를 많이 만드는 것보다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여성이 많아지는 게 더 중요한 일이더라”고 설명했다. 예산 배분이나 배급까지 실제 돈을 집행하는 자리에 여성이 자리 잡고 활약해야 한다는 거다.

차기작 역시 여성을 다룬 영화다. 1975년 미국 항공사 팬암에서 일하는 여성 5명이 베트남 전쟁 말미에 자발적으로 피해자 구조 작업에 나선 실화를 다룬 ‘라스트 플라이트’를 준비하고 있다.

한편, ‘아이 엠 우먼’은 한국 배급이 확정돼 조만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는 “한국에서 영화를 상영할 수 있어 기쁘고 엄마와 딸, 할머니가 손잡고 영화를 보러 오면 좋겠다”면서 “유튜브에서 헬렌 레디의 노래 ‘아이 엠 우먼’을 보고 오면 ‘싱어롱’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며 환하게 웃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사진=심유림 인턴기자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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