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질병, 외로움] 1. 치명적인, 너무나 치명적인 - 세대별 외로움 사례
무직·투병·가난에 무너진 자존감… “마음 터놓을 사람이 없어요”
원치 않는 사회적 고립의 결과로 생기는 외로움은 개인적 감정으로 치부해 버리면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특히 무력감, 짜증, 우울증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키고 치유를 어렵게 만든다. 여기 소개하는 네 사람의 고백은 외로움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웅변한다.
20대 男 거듭된 취업 실패에 초라
40대 男 길어진 투병생활 무력감
60대 女 사별 후 가난에 친구 기피
70대 女 빠듯한 생활·단절된 대화
원치 않는 사회적 고립은 치명적
■20대 남성
혼자 산 지 6년째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부모님이 계신 창원을 떠나 부산 금정구의 원룸 빌딩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대학 시절은 그럭저럭 즐거웠다. 친구들도 많았고, 꿈도 있었다. 이렇게 외롭고 무기력하게 된 것은 대학 졸업 후다. 1년 휴학까지 해 가며 어학 점수, 각종 자격증 등을 준비해 가며 취업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오전 10시에 일어나면 마땅히 할 일도 갈 곳도 없어 멍한 상태가 된다. 오후 늦게 허기를 떼우고 사이버 공간을 여기 저기 헤매다가 채용 정보를 찾고 입사 지원서를 작성한다.
취업해서 돈을 버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 처음에는 취업에 필요한 정보라도 얻을 요량으로 연락도 하고 종종 만나기도 했다. 취업 실패가 거듭될수록 스스로 초라해져 요즘은 가급적 접촉을 피하고 있다.
무직자 신세가 1년 넘어가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된다. 졸업 후까지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없어, 밤에는 편의점에서 시급제 아르바이트를 한다. 오후 8시 출근해 새벽 2시까지 일한다. 그래도 월세며 통신비며 생활비며 충당하기가 빠듯하다.
무력감이 깊어지면서 자존감이 무너지는 걸 느낀다. 어떨 때는 계속 이렇게 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퇴근 후 어둡고 좁은 원룸으로 돌아온다. 원룸은 문만 닫으면 감옥이나 다름없다.
■40대 남성
비극은 13년 전 벌어졌다. 버스로 출근하던 길에 사고가 났다. 온몸이 으스러질 정도의 부상을 당했다. 그 사고로 직장도 결혼의 꿈도 날아가 버렸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지만 일주일에 2번꼴로 병원에 다닌다. 몸이 여기저기 쑤셔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한다. 투병 생활이 길어지면서 무력감과 짜증이 늘었다. 가끔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분노가 끓어오르다가 금방 우울해진다. 요즘은 우울증이 심해져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
2년 전에는 살던 고시원에서 쫓겨났다. 술을 마시면서 몰래 피운 담뱃불을 끄지 않고 잠이 들어 하마터면 고시원에 불이 날 뻔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부산 남구에서 방 한 칸을 얻어 살고 있다. 1년 내내 찾아오는 사람은 어머니밖에 없다. 큰 일이 생겨도 의논할 사람도 찾아갈 사람도 없다. 어머니가 세상과 유일한 통로이지만 만날 때마다 대판 싸운다. 아들이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기 일쑤인데, 결국은 싸움으로 끝난다.
얼마 전 보이스 피싱 사기를 당했다.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친절하게 응대해 주던 그 사람이 사기꾼이었다. 나의 개인정보로 만든 대포 통장이 범행에 사용돼 나는 졸지에 피의자가 됐다. 되는 일이 하도 없어 죽고 싶은 생각뿐이다.
■60대 여성
남편과 함께일 때는 달랐다. 남편의 직장이 괜찮아 형편도 나쁘지 않았다. 남편과 5년 전 사별했다. 부산 금정구의 한 다세대주택에 혼자 산다.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월 100만 원 정도 번다. 집에 있는 것보다 일하는 게 좋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일에 집중하면 그게 나은 것 같다. 일이 힘들어도 며칠 쉬면 마음이 좋지 않다. 평소에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게 어렵다. 성격이 밝은 편이었는데 이제 바뀐 것 같다.
깊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없다. 우울하면 어쩌다 고향 친구들을 만난다. 한 번 쓰러졌을 때도 친구를 부른 적 있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요즘은 먼저 나서서 얘기를 못한다. 형편이 나빠지면서 자신감이 떨어졌다. 한동안 냉장고도 없이 살 정도의 형편이었는데 돈을 빌려달라고 말을 꺼내기 어렵다. 세상에서 내 편인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가끔 엘리베이터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이다. 창문도 없고 사방이 다 막혀 질식할 것만 같다. 앞이 캄캄하고 억누를 수 없는 감정도 생긴다. 너무 힘들 때는 머리를 벽에 부딪치거나 손으로 때릴 때도 있었다. 가끔 콱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지금도 일이 잘 안 풀리면 ‘이렇게 살아서 뭐하겠느냐’는 생각은 가끔 한다. 이런 내 마음, 다른 사람한테 드러내기가 껄끄럽다.
■70대 여성
결혼 후 충청도에서 부산으로 이사 왔는데 남편은 4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장성한 딸 둘은 결혼해 나갔지만 각자 사는 게 바빠 연락을 거의 하지 않는다. 지금 동래구에서 아들과 방 두 칸짜리 월셋집에서 살고 있다.
둘이 산다고 외롭지 않은 건 아니다. 40대에 접어든 아들은 외출을 끊은 채 제방 밖으로도 잘 나오지 않는다. 나와도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는다. 속이 터져 잔소리를 하지만 그것도 귀찮은지 아예 문을 걸어 잠갔다.
매일 생활이 비슷하다. 오전 10시쯤 집을 나서 양정에 있는 의료기기 홍보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 오후 4시쯤 돌아온다. 홍보관에서는 직원들이 말도 걸어 주고 해서 시간이 잘 간다. 이 사람 저 사람 보는 재미도 있다. 홍보관까지 가는 지하철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나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그럼에도 기초생활수급자 급여로만 살려고 하니 생활이 빠듯하다.
집에 돌아오면 적막하다. 이 동네에 오랫동안 살았는데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그 흔한 스마트폰도 없다. TV가 유일한 낙이다. 사람과 말 한 마디도 섞지 않을 때가 많다. 홍보관이 문 닫는 주말에는 정말 적적하다. 끼니도 거르고 하루 종일 누워 지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박진국·이우영 기자 gook72@busan.com
박진국 기자 gook7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