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도시를 만나다' 오슬로의 강렬한 노을 없었다면 뭉크의 ‘절규’는 없었을 것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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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도시를 만나다/전원경

‘아를의 화가’ 고흐는 네덜란드 출신이다. 고흐가 1886년부터 2년간 살았던 파리는 고향 네덜란드보다 더 따듯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고흐는 파리의 냉랭한 분위기를 견뎌내지 못했다. 화가들과의 다툼이 잦아지고 동생 테오마저 형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하자 고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1888년 2월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이 ‘충동적 출발’이 화가로서 고흐의 인생을, 그리고 서양 미술사의 향방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왔다. 고흐는 열 여섯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가다 남프랑스 작은 도시 아를에 내렸다. 이곳에서 고흐는 ‘론 강의 별빛’ ‘밤의 카페 테라스’ ‘과수원이 꽃피는 복숭아 나무’ ‘노란 방’ ‘해바라기’ 등 걸작들을 연달아 그려냈다. 고흐는 낯선 마을 아를에서 마법처럼 피어나는 과수원의 꽃나무들을 발견했다. 고흐는 열 네점의 과수원 연작을 그리며 프로방스의 놀라운 생명력과 화려하고 밝은 색감에 주목했다. 고흐는 밝은 색감의 사용법, 특히 노란색의 무한한 가능성을 아를의 자연과 태양에서 발견했다. 고흐는 또 프로방스의 건조하고 맑은 여름 대기를 보고 빛의 힘이 얼마나 무한한지 깨달았다.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 ‘해바라기’

프랑스의 작은 도시 아를에서 탄생

독일 울창한 숲서 영감 얻은 슈베르트

도시를 중심으로 풀어나간 예술 기행

〈예술, 도시를 만나다〉는 하나의 도시가 어떻게 걸작을 탄생시켰는지, 거꾸로 예술은 도시에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영국 런던,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체코, 스페인, 이탈리아, 북유럽, 러시아, 미국 뉴욕을 아우르는 예술 기행으로 초대한다.

화가 폴 세잔도 고흐처럼 파리보다 프로방스에서 자신의 소재를 찾았다. 20년 이상 액상프로방스의 생트 빅투아르 산을 거듭해 그리면서 세잔의 그림 형태는 점점 추상으로 변모해갔다. 프랑스 르아브르의 바다와 지베르니의 연못을 평생 탐구했던 모네에게 공간은 매혹의 원천이자 하나의 우주였다.

현대인의 불안한 자의식을 간파한 뭉크의 작품 ‘절규’도 노르웨이의 강렬한 노을 없이는 만들어 질 수 없었을 터. 이 작품은 뭉크가 1893년 11월 저녁에 받았던 인상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초겨울 저녁, 매우 피곤해서 지친 상태로 오슬로의 인근 해안가를 걸어가던 뭉크는 핏빛 노을에서 갑자기 찢어질 듯한 비명을 듣고 그 순간의 감정을 그림으로 옮겼다.

음악가도 공간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독일의 울창한 숲은 슈베르트의 많은 리트에서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숲속의 방랑으로 형상화됐다. 이처럼 활동한 시대는 다르지만 동일한 공간에서 작품 세계를 만들어 간 미술, 음악, 문학 등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전원경 지음/시공아트/556쪽/3만 2000원. 김상훈 기자 neato@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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