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인근 고립 주민들 정체성 갖게 만드는 데 10년 걸렸죠”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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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 정체성을 갖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데 10년이 걸렸습니다. 부산에서 승용차로 6시간 정도를 달려 검열을 받고 초소를 통과해 임진강에 놓인 다리를 지나면서 등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어요. 올해도 꽉 채운 168시간의 전투를 해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안병진 동서대 디자인대 교수

파주 해마루촌 카페·갤러리 건립

마을 캐릭터 고라니 디자인 등 봉사

통일 염원 담은 조형물 부산 설치 희망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근처 서부전선 DMZ 인근에는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돼 분단의 상징이 된 대성동과 통일촌, 해마루촌 등 3개 마을이 있다. 이 중 해마루촌에서 동서대학교 퍼블릭디자인 앤 라이팅연구소 소장인 안병진 디자인대학 교수가 10년째 마을재생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안 교수는 매년 여름 방학 기간을 이용해 해마루촌에 카페와 갤러리 등을 건립하고, 마을의 정체성 수립과 나아갈 방향 등을 주민과 함께 모색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2010년에 시작된 이 마을과의 인연은 고향 마을의 우연한 방문에 이은 마을 주민의 요청이 그 계기가 됐다. 마침 소외된 지역의 봉사활동을 계획했던 안 교수는 “‘선택고립’이라는 형태에서 발생하는 주민들의 고통을 해소하고자 시작된 활동이 어느새 10년을 맞이하게 됐다”면서 “10년의 기간은 한 마을이 온전하게 정체성을 갖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표정 변화와 학생들의 또 다른 집중수업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은 안 교수가 받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한다.

특히 이번 봉사활동에서는 마을의 캐릭터로 안정화돼 있는 고라니를 상징물로 적극 활용한 디자인을 비롯해 지난해에 이어 창고갤러리에서 DMZ 생태를 표현한 포스터 전시회를 진행했다. 이 전시회가 해마루촌 주민은 물론 방문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자 이 마을 노인회장은 안 교수에게 ‘신종여시’(愼終如始)라고 적힌 본인의 붓글씨를 담은 족자를 선물해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안 교수는 마을 내 아무 쓸모없던 120여㎡의 공간을 카페 ‘앉았다 가세요’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그 공간은 지난해까지 쓰레기가 가득했던 창고였지만, 갤러리 겸 마을의 모든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문화복합공간으로 탈바꿈해 인근 유치원의 어린이 행사 등 주민이 원했던 여러 행사를 가능하게 했다.

안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10년 동안이나 봉사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냐며 놀라워했다. 10년 동안의 지역 브랜딩 실천은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운 연구과제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올해 진행된 ‘생태 박물관 숲’을 통해 생태계 보물창고인 DMZ 등을 주민과 학생 그리고 방문객이 보다 많이 찾을 수 있도록 했고, 지난해 마을 창고에 조성한 ‘평화 갤러리’에서는 ‘생태 박물관 숲’을 주제로 한 21개의 포스터전을 열어 관람객을 맞을 수 있도록 했다”며 “숲을 주제로 한 조형물을 향후 부산에도 설치해 통일 염원을 담아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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