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문화가족을 위한 디지털 사회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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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삼 동명대 교수 4차산업혁명연구센터장

조용하고 차분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침묵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대개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은 요란하다. 뛰어노는 아이들도, 흐뭇해하는 부모들도 그러하다. 그런데 이들은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나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도 조용했다. 얼마 전 다문화가족들을 대상으로 회복 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의 광경이다.

다문화가족은 흔히 결혼을 목적으로 온 이주여성과 한국인 남편, 그리고 아이들로 구성된다. 이들을 한꺼번에 만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던 필자는 그날 13가족 40여 명의 구성원을 함께 만났다. 결혼이주여성이 시부모와 원만하게 소통하는 방법, 아이들의 스마트폰 과의존을 예방하는 방법에 대해 상담하고 ‘코칭’하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완고한 시댁 사람들에게 대처하는 기술, 남편이 집안에서 아내를 원만하게 거드는 방법은 호응이 좋았다. 하지만 당시 그들의 시종일관 가라앉았던 분위기는 지금까지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사회적 소외가 이토록 깊이 내면화돼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우리가 운영한 프로그램은 행정안전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으로부터 위탁받은 것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런 사업을 ‘디지털 사회혁신’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그런 아이디어를 우리 사회에 적용해보는 것도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은 꼭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기술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생활 세계의 문제나 불편을 해소하는 상상력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다문화가족의 적응 문제도 그중 하나다. 조사해보니 심각했다. 낯선 땅에서 낯은 사람과 결혼해 아이 낳고 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가운데 편견은 그들의 몫이다. 차별대우는 직업 구하기와 같은 사회활동에서뿐만 아니라 시부모와 남편, 심지어 어린 자녀들로부터도 받고 있다. 한·아세안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화려함의 이면에 그들의 설움과 아픔이 숨어 있는 듯하다. 결혼 이주민 1세대들의 아이들은 이제 국방의무까지 짊어지고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들은 그들에게 마음 편한 이웃이기는 한 것일까.

우리들은 부산에서 다문화가족이 제일 많이 사는 사하구청과 손을 잡고 디지털 혁신사업을 진행했다. 상담, 코칭, 진로지도 전문가들을 모집하여 역량을 강화하는 훈련을 시켜 ‘사람책’으로 만들었다. ‘사람책’이란 글과 책으로 표현되지 않은, 그러나 책 못지않게 전문적 콘텐츠를 많이 가진 사람을 말한다. 사하구 다문화지원센터에서 도움 필요한 다문화가족을 발굴했고, 마음 따뜻한 ‘사람책’을 만나게 했다. 지역의 IT기업인 앤시정보기술과 한국메이커스협동조합도 참여했다.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뜻있는 조직이 모여 ‘사람책’과 적정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유형의 다문화가족에 대한 지원 모델이 세계 최초로 탄생한 것이다.

어떤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질 때는 항상 긍정적인 효과와 더불어 예상 못한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 이른바 ‘윔블던 효과’다. 결혼 이주제도도 우리의 필요성에 의해 도입되었지만 이들의 적응에 부정적 측면이 공존한다.

이번에 겪어 보니 이들도 꿈이 많았다. 그러나 자격지심에 수동적이고 심적으로 취약하다. 몇 년 사이에 우리 사회의 ‘을’들이 억압된 현실을 소리 높여 저항해온 것과는 다르다. 늘 숨죽여 지내는데, 갑자기 큰 문제로 폭발할까 두렵다.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수용하는 더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우선 거주 현황과 더불어 욕구를 완전히 파악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리하고 ‘사람책’ 디지털 혁신사업처럼 수요자 중심의 지원책을 만들어 적정기술을 활용한다면 시쳇말로 가성비, 가심비도 좋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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